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5화 사냥감으로 전락한 사냥꾼 (3)
피핑-
화살 두 대가 서로를 스친다.
화살촉에 삐죽 튀어나온 미늘이 서로의 화살대 옆구리에 각각 긴 상처를 남긴 뒤 제각기 갈 길로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텅! 텅! 텅! 텅!
안혁수가 던진 폭탄이 컨테이너 위를 날아가 건너편 벽을 맞고 몇 번 튕긴 뒤 폭발했다.
콰콰쾅!
하지만 드레이크는 이미 그 지점을 벗어난 뒤였다.
“위폭, 각폭 솜씨가 제법이군. 하지만 치밀함이 모자라.”
드레이크의 말을 들은 안혁수는 뭔가 싶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컨테이너 벽면을 몇 번인가 튕기며 내려오는 화약구가 보인다.
그것은 어느새 안혁수의 정수리 바로 위까지 도달해 있었다.
“……억!?”
안혁수는 기겁해야 했다.
폭탄이 컨테이너 벽면을 때리며 튕기는 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잘 보니 드레이크는 폭탄의 겉면에 솜을 여러 번 꼼꼼하게 싸매 부딪칠 때의 소음을 무음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공공장소에서는 폭탄도 매너모드로 해 둬야지.”
“으으으, 이 미친 놈!”
안혁수는 흑포를 전신에 두른 채 폭탄을 피해 뛰었다.
콰쾅!
불길이 컨테이너 박스를 삼킨다.
안혁수는 작렬하는 불길에 큰 데미지를 입기는 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호오. 이게 사는군.”
드레이크는 여전히 신기하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그런 안혁수를 추격한다.
안혁수는 몸에 붙은 불을 모래바닥에 데굴데굴 굴러 끈 뒤 코앞까지 다가온 드레이크를 향해 활을 들었다.
“그만 좀 다가와라! 너는 궁수라는 자각이 없냐!?”
그는 드레이크를 향해 화살을 날려 보냈다.
드레이크 역시도 정면을 향해 화살을 발사한다.
쩡-
놀랍게도, 두 화살은 서로의 촉이 맞닿은 채 허공에 정지했다.
서로가 서로의 화살촉 끝을 겨누어 맞힌 것이다!
아까부터 서로를 스치던 화살이 이제는 아예 정면에서 맞붙었다.
그 신기에 가까운 현상에 드레이크도 안혁수도 잠시 침묵했다.
먼저 입을 연 쪽은 드레이크였다.
“대단한 실력자로군. 현실에서도 활 좀 쏘나?”
“물론.”
이번에는 안혁수가 드레이크에게 물었다.
“그런 실력으로 왜 한국으로 왔지? 한국의 뎀 협회는 썩어빠진 것 모르나?”
그러자 드레이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한국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한국의 뎀 협회에는 가입 안 했어.”
“뭐라고? 그게 가능한가?”
“가능하지. 그리고 조국이 싫다면 내가 바꾸면 된다.”
“그래. 그래서 나는 조국을 바꿨어. 한국에서 러시아로.”
“아니, 그게 아니라. 조국을 좋은 방향으로 바꿔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드레이크의 말에 안혁수는 코웃음을 쳤다.
“꼰대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개인이 어떻게 국가를 바꿀 수 있다는 거냐?”
지극히 현실적이고 또 염세적인 대사였다.
그러나 드레이크는 그런 안혁수의 말에 그저 빙긋 웃어 보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현실로 이루어 나가는 한 남자를 알지.”
드레이크의 말에 안혁수는 미간을 찌푸린다.
“영문 모를 소리만 늘어놓는군. 이제 됐다. 죽어라.”
그는 드레이크를 향해 또다시 화살을 겨눴다.
드레이크는 그런 안혁수의 화살을 피해 몸을 뒤로 굴린 뒤 쇠뇌를 장전했다.
그 모습을 본 안혁수는 코웃음켰다.
“아까 나를 겨눴을 때와 쇠뇌의 각도가 다르군. 고집하던 파지법을 그새 바꾸기로 한 건가?”
“모르는 소리. 아까 너와 나의 거리는 100미터 이상이었고 지금은 30미터 내외가 아닌가? 탄도가 그리는 포물선을 생각하면 화살의 발사궤도를 재조정하는 것은 필수적이지.”
“흥. 아이템 설정과 제원에 너무 과몰입하는군. 그 정도 미세한 차이는 실전에서는 상관없다. 그것을 고려할 시간에 연사 속도를 늘리는 것이 훨씬 더 이득이지.”
말을 마친 안혁수는 화살을 발사했다.
드레이크 역시 화살을 발사한다.
…쩡!
두 대의 화살은 또다시 허공에서 서로의 촉을 부딪쳤다.
안혁수는 다시 말했다.
“뎀 아이템의 특성 상 거리별로 조준점의 높이를 달리 하는 것은 근거리에서는 무의미하다. 특히나 50미터 내의 조준점 에임을 탄도포물선을 고려하여 임의로 약간 빗겨나가게 해 봤자 그 오차폭은 겨우 0.013mm 정도. 즉 괜히 에임을 고의적으로 틀었다가는 빗맞힐 확률만 높아진다는 것이지. 그 시간에 나 같으면 연사를 하겠다!”
말을 마친 안혁수는 재빨리 다음 화살을 시위에 걸어 쏘았다.
동시에, 드레이크의 화살이 허공을 향해 날았다.
하지만 안혁수의 화살에 비해 드레이크의 화살은 다소 늦은 감이 있었다.
“하하! 내가 승기를 잡았군! 이대로 밀어붙여 주마! 지나치게 세세한 설정에만 집착한 고인물스러움이 결국 네 발목을 잡는……!?”
그러나. 안혁수는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쩡!
