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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75화 (575/1,000)
  • 575화 한국 VS 대만 (10)

    …우드득! …뿌득!

    마태강의 몸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탄탄하던 녹색 근육은 더욱 더 굵고 단단해졌다.

    볼링공 크기의 주먹은 이제 짐볼 크기로 부풀었다.

    철근 같던 뼈는 돌기둥처럼 변했고 전신을 철갑처럼 휘감고 있던 근육들은 찢어지고 아물기를 급속도로 반복하며 덩치를 키워 나간다.

    약 2미터에 이르던 오크의 몸이 더 크고 강력한 형태로 거대화되고 있었다.

    …뿌직!

    이윽고 윗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커다랗고 뾰족한 어금니였다.

    그 외형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오우거(Ogre)!’

    갈색, 혹은 녹색 피부에 오크와 같은 외형을 지녔지만 체구와 체중은 감히 비교 불가능하다.

    평균 신장 4미터, 체중 1톤에 이르는 거구는 굳이 무기를 들지 않아도 온몸이 흉기 그 자체.

    내지르는 포효와 눈빛, 숨소리마저도 하위종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북-

    마태강이 오우거로 변하자 자연스럽게 목을 조르고 있던 피반창의 꼬리도 풀려 버렸다.

    “……엥?”

    피반창은 웃음을 멈추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한 기색.

    하지만 피반창이 상황을 인지하고 이해하게 내버려 둘 정도로 마태강이 자비심 넘치는 성격은 아니었다.

    뻐-억!

    스윙, 그리고 해머 샷.

    마태강은 그대로 거대한 주먹을 내질러 피반창의 안면을 후려갈겼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피반창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작렬하는 화염 데미지는 덤이다.

    그 위로 마태강의 주먹이 한 번 더 날아들었다.

    마치 폐건물을 철거하는 스틸볼이 휘둘러지는 듯한 위용.

    …쾅! 우지지지직!

    단 한 방의 주먹에 바위산이 무너져 내렸다.

    피반창은 겨우겨우 몸을 틀어 피했지만 마태강의 주먹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었다.

    퍽- 우지끈!

    마태강이 날린 킥에 적중당한 피반창이 그 자리에서 뒤로 십 수 미터가량 날아가 뒤편의 종유석들을 우르르 부수고 처박힌다.

    그 광경을 본 캐스터들이 파르르 떨며 외치고 있었다.

    [세, 세상에! 보셨습니까!? 다들 봤어요!?]

    [경기 도중 마태강 선수가 ‘진화’를 했어요! 상위종족으로 진화를 했단 말입니다!]

    [가끔 히든클래스로 각성하는 선수들이 있다고 했는데 마태강 선수가 오늘 이 자리, 빅리그의 왕좌로 가는 최후의 관문에서 여실히 보여 줍니다!]

    한편, 나 역시도 그것을 보며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전투 중 진화하는 것은 몬스터에게도 희귀한 일인데 하물며 플레이어가, 그것도 공식 석상에서 대회를 하는 도중에 진화하다니!

    마침 마태강의 경험치 게이지가 레벨업 직전에 걸쳐 있었고 피반창과의 싸움으로 인해 그 한계치를 돌파한 모양이었다.

    요 근래 마태강의 레벨과 경험치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기에 나조차도 지금 안 사실이다.

    아무튼 특정 레벨 구간을 넘긴 마태강은 그동안 습득한 호칭들의 영향으로 인해 상위종으로의 각성 진화를 이뤄 냈고 그것이 더없이 적절한 타이밍에 터진 것이다!

    ‘세상에, 이런 피지컬이라니. 오우거들은 그동안 이렇게 축복받은 육체로 살아 왔던 거구나!’

    마태강은 지금껏 사냥해 왔던 수많은 오우거들을 떠올리며 새삼스럽게 감회에 젖었다.

    하지만 머리는 감회에 젖어도 몸은 정직하게 루틴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쾅! …퍼억! …우지직!

    주먹 하나로만 헤비급 판정을 받을 정도의 중량!

    그것이 피반창의 얄팍한 몸 위로 쏟아진다.

    “크윽!?”

    피반창은 벨로시랩터 특유의 날쌘 몸놀림으로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마태강이 오우거로 진화하기 전 너무 가깝게 거리를 좁혀 뒀던 터라 새롭게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피반창을 주먹으로 날려버림과 동시에 바로 추격에 들어간 마태강은 두껍고 억센 손아귀로 상대방을 잡고 놓아 주지 않는다.

    “쉬이익! 놔라, 이 근육돼지야! 놔!”

    피반창은 갈고리 모양의 손발톱으로 마태강을 마구 할퀴고 긁었지만 마태강은 가죽이 찢어지고 살이 터져나가는 난도질 속에서도 두 눈을 들어 피반창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맞으면 강해진다고 했지?”

    “……뭐? 뭐라는 거야, 이 자식! 리자드맨어로 얘기해!”

    “어디 한번 마음껏 강해져 봐.”

