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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73화 (573/1,000)

573화 한국 VS 대만 (8)

…쩌억!

그것은 저우쯔위의 방패 옆구리에서 터져 나온 소음.

“어엇!?”

저우쯔위의 낯빛이 납빛으로 변했다.

슬쩍 시선을 내려 자신의 두 방패 하단을 내려다보자 어두웠던 시야에 한 줄기 빛이 새어 들어온다.

방패의 전면부에 구멍이 났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구멍을 메꾸거나 할 여유는 없었다.

방패는 지금도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펑! 퍼펑! 쾅! 빠각! 쿠쿵! 와지지직! 쿠르릉! 콰쾅!

쉴 새 없이 몰아치고 있는 마태강의 콤보 연격기에 저우쯔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그 주먹을 따라가는 캐스터들의 멘트 역시도 정신없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중이다.

[아아! 투신 마태강! 저우쯔위에게 31연타! …45연타! …58연타! …72연타! 빠릅니다 빨라요! 인간의 주먹질이 아닙니다 이건!]

[그 육중한 저우쯔위의 중장갑이 바스라집니다! 대만 최고의 철옹성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최고의 수비무술이라는 지괴괴의권의 불패무쌍신화가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말씀드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투신! 점점 더 빨라집니다! 제대로 발동 걸렸습니다! …73연타! …87연타! …99연타! 아! 말씀드리는 순간 108연타! 공포의 108계단 콤보가 작렬합니다! 육체는 단명하나 근성은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어요!]

[…맵까지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식어 굳었던 용암이 다시 녹아서 흐르고 있어요! 이 열기를 대체 뭐라 설명해야 할까요! 이건 중계로 전달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이것이 한국을 넘어선 리그! 이것이 바로 아시아! 이것이 바로 빅리그에요-오!]

1초에 17음절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전용진 캐스터가 35초간의 투신류 근성 108계단 콤보를 586음절의 중계멘트로 완벽하게 따라잡는다.

그 선수에 그 중계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쩌적! …쩍! …우지직!

저우쯔위의 방패에 생긴 작은 틈은 이내 실뿌리를 가진 벼락 모양의 균열로 변했고 이윽고 커다란 아가리를 벌린 구멍으로 번졌다.

콰쾅! 쩍-

지금껏 단 한 번도 깨진 적 없던 저우쯔위의 철벽이 무너지고 있었다.

“오-오오오오!”

저우쯔위는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무너진 철벽 너머로 미친 듯이 쏟아져 들어오는 마태강의 속사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범람하는 데미지! 요동치는 딜 미터기!

나는 천천히 뒤로 밀려나는 저우쯔위를 보며 혀를 끌끌 찼다.

‘…하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려나.’

마태강의 주먹은 나만 아니었어도 한국 넘버원이었을 주먹이다.

철벽도 좋고 시즈모드도 좋은데 단순히 방어만 하는 것만으로는 절대로 막아 낼 수 없다.

…쾅!

결국 마태강의 두 주먹이 저우쯔위의 두 방패를 뚫고 안쪽까지 틀어박혔다.

“크윽!?”

저우쯔위는 방패를 움직이고는 두 팔뚝으로 머리를 가드했으나.

…콰쾅! 뻐억!

마태강의 주먹은 저우쯔위의 가드를 부수고 들어와 그대로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애초에 현실에서도 킥복싱 유망주였던 마태강이다.

가드를 뚫고 그 너머의 것을 타격하는 데 있어서는 도가 터도 한참 전에 텄다.

쾅! 콰쾅! 우직! 우지직! 뻑! 뻐억!

마태강은 방패에 난 구멍으로 주먹을 찔러 넣으며 저우쯔위를 철저히 농락했다.

그러는 동안 방패의 구멍은 계속 커졌고 심지어 주변 귀퉁이도 깨져 버렸다.

구멍 숭숭 뚫린 껍데기를 가진 조개만큼 나약한 생물은 또 없을 것이다.

…빠각!

마태강은 양 주먹을 동시에 내뻗어 강력한 제트분사를 일으켰고 그 충격파를 그대로 저우쯔위의 복부에 꽂아 넣었다.

쿠르르르르륵! 퍼펑!

2차 충격파로 몰아친 화염폭풍이 그런 저우쯔위의 몸을 빙글빙글 돌리며 저 뒤로 날려 보낸다.

그리고 그곳에는 드레이크의 화살로 인해 분화했다가 아직 굳지 않은 커다란 활화산 하나가 도사리고 있었다.

…풍덩!

용암이 덜 굳어 끓고 있는 구덩이가 나가떨어진 저우쯔위를 삼켜 버렸다.

“크아아아악!”

저우쯔위는 방패를 던져 버리고 육지로 기어 올라왔지만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 이는 한쪽 손을 높이 들고 있는 마태강이었다.

퍼억!

마태강은 불길로 달구어진 손바닥을 저우쯔위의 등팍에 내리쳤고 그대로 갑옷을 녹이고 살을 태운 뒤 심장을 움켜쥐어 뽑아 버렸다.

미터기 상에 기록된 치명타 데미지가 저우쯔위의 체력바를 통째로 뒤흔들어 일말의 HP마저 털어낸다.

대만 탱커랭킹 1위, 대표팀 내 서열 1위의 처참한 최후였다.

[아아아! 대만의 철벽 주자유 선수가 리타이어 당했습니다!]

[실로 대단한 명승부였습니다! 한국의 마태강도 대단하지만 대만의 주자유도 대단합니다!]

[어느 한 곳 흠 잡을 데가 없는 좋은 경기였습니다!]

