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56화 (556/1,000)
  • 556화 빅 딜(Big Deal) (1)

    “신고 들어왔습니다!”

    한 소방관의 외침에 모든 소방관들이 식탁에 놓인 라면 그릇을 내려놓았다.

    라면이 막 끓어 이제 한 입 먹으려던 차에 터진 출동이었다.

    “위치는?”

    김혜지 소방교가 바쁘게 움직이며 묻는 질문에 김종호 소방사가 난감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서울 용산구 XX동 DD번지…….”

    그 말을 들은 김혜지 소방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거기 땅값 엄청 비싼 곳이네. 심지어 고층빌딩이잖아.”

    소시민의 입장에서는 피해액이 얼마나 클지 감히 짐작도 안 간다.

    또 워낙에 부촌이기에 자칫 출동했다가 주변에 있는 뭔가를 잘못 건드리게 될까 봐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뭐 어쩌겠어. 야 엎어.”

    “엎…엎어……!”

    “엎어!”

    나이 많은 소방관이 선창하자 나머지 모두들 후창하며 미련 없이 라면 그릇을 싱크대에 엎었다.

    이 소방서만의 규칙이다.

    모두 비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늘 있는 익숙한 일이다.

    *       *       *

    웨에에엥-

    소방관들은 황급히 비상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했다.

    이윽고, 저 멀리 밤하늘이 화광에 젖어 있는 것이 보인다.

    커다란 건물 전체에 불이 번지고 있었다.

    “아니, 뭐가 터졌길래 저렇게 동시다발적으로 미친 듯이 불이 치솟지? 안에서 뭐 폭탄이라도 터졌나?”

    소방관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큰 화재의 규모에 입을 딱 벌렸다.

    검은 하늘을 활활 물들이고 있는 붉은 기운. 화재 진화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건물주랑 통화해 봤는데 아마 초대형 캡슐방인 것 같더라고요. 불행 중 다행으로 아직 영업을 개시하기 전이라 인명피해가 최소화될 것 같기는 합니다.”

    “다행스럽게 주변이 인접한 건물이 없는 곳이고 주위가 다 공사현장 황무지라서 더 이상 불이 번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건축 자재들도 미리 빼 놨고.”

    “그럼 추가 피해는 없겠군. 거의 기적인데?”

    “하지만 이래서야 안으로 진입하기도 쉽지 않겠어.”

    하지만 소방관인 이상 혹시나 안에 있을지 모르는 생명을 도외시할 수는 없다.

    수많은 소방관들이 결사적인 표정으로 소방호스를 들었다.

    그리고 활활 불타고 있는 고층 건물 안으로 들어갈 채비를 마쳤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바로 그때.

    “잠시만요.”

    그런 소방관들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 한 남자였다.

    “안에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몇 겹이나 중첩된 최신 도어락 장비들로 비밀번호를 걸어 둬서 주인 아니면 아무도 못 들어가게 설정해 뒀거든요. 그리고 그동안 따로 보안요원들을 고용해서 주위를 경계하게 해 뒀기에 혹시라도 따로 누군가 몰래 들어가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겁니다.”

    말을 마친 그는 그동안의 입구 CCTV 영상, 그리고 현 건물 안의 상황들을 CCTV로 전부 보여 주었다.

    과연, 실시간으로 감시되고 있는 건물 안팎으로는 사람은커녕 쥐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그저 빼곡하게 들어찬 수많은 캡슐들만 보일 뿐이다.

    실시간으로 활활 불타고 있는.

    하지만 아무리 안에 사람이 없고 화재가 주변으로 번질 위험도 없다고 해도 소방관들의 마음은 다급하다.

    “그래도 화재는 조속히 진압해야 합니다. 건물주 님의 마음이 어떠시겠어요.”

    그러자 김종호 소방사의 말을 남자가 빙긋 웃는다.

    “더 타도 괜찮아요. 제가 이 빌딩 주인인데요 뭐.”

    그 말을 듣는 순간 자리에 모인 모든 소방관들의 얼굴이 멍하게 바뀌었다.

