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60화 (560/1,000)
  • 560화 폭탄선언 (2)

    [마왕님! 크, 큰일났어요. 어떻게 해요!?]

    흐느끼듯 전화를 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회귀 전이나 후나 그녀가 우는 것은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이내 유다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대답했다.

    [……세희가 사라졌어요!]

    나는 황급히 TV로 시선을 돌렸다.

    예능 프로그램 속 유세희는 편안한 표정으로 웃고 있다.

    하지만 지금 현실에서 유세희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나도 몰랐다.

    “그게 무슨 소리야? 침착하게 말해 봐.”

    내가 소리를 낮추며 묻자 유다희는 히끅거리는 소리로 대답했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나오는 도중에 세희가 사라졌어요. CCTV를 돌려보니 정장 입은 남자들이 차에 태워서 데려가는 모습이 살짝 찍혔고요.]

    나는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차규엽뿐이다.

    놈이 궁지에 몰리자 양아치 근성을 드러낸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애를 상대로…….’

    저절로 이가 갈린다.

    “경찰에는 연락했어?”

    [그럼요. 창이가 지금 바로 신고하러 갔어요. 저는 병원에서 바로 전화드리는 거예요. 저 어떻게 하죠?]

    “일단 내가 지금 그리로 갈게. 기다려.”

    나는 전화를 끊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차규엽, 끝까지 치졸하게 나온다 이거지?’

    아마 놈은 유세희의 병력을 조회해서 병원 위치를 특정했을 것이다.

    철저한 경호와 보안을 통해 유다희 남매의 주거지는 가렸지만 유세희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병원 보안에서 실수를 저질렀다.

    ‘내일 아침까지 반드시 찾아온다.’

    긴급하고 비극적인 상황이지만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유다희에게 문자를 남기고는 바로 밖으로 뛰어나갔다.

    동시에, 나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밝은 목소리가 내 전화를 받는다.

    [얍얍, 마동왕 님 오랜만이에요!]

    그녀는 바로 LGB 방송국의 PD인 홍영화였다.

    나는 바로 용건을 꺼냈다.

    “지금 라디오 생방송 진행하나요?”

    홍영화는 매주 화요일, 금요일마다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하는데 꽤나 시청률이 좋은 편이었다.

    특히나 오늘은 불타는 금요일 특집이기에 평소보다 시청률이 더 많이 나올 때이다.

    [네네, 30분 뒤에 시작이지요!]

    “급하게 말씀드려서 죄송한데, 오늘 방송에 저 깜짝 게스트로 출연 가능한가요?”

    [네에-!?]

    홍영화는 깜짝 놀라 허둥거린다.

    몇 초간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쿨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동왕 님이 나와 주신다면 너무 감사하죠! 오늘 콘텐츠는 담주로 미루면 되니까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나는 거두절미하고 바로 오더를 내렸다.

    “지금 기자들 아시는 분 있으면 싹 다 모아 주세요. 공중파나 지상파 가리지 말고요. 그리고 방송 전에 어그로도 잔뜩 끌어 주시고요.”

    [……네?]

    홍영화가 당황하는 것이 핸드폰 너머로도 느껴진다.

    나는 그런 홍영화에게 단단히 다짐을 두었다.

    “제가 시청률 대박 나게 해 드릴게요.”

    *       *       *

    권용형,

    그는 지금 상당히 들뜬 상태였다.

    오늘이 자신의 환갑잔치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잔치는 단순한 환갑 잔치가 아니었다.

    권용형은 대한민국 최대의 폭력 조직 ‘밟은레고파’의 보스였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전(前) 보스.

    그도 그럴 것이, ‘밟은레고파’는 정확히 10년 전 해산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떳떳하게 양지에서 살자. 저지른 과오들을 뉘우치고 반성하면서.’

    권용형은 수많은 조직원들을 전부 범죄에서 손을 떼게 만들었고 그 길로 조직을 해산했다.

    그리고 그들은 약간은 의외로 대부분 게임의 길로 빠졌다.

    습관과 버릇이 된 폭력 욕구를 게임을 통해 건전하게 해결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저는 자수하고 형 다 산 다음에 틈틈이 봉사활동 다니고 있습니다. 형님은 요즘 어떤 일 하십니까?”

    “음. 나도 자수하고 출소한 뒤로는 낚시랑 게임만 하는 것 같어. 허허, 그래도 말년에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다행이야. 아무에게도 피해 안 주고 혼자 할 수 있잖냐.”

