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68화 (568/1,000)
  • 568화 한국VS대만 (3)

    [네! 유세희 선수가 대만 선수 계륜미와 류이호, 두 명을 연달아 잡아 내며 더블킬이라는 위업을 달성합니다! 그녀의 나이 불과 18세에 이룩한 쾌거에 아시아 전체가 주목하는 순간입니다!]

    전용진 캐스터가 잔뜩 흥분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만큼이나 유세희의 활약은 눈부신 것이었다.

    <전체 연령대>

    1. 유세희. (NEW)

    2. 사상 최강의 여고생. (NEW)

    3. 눈 먼 처형인. (NEW)

    4.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 (↓1)

    5. 델리만쥬 대량구매 (NEW)

    .

    .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대중이 유세희에게 보내는 환호와 떨림을 한눈에 잘 보여 준다.

    “고맙습니당. 고맙습니당. 고맙습니당.”

    유세희는 자기를 둘러싼 관중들의 환호에 응답해 고개를 연신 꾸벅 숙였다.

    당이 떨어져서 그런 걸까? 평소답지 않게 말투에서부터 당이 팍팍 들어간 유세희였다.

    하지만 나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필드를 살피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제 슬슬 세희를 불러들여야겠는데.”

    세 번째 대만 선수가 필드로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껑충 큰 키에 깡마른 몸, 창백한 얼굴의 오크 플레이어다.

    오크답지 않게 근육량이 상당히 적고 몸에 그린 문신이나 피어싱 등 장신구가 요란하다.

    전신에서 시커먼 기운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흑마법사가 틀림없어 보였다.

    전용진 캐스터가 외쳤다.

    [네! 대만 측에서 세 번째로 내보낸 선수는 이등휘 선수입니다! 팀 내 서열 2위로 알려진 이등휘 선수가 벌써 나온다는 것은 대만 측에서 꽤나 조바심을 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는데요! 하기야 벌써 두 명의 선수가 리타이어 당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리덩후이(李登輝). 나도 잘 아는 선수다.

    ‘일본 팀의 아키사다를 고전시켰던 선수지. 아주 까다로운 상대야.’

    리덩후이는 예전 강원도 대표팀 시절, 매드독의 오승훈을 연상케 하는 메타를 사용한다.

    일명 ‘꼭두각시’ 메타. 풍년을 기원하는 허수아비들을 대량으로 소환해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완성한다.

    예전에 상대했던 S급 몬스터인 밴시 퀸의 하위호환이라고 봐도 좋겠다.

    이내 필드로 나온 리덩후이는 혼자서 음침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꼬마야, 내 뒤에 나올 녀석을 만나게 될 바에는 나에게 리타이어 당하는 게 나을 거야.”

    보통 인간은 오크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겠지만 유세희는 다르다.

    그녀에게는 내가 틈나는 대로 오크와 리자드맨의 언어들을 가르쳤던 바 있으니까.

    독해나 듣기는 가능하지만 말하기는 아직 안 되는 수준이기에 유세희는 그냥 미간만 찌푸렸을 뿐이다.

    이윽고, 리덩후이는 손에 든 마도서와 지팡이를 휘둘렀다.

    츠츠츠츠츠츠……

    눈앞에 수십 구의 허수아비들이 소환되었다.

    대부분 손에 녹슨 낫, 칼 등을 쥐고 있는 저급한 병사들이다.

    쩍! 쩌억!

    유세희는 대낫을 휘둘러 허수아비들을 베어 버렸다.

    하지만 새로 형성되는 허수아비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것들은 어느새 필드의 절반가량을 꽉 채울 정도가 되었다.

    허수아비들은 그 자체가 공격임과 동시에 방어였다.

    놈들은 몇 명씩 스크럽을 짜 필드 전체를 압박해 조여 오고 있었다.

    화염 마법사가 아닌 이상에야 일일이 하나하나 상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크윽!?”

    유세희는 대낫을 더욱 바삐 놀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피로도가 쌓여 자신의 HP만 천천히 하락할 뿐이다.

