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화 아시아 정복 (1)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의 결과가 간략하게 요약되었다.
1라운드 유세희 대 구이룬메이 (유세희 승)
2라운드 유세희 대 리우이하오 (유세희 승)
3라운드 유세희 대 리덩후이 (리덩후이 태그 승)
4라운드 드레이크 대 리덩후이 (드레이크 승)
5라운드 드레이크 대 피반창 (피반창 태그 승)
6라운드 윤솔 대 피반창 (피반창 태그 승)
7라운드 유세희 대 피반창 (피반창 태그 승)
8라운드 마태강 대 피반창 (마태강 태그 승)
9라운드 마태강 대 저우쯔위 (마태강 승)
10라운드 마태강 대 피반창 (마태강 승)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커뮤니티들을 불타오르게 만들기 충분한 떡밥이었다.
-이야;;솔직히 유세희는 잠재력만 놓고보면 국내 정상급인데...마동왕 자리를 이어받을 차세대 넘버원 각이다!!
↳빅리그 더블킬..그것도 현역 여고생이...역시 여고생쨩은 지상최강의 생물...
-그나저나 마태강은 이제 완전히 물 올랐네
↳ㅇㅇ이제 제법 가다가 나옴. 월드 클라스 등극!
↳마동왕 아니었으면 이연호랑 같이 한국 넘버원 자리 노려볼만 했을 듯?
-드레이크도 진짜 폼이 딱 잡혔다. 어디 구단에 가도 1인분 이상은 할거임
↳드레이크가 이번 경기에서 좀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리덩후이를 활로 잡은 건 진짜 신의 한 수였다...일반적인 공격으로 잡기 힘든 힐러여서...
-마태강 경기 도중 진화는 진짜 몇 번을 돌려봐도 소름돋네...진화 타이밍도 계산한 건가?
↳ㅇㅇ엄재영 감독이라면 계산하고 내보낸 거일 듯
-이제 한 번만 더 이기면 한국이 아시아 왕좌에 앉는건가...
↳근데 상대가 러시아임ㅋㅋㅋㅋ러시아 랭커들 개쎈데ㄹㅇ
↳한국도 만만치 않을 듯. 특히 마동왕은 아직 빅리그에서는 나오지도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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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들은 하나같이 어제 있었던 대만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유세희도 드레이크도 멋진 활약을 했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핫한 주제는 마태강의 ‘진화’이다.
오크 유저의 상위종 중 하나가 오우거 유저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공표되는 순간인지라 당연히 모든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이후 다양한 상위종 인증샷들이 커뮤니티에 올라왔지만 오우거 만큼이나 파급력이 센 종은 없었다.
…그리고, 여론들 중에는 조금 방향이 다른 흐름도 있었다.
-아니 근데 ㄹㅇ윤솔은 이 파티에서 하는 게 머임ㅡㅡ???
↳꽃병풍 포지션ㅋㅋㅋㅋ외모를 담당함
↳ㄹㅇ비주얼은 거의 연예인급인거ㅇㅈㅇㅈ~
↳윤솔? 매니저 아니었음? 저 여자도 선수임??
↳ㅋㅋㅋㅋ벤치 덥히는 용도 아니냐? 벤치 히터
-이번에도 유세희한테 힐 한번 걸어준 거 말고는 한 게 없네...숟가락 얹는 것 보소ㄷㄷㄷ
↳애초에 이 구단 멤버들이 다들 짱짱해서 힐러를 거의 안 필요로 하는 것 같은데ㅋㅋㅋ
↳비운의 힐러...의문의 실업자행ㅎㅎ
-원래 학교에서도 양호선생님은 꿀빨잖어;;;
-꽃병풍처럼 세워놓는 거지 뭐. 구색 맞추기 용이랄까?
-국내 정상급 힐러 많은데 왜 저런 검증도 안 된 애를 갖다가 쓰지? 진짜 단순히 예뻐서인가??
