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63화 (563/1,000)

563화 폭탄선언 (5)

다음 날.

나는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든 엄청난 뉴스거리의 중심에 서 있게 되었다.

모든 신문과 뉴스에서 차규엽의 충격적인 범죄소식을 보도하고 있었다.

[헤드 헌팅 과정이었을 뿐이지 범죄 의도는 없었습니다!]

차규엽은 되도 않는 소리로 변명했지만 사법부는 그에게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법정 최고형을 때려버렸다.

심지어 검사가 작정하고 구형한 것보다도 훨씬 더 강경한 처벌이었다.

차규엽 건으로 유괴라는 범죄에 대한 법정 최고형의 기준이 훌쩍 높아지기까지 했으니까.

(일명 ‘차규엽 법’이다)

그리고 차규엽과 관련되었던 이들도 하나둘씩 수면 위로 끌려와 법의 철퇴를 맞기 시작했다.

이제는 러시아인이 된 내부고발자 안혁수가 모든 것을 폭로했고 악플 부대에 몸담았던 박철환 역시도 눈치를 보다가 결국 자신의 범죄행각을 실토했다.

그동안 레드문이 협회에 어떤 불법적인 부당개입을 했는지,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어떤 악행을 자행했는지가 만천하에 까발려졌다.

안혁수는 마동섭에 대해 모든 것을 폭로했고 그렇게 해서 엮여온 마동섭은 차규엽에 대한 모든 것을 폭로했다.

굵직한 범죄조직들은 레드문을 손절하기 시작했고 레드문은 차규엽을 손절했다.

검찰, 경찰들은 꼬리자르기를 할 수 없게끔 작정하고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차규엽은 이날부로 완전히 몰락했다.

그가 스폰하던 구단 ‘바스터즈’가 쪼개져 소멸한 것은 물론이다.

한편.

“와아, 이건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데?”

나는 신문을 보며 차규엽의 몰락에 감탄하고 있었다.

회귀하기 전, 차규엽은 구속되기는 했으나 거의 처벌을 받지 않았다.

성폭행, 납치, 청부살인, 탈세, 배임, 횡령, 직권남용, 부정청탁 등등 온갖 더러운 범죄를 죄다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보석으로 석방되어 잘 먹고 잘 살았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다르다.

‘유괴’라는 범죄가 추가된 것뿐이지만 그는 완전히 파멸했다.

이것은 비단 유괴라는 범죄가 가진 심각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띠링!

나는 핸드폰으로 문자 한 통을 받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하룻밤 재워 줬던 빚은 갚은 거죠? -이은비->

누가 보면 오해할 만한 내용이었기에 잠시 주위를 살펴야 했다.

동시에, 나는 머릿속으로 오래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예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국대선발전 당시, 나는 차규엽의 방해공작에 당해서 고생하고 있었던 팀 엘리트즈를 도와줬던 바 있다.

이금비, 이은비, 이동비, 이준호, 류요원과 김철현 감독을 내 건물로 데려와 경기 전 편안한 1박을 제공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팀의 핵심 에이스였던 이은비가 내게 말했었다.

‘우리를 방해한 세력에 대해 뭔가 알고 계시는 눈치시던데. 혹시 말해 주실 수는 없나요?’

‘……흠. 그건 왜요?’

‘저희도 협회 쪽에 라인 댈 능력 되거든요. 할아버지께서 사회적으로 좀 고위직에 계셔서. 이렇게 그쪽에게 신세만 질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렇다.

금비, 은비, 동비. 세 자매의 외조부가 정계에서 엄청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애초에 회귀하기 전 원래 세상에서 금은동 자매는 게임계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초반 랭킹에서 잠시 반짝하다가 각자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에 합격해 다른 길을 갔던 사람들.

그리고 애초에 그녀들의 집안 자체도 굉장히 빵빵하다고 알고 있었다.

‘……역시 미래가 바뀌니 여러 변수들이.’

그 변수들이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점을 어렴풋하게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위기의 순간 날개를 달아 줄 줄은 몰랐다.

뭐, 아무튼.

금은동 자매의 외조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준 덕분에 차규엽은 절대로 피해 갈 수 없는 법의 그물망에 걸려 징역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나이도 꽤 있는 노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 교도소 안에서 수명을 다할 확률이 크다.

“이제 평생 볼 일 없겠지.”

이 점은 확신할 수 있었다.

펄럭-

나는 다시 신문을 펼쳤다.

