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70화 (570/1,000)
  • 570화 한국 VS 대만 (5)

    전용진 캐스터가 흥분해서 외쳤다.

    [네! 대만 측 선수가 나왔습니다! 세상에, 저 먼 거리를 점프로 건너뛰었어요! 가공할 만한 피지컬입니다! 누구죠 저 선수!?]

    [피반창이라는 선수인데 알려진 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한 자루 창을 쓰는 근접 딜러이고 팀 내 서열은 5위라고 되어 있네요.]

    [드물게 근접 딜러이면서도 인간 종족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입니다.]

    [앗! 방금 들어온 추가 정보가 있는데요! 피반창 선수의 팀 내 서열이 5위인 것은 팀 멤버 전원이 피반창과의 PVP를 거부해서 그런 것이라고 하네요!]

    [최신 랭킹 정보도 갱신해 왔습니다! 피반창 선수는 현재 대만 근접딜러 랭킹 2위이고 1위가 승부에 응해 주지 않아 1위 쟁탈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캐스터들의 말에 관중들 역시 술렁인다.

    그도 그럴것이, 피반창은 등장하자마자 창을 뻗어 드레이크의 심장을 관통해 버렸기 때문이다.

    미끈하게 잘생긴 얼굴, 어딘가 기묘할 정도로 번들거리는 미소.

    눈 밑에 찍힌 세 개의 눈물점.

    “…….”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피반창(皮反常).

    아마 아시아권 제일의 변태 메타 플레이어를 꼽으라면 단연코 이 녀석이 아닐까?

    ‘뭐,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저 녀석은 나보다 한 발 더 나갔다 이 말이지. 선을 넘어 버렸달까?’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반증하듯, 피반창은 자신의 창에 꿰인 드레이크를 내려다보며 입맛을 다신다.

    “으음, 이 윤기 나는 흑발, 오똑한 콧날, 차가운 눈매, 따듯한 눈동자, 강렬한 턱선, 탄탄한 근육, 섹시한 입술, 너무 좋아. 역시 드레이크 캣이야! 목숨을 걸고 용암바다를 건너오길 잘했어. 아앙~♥”

    피반창은 아무래도 드레이크의 광팬인 모양이다.

    “……크윽!”

    드레이크는 심장을 찔렸음에도 바로 죽지 않고 피반창의 창대를 잡고 약간이나마 버텼다.

    피반창은 그런 드레이크를 내려다보며 생글생글 웃는다.

    “어머? 내 창에서 몸을 빼려고? 잘 안 될걸? 이 창은 말야… 한번 박히면 잘 안 뽑히거든~ 내가 빼 주기 전까지는 말야~”

    “으윽! 으으으……”

    “대회 중에는 죽어도 패널티가 없게 패치되었잖아. 그냥 마음 편히 죽어도 돼, 달링. 내가 오늘 확실하게 죽여 줄게♥”

    과연 놈의 창끝에는 미늘들이 다닥다닥 돋아나 있어서 드레이크로서는 창에서 몸을 빼 탈출하기도 쉽지 않아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를 뿌득 갈았다.

    내가 회귀하기 전 세상에서는 피반창의 활약이 거의 없었다.

    여자에겐 관심 없다며 일본 팀, 특히나 아키사다 아야카를 상대로 설렁설렁 플레이했기 때문에 대만이 초반에 그리 쉽게 탈락한 것이겠지.

    하지만 우리 팀은 다르다.

    피반창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던 드레이크가 여기 있는 것이다.

    놈은 하트 모양으로 변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며 눈앞에 쓰러진 드레이크를 내려다보았다.

    “내 특성 하나 알려줄까 자기야? ‘SM’이라는 건데… 일명 ‘썌리기(S)’와 ‘맞기(M)’라는 거야.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누군가에게 괴롭힘 당할 때마다 이동속도와 공격속도가 올라가지. 나는 그 특성을 어떻게 쓰는지 알아?”

    말을 마친 피반창은 허리에서 가죽 채찍을 꺼내 자신의 몸을 짝! 하고 후려갈겼다.

    그러자 채찍에 맞은 부위가 붉게 변하더니 그 부분에서 +표시들이 홀로그램처럼 뜨기 시작했다.

    속도가 올라간 것이다.

    “아앙, 내가 나를 괴롭히는 동시에 내가 나한테 괴롭힘 당했으니 스탯이 두우 배~♥”

    놈은 자신의 몸을 계속해서 채찍으로 후려갈기며 몸을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놈의 육체가 스탯 강화로 인해 크고 단단해지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열기를 띠고 있던 관중석은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듯 조용해졌다.

    “우, 우와아 그로테스크.”

    “사, 사이코 아냐! 공식 대회 석상에서 저게 뭐야!”

    “……무서워요 엄마.”