    세상에 자기 건물에 불이 났는데 이렇게 태연한, 아니 태연하다 못해 여유로운, 아니 여유롭다 못해 무관심해 보이기까지 하는 건물주는 처음 봤다.

    “저, 정말입니까? 그,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실 수 있는지…….”

    한 소방관의 질문에 남자는 고개를 끄덕여 답했다.

    “보험 들어 놨거든요.”

    *       *       *

    나는 활활 불타고 있는 내 건물을 바라보았다.

    ‘이야, 무슨 게임 그래픽 보는 것 같네.’

    하지만 이것은 엄연히 현실이다.

    내 재산의 절반 이상을 쏟아 부어 매입한 이 럭셔리한 고층빌딩은 지금 활활 불타고 있었다.

    이 건물은 내가 아주 오래 전에 따로 사둔 빈 건물로 부촌 외곽에 위치해 있다.

    쏴아아아아……

    마침 비가 내리며 화재는 슬슬 진압될 기미를 보인다.

    소방헬기까지 동원되었을 정도로 큰 화재였다.

    “다친 사람은 당연히 없고.”

    인명피해는 예상했던 대로 0, 피해보는 사람이 없게끔 철저히 화재를 컨트롤한 결과였다.

    ……아, 내가 불을 질렀냐고? 설마 그럴 리가.

    저 화재는 분명 나와는 상관없이 자연 발생한 화재로 법적 효과가 있는 알리바이들을 얼마든지 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화재를 미리 예측했고 원인 역시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레드문의 차규엽이 개발한 신모델 캡슐 ‘LINKED3021’, 늘 발열 때문에 말썽을 일으키던 제품.

    나는 그동안 망하거나 장사에 어려움을 겪는 캡슐방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 신모델 캡슐들을 한 빌딩에 차곡차곡 몰아넣었다.

    표면적으로는 대한민국 최대의 초대형 캡슐방을 차린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사실은 이번 화재를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회귀 전 세상에서는 이 사건 때문에 레드문의 몰락이 시작되었지.’

    나는 차규엽이 야심차게 내놓은 이 캡슐이 언젠가 사고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회귀하기 전, 당시 지하에 있던 캡슐방의 신모델 캡슐이 발열 끝에 발화를 일으키는 바람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인해 차규엽은 모든 책임을 인정하고 일선에서 물러나야 했다.

    물론 막대한 로비로 인해 징역은 살지 않았지만.

    그 이후 차규엽은 각종 노환과 질병, 합병증을 이유로 징역 도중에 보석금을 내고 빠져나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교도소에서 이른바 ‘황제 노역’이라는 생활을 하던 참이었다.

    피해 본 사람은 있는데 처벌 받는 사람은 없는, 대한민국의 기묘한 사법 체계가 만천하에 드러났던 사건.

    ……하지만 이번에는 결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잘 탔네.”

    나는 노릇노릇 구워진 건물을 보며 피식 웃었다.

    누가 봐도 회생불가능, 엄청난 피해로 보인다.

    저 건물을 올리는 데 상당히 많은 돈을 때려 박았다.

    물론 그 이후에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화재보험이란 화재보험은 죄다 들어 둔 상태였다.

    그것도 대물 한도 최대로, 모든 특약과 특수 옵션에 죄다 가입한 상태로.

    그럼 보험회사에서 나에게 어마어마한 돈을 물어 줘야 하니 애꿎은 보험사에 피해를 끼치는 것 아니냐고?

    ‘……그럴 리가.’

    보험회사란 으레 사회에서 늘 갑(甲)에 위치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절대로 손해를 보지 않는다.

    만약 거액의 보험금을 물어 줄 일이 생겼다면 그들은 철저한 전수조사를 통해 자신들의 손해를 다른 곳에서 메꾸려 할 것이다.

    레드문.

    이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굵직굵직한 보험사들이 나 대신 알아서 차규엽의 숨통을 조여 올 것이다.

    구린 짓 숨기기에 바쁜 레드문 VS 나에게 지급된 거액의 보험금을 메꾸기 위해 혈안이 된 대한민국의 모든 보험사.

