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66화 (566/1,000)
  • 566화 한국 VS 대만 (1)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한국vs대만

    여기서 이기는 쪽은 빅리그의 결승전에 진출해 옥좌를 두고 다투게 된다.

    오늘 용산에 있는 E스포츠 홀에는 개장 시간에만 40만 명이라는 역대급 인파가 몰렸다.

    한국 게임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이다.

    너무나도 많은 관객들 때문에 홀은 아예 장비들을 개방해 버렸다.

    홀의 수용인원으로는 여기 모인 이들의 반의 반도 커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형 스크린, 홀로그램 장치들이 외부로 빠졌고 이로 인해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경기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게임 속에서 직관을 하는 것도 좋지만 뭐니뭐니해도 현실에서 치킨과 맥주 등을 뜯으면서 보는 경기가 제일 재밌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E스포츠 스타디움 안의 홀로그램 장비들이 길거리마다 설치되었기 때문에 마치 정말 가상현실 세계 안에 들어온 것처럼 경기를 관람하는 것도 가능했다.

    이를테면 증강현실로 즐기는 가상현실이다.

    “신사 숙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전용진 캐스터는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인다.

    탁 트인 야외로 나와 어마어마한 수의 관중들을 향해 중계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제 캐스터 인생 중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네요. 이렇게 드넓은 야외에서 중계를 하는 것도 모자라 이 드넓은 야외가 모두 사람으로 꽉 차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캐스터고 대회 관계자고를 떠나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그러자 이내 어마어마한 환호가 전용진 캐스터의 멘트에 응답한다.

    전용진 캐스터는 온 세상천지를 진동시키는 함성에 감격하여 잠시 멘트를 잇지 못했다.

    이내, 그는 약간 붉어진 눈시울로 입을 열었다.

    “제 살아생전 한국 E스포츠 리그가 이렇게 부흥하는 걸 보게 될 줄이야. 이 자리에 서게 되어 너무 영광입니다. ……자, 제가 너무 서론이 길었죠? 이제부터 제대로 중계 시작하겠습니다!”

    전용진 캐스터가 옆에 있는 단상의 버튼을 누르자 이내 곳곳에 설치된 거대한 홀로그램 기계에 영상이 뜨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제 있었던 러시아 대 우즈베키스탄의 경기였다.

    결과는 참혹했다.

    러시아의 압도적인 승리!

    초반, 우즈베키스탄의 리더인 핫세 다닐로바가 러시아 선수 두 명을 잡아내는 것에 성공했지만 그 이후 러시아 팀의 오크 탱커 트로츠키와 얼음마법사 올가의 활약으로 인해 우즈베키스탄은 결국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네. 우즈베키스탄이 분전 끝에 탈락한 결과 러시아가 빅리그의 결승으로 올라갔습니다. 오늘 한국과 대만 중 이긴 국가가 아시아 최후의 왕좌를 놓고 러시아와 맞붙게 되는데요! 오늘 경기 정말 기대됩니다!”

    이윽고, 야외에 건설된 거대 무대 위로 한국과 대만 선수들이 올라온다.

    오늘 아시아의 왕좌를 노리는 열 명의 승부사가 캡슐 속에서 전투 준비를 끝마쳤다.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펑펑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전용진 캐스터가 경기 시작을 알렸다.

    “경기! 시작합니드아아아아!”

    *       *       *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환한 빛무리와 함께 오늘의 전장이 보인다.

    내가 발을 내딛은 맵의 이름은 ‘홍련의 앙룡’, 검은 바위들이 이빨처럼 뾰족하게 솟구쳐 오른 용암지대였다.

    부글부글부글…

    시뻘겋게 끓는 용암이 저 아래에 도사리고 있다.

    마치 거대한 검은 용의 아가리처럼 생긴 이 오픈필드가 오늘의 무대였다.

    나는 용의 헛바닥처럼 생긴 판판한 바위 위에 섰다.

    내 뒤로 드레이크, 윤솔, 유세희, 마태강이 일렬로 늘어졌다.