    “후후 형님. 저는 낚시도 게임 안에서 합니다. 조만간 함께 출조 가시렵니까?”

    그리고 지금, 그들은 옛 보스의 환갑잔치에 모여 식사를 즐기고 있다.

    권용형은 고개를 들어 조직원들에게 고했다.

    “요즘 레드문, 그 상도덕 없는 새끼들이 이 바닥 꽉 잡고 있다고 들었다. 건방진 후배 놈들 패악질 보면서도 참느라 고생들 많아. 그리고 너희들 다 왕년에 한가락 하던 녀석들이라 여기저기서 유혹이 많을 줄로들 아는데, 그래도 꿋꿋하게 나쁜 길로 빠지지 말자. 기껏 씻은 손들 아니냐?”

    “예!”

    밑에 있는 250명의 조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이윽고, 권용형은 식사를 마친 뒤 핸드폰을 들었다.

    “자식들. 덕분에 잘 먹었다, 이놈들아.”

    “…식……앗!”

    군대에서는 항상 마지막 번호를 외치는 사람이 있다.

    권용형의 환갑잔치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그 옛날 조직 생활 시절의 습관대로 ‘식사 잘하셨습니까, 행님’의 첫 글자가 나오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뭐? 식? 뭐라고?”

    “아직 지가 건달인 줄 아나 본데.”

    “하~ 놔. 신성하고 건전한 큰행님 환갑잔치에서 뭐하는 짓이냐?”

    “이런 나쁜 아이를 보았나.”

    “선후배 여러분, 우리 모두 저 친구를 잡아서 치료해 보아요.”

    본성을 숨기고 살던 평소답지 않게 점점 말이 거칠어지자 권용형이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시켰다.

    “워워, 지금 뭐하는 거냐, 좋은 날에! 오랜만에 만나니 그때 생각이 났던 것이겠지 그걸 못 참아 주겠냐? 요런 몹쓸 놈들…….”

    권용형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옛 조직원에게 다가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그의 머리통을 어루만졌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긴장 풀어라.”

    그리곤 뒤를 돌아 회장에 있는 조직원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자자! 그러면 식사 여기서 마치는 것으로 하고! 식후 멘트는 각자 알아서 지껄이도록!”

    “옙, 형님!”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권용형도 자리로 돌아가 두 손을 모아 조용히 읊조렸다.

    “……아멘.”

    그러자 전직 보스의 뒤를 이어 각자의 간증이 이어진다.

    “아멘.”

    “…아멘, too!”

    “나무아미타불.”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신이시여…….”

    “알라.”

    “손나…바카나…….”

    권용형은 그런 부하들의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처음 해산 때는 괜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10년이 지나고 보니 부하 조직원들은 그의 걱정과 다르게 올바른 길을 잘 선택한 듯 보였다.

    “좋아, 각자 믿는 바가 투철하구만 그래! 자, 그럼 이제 뭘 할까…. 아 참! 라디오 할 시간이구만! 여기 그 우드 앰프 가져와라. 다 같이 라디오나 듣자고!”

    그는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한다.

    그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도 상당히 일가견이 있는 헤비 게이머였다.

    “바로 연결해드리겠습니다.”

    “흐음~ 오늘 게스트가 누구였더라?”

    “그런데 나올 만한 게스트는 이미 거의 다 나와서…별 기대 안 하시는 게 좋으실 겁니다.”

    권용형의 옛 오른팔이 재빠르게 라디오를 우드 앰프에 연결했다.

    한데?

    이내 홍영화의 라디오 방송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의 깜짝 게스트 마동왕입니다.]

    한국 게임계의 영웅! 마동왕이 라디오에 깜짝 출연했다.

    “오오오오!”

    주변에서 나직한 탄성 소리가 들려온다.

    조직원들 대부분은 게임을 좋아했기에 마동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보스인 권용형 역시도 오늘의 깜짝 게스트가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특별한 이슈도 없는데 깜짝 출연한 건가? 오늘은 여러모로 유익한 방송이 될 것 같군. 게임 팁을 알려 주러 나온 것이면 좋겠는데 말이야. 요새 통 실력이 안 늘어서. 허허허…….”

    하지만, 마동왕의 선언은 모두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늘 저희 구단 선수가 범죄조직에게 납치를 당했습니다.]

    그 말에 파티룸 전체에 싸늘한 분위기가 감돈다.