    갑(甲) 대 갑(甲)의 싸움. 과연 살아남는 쪽은 어디가 될 것인가?

    ‘나는 보험사들이 훨씬 더 영리하고 철저하다고 보는데 말이야.’

    나는 씩 웃었다.

    만약 이 승부에도 승패 맞추기 토토게임이 있다면 나는 전재산을 보험사 쪽에 베팅했을 것이다.

    차규엽은 뒷골목 양아치 출신이기에 오히려 이런 쪽에 약하다.

    이제 곧 피도 눈물도 없는 보험사의 처형인들이 수없이 파견되어 차규엽의 목에 올가미를 걸겠지.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수많은 중소 캡슐방 사장들이 연대하게 될 것이다.

    레드문의 주가는 떨어지게 될 것이고 이때쯤 해서 주주총회, 이사회의 맹비난이 있겠지.

    바로 차규엽을 향해서!

    놈은 평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궁지에 몰려 본 적이 없는 놈이기에 아마 대처할 방법을 찾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내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게끔 그물을 촘촘하게 짜 놨기도 하고.

    ‘레드문은 차규엽 실각 이후 다시 부활한다. 지금이 다시 주식 매입 타이밍이기도 하네.’

    차규엽의 몰락은 이후 나의 부를 더욱 증대시켜 주겠지.

    이는 전국의 소상공인, 혹은 게이머들에게도 긍정적인 여파를 미치게 될 것이다.

    원하지 않게 강매당한 신모델을 합법적으로 반품할 수 있는 데다가 리콜 보상금까지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이윽고.

    착착착착-

    내 앞으로 정장에 서류 가방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반듯한 차림새, 안경, 포마드를 발라 넘긴 머리.

    각각 보험사에서 난다 긴다 하는 협상 전문가들이 법조인들을 대동하고 내 옆으로 포진했다.

    ‘……기세 한번 등등하네.’

    보험맨들은 동시에 허리 굽혀 인사를 하더니 축구선수처럼 각자의 포지션에 신속하게 자리 잡았다.

    아무래도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를 대비한 프로그램 메뉴얼이 있는 듯.

    “화재의 인과관계 파악을 시작하겠습니다.”

    “삐빅! 과실 비율 책정 중.”

    “23%…57%……89%…100%. 보험료 책정을 완료하였습니다.”

    “지금부터 소송 준비에 들어가겠습니다.”

    “자자, 심호흡. 따라해 보세요. 습습…후……습습…후……. 괜찮아요. 안심하십시오, 고객님.”

    “안심하셨나요? 그렇다면 더욱더 안심하십시오 고객님. 저희가 저혈압 직전까지 모시겠습니다. 이봐 막내야, 차량에서 침대랑 마사지 기계 좀 꺼내와!”

    “이쪽도 봐 주십쇼! 저희 화재 조사원의 방염복은 소방관보다 10배 튼튼합니다. 저기 보시면 이미 저희 조사원이 13층까지 올라간 것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대단하죠?”

    “에헤이! 그사이 저희 조사원은 이미 헬기 타고 옥상에 상륙했습니다. 혹시 안에 살펴보실 물건이 있으신가요? 말씀만 주십시오.”

    “이번엔 여기 한번 주목해 주세요, 고객님! 이따가 언론 앞에서 뒷목 한번 잡아 주셔야 하거든요? 사진 구도 좋은 뒷목 잡고 쓰러지기 자세 메뉴얼을 강습해 드리겠습니다.”

    회귀 전, 적일 때는 그렇게 무섭던 보험사들이 회귀 후, 한 편이 되자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다.

    ‘그래, 혼자서는 힘들지. 역시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가 짱이야.’

    이제 나는 여기저기서 빌려온 이 초엘리트 용병 집단을 데리고 레드문이라는 거대한 보스 몬스터를 뼛속까지 발라내 털어 먹을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내 복수는 여기서 끝이 아니지.’

    나는 이 와중에도 아직 숨겨 놓은 패가 남았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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