<차씨 曰 “어린아이를 강제로 납치했지만 유괴는 아니다?”>

<차규엽 게이트 일파만파!? 경,검,정 배후인물 다 밝혀지나!?>

<레드문 주가 폭락! 대주주들 심기불편!?>

<연이은 주가파동, 안정화 언제 되나?>

.

.

지금 레드문의 주가는 계속해서 완만하게 하락 중이다.

아마 이사회에서 자구책을 발표하기 전까지는 며칠 동안 계속 떨어지겠지.

그리고 바로 지금이 이 주식을 살 때다.

레드문은 거대 우량기업이기 때문에 차규엽 정도의 곪은 살을 도려낸다고 해서 무너지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모아둔 모든 현금들을 이용해 레드문의 주식을 풀매수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나는 예전에 미리 계획해두었던 대로 4%의 주식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단신으로 4%, 어지간한 이사 급보다도 많은 주식량이다.

거기에 나는 주변인들에게도 레드문 주식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앞으로 100% 상승할 기대주이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신뢰도가 굳건한 이들은 모두 레드문 주식을 매수했다.

엄재영 감독, 니아 멤버들, 윤솔, 드레이크, 마태강, 유다희, 유창희, 홍영화, 아키사다 아야카, 그리고 심지어 큰아버지까지!

내 주변 인물들이야 뭐 내 말 한마디면 바로 주식을 풀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점유율까지도 내 몫으로 계산하면 내가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는 주식의 총량은 근 5%에 육박한다.

-띠링!

내가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모니터 화면에 메일이 왔다는 알림이 뜬다.

“어? 얘가 웬일이지.”

메일을 보낸 이는 바로 이연호였다.

‘천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실력파 프로게이머, 마태강과 더불어 재능 면에서는 국내 넘버원 수준이다.

나는 메일을 읽어 보고는 무릎을 탁 쳤다.

<마동왕 형님. 잘 지내고 계시죠? 이번 차규엽 게이트 사건으로 팀 바스터즈가 공중분해 되어 제 계약도 풀렸습니다. 예전 국가대표 선발전 때의 실수 때문에 방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던 터라 계약금 반환 문제로 마음이 심란했었는데 이번 게이트 사건으로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그렇다. 차규엽이 가 버렸고 바스터즈도 가 버렸으니 이제 부당하게 묶여 있던 이연호도 자유의 몸이 되었다.

한 곳에 종속되어 있는 선수에게 있어 계약이 풀려 이적시장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이제 녀석은 자기에게 더 잘 맞는 구단을 찾아 더 좋은 조건으로 이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바로 답장했다.

<ㅋㅋㅋ우리 구단으로 올래?>

보내면서도 녀석이 올 것이라는 기대는 딱히 들지 않는다.

그냥 혹시나 해서 던져 보는 농담이다.

나는 메일을 보낸 뒤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그때.

위이이잉-

핸드폰이 울린다. 이번에는 전화였다.

화면에는 유다희의 이름이 떠 있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니 핸드폰 너머로 유다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마왕님, 쉬고 계셨나요?]

“어어, 이제 막?”

[아앗! 제가 방해를… 용건만 빨리 말해드릴게요!]

“아냐, 천천히 얘기해. 무슨 일인데?”

내가 묻자 유다희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경찰에서 용감한 시민상을 줄 테니 한번 출석하라고 하더라구요.]

“아하, 난 또 뭐라고.”

나는 피식 웃었다.

나와 유다희는 언제쯤 상을 받으러 갈 것인지에 대해 일정을 맞추느라 잠시 토의를 했다.

그리고 결국 다다음주 평일 중에 한번 방문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이내 통화를 마무리하기 직전.

[아, 마왕님. 저 뭐 하나만 여쭤 봐도 될까요?]

유다희가 한 번 더 예상 밖의 멘트를 했다.

[그, 차규엽 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어요. 너무 정황이 없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등 다치신 것은 좀 어떠세요?]

“아냐, 당연한 일을 한 건데 뭐. 등도 괜찮아.”

[다행이네요. 저, 음…….]

“뭔데 그래?”

내가 묻자 유다희는 한참을 뜸들인 끝에 입을 열었다.

[그, 차규엽하고 싸울 때요. 제가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때. 그때 말씀하셨었잖아요?]

“응? 내가 뭐라고 했었지?”

[음. 살인자들의 탑 때를 생각해 보라고.]

아차,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살인자들의 탑에서 유다희를 만나 함께했을 때는 고인물 모드였다.

마동왕인 내가 그때의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은 좀 이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짐짓 태연하게 변명했다.

