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80화 (580/1,000)
  • 580화 아시아 정복 (5)

    트로츠키.

    그는 현 러시아 프로리그의 정점이자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공식 랭킹이 가장 높은 플레이어다.

    […아아! 트로츠키 선수가 나왔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적으로 만나게 되니 위압감이 장난이 아닙니다!]

    [에이스 치고는 다소 빨리 나왔군요!]

    [사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빅이슈였던 것이 우리 한국의 마동왕 선수와 러시아 트로츠키 선수의 1:1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지난번 경기에서 투신 마태강이 보여 줬던 전율적인 모습! 그리고 방금의 활약을 감안하면 충분히 마태강 선수도 트로츠키 선수와 좋은 경기 펼칠 수 있어요! 이거 아주 기대됩니다!]

    캐스터들은 흥분한 기색으로 마이크를 쥐고 있다.

    한편.

    “…….”

    마태강은 긴장한 표정으로 눈앞의 강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트로츠키가 마태강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오우거라. 재미있군. 어디 얼마나 강한지 한번 볼까?”

    트로츠키는 씩 웃으며 마태강과 마주 섰다.

    트로츠키는 진화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덩치가 마태강과 비슷했다.

    거구의 오우거와 그런 오우거만큼이나 거대한 오크가 서로를 탐색하고 있었다.

    …콰쾅!

    먼저 선빵을 날린 쪽은 마태강이었다.

    오우거의 힘에 섞여 작렬하는 화염 데미지!

    하지만 트로츠키는 그것을 너무나 쉽게 막아냈다.

    터엉!

    트로츠키 역시 건틀릿을 쓰는 무투가, 그는 완갑 부분의 뿔을 이용해 마태강의 주먹을 걷어 낸다.

    …퍼퍽!

    마태강은 재빨리 가드를 올려 트로츠키의 반격기를 막았다.

    두 무투가는 서로 일격을 교환한 뒤 뒤로 한 발자국씩 물러섰다.

    마태강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데미지가 아예 안 들어갔잖아?’

    말 그대로, 트로츠키는 방금 불길에 의한 데미지를 전혀 입지 않았다.

    그것은 특수 방어력이 굉장히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반 방어력이 낮은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가드를 했다고 해도 주먹에 의한 데미지 역시도 거의 들어가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에.

    …쿵!

    트로츠키가 한번 발을 구르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캐스터들이 놀라 외친다.

    [아아! 이럴 수가! 이게 무슨 일인가요! 트로츠키 선수의 최대 HP가 갑자기 쭉쭉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게 트로츠키 선수를 아시아 넘버원으로 만들어 준 특성이에요! 일명 ‘피 주머니’ 특성! 주변의 아군 피해량만큼 자신의 최대 HP를 늘리는 스킬입니다!]

    [파티원들이 죽어나갈수록 강해진다는 뜻이네요!]

    [그렇다면 이미 빅토르 안 선수와 표트르 선수의 최대 체력이 트로츠키 선수의 최대 체력에 더해져 있다는 이야기군요! 이거 뭐 3:1로 싸우는 셈입니다!]

    거기에 트로츠키를 감싸고 있는 특성들은 ‘초자연회복’, ‘고속재생’, ‘원소반감’ 등의 방어나 회복 특성들이다.

    땅에 두 발을 대고 있을 경우 자연 회복량이 대폭 증가할 뿐만 아니라 어떤 피해를 입어도 초고속으로 재생해 내며 불이나 얼음, 땅 등 총 16개 타입을 반감시킨다.

    거기에 땅에 두 발을 대고 있을 시 공격력을 올려 주는 ‘그라운드 포스’나 이동 속도를 반감시키는 대신 공격 속도를 두 배로 올려주는 ‘한대맞고두대치기’ 특성, 방어력 스탯을 1저하시키는 대신 공격력 스탯을 2상승시키는 ‘살주고뼈받기’ 특성 등으로 탱과 딜을 동시에 손에 넣었다.

    방어력과 체력만 높고 공격력은 약한 탱커가 아니라는 뜻이다.

    “…어디 한번 붙어 보자.”

    아시아 정상에 있는 탱커, 마태강은 자신의 위치와 정점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보고자 손을 뻗었다.

    콰쾅!

    트로츠키의 가슴에 인주가 찍힌 것 같은 불 자국이 남는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건틀릿이 무수한 폭격궤도를 그리며 트로츠키의 전신을 난타하고 있었다.

    [아아아! 마태강 선수! 바로 근성 콤보를 발동시킵니다!]

    [공포의 108계단이 허공에 무수한 불의 궤적을 그려 놓고 있습니다!]

    [압도적입니다! 한국의 아들 투신 마태강이 아시아 넘버원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어요!]

    [유효타 횟수가 7… 12… 25… 32… 56! 계속 올라갑니다!]

    하지만. 정작 필드에 나와 있는 마태강 본인의 표정은 그렇지 밝지 않다.

    ‘…안 먹혀?’

    때리는 사람만이 아는 감각.

