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65화 (565/1,000)
  • 565화 날개를 달아 줘요 (2)

    빅리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맨 처음으로 시작된 경기는 러시아 대 우즈베키스탄 전.

    양측 선수가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 입장하는 순간 8만 명의 관중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경기가 경기이니 만큼 이번 경기를 직관하러 온 팬들은 외국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전용진 캐스터가 선글라스를 빛내며 멘트를 시작했다.

    “네!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주신 신사 숙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어이쿠, 오늘은 외국 분들이 많네요. 세계적인 행사라는 것이 실감이 확 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오늘의 특별 게스트가 앉아 있다.

    “안녕하세요. 경기의 해설을 맡은 엄재영입니다.”

    닳고닳은 뉴비 구단의 감독 엄재영. 그가 오늘 특별 해설자로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전용진과 엄재영은 평소에도 친한 사이이니만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합이 잘 맞는다.

    “네, 오늘의 선수들이 홀로 입장하고 있습니다. 먼저 러시아 선수들이 들어오는군요!”

    이윽고, 홀의 북쪽 게이트가 열리고 드라이아이스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난다.

    눈에 확 띌 정도로 거구의 노인이 한 명.

    냉혹한 인상의 동양인 청년이 한 명.

    검고 긴 수염을 지닌 중년 남자가 한 명.

    그리고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늘씬한 체구의 남녀가 각각 한 명.

    이윽고 전용진 캐스터와 엄재영 감독이 선수 소개를 시작했다.

    “‘레프 다비도비치 트로츠키’ 선수가 첫 번째로 입장합니다! 러시아 구단인 ‘스페츠나츠(Spetsnaz)’의 리더이며 현 아시아 제일의 탱커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선수입니다. 그는 실제로 러시아 특수부대의 대령 출신인 것으로도 유명하죠.”

    “이야, 나이가 70에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지간한 젊은 선수들보다도 훨씬 더 위압감이 있습니다. 선수 프로필을 보니 키가 2미터가 넘는다고 되어 있네요. 얼굴을 가로지르고 있는 칼자국 때문에 더욱 더 박력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세계 정상급 탱커 유저라는 것이 실감나는군요.”

    전용진 캐스터와 엄재영 감독은 이내 두 번째 선수의 얼굴로 시선이 옮겨진다.

    그 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아, 다음 선수는 일명 ‘빅토르 안’,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을 때의 이름은 안혁수입니다. 활 한 자루를 귀신같이 다루는 궁수 플레이어로 별명이 ‘궁귀(弓鬼)’라죠?”

    “네에. 한국 뎀 협회의 부당개입 때문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러시아로 귀화한 선수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의 행적이 쭉 논란의 여지가 되고 있는 선수죠. 사실 이번 레드문 게이트 이후 속속들이 밝혀진 내부 사실들 중 하나가 바로 안 선수와 관련되어 있어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아, 어떤 논란인가요?”

    “과거 안혁수 선수와 협회 간 갈등의 이유가 되었던 지역 대표 선발전 이전에 이미 안 선수와 러시아 구단 간의 계약 이야기가 오갔다는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대중들에게 알려진 이미지와 관계자들에게 알려진 이미지 간에 많은 괴리가 있는 선수이니만큼 오늘의 경기를 심도 깊게 지켜볼 필요성이 있어 보입니다.”

    전용진 캐스터와 엄재영 감독이 중계를 하는 동안.

    “……후우.”

    안혁수는 심호흡을 한번 깊게 한 뒤 차가운 시선으로 한국 중계석을 바라본다.

    그 시선 속에는 얼어붙은 분노와 환멸, 애증 등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턱-

    러시아 팀의 리더 트로츠키가 솥뚜껑 같은 손을 들어 그런 안혁수의 어깨를 짚었다.

    “신경쓰지 마라. 너는 훌륭한 러시아인이다.”

    “……난 러시아 인이 아냐. 국적에 연연할 생각은 없다.”

    안혁수는 트로츠키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꽈악!

