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61화 (561/1,000)

561화 폭탄선언 (3)

다음 날. 아니, 방송으로부터 불과 몇 시간 뒤.

마동왕의 경기 불참 선언은 공중파 3사를 필두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당연히 개인방송, 특히나 게임계에 몸담고 있는 수많은 스트리머들에게도 이것은 큰 문제였다.

수많은 이들이 방송을 켜면 이 화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바쁘다.

비단 게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커뮤니티 역시도 공통 화제로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뭔 일이냐;;;납치라니;;;;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 맞음?

-않되!!! 마동왕 리그 불참이라니!!!그거 보는 게 내가 살아갈 이유라고!!

-이럴게 아니라 유세희 선수 찾는 거 동참해야겠다, 봉사활동 나가야지ㅠㅠ

-아...나는 직장인이라...그냥 성금만 보내야겠다

-마동왕 빅리그 보내기 위원회 참가서명(1/999999999999)

-마왕님 제발 리그 참가해주세요!

-유세희 선수 납치해간 놈들은 진짜 찢어 죽여야 한다

-국가는 뭐하냐 유세희 안 찾고ㅡㅡ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경찰에 유세희 선수 납치사건 관련해서 민원만 계속 넣는 중

-이번에 ‘그것이 궁금하다’에서 레드문 게이트 수사하면서 유세희 선수 유괴사건도 다룬대요!

.

.

여론들이 뜨겁다.

홍영화의 라디오는 그 날 시청률이 1,000% 이상 치솟았고 공중파, 지상파, 케이블을 가리지 않는 수많은 기사들의 성지가 되었다.

납치된 유세희,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불참을 선언한 마동왕.

그리고 이 둘을 잇는 또 하나의 빅이슈가 있었다.

[마동왕 선수가 경기에 불참하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그리고 유세희 양은 저와도 약간의 친분이 있지요. 유세희 양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 정보들을 제보해 주십시오. 결정적인 제보를 해 주신 분께는 사례금 10억 원을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한 명에게만 드리는 것 아닙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고인물’의 폭탄선언!

아마추어계의 정신적 지주이자 모든 게임 스트리머들의 우상인 그가 현상금을 내걸었다.

그 액수는 자그마치 10억!

만약 범인이 여러 명이라면 한 명쯤은 딴 생각을 품을 법한 엄청난 액수이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수사에 나설 수 없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 개인적으로 유세희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모금운동 비슷한, 약간은 기묘한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세희의 신변에 걸린 현상금은 거의 100억에 육박하게 되었다.

유세희의 팬클럽 역시도 ‘마빅보’와 연합하여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유세희 납치사건은 대한민국의 가장 핫한 이슈가 되었다.

공공, 민간을 가리지 않고 수없이 많은 전문가들이 CCTV 화면의 화질을 높이고 프레임 단위로 철저히 분석한다.

심지어 뒷세계에 몸담았던 이들까지 우르르 나서서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었다.

한편,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제보들을 살피고 있었다.

‘예전에도 이런 사례가 있었지.’

먼 과거, 축구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94년 월드컵 직전,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선수인 호마리우도 경기를 앞두고 비슷한 일을 겪었다.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인물인 아버지가 괴한들에게 납치당한 것이다.

호마리우는 아버지가 무사귀환하지 못하면 은퇴를 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그 당시 국민영웅이었던 그의 인기를 고려해 정부, 민간은 물론 다른 갱단들까지 움직여 호마리우의 아버지를 구출하기 위해 움직였다.

결국 이 사태에 놀란 괴한들은 호마리우의 아버지를 풀어 주었고 호마리우는 그 해 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비슷한 사례는 1987년에도 있었다.

한국 최초의 팝페라 가수 김홍희는 어느 날 딸을 유괴한 유괴범들로부터 현재 통화가치 기준으로 230억이라는 엄청난 액수를 내놓으라는 협박을 받는다.

유괴범들은 딸의 머리카락이나 사진을 보내며 김홍희를 협박했지만 김홍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납치범들의 목에 460억이라는 현상금을 내걸었다.

결국 유괴범들은 자기들끼리 내분을 일으킨 끝에 자멸했고 딸은 무사히 구출되었다.

“…….”

나는 실시간으로 방영되고 있는 뉴스들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차규엽, 그놈의 성격 상 극한까지 위험한 짓은 벌이지 않을 게 분명하고……. 일단 위치만 특정할 수 있으면…….”

그리고 그런 내 옆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자가 하나 있었다.

유다희. 그녀는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보고 있다.

하지만 파르르 떨리는 팔과 다리,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막내동생을 아끼는지, 지금 얼마나 심적으로 동요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유다희의 어깨를 손으로 꽉 짚어 주었다.

그러자 유다희는 떠는 것을 멈추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기어들어가듯 말했다.

“경찰청장이 마왕님 열혈팬이라 다행이네요. 전력을 다해 수사하겠다고 하니.”

“으음. 광역수사대도 나섰으니 잘 해결될 거야. 일단 기다려 보자.”

“조폭들 중에서도 자체 수사에 나선 이들이 많은가 봐요. 범인이 차규엽이라는 증거들이 속속 제보되고 있어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화력이 센 것은 통칭 ‘마빅보’였다.

비영리단체 마빅보는 ‘마동왕 빅리그 보내기 위원회’의 줄임말로 수사 자금, 혹은 현상금으로 쓰라며 엄청난 양의 후원금을 전달해 왔다.

