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4화 한국 VS 대만 (9)
“…저놈. 인간 아니야.”
내 말을 듣는 순간 엄재영 감독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는다.
이내 모두의 시선이 필드를 향한다.
마태강에게 밀려나면서도 전혀 초조해하지 않는 피반창.
놈은 마치 즐거운 놀이라도 하듯 마태강의 주먹을 피해 몸을 꺾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엉덩이를 미묘하게 몸이 회전하는 반대 방향으로 비틀고 있었다.
“몸이 회전할 때 엉덩이를 한 번씩 역방향으로 씰룩이는 것은 리자드맨 유저들의 특징이지.”
그렇다.
리자드맨은 긴 꼬리를 가지고 있다.
이 꼬리 안에는 굵고 튼튼한 뼈와 쫀득쫀득한 근육들이 가득 차 있어 무게가 꽤 나간다.
꼬리가 없는 오크나 인간과 달리, 리자드맨은 몸을 한번 회전시키면 이 꼬리가 몸을 반 박자 늦게 따라오게 되어 있다.
약간 뒤늦게 몸을 따라오는 꼬리의 무게와 원심력 때문에 리자드맨 유저들은 애초에 회전하려고 했던 각도보다 조금 더 회전하게 되는데 리자드맨이라는 종족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은 이 미묘한 컨트롤이 힘들어 결국 인간이나 오크로 다시 키우게 된다.
하지만 이 꼬리는 컨트롤하기는 어려워도 숙달만 되면 몸의 균형을 잡는 것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아주 강력한 무기로 활용할 여지도 있기에 리자드맨 유저들은 평소 자기 꼬리의 길이와 무게, 원심력을 계산해서 몸을 움직이는데 도가 터 있다.
회전을 할 때 꼬리 때문에 미세하게 반의 반 바퀴 정도 더 회전하게 되니 회전해서 멈추기 직전에 꼬리를 반대쪽으로 한번 저어 관성을 멈춰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반동으로 꼬리를 튕겨 채찍처럼 휘두르는 경우가 가장 흔한 리자드맨의 콤보 연계기이다.
……아니나 다를까.
부웅!
가까이 다가가 주먹을 날리는 마태강, 그런 마태강의 주먹을 피해 지면에 낮게 엎드린 피반창이 위를 올려다보며 씩 웃어보였다.
“간만에 재미있는 상대를 만났네. 역시 빅리그야.”
동시에 놈이 품에서 꺼내든 것은 낯익은 아이템이었다.
-<살아 있는 화석> / 재료 / ?
오래 전부터 모습이 일절 변하지 않은 채 전해져 내려온 고대의 존재.
저게 왜 저놈 품에서 나온단 말인가!
“…망할.”
나는 뇌리를 엄습하던 불안감의 정체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 더더욱 당황스럽다.
우드득! 뿌득! 뚜둑!
이윽고, 피반창의 전신에서도 변화가 관측되었다.
[아아아! 이럴 수가! 이게 무슨 일입니까!? 피반창 선수의 모습이 변하고 있습니다!]
전용진 캐스터가 마이크에 대고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다른 캐스터들 역시 혼란스럽다는 표정으로 연신 경악만 표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제일 놀란 이는 바로 필드에 나와 있는 마태강 본인이리라!
“……!?”
마태강은 주먹을 회수하는 즉시 몸을 틀어 지면으로 착지했다.
그 앞으로 대기가 폭력적으로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굵은 채찍이 스쳐 지나간다.
까딱 늦었다면 허공에 뜬 채로 몸이 두 동강 날 뻔했다.
“쉬익- 왜? 화석러가 너 하나인 줄 알았어?”
지면에 네 발로 납작 엎드린 피반창이 싱긋 웃는 얼굴로 마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피반창이 몸을 일으켜 마태강의 앞에 섰다.
오크로 변한 마태강보다 1.5배는 더 큰 장신.
리자드맨 특유의 노오란 눈알.
보랏빛과 흑빛이 뒤섞여 도는 비늘이 칼날미늘처럼 전신을 덮고 있었다.
늘씬하게 쭉 뻗은 팔다리와 꼬리 때문에 가뜩이나 큰 키가 더욱 커 보인다.
하지만.
피반창의 몸은 분명 일반적인 리자드맨의 몸이 아니었다.
덩치가 크고 비늘 색이 독특한 것을 떠나, 기묘한 위화감이 놈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피반창의 손톱과 발톱에 주목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다른 손발톱과 달리,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달린 손발톱은 기묘하게 휘어져 있다.
마치 갈고리처럼 말이다.
나는 식은땀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상위종(上位種)!’
리자드맨 유저들 중 일정 레벨 구간을 돌파한 이들은 살아온 경험과 환경에 맞게 몸이 바뀐다.