    트로츠키는 안혁수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손을 치우지 않은 채 그의 어깨를 한 번 더 꽉 억눌렀다.

    “너는 훌륭한 러시아인이다.”

    “……!”

    트로츠키와 안혁수의 사이에 날카로운 시선이 오고 간다.

    그때.

    “허허허, 이보게 친구들. 무에 그리 진지한가? 기껏 이 먼 타국까지 왔거늘, 그냥 즐기라고.”

    넉살 좋은 웃음으로 그들 사이를 갈라 놓는 이가 있었다.

    검은 수염을 길게 기른 중년인이었다.

    전용진 캐스터와 엄재영 감독은 그를 보며 눈에 이채를 띄었다.

    “아, 러시아 대표팀의 힐러이자 주술사인 ‘그리고리 예피모비치 라스푸틴’입니다!”

    “이 선수는 참 특이해요. 레벨도 장비도 스킬도 뭐 하나 공식 석상에 공개된 바 없습니다. 랭킹도 완벽한 언랭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대표팀에 속해 있다는 것은 힐러로서의 능력이 굉장하다는 뜻이겠지요?”

    “글쎄요. 그가 정말 힐러일지조차 저는 의문입니다. 뭐 자세한 것은 경기가 진행되다 보면 알게 되겠죠.”

    전용진 캐스터와 엄재영 감독은 이내 다음 선수들로 시선을 옮겼다.

    미끈하게 잘 생긴 남자와 예쁘장한 여자.

    그 둘은 서로 상당히 닮았다.

    “네, 독 타입 마법사인 ‘표트르 알렉셰이비치 크로폿킨’과 얼음 타입 마법사인 ‘올가 알렉셰예브나 크로폿키나’입니다! 이 둘은 쌍둥이 남매 사이로 알려져 있고 모두가 알고 계시는 바와 같이 엄청난 결정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 유저들입니다. 참고로 러시아의 공식 마법사 랭킹 1, 2위를 서로 다투는 사이라는군요!”

    “자, 그럼 이에 맞서는 우즈베키스탄 선수들을 알아볼까요?”

    전용진 캐스터와 엄재영 감독은 시선을 러시아 구단 맞은편으로 옮겼다.

    “권투강국인 우즈베키스탄답게 무투가 랭커로 유명한 ‘코디로프 엘요르’ 선수가 리더를 맡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는 현실 세계에서도 세계 정상 급 복서로 유명하죠!”

    “다음은 ‘핫세 하티슨 다닐로바’ 선수입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범아시아적인 톱 모델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선수죠. 실제로 게임 속에서도 룩에 많은 신경을 쓴다고 들었습니다. 착용하고 있는 옷의 재질이나 모양을 단단한 강철로 바꾸어 공방일체를 이룩한 마법사 랭커입니다!”

    “다음 선수의 이름은 ‘쿠다이나자로프 사만다르’입니다! 자신의 몸에 헤이스트 마법을 걸어 본인의 육체활동속도를 대폭 증가시키는 기술을 쓰는 마법사 랭커이자 서포터인데요. 특성인 ‘미닛 맨(Minute man)’이 한국어로 번역될 때 ‘인분’이라고 번역되는 굴욕을 겪기도 했었습니다.”

    “네 번째 선수 ‘압둘라예프 이흐티요르’ 선수는 게임계를 통틀어 가장 잘생긴 선수로 유명하죠? 게임 속 특성도 현실을 닮아서일까요? 자신의 미모를 살려 전신을 씨어데블의 미끈미끈한 점액으로 덮어 미끈한 매력을 자랑하는 전략을 주로 사용합니다! 주 무기는 양손대검으로 근접 딜러 중에서는 꽤나 준수한 커리어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는 ‘소디코프 보부르’ 선수입니다. 특이하게도 소환사 메타를 사용하는 선수인데 보부르 선수가 소환하는 몬스터는 전 세계랭킹 1위인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선수가 소환하는 몬스터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엄청나게 위력적인 소환술사인 모양입니다!”

