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9화 한국 VS 대만 (4)
[아~ 한국 측에서 드레이크 선수가 나왔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전용진 캐스터가 마이크를 바짝 당겼다.
다른 캐스터들 역시도 의아한 기색이었다.
[으음, 전 경기에서도 보셨듯 이등휘 선수는 하수인 소환 메타거든요.]
[맞습니다. 다수의 허수아비들을 소환해 공격을 시키거나 벽을 쌓아 공방일체를 구현하는 타입의 소환술사이죠.]
[이런 상황에서 일대일 승부에 특화되어있는 드레이크 선수가 나온다는 것은 다소 의아한 판단입니다!]
[따지고 보면 현재 스코어는 2:0으로 한국에게 유리합니다! 한국 측은 유세희 선수가 빨피인 것을 감안하면 아직 이렇다 할 피해가 없어요! 반면 대만 측은 이미 선수 두 명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유리한 상황이라고 해도 이 흐름을 끝까지 지켜가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한국의 이번 판단이 앞으로의 경기 흐름에 어떤 영향을 만들어 낼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캐스터들의 열띤 중계가 이어지는 와중에.
…타탁!
드레이크가 보무도 가볍게 앙룡의 혓바닥 위에 착지했다.
리덩후이는 드레이크의 얼굴을 보고 약간은 놀란 기색이었다.
“……궁수라. 경기에서 마주칠 일 없는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하지만 드레이크는 별다른 대꾸 없이 바로 두 대의 쇠뇌를 장전했다.
퍼펑! 펑!
굵은 화살 두 대가 목표물을 향해 곡사로 날아간다.
배드엔딩의 외골격을 깎아 만든 화살대에 불카노스 촉이 달린 강력한 화살이다.
하지만.
…뿍! …뿌북!
화살들은 수많은 허수아비들의 벽에 허무하게 가로막혔다.
아무리 관통 특성이 붙어 있다고 해도 이렇게 많은 수의 장애물들을 뚫기에는 무리가 있다.
핑- 피핑-
하지만 드레이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관통 특성이 붙어 있는 화살이 수많은 허수아비들의 몸통을 꿰뚫고 날아간다.
더군다나 화살에는 넉백 특성도 붙어 있었기에 목표를 뒤로 확 밀어내 날려버리기도 했다.
리덩후이는 가끔씩 허수아비들의 스크럽을 뚫고 날아드는 화살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소용없는 짓이다.”
그가 손을 휘젓자 유달리 커다란 허수아비들 몇 구가 일어나 드레이크의 시야를 방해했다.
아무리 화살이 관통에 넉백이 붙어 있다고 해도 쏘는 사람의 시야가 가려진다면 겨냥 자체가 힘들어진다.
더군다나 엄청난 수의 허수아비들이 사방팔방에서 몰려들고 있었기에 드레이크로서는 동선에 자꾸 제약이 걸리고 있었다.
…썩뚝!
드레이크는 허벅지 안쪽에서 단도를 뽑아들어 가까이 접근하는 허수아비들의 손목을 잘라냈다.
핑- 스핏-
또다시 드레이크의 화살이 허공을 가른다.
하지만 그 정확하던 에임도 이제는 힘을 잃었다.
…퍼억! …퍽!
화살들은 애꿎은 땅이나 벽에 꽂히고 있었다.
펑! 퍼펑! 부글부글부글…
드레이크의 눈 먼 화살이 벽이나 땅에 꽂힐 때마다 돌 부스러기가 튀고 그 밑에서 용암들이 송글송글 배어나온다.
리덩후이는 드레이크를 보고 비웃었다.
“언제까지 도망 다닐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나? 결국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이미 리덩후이가 만들어 낸 엄청난 양의 허수아비들은 필드 위를 가득 채웠다.
“……시간 문제라.”
드레이크는 자신을 잡기 위해 꾸역꾸역 밀려오는 허수아비 군단을 피해 높은 고지대로 올라갔다.
검은 송곳처럼 생긴 가파른 언덕이었다.
리덩후이는 그것을 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제풀에 고립된 곳으로 올라갔구나. 너는 이제 끝장이다!”
리덩후이는 커다란 허수아비 몇 마리로 자신을 감싼 뒤 저 멀리 떨어졌다.
그리고 허수아비 대군을 이용해 고지대에 홀로 외롭게 고립된 드레이크를 더욱 더 꽉 옥죄기 시작했다.
안전한 곳에 숨어 확실하게 승리를 챙겨 갈 요량이었다.
한편, 중계석의 캐스터들은 좌불안석이다.
[아아, 드레이크! 이등휘의 허수아비 대군에 완벽히 포위당했습니다!]
[큰일났다고 봐야죠, 저기서는 탈출할 방법이 없습니다! 완벽히 코너에 몰린 셈이에요!]