더욱 상위종족으로의 진화.
카멜레온 맨이나 코모도 맨, 리자드맨 용사 등 리자드맨에는 다양한 아종이나 변종, 상위종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리자드맨 유저 피반창은 그런 수많은 아종들 중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종으로의 진화를 이뤄 낸 것이다.
‘벨로시랩터 맨(Velociraptor Man)’
리자드맨의 상위종이자 고대종.
전직이나 진화하는 방법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히든 클래스이다.
회귀 전 세상에서도 몇몇 전설적인 리자드맨 랭커들만 도달한 경지.
미친 점프력으로 걸어오는 파운딩이 위협적인 수각류 종족으로 말도 안 될 정도로 뛰어난 공속과 한 방 공격력이 특징이다.
상대방의 몸에 갈고리 발톱을 박아 넣고 지속 딜을 넣으면 어지간한 적은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하고 발버둥치다가 피가 쭉쭉 빠져 끔살당한다.
판정만 들어가면 장애물 너머의 적에게도 올라탈 수 있으며 특유의 미친 피지컬에 컨빨만 좀 따라 준다면 근접 딜러전에서는 거의 적수가 없다.
“……젠장. 피반창 저놈이 리자드맨, 그것도 상위 고대종이라니. 그동안 잘도 숨겨 왔군.”
가끔씩 이런 돌발변수가 튀어나오곤 한다.
회귀자인 나로서도 몰랐던 내용인지라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막상 겪으니 참 막막했다.
‘내가 나가서 때려죽일 수도 없고.’
나는 마태강과 피반창의 신경전을 보며 답답함을 삼켰다.
한편, 엄재영 감독은 이 와중에도 피반창의 움직임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었다.
“아까 태강이 공격하려고 점프하는 것 보니까 점프력이랑 체공시간이 장난 아니던데. 어지간한 3층 건물 높이는 계단 오르듯이 오르겠어. 갈고리 발톱 보니 장애물 타고 오르는 것도 잘할 것 같고, 손톱 파운싱은 두말할 것도 없겠지.”
리자드맨의 상위종이라고 해도 예전에 만났던 리자드맨 용사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메인 퀘스트 중 만났던 리자드맨 용사가 거대한 크기와 무지막지한 괴력을 가진 괴수 이미지를 보여주는 반면 피반창이 보여 주는 벨로시랩터 맨은 잔악무도한 슬래셔 영화의 살인마적인 느낌이 강하다.
집요하고 지능적이면서도 몸까지 날쌘 변태 살인광 말이다.
나는 재빨리 벨로시랩터 맨의 스펙을 떠올렸다.
‘…설정에 따르면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 자기 몸을 혹사시킨 리자드맨이 진화하는 고대 전사의 모습이랬지?’
달리는 속도가 기본 60km 이상, 건물 3층 높이쯤은 계단 딛듯 뛰어오르고 그렇게 몇 시간을 격하게 움직여도 지치지 않는다.
나무나 철조망 등 장애물 등에 데미지 면역이 있어서 어떤 함정이라고 해도 파훼하거나 돌파할 수 있다.
진화하며 항온 특성을 손에 넣음으로서 환경에 따라 체온이 변하면 스탯 수치도 변하는 리자드맨의 약점도 완벽하게 커버했고 변온 특성의 이점인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는 그대로 살려 그 어떤 현생 리자드맨도 견줄 수 없는 극강의 피지컬을 손에 넣은 개체.
게다가 몬스터가 아니라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것이니만큼 손이 굉장히 유연하고 손놀림도 뛰어나서 아이템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신체 구조상으로도 방어구 등을 걸치고 활동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종족치와 개체값, 덩치에 비해 굉장히 죽이기 어려운 타입.
자연스럽게 리자드맨의 약점인 방어력도 커버되어 육중한 데미지에 피격당해도 별로 크게 데미지를 입지 않는다.
‘…제기랄, 저런 힘을 회귀 전에 썼으면 아키사다 아야카라고 해도 못 이겼겠는데?’
어쩐지 대만이 일본에게 너무 쉽게 졌다 싶었다.
피반창이 저 정도의 힘을 숨긴 채 소극적으로 플레이했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한편.
필드의 전황은 당연하게도 피반창에게 유리하게 기울고 있었다.
“…크윽!?”
마태강은 자신의 팔뚝 완갑을 확 긁고 가는 피반창의 갈고리 손톱에 이를 악물었다.
오크로 변하고도 힘 싸움에서 밀려 보기는 처음이다.
…거기에 상대는 힘이 다가 아니었다.
쩡! 쩌엉! 깡! 까가가각!
