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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72화 (572/1,000)
  • 572화 한국 VS 대만 (7)

    하늘에서 유성 하나가 떨어진다.

    …콰쾅!

    그것은 허공에 붉은 궤적을 남긴 채 땅에 떨어져 커다란 분화구를 만들어 놓았다.

    아직 덜 굳은 용암들이 검은 표면 아래로 뻘겋게 갈라졌고 불기둥들이 대지를 뚫고 솟구친다.

    츠츠츠츠츠…

    아스라지는 포연과 불길을 걷고 크레이터 속에서 걸어 나오는 남자.

    투신(鬪神)의 등장이었다.

    [아! 마태강 선수가 출격했습니다! HP가 상당히 깎였지만 그만큼 더 빠르고 강력해진 피반창 선수에 맞설 한국 측의 비밀무기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입니다!]

    전용진 캐스터의 흥분한 말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중계 내용이 들리지 않는 필드 안에는 적막만이 가득했다.

    부글부글부글……

    들끓는 용암만이 단단히 굳은 대지 밑에 꽉 억눌려 끓을 뿐이다.

    “…흐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마태강 VS 피반창

    이 승부는 일견 보기에 마태강이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마냥 마태강 쪽이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피반창의 변태 특성들이 함정이란 말이지.’

    풀 HP 상태일 때는 일반적인 랭커 하나 수준의 힘을 내는 것이 당연하지만… HP가 경각에 이르렀을 때 뻥튀기 스탯을 얻게 됨으로써 1인분 몫을 한 번 더 할 수 있는 피반창의 변태 메타는 실로 획기적이고 기발한 것이었다.

    ‘게다가 놈은 내가 모르는 다른 희귀 특성을 숨겨뒀을지도 모른다.’

    회귀 전 세상에서 피반창은 상당한 실력을 보여 주기는 했지만 결국 아키사다 아야카가 이끄는 일본 팀에 패했다.

    ‘누가 보더라도 설렁설렁 플레이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경기를 치른데다가 경기 종료 후 인터뷰에서 ‘나는 여자를 상대로는 싸울 맛이 안 난다’라고 말하는 바람에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놈은 드레이크를 꺾었고 이제 마태강과 붙게 되었다.

    내가 속으로 이런저런 계산을 하고 있을 때.

    “마왕아. 누가 이길 것 같냐?”

    엄재영 감독이 내게 물어왔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반반 봅니다.”

    “호오. 피반창 선수가 그렇게 센가?”

    “…어쩌면 저만큼 셀지도 몰라요.”

    그러자 내 말을 들은 엄재영 감독이 두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떴다.

    “너보다? 농담이지?”

    “네. 농담이에요.”

    “…이 자식이 진짜.”

    나는 피식 웃으며 필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물론 피반창이 강하긴 하지만 나에 비할 수는 없다.

    내가 터트릴 수 있는 화력이 태양이라면 피반창은 꼬마전구 정도는 되려나.

    하지만 마태강과 피반창의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은 농담이 아니었다.

    그만큼 피반창은 위협적인 상대이다.

    ……그래서일까?

    마태강은 필드에 투입되자마자 바로 피반창을 향해 달려갔다.

    “붙자.”

    습관처럼 내뱉는 첫마디, 투신을 아는 팬들이라면 이 오프닝 멘트에 전율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 멘트 뒤에는 으레……

    퍼퍼퍼퍼펑!

    기관총 난사와도 같은 주먹세례가 퍼부어지기 때문이다.

    마태강이 만들어 내는 무수한 불의 궤적들은 불규칙하게 난반사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하나가 정확히 적의 급소를 노리고 있는, 흡사 리볼버의 탄환과도 같은 주먹이다.

    [오오오오! 투신! 전장에 투입되자마자 적을 물어뜯습니다!]

    [흡사 광전사를 보는 것 같아요! 상대방이 적응할 시간도 없겠습니다 이거!]

    [과연 투신을 맞이하는 대만의 피반창 선수의 대응은!?]