-오죽 하면 요즘 레이드에서 잘 못하는 플레이어한테 ‘윤솔’이라 하겠음ㅋㅋ 아 이 팀 윤솔 하나 있네ㅋㅋ 하자너
↳대뜸 여자 플레이어면 님 윤솔? 이러는 사람들도 있음;;
↳그런 놈들 진짜 극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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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만전에서 거의 활약을 하지 않은 윤솔에 대한 불만 여론이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대부분 서포터의 역할과 존재의의에 대해 잘 모르고들 하는 소리였지만 원래 선동은 쉽고 해명은 힘든 법.
윤솔이 ‘닳고닳은 뉴비’ 구단의 성과에 무임승차를 하려 한다는 악소문은 점점 스노우 볼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 * *
……그렇다면 논란의 대상인 윤솔은 지금 뭘 하고 있느냐?
콰콰쾅!
댓글 반응은 신경 쓰지 않은 채 레이드 중이다.
나는 윤솔에게 댓글을 보지 말라고 한 뒤 오늘의 레이드에 데려왔다.
-그린헬(Green Hell)-
서대륙 최심층부에 존재하는 끔찍한 밀림 맵이다.
나는 오늘 이곳의 필드보스 몬스터인 ‘쟈쿰’을 잡으러 왔다.
[오-오오오오오!]
그린헬의 보스 몬스터 쟈쿰이 거대한 위용을 뽐냈다.
<쟈쿰> -등급: S / 특성: 어둠, 땅, 풀, 독, 하수인, 팔씨름, 압궤, 만근추, 앙버팀, 고대 신앙
-서식지: 그린헬(Green Hell) 최심층부
-크기: 32m
-네 개의 거대한 뿌리로 그린헬을 지배하고 있는 거목(巨木).
크기만 놓고 보면 전설 속의 식물인 세계수가 아닐까 싶지만, 사실 그 정체는 세계수의 잔뿌리에 기생하고 있을 뿐인 기생식물이다.
한때 고대신으로 여겨져 숭배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지만 사실은 별다른 지능 없이, 그저 살아 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포식자에 불과하다.
네 개의 거대한 뿌리 끝에 달린 손바닥.
그것들은 하나의 굵디굵은 통짜 뿌리로 연결되어 있다.
거칠고 딱딱한 고목의 나무껍질 사이, 길게 갈라진 한 줄기 틈 안으로 시뻘건 핏줄들이 선 눈알 하나가 섬뜩하게 데굴거리고 있었다.
나는 윤솔에게 말했다.
“자, 오늘 잡을 몬스터는 바로 이 쟈쿰이야. 거대한 나무 괴물인데 의외로 주특기는 ‘근력’이지.”
쟈쿰은 2차 대격변 이전까지 이 숲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몬스터로 현재는 그린헬 최강 최악의 ‘불가살(不可殺)’로 통한다.
특이하게도 식물형 몬스터답지 않게 ‘체력’, ‘재생력’ 등을 주 무기로 삼지 않고 오로지 ‘근력’으로 승부하는 타입.
고로 식물계열 몬스터가 아니라 차라리 악귀나 거인 계열 몬스터라고 생각하는 게 공략하기엔 편하다.
한편.
[큭큭큭, 쟈쿰인가. 이거 옛날 생각나는군. ‘그 녀석’이 꽤나 아끼는 애완식물이지.]
내 품에서 고개를 삐죽 내민 오즈가 눈앞의 쟈쿰을 보며 이죽거린다.
제 딴에는 뭔가 아는 척을 하고 싶은 모양.
[크큭! 인간. 나는 저 녀석이 새싹일 시절부터 봐 왔지. 그리고 저 녀석을 길러 낸 존재가 누구인지도 알아. 쟈쿰의 약점에 대해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장 내게 비굴한 자세로 무릎 꿇고 부탁을…….]
하지만 나는 오즈의 잘난 척을 깨끗하게 무시해 버렸다.
“쥬딜로페.”
나는 나직한 목소리로 오즈의 담당 학생주임을 불렀다.
그러자.
[뽀앵!]
내 반대쪽 품에서 튀어나온 쥬딜로페가 나뭇가지를 들어 오즈의 머리통을 딱콩! 하고 때렸다.
[크, 크윽!? 감히 내 머리를!]
[뿌앵! 뿌!]
[그, 그만 때려라 비늘 빠진다! 난 머리에 예민하다고!]
나는 툭닥거리는 둘에게 경고했다.