[삼국지의 마속이 높은 고지대에 진을 쳤다가 포위된 상황이 떠오르네요. 이것은 명백히 불리한 상황입니다.]
[솔직히 엄재영 감독이 왜 이번 라운드에 드레이크 선수를 내보냈는지, 마동왕 선수 겸 코치는 왜 그 계획에 찬성했는지 저는 이해가 안 가거든요! 이런 상황이 올 것이라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나요!?]
[아~ 한국 안타깝습니다! 저 상황에서는 태그도 이루어지기 쉽지 않아요! 명백한 전술 미스, 오판입니다!]
[유일한 기대할 만한 상황은… 드레이크 선수가 고지대에 올라섰으니 시야가 더 좋아졌을 게 아닙니까? 저기서 기적같은 솜씨로 저격을 해서 이등휘 선수를 한 방에 헤드샷으로 잡는 수밖에 없어요! 그게 유일한 탈출로이자 이기는 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꾸구구구국…
드레이크는 캐스터들의 말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다.
고지대의 정상 코너까지 몰린 드레이크는 일발 역전을 노리기 위해 가장 커다랗고 굵은 화살 한 대를 뽑아들어 리덩후이를 겨눴다.
“후후후. 헤드샷 한 발에 모든 것을 걸 셈이었나? 만약 그런 전략으로 스스로 고립을 자초한 것이라면 어리석다 평할 수 있겠군.”
리덩후이는 드레이크를 포위하고 있던 허수아비 대군 중 일부를 불러들여 자신을 방어했다.
허수아비들 중에서도 체구가 크고 체적이 넓은 것들이 주인을 위해 거신병처럼 호위하고 섰다.
이윽고.
“나는 맞힐 수 있다.”
드레이크가 짤막하게 선언했다.
동시에.
…펑!
길고 굵은 대장전 하나가 날아갔다.
그것은 수많은 허수아비들의 몸 틈새를 기가 막히게 비집고 들어가 정면을 향한다.
뿌지지지직!
일부 잡 허수아비들이 막아섰지만 몸통에 구멍만 뚫렸을 뿐 화살의 기세는 전혀 죽지 않았다.
“헉! 마, 막아라!”
리덩후이은 황급히 허수아비들로 벽을 만들었다.
이윽고.
쾅!
거인 허수아비 몇 구가 머리에 구멍이 난 채로 쓰러졌다.
“히익!?”
리덩후이는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 살았나?”
이윽고 한쪽 눈을 가늘게 뜬 리덩후이는 굵은 화살이 자신의 정수리 위로 툭 튀어나온 바위 정중앙에 박힌 것을 확인했다.
목을 거북이처럼 바짝 움츠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 한 방에 즉사했을 것이다.
‘휴우, 무서운 궁수로다. 나를 상대로 내보낸 이유가 있었군.’
리덩후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던 상대방의 필살기는 피했다.
“이제 그만 죽어라!”
리덩후이는 나머지 허수아비들을 움직여 고지대에 고립된 드레이크를 더욱 더 옥죄었다
.
방금과 같은 화살이 또 날아올까 무서웠지만 그 짧은 시간 내에 이 정도 위력의 화살을 또 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허수아비들이 드레이크를 방해할 것이기에 그에게는 화살을 쏠 틈도 여유도 없다.
승부는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펑!
리덩후이의 발밑에서 갑자기 터져 나온 작은 불줄기만 아니었더라면 말이다.
“응? 뭐야 이게?”
리덩후이는 발바닥이 뜨거워지는 것에 당황했다.
황급히 옆으로 물러나니 방금 전까지 자기가 발을 딛고 있던 곳의 땅이 위로 들썩들썩 불거져 나오더니 이내 뜨거운 용암이 그 아래에서 퐁퐁 샘솟기 시작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펑! …퍼퍼펑! …부글부글부글부글!
이내 필드 곳곳의 땅이 위로 툭툭 봉우리처럼 불거져 나오더니 그 중앙에서 용암이 치솟아 올랐다.
하나같이 드레이크의 화살이 꽂혀 있던 부분들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입니까! 필드의 지형이 변하고 있습니다!]
[용의 혓바닥 모양의 경기장 곳곳에서 용암이 분출됩니다! 세상에!]
[드, 드레이크 선수가 화살을 박아 넣은 곳마다 활화산이 생겨납니다! 땅이 용암에 잠기고 있어요!]
캐스터들이 잔뜩 당황해 소리 지른다.
관중들 역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변화에 환호, 열광하고 있었다.
…오로지 나만이 차갑게 웃고 있을 뿐.
“딱 시간이 됐군.”
나는 상태창 하단의 시계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경기장이 이곳 ‘홍련의 앙룡’으로 선정되었을 때부터 준비했던 내 계획이 이제야 빛을 발한다.