    “자, 미리 준비해 둔 전략대로 가자고.”

    나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동시에 머릿속으로 회귀 전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알기로 대만은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에서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

    리틀리그를 통과한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 이후 빅리그에서 만난 일본에게 너무 빨리 패배했기 때문이다.

    ‘일본 팀에는 마법사만 세 명이었는데…… 대만으로서는 상성이 나빴지.’

    특히나 초반부터 작정하고 나온 옥타 캐스팅의 아키사다 아야카가 엄청난 활약을 하는 바람에 대만은 올킬 위기까지 맞았었다.

    마지막에 구원투수로 나왔던 대만 팀의 리더 주라이기(周来去)만 아니었으면 분명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주라이기만은 우리도 주의해야지.’

    더군다나 우리 팀은 일본 팀과 달리 마법사가 한 명도 없기 때문에 더더욱 대만전에 만전을 기울여야 한다.

    이윽고.

    대만 팀에서 첫 번째 선수가 필드로 나왔다.

    첫 번째 선수의 이름은 ‘구이룬메이(桂綸鎂)’로 숏커트에 짙은 눈썹이 돋보이는 앳된 소녀였다.

    나는 그녀의 정체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계륜미로군. 현 대만 최강의 여고생인가.’

    현재 대만에서 근접 딜러로 한창 명성을 날리고 있는 방년 18세의 여고생이다.

    그녀가 휘두르는 거대한 톱날 양손대검에는 검은 날과 흰 날이 번갈아 튀어나와 있었는데 언뜻 보고 있노라면 마치 피아노 건반을 보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 거대한 피아노를 휘둘러 가해 오는 엄청난 물리 공격이지만 말이다.

    구이룬메이를 맞이해 싸우는 이는 우리 팀의 영원한 귀염둥이 막내 유세희였다.

    …타탁!

    유세희는 거대한 대낫을 양손에 쥔 채로 앙룡의 혓바닥 위에 가볍게 착지했다.

    여고생 VS 여고생. 사상 최강의 전투병기들끼리 맞붙게 되었다.

    “…….”

    구이룬메이와 유세희는 서로를 향해 탐색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스팟!

    먼저 움직인 쪽은 유세희였다.

    그녀는 바람과 같은 몸놀림으로 대낫을 휘둘러 구이룬메이를 공격했다.

    하지만, 이내 구이룬메이의 특성 중 하나가 발동되었다.

    ‘말할 수 없는 비밀 메타!’

    나는 팔짱을 낀 채 감탄했다.

    구이룬메이의 특징은 천재적인 게임센스로 상대방의 움직임을 카피해 따라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저 ‘말할 수 없는 비밀’ 메타는 상대방의 공격을 그대로 되돌려 보내는 반사 데미지 특성!

    자기의 데미지를 추가로 실을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구이룬메이의 공격 패턴과 더해졌을 때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한다.

    파캉!

    유세희의 대낫과 구이룬메이의 피아노, 아니 톱날검이 허공에서 사납게 격돌했다.

    쩡! 쩌엉! 쾅! 우지지직!

    이내 두 여고생은 주변 대지를 초토화시켜 놓으며 맹렬하게 맞붙기 시작했다.

    마치 거울을 상대로 싸우는 듯한 똑같은 움직임으로 말이다.

    한국 중계석과 대만 중계석은 모두 난리가 났다.

    전용진 캐스터는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멘트를 날린다.

    [아! 과연 대단합니다! 대만의 계륜미 선수라 하면 대만 게임계의 역사를 새로 쓴 최연소 프로게이머로 엄청난 게임 센스를 가진 것으로 유명한데요! 이 선수를 지금 한국 최연소 프로게이머인 유세희 선수가 막아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담입니다만… 과연 여고생들의 싸움은 무시무시하군요! 저 같은 아저씨는 감히 이 싸움을 말릴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그저 중계하는 것이 고작일 뿐!]

    두 여고생은 엄청난 기량을 발휘하며 서로의 목을 노린다.

    그때.