“레이드 방해된다. 자꾸 시끄럽게 굴면 초보자 마을의 펫 보육원에 맡겨 버릴 거야.”
그러자 쥬딜로페도 오즈도 입을 합 다문다.
펫 시스템 창의 호감도 때문일까? 쥬딜로페는 그렇다고 쳐도 오즈마저도 나와 떨어지는 게 내심 싫은 모양이었다.
그때.
[오-오오오오!]
쟈쿰이 네 개의 손바닥을 어지럽게 꿈틀거리며 지면을 쓸어 온다.
콰콰콰콰쾅!
속도가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워낙에 거대한 손바닥의 체적 때문에 피하기가 쉽지 않다.
식물형 몬스터 중 난이도 극악으로 통하는 필드보스다웠다.
“꺄아아아악!”
윤솔은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데미지의 파도에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런 윤솔을 다독이며 말했다.
“자, 솔아. 나를 믿고 한번 주먹을 앞으로 뻗어 봐.”
“…으, 으으으. 알겠어 어진아.”
윤솔은 울먹이면서도 내 옆에 딱 붙은 채 자세를 잡는다.
이윽고. 쟈쿰의 두 왼손과 두 오른손이 우리를 덮친다.
나는 오른손, 윤솔은 왼손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콰-콰콰콰쾅! 빠지지지직!
내 주먹에서 뻗어 나온 힘이 쟈쿰의 두 팔을 걸레조각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방팔방으로 나뭇조각이 비산했다.
[오-오오오!?]
쟈쿰은 깜짝 놀라 팔뚝까지 부서진 오른쪽 팔들을 회수했다.
하지만.
이미 윤솔이 뻗은 주먹이 쟈쿰의 왼쪽 팔들에 가 닿았다.
그러나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악귀 대왕 ‘하린마루’의 힘에 의해 강화된 윤솔의 주먹.
그러나 원래대로라면 쟈쿰의 팔은 하린마루의 힘으로도 쉽게 부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하지만.
빠지지지지지직!
윤솔의 주먹에 닿은 쟈쿰의 두 왼팔이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윤솔의 주먹에서 뻗어 나온 폭풍이 쟈쿰의 본체마저 땅에서 뽑아내 뒤로 날려 버릴 정도였다.
…콰쾅!
쟈쿰은 윤솔에게 딱 한 대 맞고 뒤로 나가 떨어졌다.
놈의 거구와 무게를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넉백 효과였다.
“…어?”
윤솔은 자기가 이루어 낸 믿지 못할 성과에 경악했는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자, 감탄은 나중에!”
나는 재빨리 움직여 꿈틀거리는 쟈쿰의 잔뿌리들을 완벽하게 잡아 뽑아 제거했다.
쥬딜로페 때문에 머리에 혹이 난 오즈가 징징 울며 쟈쿰의 자잘한 약점들을 모조리 실토하고 있었다.
[키힝… 왼쪽 나무뿌리 부근이 첫 번째 약점이다. 그곳을 파괴하면 중단부에 ‘EMATH’라고 적혀 있는 부분이 개방되는데 이곳의 코어를 부수면 더 이상 잔뿌리들이 재생되지 않으며……]
“응, 아냐. 상단부에 'MATHE' 부분의 코어를 부수는 게 더 나아. 오즈 씨, 공부하세요.”
하지만 녀석의 팁은 이미 내가 알고 있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나은 상위호환 공략이 있는 것들이다.
딱!
'공부하세요'라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쥬딜로페의 나무막대기가 오즈의 이마를 직격했다.
[아악! 두개골이! 비늘이! 이이익…… 인간! 상단의 코어를 부수면 잔뿌리들이 대폭성장한다고! 알기나 하나!]
“응, 끝없이 폭주하지. 그렇기 때문에 전체 스탯이 분산되고 잔뿌리를 만들어 내느라 스테미너도 떨어져. 뿌리가 큰 용적을 차지해서 패턴도 단순화되고. 그건 몰랐니? 아 몰랐겠구나. 쥬딜로페.”
[뽀앵!]
쥬딜로페가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나무막대기를 들었다.
[뽀뿌하새오.]
