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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67화 (567/1,000)

567화 한국 VS 대만 (2)

전용진 캐스터가 특유의 활기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유세희 선수가 계륜미 선수를 멋지게 꺾고 지상 최강의 여고생임을 증명해 냅니다! 계륜미 선수의 복수를 위해 나온 선수는 바로 대만의 류이호 선수! 강렬한 폭염 마법이 인상적인 선수죠!]

이윽고, 필드 위에 불덩어리 하나가 강림한다.

화르르르르륵!

이윽고, 시뻘건 불기둥을 찢고 그 틈에서 온몸이 불길로 뒤덮인 남자가 걸어 나왔다.

리우이하오(劉以豪).

대만 마법사 랭킹 4위의 고수.

갈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그의 피부는 노란색으로 반들거린다.

그 모습은 마치……

[카스테라! 대만 카스테라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전용진 캐스터는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리우이하오가 등장하자 경기장 전역에 달콤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게임 속에서 그 향기를 맡은 주변 관중들의 시선이 몽롱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증강현실 홀로그램으로 경기를 보는 사람들은 느낄 수 없었지만 게임 속에서 경기를 보던 이들은 모두 빠짐없이 이 냄새에 취했다.

평소에 디저트 같은 것에는 일절 관심없던 마태강이나 드레이크조차도 코를 킁킁거리며 입맛을 다실 정도로 달달한 냄새.

“우와, 맛있는 냄새 난다…….”

윤솔은 아예 군침까지 꼴깍꼴깍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 냄새를 참느라 고역이었다.

‘델리만쥬 특성인가……’

이 냄새를 나게 만드는 것은 리우이하오가 착용하고 있는 ‘델리만쥬 팬던트 목걸이’의 효과였다.

‘델리만쥬’ - 달콤한 향기를 풍겨 상대의 눈길과 발걸음을 잡아끕니다.

이 특성은 100% 명중하며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달달한 냄새를 풍겨 주변 몬스터들을 유인하는 어그로 특성.

지하철역 근처에서는 더욱 큰 효과를 보인다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

뎀 세계관 안에서 지하철역이 구현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들이 남아 있다.

‘어찌 보면 다행인건가…….’

나 또한 회귀 이후 처음 맡은 추억의 냄새에 코를 킁킁거렸지만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작 냄새를 맡고 다가와 보면 좀 깨는 맛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리우이하오의 강렬한 화염 공격이 바로 그것이다.

…화르륵!

심지어 리우이하오가 뿜어내고 있는 열기 때문에 달짝지근한 냄새는 더욱 더 광역으로 퍼져나간다.

“으아! 못 참겠다! 나 로그아웃하고 델리만쥬 좀 사 먹고 올게!”

“나는 카스테라!”

“후! 하! 후! 하! 이거 냄새 때문에 역 앞까지 가서 델리만쥬 사 왔는데! 한 입 먹으니까 바로 질린다! 또 냄새에 속았어!”

주변 관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리우이하오는 개의치 않은 채 눈앞에 있는 유세희를 바라보았다.

“후후, 이 냄새를 맡다 보면 배가 고프게 되고 집중력이 떨어지지. 어떠냐?”

리우이하오가 눈앞에 있던 유세희를 도발하는 순간.

…번뜩!

탁한 빛으로 물들어 있던 유세희의 눈에서 일순간 강렬한 안광이 빛났다.

“이야압!”

유세희는 계륜미와의 싸움으로 인한 피로를 완전히 잊어버린 채 대낫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엇!?”

리우이하오는 두 손에서 화염을 피워 올리다 말고 식겁했다.

쩌어억-

유세희가 휘두른 대낫에서 채찍과도 같은 참격이 뻗어나가 땅을 두 조각으로 갈라 놓았다.

…파캉!

리우이하오는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뭉텅 자르며 날아간 참격에 아연실색한다.

하지만.

쩍! 쩌억! 쩌어어억!

유세희는 계속해서 대낫을 휘둘러 리우이하오를 몰아붙인다.

이 정교한 공격에 리우이하오는 저절로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 얘 눈 보이는 거 아냐!?”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씩 웃었다.