‘폭발점(爆發點)’
일반적으로 모든 용암대지에는 몇몇 포인트가 존재한다.
이 특정 포인트를 자극하면 땅거죽 밑으로 흐르는 마그마가 분출하게 되고 주변 지형은 잠시 동안 뜨거운 용암이나 가스로 가득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예전 극우세력 일본 PK범들을 잡을 때도 이 폭발점을 전략적으로 이용했던 적이 있다.
던전 ‘부글부 굴’에서도 써먹었던 전략이었다.
그리고 그때의 전략이 지금 드레이크의 손에 의해 빅리그에서 똑같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어억!? 어어어엇!?”
리덩후이는 주변을 옥죄어 오는 용암의 파도에 잔뜩 당황했다.
푸쉬시시식- 화르륵!
그토록 많던 허수아비들은 죄다 용암에 불타 사라져 버렸다.
시시각각 좁아져 오는 용암의 포위망,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다.
“웰컴.”
바로 드레이크가 버티고 서 있는 고지대였다!
“…으으으으!”
리덩후이는 절망했다.
태그를 위해서는 뒤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길은 지금 뜨거운 용암에 가로막혀 있다.
별 수 없이, 리덩후이는 차오르는 용암에게 쫓겨 고지대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드레이크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핑-
화살 한 대가 날아들어 리덩후이를 노린다.
“크윽! 하지만 내 허수아비는 강하다! 네 화살 쯤은!?”
그러나 리덩후이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퍼펑!
화살의 넉백 특성이 발동한 것이다.
리덩후이는 자기가 만들어낸 허수아비와 함께 뒤로 쫙 밀려났다.
“아, 안 돼!”
리덩후이는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가려 했지만 드레이크는 계속 넉백 특성이 붙은 화살을 쏘아 리덩후이를 뒤로 날려보낼 뿐이었다.
치이이익…
두 번째로 뒤로 날아간 리덩후이는 자신의 발 뒤꿈치가 용암에 닿는 것을 느꼈다.
“으아아아아!”
리덩후이는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돌격했지만.
“네 말이 맞다. 시간 문제일 뿐이지.”
드레이크는 또다시 화살을 쏘아 보냈다.
펑!
리덩후이는 허수아비를 내세워 드레이크의 화살을 막는 것에 성공했지만.
…치이이이익!
결국 뒤로 나자빠져 등이 온통 용암에 젖어 버렸다.
“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리덩후이의 위로 드레이크가 쏘아 보내는 추가 화살들이 샷처럼 쏟아져 내린다.
결국 리덩후이는 그대로 용암에 잠겨들고 말았다.
시간 내에 안전지대로 피신하지 못한 결과였다.
…척!
드레이크는 내 쪽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나 역시 그런 드레이크를 향해 엄지를 세워 주었다.
엄재영 감독이 내 등을 팡팡 치며 말했다.
“너는 대체 이런 전술을 어떻게 생각해 낸 거냐?”
나는 대답 대신 그저 피식 웃었다.
회귀 전 세상에서 이 정도 전술은 전술 축에도 못 들었다.
고인물들은 보통 용암의 점성이나 온도, 속도 등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바닥에 퍼지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 굳는 시간을 초 단위로 계산해 전략적으로 이용할 정도였으니까.
“드레이크, 이제 그만 태그하자고!”
엄재영 감독은 오더를 내렸다.
드레이크 역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태그가 불가능했다.
경기장을 완전히 뒤덮은 용암들이 굳기까지에는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더 필요했으니까.
…바로 그때.
예상치 못한 이변이 일어났다.
퍼펑!
나조차도 미처 예측하지 못한 참격이 날아와 드레이크의 심장을 곧바로 꿰뚫어 버렸던 것이다.
“……!?”
나를 포함한 한국 측의 모두가 두 눈을 크게 떴다.
“……큭?”
드레이크는 심장을 관통한 것을 내려다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게임을 시작한 이래 처음 입어보는 치명타 데미지!
드레이크의 등을 관통해 가슴으로 나온 것은 바로 삐죽한 창날이었다.
“아앙~ 방심하면 안 되지.”
이윽고, 허공에서 무언가가 드레이크의 위로 떨어져 내렸다.
대만 측에서 튀어나온 창잡이. 그 넓디넓은 용암의 바다를 도약 한 번으로 건너온 미친 피지컬.
큰 키, 늘씬한 근육질의 체구에 길게 휘어져 눈웃음치는 눈꼬리가 인상적이다.
눈 밑에는 까만 물방울 모양의 점이 세 개 새겨져 있었다.
“…….”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만 팀 내 서열 5위, 하지만 의외성과 자유분방함, 그리고 변태성 만큼은 단연코 1위.
피반창(皮反常).
이 선수에 관한 것은 미래를 알고 있는 나조차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어찌 보면 가장 골치 아플 수 있는 적이 드레이크를 상대로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