    이윽고, 선수 소개가 모두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프로게이머들끼리 대차게 한판 붙는 것뿐이다.

    와아아아아아아-

    수없이 많은 함성 속에서.

    “경기 시작합니드아아아아아!”

    전용진 캐스터가 특유의 멘트로 빅리그를 오픈했다.

    *       *       *

    게임에 관심이 많은 모든 이들이 TV나 인터넷 방송, 홀로그램으로 경기를 감상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인기가 많은 관람 방법은 아무래도 게임 속에 직접 접속하여 경기를 ‘직관’하는 것이었다.

    오늘 아시아의 두 강호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대결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게임 속 경기가 이루어지는 ‘어비스 터미널’으로 모였다.

    다들 열정적으로 발을 구르고 폭죽을 터트리며 자기가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를 응원한다.

    …쿵! …쿵! …쿵!

    팬들의 성원에 경기장 바닥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진동하는 경기장 바닥의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중이다.

    “이야, 다들 팔팔하구만.”

    나는 떨리는 천장을 향해 피식 웃었다.

    그렇다. 나는 오늘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이 맞붙는 경기장의 지하에 와 있는 것이다!

    물론 오늘 열리는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시합 승패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미 누가 어떤 스코어로 이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이곳 황천의 유극까지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아이템 강화 때문이었다.

    내 눈앞에는 최후의 드워프이자 현 세계관 최고의 대장장이 NPC인 벨럿이 앉아있다.

    [……흐음. 이 날개를 강화해 달라 이거지?]

    오랜만에 만난 벨럿은 나와의 호감도가 이미 오래전부터 MAX인지라 별다른 거부감 없이 나의 아이템 강화 요청을 받아들였다.

    -<신성모독자의 날개> / 갑옷 / A+ / (신성모독)

    -<신성모독자의 날개> / 갑옷 / A+ / (신성모독)

    -<신성모독자의 날개> / 갑옷 / A+ / (신성모독)

    나는 벨럿에게 검은 날개 한 장과 흰 날개 한 장이 붙어 있는 날개옷을 넘겨주었다.

    수량은 총 세 개였다.

    [강화석과 초월강화 주문서는 준비되어 있겠지?]

    “그야 물론.”

    나는 벨럿에게 강화석 28개와 주문서 한 장을 내밀었다.

    -<한계돌파 강화주문서> / 주문서 / A+

    금기의 영역인 10단계 강화의 벽을 뚫을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

    -1회만 사용 가능합니다

    -9단계 이상의 강화된 아이템에만 사용 가능합니다.

    오래 전에 밴시 퀸을 잡고 얻은 것으로 원래는 드레이크의 것이지만 최근에 내가 돈을 주고 사 왔다.

    나는 ‘신성모독자의 날개’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원래 천공섬에서만 드랍되는 이 아이템은 아주 가끔씩 지상에서도 가챠로 얻을 수 있다.

    내가 천공섬을 당초 계획보다 일찍 떨어트렸기에 이제 지상에서 이 아이템을 찾아보기란 정말로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원래는 꽤 잘 드랍되는 아이템인데 말이지.”

    하지만 경매장을 몇 주 동안이나 뒤졌음에도 구한 것은 고작 이 3개뿐.

    물량이 극도로 품귀한 아이템이 되어 버렸다.

    벨럿은 눈앞에 놓인 세 개의 갑옷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미리 말해 두지만 아이템 강화는 신중하게 해야 해, 파괴될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나 같은 숙련공이라 하더라도 말이지.]

    말을 마친 벨럿은 망치를 들고 갑옷에 가져간다.

    그때.

    “잠깐!”

    나는 벨럿의 망치를 막아섰다.

    그리고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네 강화 작업을 도와줄 조수가 하나 있어.”

    [……조수?]

    벨럿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내 품에서 뛰쳐나와 벨럿의 망치를 향해 손을 뻗는 녀석이 하나 있었다.

    [뿌앵쓰!]

    우리의 금손둥이 쥬딜로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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