분명 '공부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니면 오즈가 저렇게 사색이 될 리가 없으니까.
딱!
또 오즈의 비늘 몇 개가 깨져서 흩날린다.
오즈는 빨갛게 달아오른 이마를 쥐고 쒸익쒸익 거렸다.
[그만! 그만! ……으윽! 그럼 두 번째 약점으로 넘어가지. 녀석의 중지는……]
“응 아니야, 약지가 더 약점~”
딱!
[세 번째 약점은 정말 극비인데, 녀석이 오른손을 휘두를……]
“응, 왼손~”
딱!
[네 번째 약점은 햇빛이 녀석의 정수리를 비출……]
“응, 뿌리~”
딱!
[다섯 번째 약점은……]
“응~”
딱!
[아니, 아직 말도 안 했는데 왜 때려!]
“그레이 시티에서 얻을 수 있는 화산재를 뿌려 잠시 경직시키는 공략방법을 말하려고 했지?”
[…맞다.]
결국 또 딱!
한편, 나와 윤솔은 오즈와 툭탁거리면서도 착실하게 움직였다.
…쾅! …콰쾅! …우지지직!
지면에 대고 몇 번인가 확인사살을 하자.
-띠링!
이윽고. 알림음이 뜬다.
<세계 최초로 ‘저주받은 고목 쟈쿰’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윤솔>
<‘저주받은 고목’이 쓰러졌습니다. 용 진영 ‘채식주의자’ 집단의 사기가 감소합니다.>
<그린헬의 숨은 지배자가 ‘윤솔’ 님에게 관심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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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쟈쿰의 사망을 확인한 뒤 윤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것 봐. 내 말이 맞지? 넌 강해졌다니까.”
내 말을 들은 윤솔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등 뒤를 돌아본다.
‘신성모독자의 날개’
윤솔의 등 뒤에 달린 흰 날개와 검은 날개가 각각 희고 검은 아우라를 뿜어낸다.
오늘 쟈쿰 레이드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일등공신이었다.
나는 윤솔의 어깨를 팡 치며 웃었다.
“아마 깡 공격력으로 치면 네가 나보다도 강할 거야.”
“세상에, 믿어지지가 않아. 이 아이템은 대체…….”
윤솔은 자기 날개를 돌아보며 감탄했다.
아직 성능이 신비에 감춰져 있는 아이템이니만큼 생소할 수밖에.
심지어 거기에 이번에 쟈쿰을 잡고 얻은 특전들이 더해졌다.
호칭: 저주받은 고목 벌목자(특전: 고대 신앙)
나와 윤솔에게는 새로운 호칭과 특전이 주어졌다.
‘고대 신앙’이란 성직자 계열의 신성력을 +20%정도 더해 주는 특성으로 나에게는 별 필요가 없지만 윤솔에게는 아주 중요한 꿀 특전이었다.
거기에 윤솔을 위한 갑옷도 하나 떨어졌다.
-<저주받은 뿌리 목갑(木甲)> / 갑옷 / S
“내가 쓰기엔 옵션이 조금 애매하네.”
나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윤솔에게 넘겨주었다.
그러자 윤솔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갑옷을 넘겨받았다.
“……어진아, 나한테 이렇게 줘도 되는 거야? 엄청 귀한 아이템들 같은데.”
“네가 잡은 건데 뭐.”
“그래두. 내가 먹기에는 부담스럽다. S급이잖아.”
잠시 고민하던 윤솔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 빅리그 때만 내가 쓰고, 그 뒤에는 구단 창고에 넣어 둘게. 나 말고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때 대여하는 걸로!”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 나도 가끔 써야겠다 그럼.”
예전에 황천의 수감자 고르딕사를 잡았을 때 나왔던 ‘황금광의 혈안’이라는 아이템이 이미 구단 길드 창고에 하나 있다.
그것은 현재 유세희가 대여해서 쓰고 있는 중이었다.
뭐 아무튼. 쟈쿰 레이드가 이렇게 끝났다
나는 눈을 빛냈다.
“이제 내일 만날 러시아 팀만 이기면 되겠군.”
모든 준비가 끝났다.
빅리그 챔피언. 아시아의 황제.
평생의 영광으로 남을 타이틀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