    …핏!

    구이룬메이가 공격 도중 톱날검을 약간 꺾었다.

    그러자 구이룬메이의 톱날검이 유세희의 등 부근을 아주 미약하게 스친다.

    “이런!”

    나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쩌저저적!

    유세희의 등이 파랗게 물들며 서리가 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특성!

    구이룬메이의 칼에 닿은 부분은 파랗게 물들고 만다.

    얼음 데미지를 입는 것이다.

    쩡! 쩌엉! 팡!

    구이룬메이는 쉴 새 없이, 압도적인 기세로 유세희를 몰아쳐 갔다.

    아무리 미러전이라고 해도 얼음 속성 추가데미지가 있는 한 전황은 유세희에게 불리하다.

    더군다나 구이룬메이는 유세희를 상대함에 있어 절대로 틈을 내주지 않고 있었다.

    과연 대만 최강의 여고생다운 위용이다.

    그러나.

    “탐색전 끝. 이제부터 본게임 들어가요~”

    유감스럽게도 유세희의 기량은 이미 탈(脫)아시아급이다.

    …빙글! 퍼펑!

    유세희는 대낫을 뒤집어 구이룬메이의 톱날검을 빗겨 친 뒤 그대로 하이킥을 날려 그녀의 몸통을 꺾어 버렸다.

    [아아앗!? 유세희 선수! 갑자기 반격을 하고 있습니다! 전혀 반격할 타이밍이 없는 속사포 공격이었는데도 틈을 만들어 냅니다!]

    전용진 캐스터가 놀랄 만하다.

    누가 보기에도 방금의 전장은 구이룬메이가 압도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틈을 볼 수 있는 눈, 유세희는 그것을 가졌다.

    “재밌었어. 다음에 또 붙자.”

    유세희는 눈앞에서 입을 딱 벌리고 있던 구이룬메이의 머리칼을 확 움켜쥐었다.

    …싹둑!

    그리고 다른 손에 쥐고 있던 대낫을 바짝 당겨 그대로 그녀의 머리를 잘라 버린다.

    머리카락이 아니라 머리 말이다.

    댕그렁-

    오로지 주인 잃은 피아노, 아니 톱날검이 검붉은 대지 위에서 웅웅 울고 있었다.

    …오싹!

    경기장에 모인 모든 이들이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몸을 떤다.

    과연 ‘눈 먼 처형인’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닌 것이다.

    “어, 엄청나군. 캣 파이트가 아니라 타이거 파이트 같았다.”

    “그러게요. 저는 여고생 대 여고생이라고 해서 풋풋함 승부가 될 줄 알았는데…….”

    드레이크와 윤솔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세희는 여고생도 장애인도 아니야. 오로지 실력 하나로 최정상급 선수를 발라 버리는 정점(頂點)급 선수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마태강이 반응을 보인다.

    “……그렇다는 것은?”

    “당연히 경기 속행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드에 나가있는 유세희의 HP는 아직 절반도 더 남아 있다.

    얼마든지 다음 상대와 연이어 싸울 수 있다는 뜻.

    “다행히 다음으로 나올 대만 선수는 세희와 상성이 좋다. 50%의 HP로도 붙어 볼 만해.”

    “상성이 좋다고요?”

    “응. 여고생을 천적으로 두고 있는 것이 나오거든.”

    내 말에 모두가 고개를 갸웃한다.

    이윽고, 다음 대만 선수가 필드로 나온다.

    리우이하오(劉以豪).

    갈색 머리, 유난히 노오란 피부. 전신에 불길을 두르고 있는 화염계열 마법사이다.

    그가 등장하자 필드 전체에 어떠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으음? 이 냄새는?”

    “아앗!? 이 익숙한 향!?”

    “으음, 과연. 왜 세희를 연이어 출격시켰는지 알 것 같군요.”

    윤솔, 드레이크, 마태강이 일제히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그중 윤솔은 침까지 삼키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두 번째 대만 선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드디어 나왔구나 ‘대만 카스테라’ 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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