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64화 (564/1,000)
  • 564화 날개를 달아 줘요 (1)

    차규엽의 몰락 이후 사 주가 지났다.

    레드문은 김한선 이사의 진두지휘 아래 천천히 주가를 회복해 나가고 있었고 차규엽 게이트라고 불렸던 빅이슈는 어느덧 약간은 시들해졌다.

    그리고 그동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궈 놓은 새로운 빅이슈가 있었다.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

    리틀리그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다시 한번 벌이는 이 각축전은 거의 올림픽에 버금가는 수준의 인지도와 시장 규모를 가지고 있다.

    빅리그 개막 직전, 정확히 12시간 전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방송사들은 분주해졌다.

    곧 있을 빅리그 중계 이전에 경기 결과 예측, 타국 선수 엔트리 분석 등을 방송으로 미리 내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이번 시즌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빅리그 사전 방송은 공중파 3사의 것이 아니었다.

    LGB게임전문방송국.

    여기서 하는 ‘홍영화의 뉴스룸’이 현재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고 있는 사전경기예측방송이었다.

    위이잉-

    이윽고, 서울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 있는 대형 스크린에 홍영화의 모습이 잡힌다.

    뉴스 데스크에 단정한 복장으로 앉아있던 홍영화는 카메라가 켜지자 시청자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해 보였다.

    과거 방송국에서 하꼬 PD로 혹사당할 때와는 사뭇 달라진 위상이다.

    “안녕하세요. 아챔 빅리그 사전방송의 홍영화입니다.”

    동그랗고 큰 눈에 적당한 볼살, 가만히 있어도 웃고 있는 듯한 반달 눈 때문에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

    그런 홍영화의 옆에는 한 명의 사내가 나와 있었다.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하고 있는 중년 남자, 시청자들에게는 어쩌면 목소리가 더 익숙할지도 모르는.

    바로 전용진 캐스터였다.

    “네, 안녕하세요. 이번 아챔 빅리그의 중계를 맡게 된 전용진입니다.”

    “아휴, 안녕하세요. 리틀리그 때보다 신수가 완전 훤해지셨어요.”

    “아, 오늘 포마드를 좀 발랐더니. 하하하!”

    전용진과 홍영화는 서로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이내 둘은 빅리그에 대한 사소한 정보들을 시작으로 토크를 시작했다.

    “와아~ 이번에 한국에서 개최되게 된 아챔 빅리그의 시장 규모가 자그마치 10조 원 이상이라지요?”

    “네, 맞습니다! 2002년, 4강 신화를 이뤄 냈던 한일월드컵의 시장 규모가 6조 3,257억 원이었던을 감안하면 정말 엄청난 규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큰 대회가 한국에서 유치된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죠!”

    “네, 정말 그렇겠어요. 빅리그로 인한 고용 효과가 무려 45만 명에 이른다니 그 부가가치들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미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여행을 즐기고 있다고 들었는데 부디 좋은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네요.”

    확실히 이번에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의 유치권을 한국이 가져가게 된 것은 여러모로 호재였다.

    현재 뎀 산업은 단순한 여가선용 수단이 아니라 국가 경제의 메인 성장동력 산업이 되었다.

    그것은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같은 흐름이다.

    수많은 외국 투자 자본들이 몰려들었고 관광 수입 또한 이에 못지않았다.

    건설, 건축, 서비스 부문에서의 생산 유발효과, 고용 유발효과, 부가가치 유발효과 역시도 큰 흑자 요인 중 하나였다.

    전용진은 웃는 얼굴로 데이터들을 읽어 내렸다.

    “……그래서 향후 5년간 세계 장점유율이 매년 0.05%P 이상 씩 상승할 전망이라고 하는군요.”

    “네. 데이터 분석 결과 잘 들었습니다. 이제는 선수들의 요모조모를 한번 알아볼까요?”

    “좋죠. 여기에 여론 조사 결과와 전문가들의 평가들이 기입된 선수 종합 능력치평가서가 준비되어 있는데요. 12시간 뒤 빅리그에서 당당히 한국을 대표해 줄 선수들의 특징들을 다섯 가지 분류로 나누어 평가한 항목입니다.”

    “오오? 다섯 가지나요? 어떤 항목들이 있나요?”

    “네. 종족값, 결정력, 내구력, 선공 제압능력, 그리고 서포트 능력으로 구분된 데이터값입니다. 함께 보실까요?”

    전용진이 손을 뻗자 그와 홍영화 사이에 벤 다이어그램과 그래프들이 쭉 뜨기 시작했다.