    리덩후이는 진득한 미소를 띤 채 그런 유세희를 압박했다.

    “이곳은 어린애 놀이터가 아니다. 그만 사라져라.”

    그러자 유세희가 톡 쏘아붙였다.

    “대만 팀은 어린애 놀이터에서 두 명이나 리타이어 당했나요?”

    더듬더듬이지만 알아들을 수 있는 오크어였다.

    그 말을 들은 리덩후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긴, 지금 유세희를 비하하는 것은 그녀에게 당한 대만 선수 두 명까지 같이 비하하는 것이다.

    “건방진 계집애로구나. 버릇을 좀 들여 놔야겠어.”

    리덩후이는 더욱 많은 허수아비들을 소환해 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유세희를 꾹꾹 눌러 조인다.

    “으으으윽!”

    유세희는 허수아비들에게 짓눌려 고통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덩후이는 그 모습을 보며 낄낄 웃고 있다.

    더 싸우는 것도 의미 없는 일이기에 나는 유세희를 돌아오게끔 했다.

    “세희야, 돌아와.”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유세희는 바로 태그를 외쳤다.

    “태그!”

    말을 마친 유세희는 재빨리 후면의 허수아비들을 베고 한국 측 진영으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오려 했다.

    “어딜 가시려고.”

    리덩후이는 비릿한 미소와 함께 허수아비들을 움직였다.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얽히고설킨 허수아비들은 마치 거대한 벽, 아니 그물처럼 유세희의 몸을 뒤덮는다.

    캐스터들이 깜짝 놀라 외쳤다.

    [아앗!? 이등휘 선수가 유세희 선수의 발목을 잡고 늘어집니다!]

    [태그 도중에 공격받는 것은 또 처음 보네요! 그 짧은 순간을 캐치한 이등휘 선수의 반사신경이 정말 굉장합니다!]

    [원래 변신로봇이 합체할 때랑 마법소녀가 변신할 때, 그리고 뎀 프로게이머들이 태그할 때는 공격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인데! 그게 오늘 깨지네요!]

    유세희는 태그를 외쳤지만 아직 같은 팀 동료들이 있는 구역까지 도달하지 못했기에 태그는 무효이다.

    “이익!”

    결국 유세희는 남은 HP를 소모하면서까지 동작이 큰 공격을 날렸고 겨우겨우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허수아비들을 베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느라 남은 HP가 거의 바닥을 보이게 되었다.

    “……태그!”

    유세희는 녹초가 된 모습으로 안전구역 안으로 돌아왔다.

    그나마 내가 빠르게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면 태그 중간에 리타이어 당했을 것이다.

    이제 한국 측에서 다음 선수를 낼 차례다.

    그 뒤를 이어 나선 이는 마태강이었다.

    “형님. 저를 내보내 주십시오.”

    녀석은 유세희를 괴롭혔던(?) 리덩후이에게 약간의 적개심을 보이고 있었다.

    하기야, 마태강은 기름과 가스를 이용해 불길을 만들어 낼 줄 아는 격투가이니 리덩후이의 허수아비들을 상대로 상성이 꽤나 좋을지도 모른다.

    [네! 유세희 선수가 태그를 외쳤습니다! 아마 허수아비 분신 소환으로 물량공세를 즐겨 하는 리덩후이가 상대이니만큼 한국 측의 다음 상대는 투신 마태강! 아니면 한국 팀 리더인 마동왕이 직접 나올 수도 있겠군요! 마태강 선수의 강력한 화염권이나 마동왕 선수의 자연재해 광역기가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열쇠일 것 같습니다!]

    전용진 캐스터의 말대로다.

    상식적으로 상대방과의 상성을 고려하면 다음 타자는 나 아니면 마태강이 나가야만 했다.

    그러나.

    “안 돼.”

    나는 마태강의 요청을 기각했다.

    한데? 마태강은 꽤나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왜요?”

    “응?”

    “왜 안됩니까!”

