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54화 (554/1,000)
  • 554화 사냥감으로 전락한 사냥꾼 (2)

    “접속.”

    [음성 인식으로 보안 해제]

    .

    .

    [동기화 중입니다……]

    .

    .

    [동기화 완료!]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나는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바로 드레이크가 있는 맵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내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본 것은 뜻밖의 광경이었다.

    “……아니, 자기 죽이러 온 사람이랑 뭐 저렇게 재밌게 놀아?”

    나는 컨테이너 박스 위를 뛰어다니는 드레이크를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드레이크는 간만에 보는 반짝반짝한 시선으로 적을 쫓고 있었다.

    컨테이너 박스, 철골, 녹슨 갈고리 위를 훨훨 날 듯 뛰어다니고 있는 활잡이 두 명.

    나는 드레이크의 맞은편, 전신을 흑포(黑袍)로 두른 활잡이를 바라보았다.

    궁귀(弓鬼) 안혁수.

    나는 회귀 전의 세상에서 그에 대한 정보를 많이 들어 알고 있었다.

    전 세계 궁수 랭킹 3위.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 세계’다.

    한국이 아니라.

    그는 모든 종족을 통틀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궁수였다.

    다만 궁수 랭킹 1위, 2위, 3위가 거의 차이가 없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세계제일 급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거기에 안혁수는 실제로 한국에서도 전도유망한 양궁선수였다.

    최연소 한국 양궁 국가대표.

    프랑스 COQ국제양궁대회 개인전 금메달.

    아시아선수권 개인전 3관왕.

    세계양궁선수권대회 개인전 금메달.

    올림픽 개인전 2회 연속 금메달, 단체전 은메달.

    제 29회 어진 이 기업 가장 주목할 만한 남자선수.

    제 30회 어진 이 기업 체육대상.

    최초 전국 선수권대회 8관왕.

    .

    .

    다리 부상으로 인해 양궁을 접고 게임계로 넘어오기 전까지 쌓았던 수많은 커리어가 그의 영광을 반증한다.

    다만 그렇게 조국의 영광을 위해 힘써오던 그가 한국을 떠나 러시아로 귀화한 것은 순전히 게임 협회의 패악질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에 방영했던 시사 프로그램을 하나 떠올렸다.

    *       *       *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안혁수의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그의 목소리 역시 잔뜩 떨리고 있었지만 표정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화면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그가 몰래 숨겨 간 카메라에 잡힌 그의 주먹 하나뿐이었으니까.

    [아니, 왜 전달 못 받았나? 협회도 지금 예산이 없어서 말이야. 이번에 상금 비율을 조정하게 되었단 말이지. 자네도 무엇이 우선인지는 알지? 협회가 있어야 대표선수가 있고, 그래야 출전을 할 수 있는 거야.]

    [그렇다고 비율을 갑자기 20%나 올려 버리면 선수들은 뭘 먹고 삽니까!?]

    [어엉? 쌀 먹고 살아야지 뭘.]

    꽈긱-

    다시 안혁수의 주먹이 꽉 말린다.

    너무나 힘을 준 나머지 손톱이 하얗게 변했다.

    [……이번 달에 제 동생 결혼식이 있습니다. 오빠 노릇은 하게 해 주십쇼.]

    [음? 급전이 필요한 건가? 그러면 진작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안혁수의 건너편에 있던 상대는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다.

    비로소 그의 얼굴이 보인다.

    뎀 협회의 전(前) 회장 김협회.

    레드문의 차규엽과는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돈이 필요하면 빌려 주지! 앉아 봐. 안 그래도 내가 차용증을 마침 준비한 게 있었는데……. 내가 또 늘 준비되어 있는 남자 아니겠나?]

    [……알고 그러신 겁니까?]

    안혁수의 말 한 마디에 김협회는 차용증을 꺼내다 말고 그를 뻔히 바라보았다.

    [뭣을?]

    [제 동생이 결혼한다는 것 알고 차용증 준비하신 거냐는 말입니다.]

    [아냐~ 이 차용증은 평소에……]

    [평소에 준비를 어떻게 하시길래 제 이름이 프린트 되어 있습니까?]

    김협회 회장은 차용증을 손에서 놓았다.

    툭-

    정확히는 안혁수의 얼굴에 던진 것에 가까웠다.

    [써. 오빠 노릇하고 싶으면.]

    […….]

    한참 그를 노려보던 안혁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안 써?]

    […….]

    안혁수는 대답하지 않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카메라 시야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너 여기서 나가면 바로 영구 제명이야. 이유는 언제든 만들 수 있는 거 알지?]

    [압니다.]

    [알아? 그러면 나한테 밉보이면 선수 생활 끝인 거 알겠네?]

    [압니다.]

    [진짜야. 다른 시청팀 가면 될까, 이런 생각하는 거 아니지? 가도 똑~같아. 다른 곳 가서 계속 선수 생활 할 수 있을 거 같아? 실업팀이고 나발이고 내 눈에 찍히면 한국에선 선수 생활 못해.]

    [압니다.]

    [알 만큼 아는 사람이 그럼 왜 그래? 룸 한번 데려가 줘? 예전부터 거절하길래 너 빼 놓고 데려갔는데… 사실은 가고 싶던 거야? 맞어?]

    [……그래요. 가요. 갑시다.]

    [어? …야! 야, 안혁수! 어디 가!]

    이윽고, 안혁수의 시야를 담고 있는 카메라가 떨림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안정되어 이내 한 곳에 굳게 고정되었다.

    안혁수의 영상은 단호한 한 마디로 끝을 맺었다.

    [러시아로 갑니다.]