    지금 무수히 꽂히고 있는 주먹들 중 제대로 들어간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

    트로츠키는 그저 묵묵히 두 팔로 가드를 만든 채 마태강의 주먹을 막아 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는 증거는 곧 만천하에 드러났다.

    […어? 그, 그런데 이건 뭔가요?]

    [트로츠키 선수의 HP게이지가 그대로입니다!]

    [세상에! 트로츠키 선수! 마태강 선수의 콤보 연계기를 전부 가드해 냈어요! 거의 아무런 데미지도 입지 않았습니다!]

    [아아아!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캐스터들 역시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에 입을 딱 벌린다.

    지금껏 마태강의 108연격기를 피해 도망친 사례는 있어도 막아 낸 사례는 단언컨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트로츠키는 마태강의 공격을 선 자리에서 전부 막아 낸 것이다!

    “…별 것도 없군.”

    이윽고, 가드 사이로 트로츠키의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차라리 러시아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 치열했단 말이지.”

    귀찮다는 듯 손을 털어 내는 트로츠키, 그는 순식간에 발을 들어 눈앞에 있는 마태강의 옆구리를 퍽- 걷어찼다.

    “…컥!?”

    마태강은 일순간 뭉텅 빠져나가는 HP에 당황해야 했다.

    트로츠키의 공격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그리고 묵직했다.

    분명 체구만 놓고 보면 마태강이 조금 더 컸지만 대신 트로츠키의 체적은 옆으로 넓고 더 옹골차다.

    퍼억!

    트로츠키는 아무런 속성 데미지도 실려 있지 않은 깡 공격력으로 마태강의 가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 ……!”

    마태강은 분명 가드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뭉텅이로 빠지는 HP에 경악했다.

    ‘이건 가드가 안 된다.’

    맞상대로는 승산이 절대 없다고 느낀 마태강은 재빨리 뒤로 빠졌다.

    다행스럽게도 마태강의 메타는 밸런스 메타이니 회피력도 딱히 다른 능력치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터억!

    커다란 손을 뻗어온 트로츠키는 그런 마태강의 몸을 붙잡았다.

    “회피를 하려면 회피 메타만 하고 방어를 하려면 방어 메타만 해야지.”

    밸런스 캐릭터는 사실 나쁘게 말하면 잡캐나 다름없다.

    어느 것 하나 뚜렷하게 뛰어난 것 없이 다 고만고만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적하는 트로츠키의 말에.

    “동감이야.”

    마태강은 짧게 대답했다.

    동시에, 마태강은 깨물고 있던 혀를 놓았다.

    그러자 미묘하게 HP가 회복되며 몸의 변화가 시작된다.

    우득! 우드득!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온 마태강은 눈 깜짝할 사이에 트로츠키의 손에서 팔을 빼고 벗어나 뒤로 내뺀다.

    하지만.

    “동감하지 못한 것 같은데?”

    트로츠키는 괴물 같은 반사신경으로 마태강의 움직임을 따라잡았다.

    “…!?”

    인간의 몸으로 이동 속도에서 밀릴 줄은 상상도 못한 마태강은 일순간 얼어붙었다.

    뒤는 바다, 앞에는 온통 트로츠키의 거구가 꽉 가로막고 있다.

    “마치 네 조국, 한반도를 보는 것 같구나. 후후후.”

    트로츠키는 바다를 등진 마태강을 향해 차게 조소했다.

    동시에.

    …콰쾅!

    해머링(hammering)!

    트로츠키의 주먹이 위에서 아래로 망치처럼 떨어져내려 마태강의 머리 위에 부딪쳤다.

    순간, 트로츠키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막아?”

    그렇다. 그 찰나의 순간 마태강은 두 팔을 들어 올려 트로츠키의 주먹을 막아 낸 것이다.

    …꾸구구국!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크윽!?”

    마태강은 피하거나 반격을 하려 했지만 바닥이 부드러운 모래톱이었기 때문에 그의 몸은 이미 절반 쯤 모래 속에 파묻혀 버렸다.

    위에서 짓눌러오는 트로츠키의 주먹이 너무 무겁고 강했기 때문이다.

    “투지 하나는 제법이구나.”

    트로츠키는 피식 웃었다.

    동시에.

    …콰쾅!

    말도 안 되는 각력의 미들킥이 마태강의 상반신 전체에 꽂힌다.

    …우지직!

    마태강은 모래톱에서 뽑혀 나오는 동시에 옆으로 날아가 야자수 네 그루를 부수고 모래 언덕 두 개를 주저앉힌 뒤 그 너머의 바다까지 날아갔다.

    인간의 몸인지라 더욱 더 가볍고 나약했다.

    퍼퍼퍼퍼펑!

    어마어마한 크기의 물무리가 융기해 오른다.

    하지만 그 파문이 다 가라앉고 이후 흰 포말들까지 모두 걷히고 난 뒤에까지 마태강은 일어나지 못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힘!

    지켜보던 캐스터들과 관중들마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을 정도로 현저한 격차였다.

    [아아, 이럴 수가. 마태강 선수가 리타이어 되었습니다. 사망 로그아웃이에요.]