    캐스터들이 잔뜩 격앙되어 마이크를 잡는다.

    하지만. 피반창은 보이는 것과 달리 마냥 사이코는 아니다.

    “태그.”

    오히려 대만 선수들 중 경기 룰을 가장 전략적이고 밉살맞게 활용할 줄 아는 프로였다.

    피반창은 낄낄 웃으며 바로 태그 사인을 보냈다.

    아무래도 싸울 의지를 가진 이는 마태강뿐인 듯싶다.

    “어엇?”

    마태강은 뒤로 물러나는 피반창을 보며 조금 놀라워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공격해 올 것이라 생각했지만 설마 태그를 외칠 줄이야.

    ‘……하지만 어차피 대만 측 힐러 리덩후이는 드레이크 씨에게 리타이어 된 상태. 놈이 회복할 길은 없다.’

    드레이크가 상대방 진영 힐러를 잡은 덕분에 경기의 흐름은 예측하기 쉬웠다.

    이미 HP가 한계에 이른 피반창은 최대한 체력을 아끼는 쪽으로 플레이할 것이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자연 회복량이 미세하게나마 찰 테니 시간을 잡아먹으면 잡아먹을수록 이득이겠지.

    하지만 마태강은 굳이 쫓지 않고 놔두었다.

    어차피 대만 측 풀피 선수는 이제 한 명밖에 남지 않은 상태, 그 선수를 잡으면 피반창은 자동으로 튀어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이 빅리그에서 우승하기 위해서 어차피 넘고 가야 할 계단이었다.

    ‘세희의 복수는 조금 이따 해 주마.’

    안 그래도 HP가 많이 깎여나간 상대에게 복수를 하자니 어딘가 내키지 않았던 마태강이다.

    이번 라운드에서 풀피 대 풀피로 만난 대만 선수를 꺾고 그 뒤에 나올 피반창까지 잡으면 서로 동등한 조건에서 승리를 거머쥔 것이니 더욱 통쾌한 복수가 되리라.

    이윽고.

    …쿵!

    대만 측에서 마지막 선수가 나왔다.

    전용진 캐스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아! 드디어 나왔습니다! 현 대만 공식 탱커랭킹 1위이자 팀 내 서열 1위! 주자유(周子瑜) 선수입니다!]

    마태강의 상대로 나온 이는 대만 팀의 기둥 저우쯔위였다.

    저우쯔위는 현실에서도 키가 2미터 30센티미터, 몸무게 150킬로그램의 불곰 급 스펙을 자랑하는 무술가이다.

    그 어떠한 공격도 막아내고 흘려보낸다는 ‘지괴괴의권(志怪怪疑拳)’으로 유명한 무술가이니만큼 게임 속에서도 발군의 탱킹을 자랑한다.

    …쿵! …쿠웅! …쾅!

    저우쯔위는 등장하자마자 육중한 방패 두 장을 대지에 박아 넣고 전신을 두터운 중장철갑으로 감쌌다.

    방어력 높은 아이템들의 효과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일부러 인간 종족으로 남은 랭커다운 아이템 트리였다.

    거기에 저우쯔위를 상징하는 특성이 발동되었다.

    ‘시즈모드(堤株募蔸)’ 특성!

    한 곳에 발붙이고 움직이지 않을 때 발동하는 패시브 스킬로 숨을 참는 동안 공격력, 방어력, 체력이 50% 상승하는 사기적인 스킬이다.

    저우쯔위는 순식간에 필드 중앙의 고지대를 장악했다.

    전 라운드에서 죽은 리덩후이의 사인(死因)을 의식한 탓인지 용암이 차오른다고 해도 닿지 않는 범위를 절묘하게 잘 선택했다.

    그는 마치 단신으로 성을 이룬 듯한 위압감으로 마태강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는 절대로 나를 뚫을 수 없다.”

    저우쯔위의 도발.

    마태강은 굳이 이 도발을 피해가지 않았다.

    “먼저 싸움을 거는 편은 아니지만, 걸어오는 싸움은 피하지 않지.”