    “얘야, 저런 거 보지 마. 눈 가려 어서!”

    모든 이들이 피반창의 무시무시한 모습에 몸을 파르르 떤다.

    ……오직 나만 빼고.

    ‘으음. 저 특성 좀 갖고 싶은데?’

    나중에 대회 끝나면 피반창 선수를 붙잡고 물어봐야겠다. 저 특성 어디서 얻었냐고.

    한편, 피반창은 창에 꿰인 드레이크를 붙잡고 계속해서 심문하듯 묻고 있었다.

    “내 또 다른 특성이 뭔지 알아? ‘미저리’ 특성인데, 호감도가 일정 수치 이상으로 쌓인 상대의 발을 묶어서 이동불가로 만드는 특성이야. 또 다른 것도 있어. ‘피스톤’ 특성인데 한번 찔러 넣은 창을 회수할 때 다음 찌르기 속도가 1%씩 빨라져! 물론 중첩도 되지! 그 다음은 ‘삽입’ 특성인데 한번 상처가 나서 벌어진 곳에는 다음 공격을 100% 명중시킬 수 있게 돼. 물론 그 효과는 나 자신에게도 적용되어서 양날의 칼이지만. 또 ‘피학성애’ 특성은 죽었을 때 랭크다운 된 상태의 목숨이 여벌로 생기지. 그리고 나는 이 모든 특성을 너 한 명한테 죄다 쓸 거야, 달링-”

    그와 동시에 한국 측 사람들의 표정은 점점 썩어간다.

    “저 자식, 묻지도 않은 정보를 기분 나쁘게!”

    “우애앵, 오빠, 귀 좀 씻어 주세요! 저런 거 알고 싶지 않았는데…!”

    “드레이크 씨가 가엾어! 어떻게 하지!? 구해드려야 해!”

    마태강, 유세희, 윤솔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필드를 내려다본다.

    쓱쓱쓱쓱-

    정신없이 메모를 하고 있는 나만 빼고.

    “미저리 특성이랑 피스톤 특성이랑 삽입, 피학성애……중얼중얼. 미저리 특성이랑 피스톤 특성이랑 삽입…….”

    “…대장 지금 뭐해?”

    “저런 나쁜 변태 놈! 감히 내 친구 드레이크를…! 응? 뭐가? 분개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윤솔의 질문에 나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크으으윽…….”

    드레이크가 필드 위에 누워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피반창의 창은 드레이크의 가슴을 꿰뚫은 상태로 놓아 주지 않고 있었다.

    윤솔이 울상을 지었다.

    “대, 대장 어떻게 해! 드레이크 씨와 태그해 주고 싶은데 그게 안 돼. 차라리 기권하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옆에 있던 마태강과 유세희 역시도 지켜보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윤솔의 말에 동의를 표한다.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저대로 냅둬.”

    “뭐어!? 어떻게 그래!”

    “그럴 수밖에 없어. 왜냐하면…….”

    나는 눈을 빛냈다.

    “저건 드레이크의 노림수거든.”

    그때.

    “끄아아아아!”

    드레이크가 한 번 더 비명을 질렀다.

    피반창이 창을 왼쪽으로 튼 것이다.

    윤솔이 또다시 울상을 지었다.

    “대, 대장. 드레이크 씨 연기하는 거 맞아?”

    “응 확실해.”

    그때.

    “끄아아아아아악!”

    드레이크가 한 번 더 비명을 질렀다.

    피반창이 창을 오른쪽으로 튼 것이다.

    “대, 대장. 아무래도 아닌 것 같은데?”

    “…아냐. 맞을걸?”

    “끄어어어어어! 으아아악!”

    “…….”

    “…….”

    왼쪽으로 비비고, 오른쪽으로 비비고.

    드레이크는 지금 피반창에게 완전히 농락당하고 있었다.

    “이러다 드레이크 씨 진짜 큰일 나겠어!”

    “혀, 형님. 심각한 상황 아닙니까?”

    “으아앙! 드레이크 아저씨 죽어요!”

    윤솔, 마태강, 유세희 모두가 나를 조른다.

    하지만 나는 꿋꿋하게 입을 다물고 제자리를 지켰다.

    이번 라운드에 나가 있는 선수의 기권을 알리는 흰 수건은 내 손에 단단히 쥐어져 있었다.

    ‘……드레이크.’

    나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솔직히 드레이크가 지금 왜 비명을 지르고 있는지 그 저의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다.

    딱 하나 아는 것이 있다면, 드레이크는 나에게 피해가 갈 만한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드레이크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프면 비명을 지르기보다는 조용히 혀를 깨물 타입이지.’

    정 이 상황을 해쳐 나갈 수 없겠다 싶으면 차라리 기권을 하고 알아서 자기 자신을 리타이어 시켰을 드레이크이다.