    아챔의 영웅들. 게임 좀 좋아한다 하는 이들에게 있어 ‘닳고닳은 뉴비’ 구단은 그야말로 신화나 다름없다.

    그런데 설마 빅리그 진출을 앞두고 이런 불상사가 생길 줄이야.

    이 소식을 전하는 홍영화의 라디오는 단순히 LGB채널에서만 방송되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게임 방송 스트리머들이 실시간으로 홍영화의 라디오를 생중계하고 있었기에 시청률은 계속해서 높아만 진다.

    권용형 역시 긴장한 표정으로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마동왕이 입을 열었다.

    [제 친동생 같은 아이이자 구단의 소중한 인재인 유세희 양이 오늘 낮에 유괴를 당했습니다. 백혈병 때문에 진료를 받고 나오던 길이었죠.]

    1차 충격이 모두를 감싼다.

    그리고 이내, 2차 충격이 좌중을 강타했다.

    [때문에 저는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에 참가하지 않겠습니다.]

    마동왕, 구국의 영웅인 그가 가장 크고 화려한 경기에서의 불참을 선언해 버린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경기를 치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저는 세희 양을 무사히 찾을 때까지 구조활동에만 전념할 것이며 그때까지 대회 일정은 무기한 연기하겠습니다. 모든 책임감 없다는 비난도 달게 받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순간.

    …툭!

    권용형의 입에 물려 있던 담배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무덤 같은 정적이 조직원들을 감싼다.

    이윽고, 권용형이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안 돼. 나는 마동왕 경기 봐야 돼.”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영웅, 빛과 같은 존재.

    게이머, 아니 한국 국민들에게 있어 마동왕은 전설과도 같다.

    특히나 게임을 좋아하는 이들, 힘을 숭상하는 이들은 그의 박력과 퍼포먼스, 실력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는 상태이다.

    특히나 얼마 전에 전 세계 최초로 고정 S+등급 몬스터와 맞붙어 싸운 것 때문에 그는 이미 살아 있는 신화나 다름없었다.

    빅리그에 진출하면 대체 얼마나 굉장한 활약을 보여 줄지, 한국의 위상을 어디까지 높여 줄지 모두가 기대하고 있던 마당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용형은 더 이상은 참지 못했다.

    현수막에 쓰여 있는 ‘(축) 손 씻은 날 10주년’이라는 문구가 그의 눈에 새겨졌다.

    이윽고, 권용형의 입술을 비집고 무거운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얘들아. 우리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왕년에 했던 대로 놀아보자.”

    쿠웅-

    그리고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거구의 권용형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부탁한다.”

    그의 행동에 모든 조직원들은 번개에 맞은 듯 앉은 자리에서 튕겨 일어났다.

    “해, 행님!”

    “일어나십쇼!”

    “형님!”

    그러나 권용형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옛 오른팔이 억지로 잡고 일으켜서야 그는 겨우 바닥에서 무릎을 떼었다.

    “유괴한 새끼……우리가 잡자…. 잡아서 [본 내용은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검열 보류당한 내용입니다]해 버리자.”

    그러자 수백 조직원들의 얼굴에 살기가 어린다.

    “감히 10년이나 욕을 끊은 큰형님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게 하다니!”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각오해야 할 거다!”

    한때 대한민국의 뒷세계를 주름잡았던 옛 세대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권용형은 아우들의 면전을 죽 둘러보고는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주님. 오늘만은 정의로운 조폭이 되는 것을 허락해 주세요. 루루팡, 루루피…….”

    그의 간절한 부름에 모두가 힘차게 대답했다.

    “루루얏!”

    천사조폭 네티, 아니 권용형의 명령에 지금은 그냥 아저씨가 된 옛 간부들이 나섰다.

    “……후! 뭣들 해! 당장 유세희 선수를 찾아! 마동왕 선수가 빅리그에 불참하지 않게!”

    “옛!”

    250명의 조직원들이 아까보다 더욱더 큰 소리로 외친다.

    지금은 다들 손을 씻었지만 한때는 모두가 뒷세계의 밤을 지배하던 전국구 출신들, 다들 무뎌졌던 감을 되살리고 있었다.

    이윽고 모든 이들이 재빨리 파티룸을 빠져나가 여기저기 전화를 하거나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리고 그날.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조폭과 경찰, 일반 시민.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육천만 국민, 육천만 게이머.

    대한민국 전체가 유세희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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