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57화 (557/1,000)
  • 557화 빅 딜(Big Deal) (2)

    경찰 조사보다 철저하다는 보험사의 전수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들은 화재가 발생한 루트를 역으로 되짚어 끈질기게 분석했고 이내 만장일치로 결론을 내렸다.

    레드문에서 들여온 게임 캡슐 ‘LINKED3021’의 냉각기 불량으로 인한 기기 과열, 그리고 이 열기가 전선의 피복에 닿아 불씨가 발생했던 것이다.

    한 대의 캡슐만이 이런 문제를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

    여러 층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문제들이 벌어진 정황을 찾아냈고 이는 실시간으로 텅 빈 건물 안을 촬영해 외부로 송신하고 있던 수 백 대의 CCTV들에 의해서 입증되었다.

    그리고 이내 수많은 소비자 고발, 시사고발 프로그램들이 앞 다투어 이 빌딩으로 취재를 나오기 시작했다.

    모든 취재를 열어 놓았기에 사건은 일파만파 번졌다.

    [오픈 전이었던 서울의 모 캡슐방은 국내 최대 규모의……]

    [분명 저전력 상태로 하루 12시간만 시험 운영을 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화재가……]

    [보통 24시간 돌아가는 다른 캡슐방들도 위험을 피할 수 없어……]

    [만약 이 캡슐방이 오픈 이후에 이런 화재를 겪게 되었다면 아마 끔찍한 인명 피해가……]

    [대규모 리콜 사태 예상, 고소인들의 수만 1만 명 이상……]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된 레드문은 아무런 입장도……]

    .

    .

    엄청난 비난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레드문을 성토하는 이들 가운데에는 그동안 강제로 숨죽여야만 했던 전국의 모든 캡슐방 사장들도 끼어 있었다.

    레드문의 캡슐 불량을 고발해줄 이들은 차고 넘쳤다.

    쓸데없이 비싼 캡슐 단가에 지친 캡슐방 사장들뿐만 아니라 발열과 화상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수많은 헤비 게이머들이 앞 다투어 리콜 신청을 하기 시작했다.

    사망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언제든 사망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도 나도 캡슐을 반품, 환불하기 시작했고 또 미약하게나마 화상을 입은 이들은 집단으로 레드문을 고소했다.

    고소 규모는 천하의 레드문조차 무시할 수 없는 규모였으며 이로 인한 여론의 악화도 거셌다.

    가장 큰 문제는 주가의 하락이었다.

    연일 고공행진하던 레드문의 주가는 주춤하는가 싶더니 서서히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며칠 사이에 5% 이상 증발해 버렸다.

    이로 인한 주주들의 분노는 그야말로 막 터진 활화산 같은 것이었다.

    이번 신모델 프로젝트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고 컨트롤하던 이가 차규엽 대표이사라는 사실이 외부에까지 알려지면서 그는 레드문 안팎으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쯤 해서, 차규엽이 운용하는 악플부대의 실체가 여론에 까발려졌다.

    한 내부고발자가 언론에 익명으로 제보한 바에 의하면 차규엽은 지난번 뎀 협회에의 부당 개입 사건의 수면 아래서 수많은 여론 조작을 행해 왔다.

    제보된 봉투 안에는 수백 기가의 증거 데이터가 담긴 외장하드, 그리고 녹취록과 사진 자료 등등이 첨부되어 있었다.

    당연히 그동안 자행해 온 수많은 고인모독, 인신공격, 약자 멸시, 성차별, 지역감정 조장, 세대 갈등 조장 등등 온갖 더러운 악플들 역시도 낱낱이 공개되었다.

    기사가 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LGBA=남중남 기자] 최근 '캡슐 화재 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레드문의 대표이사 차규엽 씨가 과거 SNS 채널을 운영하며 소셜미디어 마케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중략)…특정 프로게이머 선수들에 대한 악플과 여론 조작을 행해왔던 사실이 밝혀졌다. / [email protected]

    [사진] 레드문

    첫 보도를 시작으로 일파만파 번지는 레드문 사건.

    수많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사건은 게이트급으로 번져 가기 시작했다.

    *       *       *

    “죄송합니다.”

    차규엽은 병원복을 입고 휠체어에 탄 채 레드문 본사 건물 입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입에는 커다란 마스크를 쓴 채다.

    시작부터 사과 한 마디를 툭 던진 차규엽은 비서가 밀어 주는 휠체어에 탄 채로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수많은 기자들이 차규엽에게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차규엽 씨. 오늘 주주총회에 앞서 이사회가 열린다던데 거기 참석하는 중이십니까?]

    [한국 뎀 협회에 왜 부당 개입을 하셨나요?]

    [협회 직원들 중 외조카와 사촌 조카가 있죠? 그들의 입사 당시 뒤를 봐주셨나요?]

    [아시아 챔피언스 선발전 때 특정 구단, 특정 선수에게 특혜를 줬습니까?]

    [리틀리그 한중일 대전 당시 맵 선정에서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으셨다고요?]

    [이번 레드문 신모델 화재사건 피해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규모 리콜 사태로 인한 주가 폭락은요?]

    [악플부대는 왜 운용하셨습니까?]

    [그 마스크는 미세먼지 잘 막나요? KF 수치가 몇 짜리입니까?]

    .

    .

    차규엽은 자신을 둘러싼 기자들 사이를 힘겹게 빠져나갔다.

    중간에 긴 백발머리를 가리고 있던 모자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겪으며 말이다.

    하지만 그의 수난은 이제 시작이었다.

    레드문 빌딩 최고층으로 올라가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이사 전용 회의장이 보인다.