[한 명은 때리고, 한 명은 막고. 실로 단순한 구도임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스릴 넘쳤던 대결은 또 처음이네요! 아, 그리고 이건 사담이지만 제 혓바닥이 지금 마비가 와서, 어우……]

캐스터들의 경기 평가가 이어진다.

이윽고.

대만 선수는 이제 하나만이 남게 되었다.

마태강은 저우쯔위의 반사 데미지로 인해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고개를 들어 붉은 대지 저편을 바라본다.

저벅- 저벅- 저벅-

앙룡의 혓바닥 너머로 아까의 그 얼굴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같은 팀 선수들의 전멸로 인해 다시 끌려나오게 된 피반창(皮反常).

하지만 그 표정에서 초조함이나 불안감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태강이라. 나는 너도 좋더라~ 잘생겼잖아, 아앙♥”

입술을 핥으며 웃고 있지만 역수로 꼬나쥔 창날은 살벌하게 빛난다.

피반창의 모습을 보자 마태강의 이마에 동아줄 같은 핏줄이 섰다.

유세희를 괴롭힌 녀석에게 복수해 주고 싶다는 단순한, 그러나 강렬한 열망이 지금의 투신을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측, 엄재영 감독과 윤솔, 드레이크와 유세희가 필드를 내려다보며 의견을 주고받는다.

“……피반창 대 마태강이라. 미묘한데?”

“HP는 태강이가 더 높지만, 피반창 선수는 HP가 닳아 있는 만큼 공격력과 민첩성이 강화된 상태이니까요. 그래도 굳이 비교하자면 태강이 쪽이 조금 우세하려나?”

“태강은 현재 오크 상태이니 아무래도 더 유리할 수밖에. 종족빨도 무시 못 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피반창 선수와 태강 오빠는 둘 다 근접 딜러인데 종족이 오크와 인간이니…아무래도 태강 오빠가 유리하겠죠?”

다들 마태강의 우세를 점치고 있었다.

그러나.

“…….”

오직 나만은 입을 다물고 사태를 관망할 뿐이다.

‘……피반창이라.’

나는 지금 필사적으로 회귀 전, 피반창에 대한 정보들을 되새김질 하고 있었다.

‘대만 근접딜러 랭킹 2위, 팀 내 서열 5위, 대만 공식 통합랭킹 8위, 전 세계 통합랭킹 72위. 한 자루 창을 쓰며 온갖 변태 특성으로 전신을 휘감고 다니는 4차원 또라이. 몬스터 사냥 보다는 플레이어 사냥에 특화된 놈.’

스탯과 특성, 딜 미터기, KDA 수치, 기여도 그래프, 그 외 각종 수치들만 보면 오크 모드인 마태강이 이기지 못할 적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어렵지 않게 압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아까부터 자꾸 기묘한 위화감이 뇌리를 엄습해 온다.

고인물 특유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뭐지?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거지?’

분명 회귀 전 세상에서 피반창은 빅리그에서의 존재감이 희미했다.

제 기량을 제대로 펼쳐 보기도 전에 일본 팀의 아키사다 아야카에게 순삭 당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여자는 흥미 없다는, 다소 기이할 정도로 제멋대로인 태도 때문에 피반창 메타는 세간의 비난은 엄청 받았을지언정 심도 깊은 연구는 거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살점과 핏방울이 튀는 경기 현장에 직접 나와 보니 느낌이 남다르다.

피반창, 저 능글맞은 놈에게 뭔가 비수 한 자루가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단순한 변태 메타 이상의,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긴 한데…….

‘그게 대체 뭐냔 말이지.’

이것은 회귀자로서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바로 그때!

“어?”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필드 위, 마태강이 허공에 불타는 주먹을 날리는 순간.

빙글-

피반창이 한쪽 다리를 축으로 삼아 빙글 돌며 마태강의 주먹을 피하는 것이 보인다.

“아 까비.”

“거의 맞힐 수 있었는데!”

곳곳에서 아쉬움에 가득찬 탄성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피반창의 기묘한 움직임.

이전 라운드에서부터 자꾸 내 신경을 긁으며 거슬리게 하는 것의 정체를 알아냈다.

빙글-

피반창은 마태강과 가까워질 때마다, 그리고 마태강의 주먹을 피할 때마다 계속해서 엉덩이를 미세하게 씰룩이고 있었다.

몸이 회전하는 반대 방향으로 꼬박꼬박 말이다.

거의 습관적으로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것 같은데… 아마 평범한 사람은 피반창의 이런 습관을 알았다면 그냥 개인적인 습관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저것은 그냥 단순한 몸동작이 아니었다.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태그! 태그해야 해!”

내가 이렇게까지 당황하는 것을 본 적 없는 우리 구단 식구들은 하나같이 의아한 표정이다.

“아니, 태강이가 지금 잘 밀어붙이고 있는데 왜?”

“태강오빠도 딱히 태그할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요?”

“…무슨 일 있나?”

“지금 우리가 이기고 있는 것 아냐?”

뿌득- 하고 이가 다물린다.

나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피반창, 저 자식. 회전할 때마다 엉덩이를 회전하는 반대 방향으로 미세하게 씰룩이고 있어.”

내 말을 들은 모두는 고개를 갸웃한다.

“그, 그런가?”

“그게 보이나?”

“그런데 그게 왜?”

“그냥 평범한 변태 아냐?”

다들 아무것도 모른다. 심지어 필드 위에서 싸우고 있는 마태강 본인조차도.

이 상황을 눈치 챈 이는 아직 나뿐인 것 같았다.

나는 태그 의지가 없어 보이는 마태강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엉덩이를 씰룩이며,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피반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놈. 인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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