안혁수와 드레이크의 화살이 또다시 허공에서 서로 입맞춤하는 순간.
핑-
허공에 정지해 바닥으로 떨어지는 두 대의 화살 바로 뒤로 나타난 두 번째 화살이 있었던 것이다.
…푹!
그것은 미약한 하강 곡선을 그리며 날아와 정확히 안혁수의 심장에 꽂혔다.
“…어?”
안혁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심장에 꽂힌 화살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파르르 떨리는 화살대의 진동은 심장 박동마저 뒤틀어 놓는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안혁수, 그의 앞으로 드레이크가 착 내려섰다.
“0.013mm의 오차가 만들어 내는 결과값은 치명적이다.”
드레이크는 같은 궤도에 두 대의 화살을 연달아 날려 보낸 것이다.
물론 그 궤도는 정확하게 같은 궤도는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0.013mm만큼 차이가 나는 궤도, 하지만 앞선 화살을 보는 적의 입장에서는 바로 뒤따라오는 화살을 볼 수 없다.
0.013mm의 오차도 정확하게 잡아내는 눈썰미가 아니라면 말이다.
“그걸 무시하는 궁수는 죽는 거고, 신경 쓰는 궁수는 사는 거지.”
나는 딱 한마디로 안혁수와 드레이크의 차이를 판정했다.
…털썩!
안혁수는 무릎을 꿇었다.
자신의 심장에 박힌 화살대를 움켜쥔 채로.
“…마, 말도 안 돼. 이런 걸 피하는 게 가능한 거야?”
그러자 드레이크가 그 앞으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손에는 단검 ‘마헬살랄하스바스’를 든 채였다.
“피해 보면 알겠지. 피하는 게 가능한지 아닌지. 못 피하면… 이번 생에는 모르는 것이고.”
“…….”
“다음번에는 꼭 피하라고.”
드레이크의 조언은 심플했다.
다음을 기약하는 드레이크의 말에 안혁수의 표정이 약간 핼쑥해졌다.
이내. 그의 입에서 단말마와도 같은 유언이 흘러나온다.
“다음번에는 좀 다를 것이다.”
그것이 궁귀의 마지막이었다.
그는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려다가 말고는 그냥 그대로 로그아웃 해 버렸다.
자신의 시체만을 남긴 채로.
“……어라?”
나는 리타이어된 안혁수를 보고 약간 당황했다.
‘궁귀 안혁수가 저렇게 쉽게 물러날 위인이 아닌데.’
안혁수는 분명 드레이크에게 비해 한 수 처지는 실력이지만 이렇게 쉽게 끝날 급의 랭커는 아니다.
그에게는 적어도 드레이크를 몇 번 더 놀래킬 수 있는 히든 피스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아하. 협회 때문인가?”
나는 이내 안혁수가 이렇게 쉽게 물러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긴, 회귀 전에는 마동섭 하고 사이 안 좋기로 유명했었지.’
그토록 한국 협회를 싫어하던 그이기에 한국 협회를 썩게 만든 장본인인 레드문의 밑에서 일하는 게 그리 내키지는 않았으리라.
그 때문에 밑바닥을 드러내가면서까지 싸우고 싶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드레이크와 안혁수의 싸움이 완전히 끝난 것을 확인하고는 게임 밖으로 로그아웃했다.
* * *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나는 캡슐 밖으로 나오자마자 마태강과 유세희의 안부를 확인했다.
바로 핸드폰을 들어 번호를 누른다.
이내 몇 번의 신호음 끝에 마태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태강아. 혹시 내가 전에 경고했던 거…….”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영리한 마태강은 먼저 내가 듣고 싶어하는 대답을 했다.
[암살자요? 네. 아까 마동섭이 패거리 몇 명을 데리고 직접 왔더군요. 마침 세희랑 같이 개인방송 중이었기에 시원하게 발라 버렸습니다. 후원금도 엄청 터져서 오히려 호재였죠.]
마태강은 전화로 근황을 보고했다.
드레이크와 같이 멋지게 암살자를 격퇴해 낸 모양이다.
‘마동섭이 왔다고? 바스터즈도 이제는 다 됐군.’
거기에 생방송 중이었으니 마동섭의 이미지는 이제 완전히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세희도 무사해?”
[저보다 훨씬요.]
믿음직스러운 대답이다.
나는 둘의 안부를 확인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불 꺼진 방에 홀로 남아 조용히 앞으로의 계획을 궁리했다.
‘차규엽. 나를 못 건드니 이제 주위를 치시겠다 이거지?’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이미 짐작했던 바다.
몇몇 예상 못한 변수들도 있었지만 충분히 오차 범위 이내였다.
타초경사(打草驚蛇)라. 풀을 두드리면 뱀이 놀라는 법이다.
……문제는 그 뱀이 무시무시한 독사라는 것이다.
“오케이, 이제부터 반격 들어간다.”
나는 얼마 전 박철환을 비롯한 악플러들을 잡아 족치며 얻어낸 자필 진술서와 녹음파일,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증빙자료들을 돌아보았다.
상대방의 공격을 전부 막거나 피했으니 이제 내 공격을 꽂아 넣을 차례다.
…착!
나는 악플러들이 토해 낸 정보 외에도 다른 무기 하나를 쥐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 훨씬 더 파괴력이 강한 핵폭탄 급 히든피스일 것이다.
드르륵-
나는 금고의 문을 열고 제일 밑에 보관되어 있던 것들을 모두 끄집어냈다.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왔던 엄청난 양의 서류들.
페이지 수가 수천 장에 이르는 종이뭉치들이 산을 이룬 채 그득그득 쌓여 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전부 같은 글귀로 시작하는 계약서들이었다.
<종합 주택건물 화재보험(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