    그러니 저렇게 눈에 띄게 비명을 지른다는 것은 나에게 어떠한 이질감을 전달하기 위함일 것이다.

    설사 피반창, 저 규격 외의 변태에게 고문당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말이다.

    “이봐 달링. 달링이 이렇게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데 팀원들은 지금 뭐 하는 걸까?”

    “…크으으으윽!”

    “대신 기권 사인을 보낼 법도 한데 말이지. 달링이 어떻게 되어버려도 좋은 걸까나?”

    피반창은 창의 반대편 끝을 꾹꾹 누르며 씩 웃었다.

    “그러지 말고 아예 우리 구단으로 옮겨오는 건 어때? 내가 잘해줄게♥”

    놈의 눈동자에는 기묘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집착의 수준을 아득히 넘어선, 광기 비스무리한 것이 말이다.

    한편 중계석은 난리가 났다.

    [아, 피반창 선수! 드레이크 선수를 농락하고 있어요!]

    [승기를 확실하게 잡고 있는 상황에서 저런 갑질을 하다니요! 이것은 인성 미달입니다!]

    [한국에서 드레이크 선수의 팬덤이 꽤나 엄청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칫하면 외교문제에요 이것은!]

    [저건 아주 매너 없는 행동입니다! 드레이크 선수가 기권을 외칠 수 있는 시간은 줘야죠 최소한!]

    캐스터들 역시 드레이크가 겪고 있는 수모에 화가 난 듯했다.

    특히나 전용진 캐스터는 상황을 중계하던 끝에 분을 못 이겨 주먹으로 마이크를 내리칠 정도였다.

    윤솔과 마태강, 유세희 역시 엄재영 감독을 설득하고 있었다.

    “감독님! 수건 던지시는 게 어때요? 드레이크 씨가 너무 괴로워 보여요오…….”

    “맞습니다 감독님. 드레이크 형님이 원래 저렇게 비명을 지르시는 분이 아닌데. 얼마나 고통스러우시면…….”

    “우앵! 감독님! 수건 던져요 우리…….”

    같은 팀 모두가 엄재영 감독에게 드레이크를 기권시키라 한다.

    하지만.

    “……마왕아. 네 생각은 어떻냐?”

    엄재영 감독은 내게 의견을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으로 끝이다.

    “……알았다.”

    엄재영 감독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내 손에서 그의 손으로 옮겨간 수건은 결국 필드로 던져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던져지지 않을 것이고 말이다.

    윤솔과 마태강, 유세희 역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내 결정이라면 필히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비록 피반창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또라이이긴 하지만……드레이크라면 모른다!’

    나는 회귀 전 세상에서 드레이크가 보여 줬던 압도적인 PK신화를, 그리고 회귀 후 세상에서 함께 넘어왔던 사선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크아아아아악… 휴. 비명 지르기도 이제 지치는군.”

    피반창의 창에 찔려 있던 드레이크가 갑자기 비명을 뚝 그쳤다.

    마치 내 결정에 맞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이다.

    “……?”

    빙글빙글 웃고 있던 피반창이 갑자기 달라진 사냥감의 기세에 입가의 미소를 거둔다.

    턱!

    드레이크는 오히려 상체를 일으키더니 한 손으로 피반창의 창대를, 다른 한 손으로 피반창의 목 뒤를 잡고 몸 안쪽으로 바짝 끌어당겼다.

    …뿌드득!

    그러느라 창이 드레이크의 몸을 더욱 깊숙이 꿰뚫었지만 이미 관통당한 마당에야 큰 상관없는 일이다.

    드레이크는 피반창의 귓가에 싸늘한 어조로 속삭였다.

    “변태 짓 하는 것은 자유인데. 주변 소리를 잘 들어가면서 해야지.”

    그러자.

    “……!?”

    피반창은 이내 들을 수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달그락!

    지금까지 드레이크가 내질렀던 시끄러운 비명에 가려져 들리지 않았던 소리.

    그것은 전 라운드, 리덩후이와의 전투에서 드레이크가 쏘아 보냈던 수많은 화살들이 용암의 바다 바닥을 긁으며 되돌아오고 있는 소리였다.

    -<‘자질구래(磁質彀錸)’한 화살통> / 허리띠 / A+

    자석 자(磁), 바탕 질(質), 활 쏘기에 알맞을 거리 구(彀), 레늄 래(錸).

    양철 골렘의 코어를 깎아서 만들어 낸 화살통으로 자질구레한 것들을 담을 수 있다.

    -민첩 +10%

    -특성 ‘자동회수’ 사용 가능 (특수)

    천하의 고정 S+급 몬스터, 파리 대왕 벨제붑에게조차 치명타를 입혔던 화살 소나기 역류(逆流).

    그것이 빅리그의 무대에서 화려하게 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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