    동시에. 마태강의 건틀릿 후면으로 가스와 휘발유가 물안개처럼 분사되었다.

    푸쉬이이이익-

    자욱한 물안개와 뿌연 가스가 아우라처럼 뿜어져 나왔다.

    …쿠르륵!

    그것에 불이 붙는 것으로 본격적인 발동이 걸린다.

    퍼펑!

    마태강은 전신에 시동을 바짝 걸고는 질주하기 시작했다.

    한 줄기 불벼락이 대지를 가로지르며 내달려 곧장 저우쯔위의 철옹성을 두드렸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주먹이 뜨거운 궤적을 그리며 저우쯔위의 몸에 불도장을 찍어 넣는다.

    “……!?”

    저우쯔위는 이를 악물고 방패에 몸을 밀착했다.

    하지만 거대한 그의 몸은 점점 천천히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1mm.

    꾸구국…

    1cm.

    꾸구구국…

    10cm.

    꽈드드드득!

    1m.

    콰쾅! 우지지직!

    저우쯔위의 발가락 끝에 깊은 홈이 패인 것을 시작으로 점점 길어진다.

    [오오오오오! 한국의 창과 대만의 방패가 맞붙습니다! 뭐든지 뚫어 버리는 창과 뭐든지 막아 내는 방패! 지금껏 한 번도 막힌 적 없던 투신의 108계단 근성콤보와 지금껏 한 번도 뚫린 적 없던 저우쯔위의 철옹성벽이 살떨리는 박빙을 이룹니다! 과연 승자는 누구일까요!]

    캐스터들이 흥분해서 외친다.

    하지만.

    나는, 아니 우리는, 아니 국가대표 선발전을 지켜보았던 모든 한국인 팬들은 알고 있었다.

    “이 싸움, 마태강이 이긴다.”

    관객석에 앉아 있던 세 살 난 어린아이도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

    이 경기를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마태강의 승리를 점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살아 있는 화석> / 재료 / ?

    오래 전부터 모습이 일절 변하지 않은 채 전해져 내려온 고대의 존재.

    그렇다.

    한국 국가대표 결정전에서 최후의 적 마동섭을 만났을 당시 마태강이 썼던 아이템.

    그것은 자신을 억제하고 있는 인간의 탈을 벗어 버리게끔 하는 히든 피스였다.

    …우드득! …뚜득!

    마태강이 ‘살아 있는 화석’을 손에 쥐자마자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아! 투신! 저우쯔위의 반사 데미지에 장시간 노출된 결과 드디어 본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와! 마태강 선수의 피지컬이 대번에 확 사네요! 역시 근딜은 오크죠!]

    [근딜이 근접딜러인지 근육딜러인지 아무튼 꽃미남 스타일이었던 마태강 선수가 아주 육중해졌습니다! 저 주먹 크기 좀 보세요! 볼링공 뺨칩니다!]

    [살아 있는 화석 아이템은 그 효과를 정확히 저희가 짐작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인간을 오크로 변하게 하거나 아니면 오크를 인간으로 변하게 하는 아이템 같은데요! 대회 전부터 시합용 아이템으로 등록해 둔 무구이고 딱히 회복이나 버프용 소모품도 아니기에 대회 규정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캐스터들이 지금 이렇게 흥분해서 폭풍중계를 하는 이유가 있다.

    …퍼펑! …우직! …펑! 콰콰콰콰콰콰쾅!

    그것은 바로 폭풍처럼 쏟아지고 있는 마태강의 난타샤워 때문이다.

    불타는 주먹이 허공에 수백, 수천 개의 직선, 곡선을 그리며 저우쯔위의 철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

    하지만 저우쯔위 역시도 계속해서 방패를 컨트롤해 마태강에게 반사 데미지와 반동 데미지를 가하고 있다.

    둘의 승부는 팽팽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이 전투의 분수령이 되는 작은 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쩌억!

    그것은 아주 단단하고 옹골차며 견고한 물질이 아주 미세한, 극히 약간의 틈을 드러내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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