사설 탐정, 각종 흥신소 종사자들로 구성된 테스크포스의 수사력도 상당했다.

납치 차량 번호판 조회, 위치 추적, 동선 역탐지, 관계자들 배수.

나는 오히려 경찰보다 빨리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연락을 준 쪽은 차규엽의 전 비서실장이자 유다희의 정보원이었다.

“……차량 이동 경로를 빅 데이터로 예측한 결과, 목적지가 강원도 문막일 가능성이 높다는데?”

강원도 문막이라면 예전에 김정은을 비롯한 매드독 일당들이 근거지로 있던 곳이다.

내가 제보된 정보들을 취합하며 중얼거리자 유다희가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문막! 그쪽에 차규엽의 별장이 있어요!”

*       *       *

나는 경찰에 연락하는 동시에 바로 차를 몰아 문막으로 밟았다.

유다희는 조수석에서 길을 안내한다.

“예전에 차규엽이 양아치 시절 때 수배령 피해서 숨곤 하던 펜션이 이쪽에 있어요. 최근까지도 종종 사용한 정황이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왜 여기 생각을 못 했을까, 바보같이!”

나는 가파른 비탈길을 타고 나무와 황무지 밖에 없는 산길로 들어갔다.

이내 비수기를 맞아 텅 빈 펜션촌이 눈에 들어온다.

습하고 싸늘한 대기, 키 낮은 울타리, 말라죽은 관목, 깨끗하지만 황량한 도로.

옅게 낀 물안개 사이로 불 꺼진 펜션들이 으스스하게 늘어져 있다.

그 모습은 마치 침묵에 수몰된 유령 마을을 보는 것 같았다.

…드르륵! …드르륵! …우지지직!

차 바퀴가 자갈 밟는 소리.

차창에 점점 뿌연 성애가 차올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젠장, 뭐가 보여야 말이지.”

나는 와이퍼를 작동시킴과 동시에 상향등을 켜 안개 너머를 비추어 보았다.

그때.

“엇!?”

유다희가 손가락을 뻗었다.

가장 외진 곳에 있는 펜션 주차장에 검은 벤 두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저거다! CCTV 속 번호판이랑 번호도 똑같아요. 놈들이에요!”

유다희가 숨을 죽여 말했다.

나는 천천히 차를 몰아 두 대의 벤으로 접근했다.

이제 차를 멈추고 유리창을 내려 밖을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때.

쩡!

요란한 굉음과 함께 내 시야가 갈라졌다.

무언가가 날아와 앞유리를 깨트린 것이다.

다행이 유리창은 완전히 박살나지 않고 무수히 많은 균열만 간 채로 멈췄다.

“……벽돌?”

나는 보닛 위로 굴러 떨어지는 묵직한 물건을 보며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파삭! 우드득! 와드드득!

가죽장갑을 낀 큰 손바닥 하나가 금 간 차 유리를 부수고 들어온다.

…덥썩!

그 손은 내 멱살을 잡고는 유리창 밖으로 빼내려 했다.

나는 저항하려 했지만 상대방의 손이 너무 억세서 뿌리칠 수가 없었다.

창 밖에서 낄낄 웃는 남자 목소리들이 몇 개 들려왔다.

“이 새끼 마동왕이네? 너 잘 걸렸다.”

“뭐? 뭐가 여기까지 기어들어왔나 했더니만.”

“큰형님이 좋아하시겠네!”

“빨리 끌어내! 이참에 가면 벗기고 맨얼굴이나 좀 보자.”

차규엽의 똘마니들이다.

나름대로 가려 뽑은 정예들이기에 내 힘으로 저항은 역부족이었다.

그때.

…턱! 꾸우욱!

내 멱살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는 손의 손목을 턱 잡는 손이 하나 더.

“오랜만이다?”

유다희. 조수석에 있던 그녀가 내 쪽으로 상체를 바짝 붙인 채 차 유리 밖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똘마니들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헉!? 누, 누님!?”

“야이 씨, 누님은 무슨!”

“이년도 같이 잡아 가자!”

“그, 그보다 내 손목 좀! 부서지겠어!”

…꾸드득!

유다희가 손목을 부러트릴 듯 잡고 찍어 누르자 똘마니들 중 하나가 괴로운 비명을 내지른다.

그러자 나머지 덩치 세 명이 동료의 몸을 잡고 당기기 시작했다.

화악!

결국 차 안으로 들어왔던 손은 도로 밖으로 빠져나갔다.

똘마니 넷이 유다희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미친 년. 네가 옛날처럼 뭐 보스 대접 받을 줄 알았냐?”

“흐흐흐, 항상 그 예쁜 낯짝을 구겨 보고 싶었어.”

“남자 넷을 상대로 뭐 어쩌겠다고?”

“이 참에 큰형님한테 대가리 박고 빌게 해 주마.”

차규엽의 똘마니들은 유다희를 향해 음흉한 웃음을 지은 채 조수석 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그 셋의 얼굴에서 핏기를 싸악 빼는 소리가 들려온다.

…덜컥!

그것은 유다희가 있는 조수석 뒤, 뒷좌석의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이야, 여기서 또 보네 친구들.”

한때 그들의 ‘어린 형님’이었던 남자.

유창이 차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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