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58화 (558/1,000)

558화 빅 딜(Big Deal) (3)

“이 플레이어. 내가 키웠습니다. 레드문의 스폰으로!”

차규엽은 호기롭게 외쳤다.

그러자 여기 모인 모든 이사들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떠오른다.

현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위상을 생각해 보면 이 사실은 꽤나 유용한 마케팅 수단이다.

또 하나의 인생이라고 불릴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뎀 월드.

그 세계관의 정점에 있는 몬스터를 거꾸러트린 전설적 영웅이 레드문에서 배출해 낸 이라면?

이쯤 되면 한국 차원에서 잠시 유명해지고 말 수준이 아니다.

월드스타! 레드문이라는 상표가 전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될 절호의 찬스인 것이다!

“S급 몬스터 사냥이 최초인가?”

“아닙니다. S급 몬스터 중에서도 레벨이 낮은 몇 개체가 이미 천상계 랭커 공격대에 의해 잡힌 사례가 있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발록과 데모고르곤이라는 고렙 몬스터가 우르르 몰려든 아챔 참가자들에게 잡히기도 했고요.”

“근데 저 데스나이트는 레벨이 엄청 높다면서? 심지어 일대 일이고 말야.”

“애초에 S급 몬스터 사냥이 가능한 사람들이 몇 없어요, 현 시점에. 그런 랭커가 있다면 그야말로 톱스타급입니다.”

“……오이오이.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굉장하잖아!”

“캬! 차규엽 대표이사님이 이렇게 또 엄청난 성과를 내시네요. 믿고 있었습니다!”

“‘레드문의 캡슐을 이용했기에 S급 몬스터를 잡을 수 있었다’라고 인터뷰 기사 내면 주가가 또 팍 오르겠는데요?”

“과연, 이것이라면 성난 대중들을 진정시킬 수 있을지 모릅니다.”

“대중을 진정시키는 무슨! 이쯤 되면 까짓것 한국에서 이미지 좀 나빠진 게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인이 우리 고객이 되는 거라구요!”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이라, 이거 흥분되는걸요?”

“막말로, 한국은 그냥 버리고 세계를 겨냥해도 되겠는걸? 원래 내수시장 호구들이야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우리 제품을 살 테니까.”

이사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몇몇 이사들은 재빨리 해외 바이어들에게 연락을 취한다.

한국 언론사들과의 간담회 약속을 바로 취소해 버리는 이사도 있었다.

벌써부터 한국 시장을 버리고 해외로 뻗어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다.

분위기가 나름 반전된 것을 느낀 차규엽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게이머들은 다 개돼지 아닙니까? 이렇게 또 지들끼리 흥분할 만한 껀덕지 조금 던져 주면 금방 리콜 사태는 잊어버릴 겁니다. 적당히 사과문 띄우고 또 껍데기만 다르게 한 신제품 출시한 뒤에 ‘데스나이트 칠귀타 버전 한정판’ 같은 것으로 또 재탕해서 팔아먹으면 됩니다. 이번에는 전 세계가 우리 고객이 될 거구요. 아, 물론 홍보는 이 친구에게 맡기고.”

그러자 김한선 이사가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런데 현 시점에 혼자서 S급 몬스터를 잡을 만한 무명 파이오니아가 있었습니까? 이 플레이어는 누구인가요?”

차규엽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혀를 한번 쯧 찼다.

사사건건 자기 일마다 물고 늘어지는 놈, 아주 귀찮은 정적(政敵)이다.

하지만 차규엽은 좌중을 향해 당당하게 말했다.

“요즘 스트리머계에서 핫한 ‘고인물’이라는 자를 아십니까? 그 자를 컨택하는 과정에서 소개받아서 알게 된 플레이어입니다.”

“……아, 그분이라면 저도 조금 아는데. 그럼 그분 본인은 아닌가요?”

“예. 뭐 친구라며 소개시켜 주더군요. 자기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 믿어 보라고.”

“국적이 어떻게 되죠? 차후 연락할 방도는요? 사측에서도 신용할 수 있는 사람입니까?”

“모릅니다. 아직 생각 안 해 봤어요. 그런데 그게 뭐 중요한가? 이미 이 영상을 내가 소유하고 있는데. 여기 영상 보면 원본 표시가 되어 있죠? 우측 상단의 빨간 금지 팻말은 한 번도 복사된 적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이 영상은 여기 있는 오직 이것 하나뿐이라는 것이죠.”

차규엽은 김한선 이사의 질문들을 손사래 치며 무시했다.

하찮은 것들에 집착하지 말라는 사인이다.

그 말에 스트리머 ‘고인물’을 아는 몇몇 이사들이 아서 왕과 싸우는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유심히 눈여겨보았다.

“확실히, 고인물과 비슷하지만 달라.”

“오히려 저건 마동왕 쪽에 더 가까운데?”

“둘의 장점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데다가 전혀 새로운 패턴의 공격까지, 이거 또 하나 괴물이 나타났구만.”

“혹시 정체를 숨긴 세계 정상 급 랭커 아냐? 튜더라거나 비앙카라거나…….”

“만약 그렇다면 더 대박인데.”

아까보다 더 흥분한 이사들, 그들의 반응을 본 차규엽은 더욱 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레드문에서 키운 게이머가 레드문에서 만든 캡슐로 이런 성과를 냈다고 하면 기업 이미지 제고에 큰 효과가 있을 겁니다. 말했죠? 나는 누군가에게 폐 끼치는 것 싫어합니다. 저 때문에 떨어진 주가, 다시 확실하게 만회해 보이겠습니다.”