“아아, 그거. 고인물 녀석에게 들었거든.”

[…네?]

내 말이 뜻밖이었는지 유다희는 약간 놀란 눈치였다.

나는 말을 이었다.

“고인물이 차규엽에게 현상금 걸었다는 사실은 들었지?”

[…네.]

“그 녀석도 네 걱정 많이 했었어, 어떻게든 돕고 싶다고. 나를 찾아와서 부탁까지 했었지.”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한데?

내 말을 들은 유다희는 뭔가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다.

[그, 그랬군요. 그 녀석이…….]

이내 그녀는 더듬더듬 목소리를 낸다.

[아니, 정 걱정이 되면 직접 찾아오든가 할 일이지, 아니! 아니지! 그 변태가 왜 저를 찾아오겠어요! 그냥 방송으로라도 후기를 말하든가, 걱정을 했으면 했다고 말을 해야… 아니 진짜 뭐냐고, 말도 없이 현상금이나 걸고, 그리고 그게 보통 액수냐고요! 괜히 사람 미안하게… 헉!?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아무튼 밤늦게 죄송했어요, 마왕님. 이제 쉬셔요!]

그러더니 뭔가 정신없는 와중에 통화를 종료했다.

저 횡설수설 우물쭈물의 뒤에 숨어 있는 말은 아무래도 ‘고맙다’ 이리라.

*       *       *

다음 날.

나는 차를 몰고 판교로 향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역로 3021-91번 건물.

레드문 본사가 내 앞에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며 서 있다.

내가 안내를 받아 66층에 있는 이사실에 도착했을 때, 나는 꽤나 낯익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김한선 이사.

차규엽의 뒤를 이어 몇 가지 핵심 프로젝트를 발촉, 성공시켜 훗날 레드문의 정점에 오르게 될 남자.

나중에 정계에서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미국에 있는 뎀 본사로 가게 되는 입지전적의 한국인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아직 야망만을 품고 있는 40대의 젊은 피이다.

김한선 이사는 나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엄재영 형님에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나는 단촐한 인테리어로 되어있는 그의 이사실에 앉아 한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나눈 이야기는 차규엽이 벌인 일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또 내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량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 역시도 김한선 이사와 접점을 만들어 둬서 전혀 나쁠 게 없는 일이다.

다만,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는 마동왕의 가면과 음성변조기를 벗어 둘 필요가 있었다.

내 정체를 알게 된 김한선 이사는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니, 이건, 으음, 솔직히 정말 충격이군요. 우선 진실을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차피 주식인수증과 주주명부를 보면 밝혀지게 될 일이니까요.”

“그래도 대다수의 일반인들로서는 전혀 알 도리가 없지요.”

김한선 이사는 꽤나 털털한 인물이었다.

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세상에, 대한민국 게임계를 양분하는 두 거물이 사실 동일인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 여파가 어떨지 감도 안 잡힙니다.”

“현재로서는 숨기고 있을 생각입니다.”

“아무렴요.”

나는 이 사실을 김한선 이사에게 알려 주는 대가로 꽤나 많은 정보들을 들을 수 있었다.

우선 가장 큰 장점은 우리 ‘닳고닳은 뉴비’ 구단이 정식으로 한국의 뎀 협회에 소속되게 되었다는 점이리라.

“협회는 새로 탈바꿈할 겁니다. 차규엽과 그 끄나풀들이 완전히 사라졌으니 믿으셔도 좋습니다.”

김한선 이사는 엄재영 감독의 의동생이기도 하니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나와 그는 한동안 한국 게임계의 전망과 발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미래 지식을 적당히 차용하여 미래를 너무 바꾸지 않을 정도로만 의견을 주었고 김한선 이사는 내 식견과 안목에 크게 감탄했다.

김한선 이사 또한 난 인물이기에 내 조언을 쏙쏙 잘 흡수하는 것도 있었다.

정신없이 게임에 대해 떠들다 보니 5시간 정도가 훌쩍 지나갔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저녁이라도 드시고 가시지…….”

내가 겉옷을 챙기자 김한선 이사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내 뒷모습을 향해 묻는다.

“그럼 이제 바로 집으로 가시는 건가요?”

“집에 가다뇨. 사람은 큰 물에서 놀아아죠.”

“…네?”

김한선 이사는 내 동문서답에 의아한 기색이다.

나는 그런 김한선 이사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빅리그로 갑니다.”

리틀리그의 최후 생존자들이 모여 벌이는 최종 결전지.

이제 아시아의 정점에 군림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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