‘분명 델리만쥬 특성은 좋은 냄새로 몬스터를 유인하는 어그로 특성이지. 또한 몬스터의 회피율과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디버프 스킬이기도 해. 하지만 플레이어를 상대로 하면 조금 다르지.’

리우이하오는 분명 잘못된 선택을 했다.

일반적인 상대였다면 이 냄새 전략이 꽤나 효과적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후후, 달콤한 디저트의 천적은 여고생이지.’

오히려 유세희처럼 후각이 예민한 상대에게는 자신의 위치를 알려 주는 셈만 될 뿐이다.

거기에 그녀가 대회 때문에 잔뜩 긴장해 어제 저녁부터 공복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배고프단 말이에요! 으아앙! 나쁜 사부!”

유세희는 칭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대낫을 확 치켜세웠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오늘 리우이하오의 전략을 미리 간파하고 있었기에 유세희에게 어제 저녁 6시 이후로 금식을 지시한 것도 모자라 몇 주 전부터 달달한 것은 아예 입에도 못 대게 했었다.

고로 유세희는 지금 달콤한 디저트 류의 음식에 매우 맹렬하게 굶주려 있다는 뜻이다.

리우이하오의 몸에서 나는 달달한 냄새를 정확하게 추격할 수 있는 것도 다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어그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도 정확히 같았다.

일정 이상의 심박수, 알콜농도가 넘어가면 자동 로그아웃이 실행되듯이, 건강상의 이유로 게임에서 구현할 수 있는 ‘공복’의 최대치도 제한되어 있는 것이다.

세희는 지금 실제 공복이 극에 달한 상태!

여기서 캡슐이 더 뇌를 자극했다간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캡슐은 자체적으로 어그로 유발 신호를 차단한 것이다!

나는 세희의 희생에 박수를 보냈다.

“세희야. 이 판 끝나고부터는 먹고 싶은 거 다 먹자.”

“네? 정말요!? 그럼 저 타르트 먹어도 돼요!?”

“그럼~”

“그러면 타르트랑 케이크 먹어도 돼요!?”

“그럼~”

“그러면 타르트랑 케이크랑 아이스크림 먹어도 돼요!?”

“…그럼~”

“그러면 타르트랑 케이크랑이랑 파르페랑 마카롱이랑 빙수랑 딸기생크림오믈렛이랑 슈랑 쿠키랑 슬러시랑 사탕이랑 젤리랑 푸딩이랑 카스테라랑 붕어빵이랑 델리만쥬랑 도넛이랑 꽈배기랑 츄러스랑 단팥빵이랑 크림빵이랑 빙탕호로랑 화과자랑 약과랑 와플이랑 생강파이랑 에끌레르랑 달고나랑 허니브레드랑…….”

“너 혹시 위가 4개니…? 유세희가 음식을 숨김…같은 건가?”

뭐 아무튼.

한창 클 나이의 여고생 앞에 달달한 음식이 놓였으니 이제 그 달달한 녀석의 결과는 뻔하다.

파멸, 온몸이 갈가리 찢긴 채 한입 식사거리로 전락할 뿐!

“에, 에잇!”

리우이하오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두 팔의 화염을 컨트롤했다.

그 어떤 빵도 순식간에 구워 버리는 초고온의 화염이 필드 전체를 오븐처럼 굽고 찌기 시작했다.

하지만 녀석의 마법은 화염계열치고는 특이하게도 필드에 도트 데미지를 까는 것이기에 유세희를 단기간에 떨쳐낼 수는 없었다.

유세희는 HP가 깎이는 것을 각오하고 리우이하오의 화염벽을 뚫어 버렸다.

뜨거운 곳으로 갈수록 달달한 향기는 더욱 진해지고 있어 그녀의 식욕을 자극한다.

“쳇! 이거나 받아라!”

리우이하오는 손을 뻗어 허공에 수결을 그렸다.

그러자 그의 주위로 노오란 액체들이 휘몰아쳐 소용돌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바로 식용유였다!

퍼펑! 퍼퍼퍼펑!

식용유로 된 거대한 기름줄기들이 마치 뱀처럼 날아와 유세희를 타격했다.