미친 듯이 몰아쳐 오는 갈고리, 마치 유세희의 대낫과도 같은 엄지손톱과 엄지발톱이 전후좌우로 몰아져 온다.
유세희만큼이나 공격패턴이 자유분방한 이가 바로 피반창이다.
…퍽! …퍼퍽! …철푸덕!
벨로시랩터의 손발톱에 살점이 뚝뚝 떨어져나간다.
마태강은 이를 악물었다. 오크의 몸으로도 이렇게 무력하게 당해보기는 처음이었다.
부웅- 꾸드드득!
이내, 피반창의 꼬리가 채찍처럼 날아들어 마태강의 목을 휘감았다.
벨로시랩터 맨의 꼬리 근육은 극도로 쫀득쫀득했으며 가볍고 단단한 비늘과 잘 맞물려 충격을 완전히 흘려 버리거나 튕겨내고 있다.
“크윽!?”
마태강은 두 손으로 피반창의 꼬리를 잡고 찢어 버리려 했지만 찢기는커녕 올가미를 풀 수조차 없었다.
거기에, 피반창은 특유의 갈고리 손톱을 이용해 마태강의 전신을 마구 난도질하고 있다.
두 손으로 손발톱을 막자니 목을 조르는 꼬리가 무섭고, 두 손으로 꼬리를 막자니 몸을 갈가리 찢을 기세로 날아드는 손발톱이 무섭다.
마태강은 점점 붉게 물들어 가는 시야 너머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시선을 돌려 한국 진영을 보니 모두가 이쪽을 향해 뭐라 외치는 것 같다.
‘태그!’
하지만 태그할 힘도 여유도 없다.
‘이대로 끝인 건가…….’
마태강은 전신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눈앞에 있는 피반창은 단순한 리자드맨도 아니고 고대종 수각류 괴물이다.
단순히 오크의 몸으로는 절대로 이길 수 없었다.
‘오빠 체면 완전히 구겼네.’
여기서 이겨서 유세희의 복수를 당당히 해 주려고 했었는데 다 텄다.
그래도 뒤에 마동왕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만 희미하게 들 뿐이었다.
바로 그때.
“오빠! 일어나!”
마태강의 귓가를 울리는 울음소리가 있었다.
“오빠! 일어나아! 오빠아-!”
아! 클레멘타인!
유세희의 울음이 들려오는 순간, 마태강은 흐려져 가던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 남자가 가오가 있지.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도 신경 쓰이는 여자 앞에서라면 더더욱!
…콰악!
마태강은 한 팔로 피반창의 꼬리를 잡고 다른 한 팔로 전면의 손발톱들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피반창은 그저 코웃음쳤다.
“무의미해용.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나한테 앙대니까용.”
너무나도 당연해 보이는 말이었다.
마태강의 HP는 이제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는 마당, 각종 스탯의 수치 역시도 너무도 확연한 격차를 보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안 되는 것은 없어.”
터억!
마태강은 다시 한번 두 손을 들어 피반창의 꼬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밀어 내기 시작했다.
피반창은 그 모습을 보고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웃는다.
“망가진 모습이 섹시하기는 하다만… 이제는 조금 바보 같아 보이네.”
동시에 그의 꼬리가 더욱 더 강하게 마태강의 목을 졸랐다.
…꾸드득!
마태강의 목에서 조금 떨어지나 싶었던 꼬리가 더욱 더 억세게 그의 목을 조였다.
하지만. 마태강은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손을 버둥거리는 마태강을 보고 피반창이 물었다.
“포기하고 GG 쳐라. 뭘 더 보여 줄 게 있어서 그렇게 버티는 것이지?”
마태강은 입을 다물고 잠시 흐릿한 눈을 떠 피반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마디 했다.
“남자가 한번 말을 뱉었으니 뭔가 보여 줘야지.”
“풉! 똥꼬쇼라도 할 셈이야? 그것 참 환상적이겠는데?”
피반창은 웃어 버렸다.
하지만, 그는 웃느라 눈을 감았기 때문에 보지 못했다.
‘오빠 일어나!’
귓가에 울려 퍼지는 유세희의 목소리,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조금씩 힘이 들어가고 있는 마태강의 손아귀를.
한편.
“…어!?”
나는 필드와 벤치를 가르는 난간을 꽉 쥔 채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다.
“왜, 왜 그래?”
엄재영 감독이 막 손에 든 흰 수건을 던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손을 뻗어 엄재영 감독의 현 라운드 포기 신청을 막았다.
그리고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마태강의 몸을 살폈다.
…꿈틀!
유세희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한번 메아리칠 때마다 미약하게 움직이는 마태강의 몸.
그것은 분명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변화였다.
……오잉!? ‘투신’의 상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