    그곳에는 살벌한 눈빛을 쏘아 보내는 이사진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평소 차규엽과 사이가 나빴거나 좋았거나 할 것 없이, 모든 임원들의 표정과 시선은 하나같이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어서 오세요, 차규엽 씨.”

    차규엽이 항상 눈엣가시로 여기던 김한선 이사가 빙글빙글 웃으며 차규엽을 손을 흔든다.

    시국에 맞지 않는 저 환한 미소를 보아하니 이 상황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원래 적의 불행과 나의 행복은 같은 말이다.

    그리고 나의 불행과 적의 행복 역시도 같은 말이다.

    차규엽은 분노가 한층 더 가열차지는 것을 느끼며 원형으로 만들어진 시선의 감옥, 판옵티콘의 중심에 앉았다.

    김한선 이사가 이죽였다.

    “휠체어를 타고 오실 줄 알고 의자는 따로 안 뒀습니다.”

    “……흥, 나도 의자 안 놨을 줄 알고 이거 타고 왔지.”

    “어이쿠, 그런 선견지명이 있으신 분이 왜 이런 빅이슈들을 터트리셨을까요?”

    김한선 이사는 핵심 자료들만 딱딱 들어 올렸다.

    뎀 협회에의 부당개입 사건, 신모델 ‘LINKED3021’ 사건, 그리고 악플 부대 운용 사건.

    그리고 이로 인한 주가의 하강 그래프가 너무도 명확하다.

    주가 그래프의 화살표 끝이 수직으로 떨어져 내려 자신의 심장을 관통하는 듯한 통증, 차규엽은 순간 심장을 움켜쥐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내, 그는 자신을 차갑게 노려보고 있는 이사진들 앞에서 먼저 말문을 텄다.

    “주가하락에 대한 제 과실을 모두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자 이사진들 사이에서도 약간의 웅성거림이 흘러나온다.

    평소에 성질 더럽고 막나가기로 유명한 차규엽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광경은 정말로 진귀한 것이었기에 그렇다.

    차규엽은 눈을 빛냈다.

    “하지만 제가 누굽니까. 나 차규엽입니다.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습니다. 다 확실한 수복 방안을 생각해 왔지요.”

    그 말에 이사진들의 이목이 다시 확 쏠린다.

    차규엽은 회의실 중앙에 있는 홀로그램 장치를 가동시켰다.

    그러자 이내 회의장 중앙에 3D 영상이 재생된다.

    [콰쾅! 우지지직!]

    그곳에서는 지금 믿지 못할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사진들을 압박하듯 우뚝 서서 회의장 전체를 내려다보는 장신의 기사.

    해골만 남은 얼굴에 칠흑의 갑주, 용의 뼈로 만든 투구가 위압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데스나이트 ‘킹 아서(King Arthur)’> -등급: S / 특성: 어둠, 언데드, 뽑기, 1:1, 백전노장, 군단전술, 선택, 앙버팀, 연쇄살인, 원탁의 기사

    -서식지: ‘칼침의 탑 9층’

    -크기: 3m.

    -‘바람이 불고, 비에 젖고, 태양이 회전하며, 바다가 에워싸고, 땅이 이어지는 한……’

    -아서 왕-

    위험등급이 무려 S급.

    데우스 엑스 마키나 속에 존재하는 최정상급 랭킹의 몬스터.

    천상계 유저들도 수십 명씩 레이드를 조직하지 않으면 감히 범접도 하지 못하는 존재.

    그중에서도 존재한다는 떡밥만 일부 어렴풋하게 배포되고 제대로 뭐 하나 뚜렷하게 알려진 바 없는, 위험등급 S급 최상위 랭킹의 존재들.

    데스나이트 칠귀타(七鬼墮)!

    그 중 두 번째 보스인 ‘아서 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아서 왕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런 데스나이트와 대등하게 맞붙어 싸우고 있는 의문의 플레이어.

    바로 이 엄청난 업적을 실시간으로 이루어 내고 있는 존재의 등장이다!

    “호오, 저것은 뎀이 처음 나왔을 때 티져 영상에 나왔던 몬스터로군요.”

    “윌슨 총수가 기자회견에서 지나가는 식으로 한번 언급했던 일곱 데스나이트 중 하나라.”

    “그런데 저런 몬스터를 벌써 잡는 플레이어가 있다고?”

    이사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칠귀타 급 데스나이트는 거의 알려진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저들 사이에서 이미 연예인 수준으로 유명한 몬스터이다.

    그런데 그것과 대등하게, 그것도 1:1로 싸우는 플레이어가 나타났다니.

    게이머들이라면 분명 열광할 만한 소재였다.

    하지만 여기 모인 이사들은 게이머라기보다는 사업가에 가깝다.

    “흐음,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런데 그게 뭐?”

    “이게 지금 레드문 주가 하락 사태와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이사들의 날 선 질문에 차규엽은 당당히 대답했다.

    “이 데스나이트는 아마 데우스 엑스 마키나 세계관의 정점에 올라 있는 존재일 겁니다. 암, 당연하지요. 추정 레벨이 수백 대 이상인데. 전문가들의 감식 결과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당시에 출몰했던 발록인지 발락인지 뭐 그런 것들보다도 강하답디다. 그러니까 현재까지 발견된 몬스터들 중 최강이라는 겁니다.”

    그러자 김한선 이사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는 차규엽을 향해 날카롭게 말했다.

    “아니, 그래서 지금 그게 이 사태와 무슨 관련이…….”

    “관련이 있지.”

    차규엽은 김한선 이사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는 여기 모인 이사진 전부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데스나이트를 잡은 플레이어. 내가 키웠습니다. 레드문의 스폰으로!”

    차규엽의 폭탄선언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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