하지만 나는 조금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식용유는 원가 절감과 촉촉한 식감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재료이지! 한국기술자격검정원에서 시행하는 제과기능사 실기시험 공식 레시피에도 포함되어 있으니 말이야! 더군다나 콜레스테롤이 많은 동물성 포화지방인 버터와 달리 콜레스테롤이 없는 식물성 불포화지방인지라 딱히 몸에 해롭지도 않다!”

내 사전 경고를 들은 유세희는 몸에 와 부딪치는 식용유들을 무시하고 대낫을 휘둘렀다.

쩍-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온 유세희의 폭딜! 나약한 인간 마법사의 육체로 그것을 견뎌 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불길과 식용유가 부서지며 달콤한 냄새가 더욱 더 진해졌다.

…촤악! …촥!

이윽고, X자 참격이 허공을 절단했다.

리우이하오는 복부에 큰 상처를 입고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전용진 캐스터가 깜짝 놀라 외쳤다.

[아앗! 류이호 선수! 이렇게 리타이어 당하나요!? 유세희 선수 빅리그 더블킬 가나요!? 만약 그렇다면 동년배 중에서는 정말 세계최고의 커리어일 겁니다!]

모든 한국 팬들이 손에 땀을 뒤고 경기에 집중한다.

그러나.

대만 선수들은 여전히 여유로운 시선으로 필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후후후, 저 녀석 또 저러는군.”

“정말 악취미라니까.”

“애 하나 데리고 시간을 얼마나 끄는 건지, 에잉.”

리우이하오를 굳게 믿고 있는 표정들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내가 무릎을 꿇은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리우이하오는 무릎을 꿇으면서 자세를 낮추었고 은밀히 장전하고 있던 장딴지 근육을 폭발시켰다.

태세전환.

궁지에 몰리는 듯 보였던 그는 한순간에 기세를 뒤집어 유세희에게로 달려들었다.

전신에 뜨거운 화염을 두른 채로!

온몸에 불이 붙은 지금 리우이하오는 60kg짜리 뜨거운 탄환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리우이하오가 쓰러진 척 연기했던 것은 모두 상대를 방심시켜 역습을 가하기 위한 포석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동반사망은 확정!

……하지만.

“역시 사부의 말씀대로였어요!”

유세희는 너무나도 쉽게 리우이하오의 화염 다이브를 피해 버렸다.

그녀는 진작부터 리우이하오의 발바닥을 눈여겨보고 있었던 것이다!

“사부가 그랬어요! 카스테라를 먹을 때에는 밑바닥에 붙어 있는 종이를 조심하라고! 자칫하면 이상한 것까지 먹을 수 있으니 하단부를 꼭꼭 살피라고!”

유세희는 바닥에 찰싹 붙어 있는 리우이하오의 발가락 끝이 도약을 위해 구부러져 있었던 것을 일찌감치 간파한 상태였다.

…부웅!

이내 눈 먼 처형인의 대낫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아아아아! 유세희 선수! 아아아아아!]

전용진 캐스터가 할 말조차 잊고 환호성을 지른다.

동시에 대만 선수들 역시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쩍!

달콤하고 맛있는 대만 카스테라가 여고생의 빵칼에 의해 두 조각으로 잘라지는 순간이다.

…쿵!

리우이하오가 쓰러졌다.

그리고 그가 쓰러짐과 동시에 관객들이 거대한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

현실과 게임, 온 세상에 물결치는 거대한 파노라마.

[경기 끄으으으으으으으읕!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

[아아아! 대만의 초엘리트급 선수 두 명이 연달아 리타이어어어!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딸 유세희라면 말이 됩니다! 아아아! 이번 시즌 초반! 모두의 기억 속에 길이 남을 광경입니다! 관객 여러분! 그리고 구단주, 광고주분들! 모두 이 장면을 머릿속에 새겨 넣으십시오! 유! 세! 희! 가 대한민국 게임계의 새로운 희망입니다! 유세희이이이이! 기적의 더어브을키이이일!]

[우효! 이건 미쳤어요! 드라마네요! 이런 장면을 볼 수 있는 나는 정말 초 럭키다제에에!!!]

‘더블킬(Doublekill)’

국내에서도 보기 힘든 진귀한 현상이 리틀리그를 넘어 빅리그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유세희, ‘ID: 눈 먼 처형인’

폭풍을 몰고 다니는 슈퍼루키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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