    동시에, 마태강은 피반창을 짓밟고 그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무겁고 파괴적인 파운딩이 시작되었다.

    쾅! 콰쾅! 쾅! 쾅! 쾅!

    피반창 위에 올라탄 마태강은 주먹을 높이 들어 그대로 지면에 수직으로 때려박기 시작했다.

    정해진 자세도 초식도 없는, 그야말로 순도 100%의 폭력!

    압도적인 무게와 힘, 압력에 짓눌린 피반창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주먹세례에 노출되었다.

    …우지지지직!

    피반창의 안면을 뚫고 들어간 중량파가 그 밑에 깔린 대지까지 격동시킨다.

    지진으로 인해 주변의 지형이 뒤틀리고 있다.

    [아아아아아! 마태강 선수! 지금까지 쩔쩔맸던 것이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폭풍 같은 역공을 가하고 있습니다!]

    [역전! 역전이에요! 이렇게 시원하고 통렬한 역전을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진짜 목에 걸렸던 고구마가 빵 뚫려버리네요! 사이다가 아주 그냥……!]

    [피반창 선수가 순간적으로 가엾게 느껴졌을 정도입니다!]

    캐스터들이 온 힘을 다해 외치는 중계가 게임 안팎의 모든 관중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       *       *

    나는 슬쩍 스크린 창을 띄워 실시간 경기 영상에 달리는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이 경기를 보고 암이 나았습니다

    -오빠 일어나!! 대한민국 일어나!!

    -당신이 이 경기를 보지 않았다면 아직 살아있을 이유 하나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마태강이다

    -오늘부터 모닝콜 알람소리는 유세희 선수의 명대사로...오빠 일어나!!

    -투신코인 떡상 가즈아아아아앗!!!!

    .

    .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 필드를 바라보았다.

    오우거와 벨로시랩터가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쾅! 쾅! 쾅! 쾅! 쾅!

    스틸볼 같은 오우거의 주먹이 벨로시랩터의 몸을 으깨 고기반죽으로 만든다.

    푹! 찍! 찌이이익……

    칼날 같은 벨로시랩터의 이빨과 손톱, 발톱이 오우거의 몸을 난자하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초근거리에서의 싸움은 벨로시랩터가 오우거를 따라갈 수 없다.

    …콱! 쩌어어억-

    오우거는 가공할 만한 악력으로 자신의 팔을 물고 있는 벨로시랩터의 위턱과 아래턱을 잡고는 그대로 벌렸다.

    그리고 입을 벌리고 또 벌린다.

    찌지직-

    양 입가가 서서히 찢어지는 벨로시랩터, 이제 와서 버둥거리며 떨어지려고 해도 이미 늦었다.

    …쩌어억!

    결국 오우거는 벨로시랩터의 몸통을 두 조각으로 잡아 찢어 버렸다.

    피반창, 대만 대표팀 최후의 생존자인 그의 HP바가 완전히 바닥을 치는 순간이었다.

    마태강은 그제야 양손에 나뉘어 잡힌 피반창의 몸뚱이들을 지면 위에 툭 던져 놓는다.

    온몸의 베인 흉터에서 피가 줄줄 흘렀지만 쓰러지지 않은 채 대지 위에 기둥처럼 우뚝 서 있는 모습은 실로 투신(鬪神) 그 자체!

    “휴.”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에 힘을 풀었다.

    ‘……이번 경기 최대의 수확은 태강이의 성장인가.’

    마태강은 오크에서 상위종인 오우거로 진화하여 종외(種外)의 경지에 서게 되었다.

    내가 회귀하기 전의 시간축에서보다 훨씬 더 빨리 이룩해낸 성과였다.

    한편.

    “오빠아-!”

    저 멀리에서 그런 마태강을 향해 뛰어가는 소녀가 있었다.

    유세희, 그녀는 저 앞에 있는 마태강을 향해 폴짝 뛰어올라 안긴다.

    “뭐, 뭐 하는 거야!?”

    “…그치만! 이렇게 극적인 분위기에서 포옹할 기회, 별로 없는걸?”

    당황하는 마태강과 믿고 있었다며 웃는 유세희.

    [아, 마태강 선수!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설마 팀 내 러브라인!?]

    [마태강 선수가 저번 인터뷰에서 유세희 선수는 그냥 친한 여동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요!?]

    [아~ 그 발언이 양심 없는  기만질로 밝혀지는 순간입니다!]

    [오이오이! 믿고 있었다구!]

    그리고 그런 둘을 향해 환호하는 수많은 인파.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 우승으로의 첫 관문을 무사히 돌파한 대한민국의 모습이었다.

    *       *       *

    찰칵- 찰칵- 찰칵-

    승자를 향한 관심은 뜨겁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기자들이 기자회견장에 모여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밀고 있었다.

    “드레이크 선수! 대만 측 힐러를 잡아 내실 때의 심경이 어땠습니까!?”