    홍영화가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네. 종족값이란 인간, 오크, 리자드맨 등 종족별로 다른 스탯 수치들을 종합한 결과인데요. 현재 한국 대표팀인 ‘닳고닳은 뉴비’ 팀 멤버들은 주 종족이 오크인 투신 마태강 선수를 제외하면 전원이 인간 종족으로서 종족치들이 다른 랭커들에 비해 그리 높지는 않은 편입니다.”

    “하지만 이 종족치의 부족함을 채워 줄 어나더 스탯이 바로 ‘특성’ 인데요. ‘닳고닳은 뉴비’ 팀 멤버들은 스탯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 부분을 특성치로 커버하는 편입니다. 가령 궁수인 드레이크 선수의 연사 피지컬이 리자드맨 궁수 유저나 오크 궁수 유저에 비해 아주 약간 떨어지더라도 자동 화살 회수나 관통, 더블샷 등의 특성으로 그 부족한 부분을 메꾸는 것이 사례이지요.”

    “다음은 결정력 항목입니다. 뎀 경기에서의 결정력이란 단순히 특성과 스탯뿐만이 아닌, 선수 개개인의 고유 기술이나 상성, 아이템 등과의 상호작용을 포함한 개념을 뜻합니다. 기술폭이 넓거나 약점을 찌르는 속성이 많거나 지속기의 일관성이 좋은 것도 포함되죠.”

    “공격 상성의 일관성을 확보한 뒤 초월적인 뉴트럴 데미지를 투사하는 투신 마태강 선수가 일반적이지요. 범용성 높은 카운터를 위시한 유세희 선수도 꽤나 결정력이 좋은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 다음은 내구력 항목이죠? 속성 상성을 포함하여 얼마나 방어력과 체력이 높은지를 따지는 항목입니다. 현재 한국 대표팀의 가장 큰 약점으로 알려진 이 항목이 이번 경기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아, 맞습니다. 현재 ‘닳고닳은 뉴비’ 팀에는 이렇다 할 만한 탱커가 없습니다. 사실 마동왕 선수 같은 경우는 결정력과 내구력의 밸런스를 붕괴시키는 주범이다 보니 언급하기가 조금 미묘한 면이 있죠.”

    그러자, 전용진의 말을 들은 홍영화의 눈빛이 갑자기 바뀌었다.

    “맞습니다. 제가 또 마동왕 선수 광팬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잘 알아요, 헤헤.”

    “오호? 그렇다면 마동왕 선수의 내구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먼저 캐스터님이 말씀 주신 내용에는 십분 공감하는 바입니다. 마동왕 선수만큼 결정력과 내구력의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선수가 또 없죠. 굳이 그에 필적할 만한 게이머를 한 사람 뽑자면 아마추어 랭킹에서 군림하고 있는 ‘고인물’ 씨 정도가 있으려나 싶네요.”

    홍영화는 기침을 하는 척 하며 잠시 스크린에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윽고, 표정 관리를 한 홍영화는 다시 침착하게 멘트를 이어나갔다.

    “냉정히 말하자면, 마동왕 선수는 분명 강력한 결정력을 지녔지만 내구력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자신을 증명한 바 없는 선수입니다. 사실 플레이 하시는 스타일을 보면 앞으로도 쭉 증명할 계획이 없는 것 같지만요.”

    “하하, 그렇죠. 마동왕 선수는 사람이 참 뚝심이 있어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이 점을 노리고 있는 다른 세계 정상 급 적수들이 많다는 것이 최대 변수입니다.”

    “그렇다면 마동왕 선수가 취해야 할 전략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일단은 마동왕 선수가 내구도 관련 종족치나 특성치가 막 높은 선수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다반감의 방어 상성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와서 깡 내구도나 체력을 올리는 아이템을 장비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요.”

    “아니면 맵의 지형이나 기후 변화에 초점을 맞추어 방어 상성을 일정 부분 극복할 수도 있겠군요.”

    “네. 그것도 한 방법이죠.”

    전용진과 홍영화는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둘 다 마동왕이라는 선수를 빠삭하게 알기에 지을 수 있는 웃음이다.

    전용진이 멘트를 잇는다.

    “네. 다음은 선공 제압능력과 서포트 능력입니다. 이쪽 부문은 어떤가요?”

    “먼저 선공 제압능력입니다. 이는 경기 시 선제공격으로 승기를 잡는 능력을 뜻하는데요. 농구에서 경기 시작 시 볼을 선점유하는 느낌이라고 보시면 되겠네요.”

    “하하하, 그 왜. 선빵필승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선빵은 진리죠.”