    [풀피 대 풀피 상태로 시작했었죠? 아쉽게도 트로츠키 선수의 HP에는 거의 변화가 없습니다. 그마저도 자연 회복량만으로 금방 풀피가 되겠네요.]

    [이렇게 압도적인 경기는 또 처음이네요. 그것도 빅리그에 올라와서는 더더욱요.]

    [네! 한국 측의 다음 선수가 잘해 주어야 합니다! 한번 기세 꺾이면 회복이 어려워요!]

    러시아의 괴물 같은 적 트로츠키에 대항할 한국 측 선수가 이내 필드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유세희였다.

    “…….”

    유세희는 차가운 시선으로 트로츠키를 바라본다.

    마태강을 거의 제로데미지로 리타이어 시킨 강적의 출현에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유세희의 등장에 약간 당황한다.

    하지만 그것은 손녀 뻘 되는 귀여운 여아와 싸워야 한다는 노인, 그것도 퇴역 군인으로서의 당황함이지 선수 대 선수 간의 당황은 아니다.

    파팟!

    그 점을 이용한 유세희가 재빨리 선공을 장악했다.

    불카노스 대낫이 허공을 베어 가르며 트로츠키의 목을 노린다.

    “……!”

    불카노스 대낫의 공격력이 만만히 볼 게 아님을 눈치 챈 트로츠키는 재빨리 몸을 틀어 대낫이 지나가고 난 뒤 빈 공간을 향해 주먹을 찔러 넣었다.

    그때.

    유세희가 재빨리 고개를 들어 트로츠키의 두 눈을 쳐다본다.

    번쩍!

    황금광의 혈안! 고르딕사를 잡고 얻었던 ‘마나 번’ 특성이 폭사되어 트로츠키의 전신을 굳게 만들었다.

    “…흐음.”

    트로츠키는 허를 찔렸다는 듯 뒤로 반 보 물러났다.

    하지만, 마나 번 현상에도 불구하고 트로츠키의 몸은 바로 황금으로 변하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속성 저항력 덕분에 몸이 황금화되는 시간이 워낙에 오래 걸리는 것이다.

    …퍼억!

    트로츠키의 전봇대 같은 팔뚝이 유세희의 가드를 뚫고 들어갔다.

    퍼퍼퍼펑!

    방어력이 약한 유세희 역시도 모래톱에 처박혔고 그대로 바다까지 뚫고 들어가 버렸다.

    …철썩!

    유세희가 뚫고 박힌 땅굴에 바닷물이 차오른다.

    원킬(One kill).

    그녀 역시도 두 번 다시 위로 올라오지 못했다.

    캐스터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아, 이럴 수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마태강 선수에 이어 유세희 선수도 리타이어 되고 말았네요. 이것으로 러시아가 한국을 바짝 따라잡습니다.]

    [한국 측 두 기대주의 연이은 침몰! 트로츠키 선수가 이렇게 노 데미지 더블킬을 챙겨 갑니다.]

    [과연 아시아의 정점은 다릅니다. 이 국면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아무래도……]

    네 명의 캐스터, 그리고 모든 한국 관중들의 생각은 그 순간 하나로 통합되었다.

    [답이 없어요! …마동왕! 마동왕 가야 해요!]

    오로지 마동왕이 출격하는 것만이 이 암울한 흐름을 끊을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젊은 피, 차세대 슈퍼루키 마태강과 유세희가 연이어 침몰하고 언제나 든든히 1인 몫 이상을 해내던 드레이크가 사실상 리타이어 된 상태인 지금, 유일한 카드는 마동왕뿐인 것이 당연하다.

    마침 러시아의 넘버원이자 한국의 유망주 둘을 제로 데미지로 잡아낸 트로츠키가 상대인 만큼 마동왕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현재 필드는 러시아 측의 트로츠키 선수가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동왕! 마동왕이 출격한다면 어떨까요!?]

    [마!]

    [동!]

    [왕!]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외친다.

    러시아 측의 환호, 그리고 야유와 비웃음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하나가 된 대한민국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오직 하나만을 바라고 있었다.

    트로츠키 대 마동왕의 빅매치.

    러시아의 공식 넘버원과 한국의 비공식 넘버원.

    과연 공식 랭킹을 등록하지 않은 마동왕이 아시아의 정점을 상대로 어떤 플레이를 보여 줄지 모두가 조마조마한 심경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 측의 다음 선수로 나온 얼굴은 모두의 예상을 완벽하게 빗나가는 것이었다.

    […어?]

    모든 캐스터들이 일순간 고개를 갸웃한다.

    관중석에서 들려오던 우레와 같던 함성도 일순간 뚝 그쳤다.

    “…하하. 안녕하세요?”

    뒷머리를 긁적이며 하는 머쓱한 인사.

    갑분솔.

    ‘갑자기 분위기 윤솔’의 줄임말이다.

    초 강적 트로츠키를 상대하기 위해 필드로 나온 이는 지금껏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존재.

    바로 윤솔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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