    녀석이 내 말에 의문을 표한 것이다.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얘가 왜 이래?’

    마태강은 그동안 나를 보며 자라는 해바라기처럼 예쁘고 말 잘 듣는 동생이었다.

    이연호와 함께 누가 누가 더 말 잘 듣나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았을 정도니까.

    하지만 지금 마태강의 모습은 흡사 20대 어린아이 같다.

    ‘…아 20대 어린아이 맞구나 참.’

    나는 간만에 제 나이대에 맞는 모습을 보이는 마태강을 보며 신선함을 느꼈다.

    “아 왜 안되냐구요 혀영- 저 내보내 주세요!”

    마태강은 아예 내 팔을 잡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 세희한테 잘 보이려고 그러지?”

    그러자 마태강의 몸이 갑자기 뻣뻣하게 굳는다.

    내 옆에 있던 엄재영 감독도 싱글싱글 웃으며 그런 마태강에게 어깨동무를 건다.

    “이 자식 이거, 지 여자친구 건드렸다고 화나서는 바로 뛰쳐나가려는 것 좀 봐.”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럼 왜 나가겠다는 거야?”

    “그, 그, 그야 제가 상성도 더 좋고……”

    “얀마, 상성 따질 거면 마동왕이 나가야지.”

    “으, 으음, 그야 뭐, 형님은 팀 내 간판이시니까 최대한 전력을 아끼시고. 제가 나가는 게 딱 좋지 않습니까.”

    나와 엄재영 감독은 빵 터질 것 같은 웃음을 겨우 참았다.

    그때쯤 해서 유세희가 돌아왔다.

    전신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그녀는 매우 지쳐 보였다.

    엄재영 감독이 그런 유세희를 격려했다.

    “수고했다 세희야.”

    “아녜요. 저 혼자였다면 어떻게든 조금 더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헛된 기대를 하다가 죽었을 거예요. 빠르게 교체 판단 내려 주셔서 감사해요.”

    확실히 태그도 타이밍이고 전략이다.

    태그 선언을 불과 1, 2초 늦게 해서 몰락한 팀들이 얼마나 많은가?

    한편,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제 거의 다 끝나간다.

    이제 리미트가 얼마 남지 않았기에 빨리 다음 선수를 내보내야 했다.

    나는 마태강을 향해 빠르게 설명했다.

    “잘 들어. 퍼포먼스는 마지막 쇼타임에 해야 가장 파급력이 높아.”

    “네?”

    “넌 가서 세희나 부축해 주고 있어.”

    나는 마태강의 등을 팡 쳤다.

    마태강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가 유세희의 대기석으로 향했다.

    포션이라도 한 병 까서 건네주고 싶을 테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불법이다.

    그저 상태창을 변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건네는 적당한 위로와 토닥임만이 마태강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자, 한국 측에서 다음 선수를 내보낼 차례입니다! 교체가 조금 늦어지네요! 아마 마동왕이 출격할 것이냐 투신이 나올 것이냐를 두고 회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는지 짐작해 봅니다!]

    [아무래도 상대의 메타가 워낙에 개성이 뚜렷한 만큼 카운터 외에는 별다른 수가 없죠?]

    [한국 측이 세울 수 있는 전략의 수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 봅니다.]

    [이럴 때는 의외성 짙은 깜짝 전략보다는 정공법으로 나가는 게 좋죠. 저는 마동왕 선수가 나와서 광역기술로 상황을 정리하리라 봅니다.]

    [에이~ 아무래도 마동왕 선수의 위치가 있는데 바로 나오는 건 좀 없어 보이죠. 아마 젊은 피인 투신 선수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데요 전. 하하하!]

    전용진 캐스터를 비롯한 해설진들의 말이 장외를 울린다.

    하지만.

    다음 타자로 나온 한국 측 선수의 얼굴은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게끔 만들었다.

    드레이크!

    대만 팀 서열 2위인 리덩후이의 수많은 허수아비 대군을 상대로 나온 이는 1:1에 특화되어 있는 궁수 플레이어인 드레이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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