    “맞습니다. 하지만 이 선공 제압능력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스피드’ 뿐만이 아니죠. 속도가 조금 느리다고 해도 함정기술, 매복기술 등을 얼마나 자유롭게 부리느냐도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현재 ‘닳고닳은 뉴비’ 팀에서 선공 제압능력이 독보적으로 뛰어난 선수는 역시 유세희 선수겠죠?”

    “그렇다면 서포트 부문에서는 아무래도……?”

    “두말할 것도 없이 윤솔 선수죠. 대격변 이전의 프로리그에서 마동왕 선수가 발견한 힐 밀어 주기 전략 덕분에 전 세계 프로리그의 모든 구단이 꼭꼭 힐러 한 명을 채워서 데려가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힐러가 자신에게 힐을 걸고 재빨리 뒤로 물러난 상황에서 다른 선수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 그 선수에게 힐이 들어가는 물리엔진 오류죠. 개발사 측에서도 이는 버그가 아니라 힐 마법의 마나 가루들이 허공에서 뒤늦게 하강하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했으니 윤솔 선수는 꼭 배그옵 경기가 아니더라도 팀 내에 필수적인 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윤솔의 이야기를 꺼낸 전용진의 표정은 약간은 아리송한 표정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윤솔 선수의 발탁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어떤?”

    “으음. 윤솔 선수가 데뷔한 이래 아직까지 다른 멤버들에 비해 공식 선상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 주었던 적이 별로 없으니까요.”

    전용진은 여론조사 결과와 도표를 들어 보였다.

    “마동왕 선수의 전적이야 뭐 두말할 것도 없고. 투신 마태강 선수는 줄곧 상위 랭킹을 유지해 왔고 예전에 국가대표 선발전 때도 우수한 기량을 보여 줬었죠. 드레이크 선수는 매 경기 시 꾸준한 딜 미터기 수치로 자신의 기량을 입증했고 유세희 선수 역시도 국가대표 선발전 때 폭발적인 잠재력을 보여 줬었습니다. 하지만 윤솔 선수는 아직까지는 서포터로서 큰 활약을 보인 적이 없기에 어쩌면 이번 경기에서 확실한 무언가를 팬들에게 보여 줄 필요가 좀 있을 것 같네요.”

    전용진과 홍영화는 수없이 오는 문자 메시지 의견들을 곁눈질로 살펴보며 멘트를 이어 나갔다.

    이윽고 그들의 대화 주제는 곧이어 한국과 맞붙게 될 대만 선수들에 관한 정보로 흘러갔다.

    한국 VS 대만.

    러시아 VS 우즈베키스탄

    여기서 살아남는 이들이 아시아의 정점에서 왕좌를 놓고 다투게 될 것이다.

    *       *       *

    한편.

    나는 지금 눈이 벌개진 채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12시간 뒤 펼쳐질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 중이냐고?

    ……아니다.

    <경매장>

    내가 보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수많은 게임 아이템들이 올라와 있는 거래소. 나는 며칠 전부터 이곳에 상주하며 한 아이템 하나를 찾고 있었다.

    옆에 있던 마태강이 그런 내게 물었다.

    “형님. 경기 예측 방송 안 보세요?”

    “응. 안 봐도 돼. 이미 분석 끝냈으니까.”

    “역시 대단하십니다.”

    마태강이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는 씩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사실 지금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번 경기에서 윤솔이 쓸 아이템을 구하는 것이었다.

    “……솔이의 자격 논란을 잠재울 필요가 있긴 있지.”

    나 역시도 전용진과 홍영화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현재까지 윤솔이 자신의 기량을 증명했던 적은 공식적으로 전무했으니까.

    있다면 기껏해야 국가대표 선발전 종료 이후 자체적으로 재생한 대격변 동영상 정도?

    하지만 거기에서도 윤솔의 역할은 딱히 없었다.

    그 뒤로 윤솔이 ‘닳고닳은 뉴비’ 구단에서 무전취식을 한다, 무임승차를 한다 등의 악성 루머들도 꽤나 퍼져 있는 상태.

    고로 나는 이번 빅리그에서 윤솔의 이미지를 완전히 새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이 아이템이 꼭 필요한데 말이야. 도통 매물이 나오지를 않네.”

    한참 동안이나 마우스 스크롤을 드르륵- 드르륵- 내리고 있을 때.

    “어!?”

    나는 드디어 그토록 찾던 매물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신성모독자의 날개> / 갑옷 / A+ / (신성모독)

    윤솔에게 달아 줄 날개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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