    “마태강 선수의 진화 퍼포먼스는 사전에 계획된 것이었나요!?”

    “유세희 선수의 폭발적인 성장은 누구의 코치 덕입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집중되고 있는 쪽은 아무래도 오늘 가장 수고한 3인방이다.

    대만 측 힐러인 리덩후이를 잡아내어 결정적인 승기를 가져온 드레이크.

    초반에 대만 선수 두 명을 연달아 잡아내어 더블킬이라는 위업을 세운 유세희.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만 최강의 선수 피반창을 압도하는 퍼포먼스를 펼친 마태강.

    그들은 포토존에 서고 단상에 서고를 반복하며 엄청난 질문공세와 사진세례의 대상이 된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전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상대적으로 시선에서 소외되어 있는 두 명이 있었다.

    오늘 한 경기에도 출전하지 않은 나와 필드 땅을 몇 초 밟은 것이 고작인 윤솔이었다.

    “…뭐, 하긴. 한 게 없으니 질문할 것도 없다 이건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팀의 리더이자 최강자인지라 몇 번 형식적인 질문이 들어오긴 했다.

    하지만 그마저 윤솔에게는 단 하나의 질문도 들어오지 않았다.

    “…….”

    윤솔은 어딘가 멋쩍은 미소를 띤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북적이는 곳에서 한 명도 시선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민망한 일이다.

    바로 그때.

    한 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 대상은 바로 윤솔이었다.

    “윤솔 선수에게 질문 있습니다!”

    윤솔은 약간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무슨 질문인가요?”

    나도 윤솔도 흥미로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기자의 입에서 나온 질문은 우리의 예상을 다소 벗어나는 것이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매 경기 시마다 버스 얻어 타고 다니는 꽃병풍’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의 질문을 듣는 순간 나도 윤솔도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윤솔이 이번 경기에서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한 것을 비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빅리그 시작 전부터 알고 있었다.

    대격변부터 시작해서 리틀리그를 거쳐 빅리그까지, 윤솔이 딱히 눈에 띄게 활약한 적이 적었던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힐러라는 것은 애초에 잘하면 티가 안 나고 못하면 티가 확 나는 클래스이기 때문이다.

    잘하면 본전, 못하면 대역죄인이 되는 억울한 포지션이 바로 서포터, 그중에서도 힐러였다.

    “…아, 그게… 저는…….”

    윤솔은 잠시 고개를 떨궜다.

    자기를 둘러싼 자격 논란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었던 모양이다.

    순간 윤솔의 눈에 눈물 한 방울이 고였다.

    많이 놀라고 당황한 모양.

    그때.

    …탁!

    나는 윤솔의 손에서 마이크를 낚아채 왔다.

    그리고 방금 질문했던 기자를 바라보았다.

    “어디 소속 기자시죠?”

    내가 고저 없는, 딱딱한 목소리로 묻자 기자의 얼굴이 약간 굳어진다.

    “……일요덕적스포츠의 남윤중 기자입니다만.”

    나는 그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바로 말을 이었다.

    “앞으로 일요덕적스포츠는 기자회견장에 출입시키지 마세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회견장 분위기가 싸해진다.

    기자들은 다들 서로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어, 아니. 아 그게 아니라, 저는 그냥 여론이 그렇다는…….”

    남윤중 기자가 수습을 시도했지만 나는 단칼에 잘랐다.

    “윤솔 선수는 저희 구단의 큰 자산이며 향후 구단의 발전에 있어서 큰 기여를 할 인재입니다. 이미 저희 구단과는 전속계약으로 이어져 있어 불가분의 관계이기도 하지요. 일부 극소수 네티즌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는 비난여론을 그대로 여과 없이 던지는 저의가 뭡니까?”

    내 말을 들은 남윤중 기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제 와서 자기가 싸지른 실수를 자각한 듯싶지만 이미 늦었다.

    사회생활이라는 것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니까.

    나는 말을 이었다.

    “윤솔 선수는 오늘 잘해 주었습니다. 원래 힐러는 손해 보는 포지션이기에 별로 티는 안 났겠지만요. 대만 측에서 리덩후이 선수가 빠지자마자 전황이 어떻게 기울어졌는지를 떠올려 참고해 보시면 될 것 같군요. 그리고……!”

    이내 엄청난 수의 카메라가 나를 겨냥한다.

    나는 다시 말했다.

    “이번 빅리그, ‘최후의 승부처’에서 윤솔 선수가 보여 줄 활약을 기대하십시오.”

    그러자 몇몇 기자들이 손을 들고 물었다.

    “활약이라 하시면 정확히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제 시선의 판도가 바뀌었다.

    닳고닳은 뉴비 대표멤버 5명 중 가장 많은 시선을 받고 있는 이는 바로 윤솔이었다.

    나는 부담스러운지 어쩔 줄 몰라 하는 윤솔을 돌아보며 담담히 말했다.

    “……누가 한국을 왕좌까지 견인하는지 말입니다.”

    하드캐리(Hardcarry)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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