차규엽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며 두 주먹을 들어 외쳤다.

짝짝짝짝-

이사진들 사이에서 일부 박수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것을 본 차규엽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너희도 역시 개돼지들이나 다름없구나. 이 얼간이 자식들.’

한편, 차규엽은 자기가 이 ‘데스나이트 사냥 영상’을 사 오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썼는지를 생각하며 속 쓰려했다.

현 세계관 정점에 서 있는 몬스터를 사냥한 영상.

그 값어치는 천하의 차규엽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엄청났다.

정말로 부르는 게 값이었을 정도로.

‘……하기야. 요즘 게임에 미쳐 사는 재벌 3세, 어린 것들이 희귀 동영상들을 거액 주고 사서 혼자서만 은밀하게 보는 게 유행이라더니.’

재벌 3세가 아니라 4세, 5세쯤 되는 요즘 어린것들이 혼자서, 혹은 여러 명씩 모여서 즐기는 새로운 최신 유행.

아무래도 스트리밍과 가상현실에 친숙한 세대니만큼 이런 일도 있는가 보다.

‘이 나이 먹고 코흘리개들이나 열광하는 동영상을 사야 하다니, 나도 참…….’

동영상 가격은 정말 미친 듯이 비쌌지만 별 수 없었다. 궁지에 몰린 차규엽은 어떻게든 성과를 보여야 했으니까.

그래서 이름도 정체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상대에게 수십억 단위의 돈을 입금해야 했다.

단지 십 분도 되지 않는 영상을 구매, 소장하기 위해서!

세무조사를 받는 중이니만큼 회사 돈을 횡령할 수도 없었기에 100% 사비로.

‘돈 좀 뼈아프게 썼지. 하지만 이걸로 대중들의 관심은 돌릴 수 있겠어. 특히나 어린 것들은 아주 홀딱 빠질 것이다.’

차규엽은 데스나이트 사냥 영상을 보며 씩 웃었다.

거액을 주고 사들인 이 영상은 다시금 차규엽에게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영상 속 플레이어의 신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 유일한 흠이긴 했지만 뭐, 어차피 이 희귀 영상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은 차규엽 하나니 문제될 것도 없다.

차규엽은 호기롭게 말했다.

“자, 그러면 이 영상을 언제 풀지 한번 타이밍을 논의해 봅시다. 자그마치 S급 몬스터이니 그 여파가 굉장할 거요!”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제일 강한 몬스터, S급 불가살(不可殺)의 1:1레이드 영상은 아마 전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온 세상의 뜨거운 주목을 받게 될 것이리라.

차규엽은 앞으로의 미래를 상상하며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때!

“……어?”

김한선 이사가 갑자기 핸드폰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한다.

이내 그의 표정이 천천히 굳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김한선 이사는 옆에 있던 다른 이사에게 귓속말을 건넸다.

“저, 김이사님. 잠시 이것 좀.”

“으응? 뭔데 그래? 음… 엇?”

“이, 이봐. 황이사. 이거 한번 좀…….”

“헉? 저기, 저기 박이사님. 이거 한번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쪽에서부터 시작된 웅성거림은 이내 쥐불놀이의 들불처럼 쭉 번져 원을 그린다.

자신을 둘러싼 시선들이 다시 뜨거워지는 것을 눈치 챈 차규엽이 왜 그러냐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뭡니까? 뭘 그리 나만 빼고들 수군거려요?”

하지만 김한선 이사는 차규엽의 말을 무시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기의 핸드폰을 들었다.

“여러분. 지금 포털사이트의 인기 검색어 순위를 좀 보아 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차규엽을 비롯한 모두가 시선을 내려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곧 레드문에서 발표할 ‘S급 몬스터 레이드’가 언급될 대한민국 최대의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

그곳에는 현재 무서운 속도로 랭킹이 상승하는 검색어들이 있었다.

<급상승 검색어 순위>

※검색 횟수가 급상승한 검색어의 순위와 추이를 연령별, 시간대별로 자세히 제공합니다.

<전체 연령대>

1.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S+)’ 공략 영상(Feat. 마동왕). (NEW)

2. ‘죽음룡 오즈(S+)’ 공략 영상(Feat. 고인물). (NEW)

3. ‘크라켄(S)’ 공략 영상(Feat. 고인물). (NEW)

4. ‘칠귀타 데스나이트 1세대 사자심왕(S)’ 공략 영상(Feat. 고인물). (NEW)

5. ‘식인황제(S)’ 공략 영상(Feat. 마동왕). (NEW)

6. ‘발록(S)’과 ‘데모고르곤(S)’ 더블킬 영상(Feat. 마동왕). (NEW)

7. ‘데스웜(S)’ 공략 영상(Feat. 마동왕). (NEW)

8. ‘살점토막 번데기(S)’ 공략 영상(Feat. 고인물). (NEW)

9. ‘배드엔딩 나이트메어 폼(S)’ 공략 영상(Feat. 마동왕). (NEW)

10. ‘여덟 다리 대왕 큘레키움(S)’ 공략 영상(Feat. 고인물). (NEW)

11. ‘리치 왕(S)’ 공략 영상(Feat. 고인물).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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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몇 개인지 알 수도 없는 엄청난 수의 동영상들.

대한민국의 차트가 단 둘에게 씹혀 먹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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