    *       *       *

    경기에 선발할 인원을 선출함에 있어 비리와 불공정함이 파다했고 경기 상금에서 말도 안 되는 비율의 수수료를 제해 선수들의 가벼운 주머니를 더더욱 가볍게, 심지어 대회를 홍보함에 있어서는 선수들보다 협회 고위직들의 체면과 위신을 더욱 중시했다.

    오죽했으면 대회 포스터에 선수들 얼굴과 이름 대신 협회 고위직들의 얼굴과 이름이 더 크게 올라갔을 정도였으니 말 다한 셈이다.

    안혁수의 내부 고발로 인해 김협회 회장은 옷을 벗어야 했지만 지금 은근슬쩍 다른 실업팀의 코치로 들어가 따박따박 국가 지원금으로 나오는 월급 잘 받아먹고 다니는 처지이다.

    국민의 세금이 이런 버러지들에게 쓰이고 있는 현실에 비분강개한 많은 선수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해외로 나가고 있는 실정.

    그중 하나가 바로 안혁수이다.

    ‘드레이크 대 안혁수라.’

    나는 다시 눈을 들어 안혁수의 움직임을 쫓았다.

    확실히 안혁수는 전성기 때만큼은 아니지만 동시대 게이머들에 비해서는 발군의 피지컬을 선보이고 있었다.

    핑- 피잉-

    그가 쏘아낸 화살은 대부분 정확하게 드레이크의 머리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든다.

    가끔 조준기의 영점이 흔들려 화살 몇 발이 엉뚱하게 꽂힐 때도 있었다.

    하지만 안혁수는 조준기를 재조절하면서 당황하는 대신 과감하게 고의로 오조준을 해 목표를 더욱더 정확하게 꿰뚫어 버린다.

    과연 훗날 ‘궁귀(弓鬼)’라고 불리게 될 플레이어다운 실력이었다.

    ……그러나.

    “오오. 아까 내가 한 충고를 바로 받아들인 뒤 체득한 것인가?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쁘군. 그래, 굳이 화살이 빗나갔다고 해서 조준기를 다시 만질 필요는 없어. 그 시간에 차라리 조준점을 임의로 재설정해서 감으로 쏘는 게 훨씬 낫지. 보아하니 아까부터 계속 좌하탄이 나니 우상탄에 맞게끔 다시 쏴 보라고.”

    드레이크는 이미 그런 안혁수의 경지를 한참이나 상회하고 있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쯤 안혁수와 드레이크는 비슷한 실력으로 인해 라이벌 관계 정도일 텐데.’

    그러나 내가 회귀한 이후 드레이크를 꾸준히 데리고 다니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나와 함께 넘은 수많은 사선들은 그의 재능을 극한까지 개화시켰고 거기에 풍부한 경험까지 더해 주었다.

    본의 아니게 최단시간에 최고의 효율을 보이는 육성법이 된 것이다.

    드레이크는 이미 회귀 전 전성기 때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때보다 더욱 강할지도 모른다.

    참고로 회귀 전 드레이크의 스펙은 딱히 없다.

    공식 랭킹도 없고 알려진 레벨이나 스탯도 없었다.

    다만, 그를 증명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커리어.

    PVP 전적 1,684전 1,684승 무패.

    그중 50% 이상은 같은 궁수 유저들을 상대로 한 것이다.

    이 괴물같은 전적은 단순히 이 짤막한 수치 하나만으로도 전 세계를 전율에 빠트렸다.

    한국에서 괜히 ‘용냥’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것이 아니다.

    ‘으음, 드레이크는 게임 좀 한다 싶은 궁수 유저들이라면 무조건 찾아가 PVP를 떴었지. 그러다가 더 이상 플레이어 중 잡을 상대가 없어지자 게임을 접어 버렸고.’

    게임을 접은 이유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의 평소 성격을 감안한다면 아마 무료함을 느껴서일 것이다. 라이벌이었던 궁수 랭킹 1, 2, 3위도 더 이상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쯤 게임에서 사라져 버렸었으니까.

    ‘실제로 드레이크는 나와 레이드 뛸 때가 아니면 파밍이 아니라 PVP를 하고 다닌댔지?’

    어차피 드레이크의 레벨은 자그마치 81이다.

    혼자서 어지간한 몬스터를 잡지 않는 한 레벨업을 하기는 힘드니 그냥 같은 플레이어를 상대하며 반복 숙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

    드레이크는 그래서 늘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어진. 내가 게임을 안 접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바로 너. 그것 말고는 없어.’

    내가 언제나 한 수 위의 차원을 보여 주기 때문에 그는 늘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는 것이다.

    내가 아니었더라면 진즉에 시들해져 버렸을 것이라고.

    그때.

    […이봐. 인간. 우린 뭘 하면 되나? 왜 나를 소환했지?]

    내 어깨 위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있었다.

    죽음룡 오즈. 녀석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녀석은 내 펫으로 전락한 이후 이렇게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나는 저 멀리서 서로를 향해 저격을 날리고 있는 드레이크와 안혁수를 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팝콘이나 가져와라.”

    내 말을 들은 오즈가 울컥한다.

    [인간? 미쳤느냐? 고작 그따위 심부름을 시키려고 나를 소환한 것이냐?]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녀석의 몸은 솔직한지라 벌써 인벤토리에 있는 옥수수를 불가로 가져가고 있었다.

    [이익, 몸이 또 제멋대로! …허나 인간! 이 팝콘이 네가 살아서 누리는 나의 마지막 자비가 될 것이다!]

    “참 하는 김에 나쵸도 좀 부탁한다.”

    [하하, 어이가 없군. 나쵸? 나쵸-오? 저번에 네가 한번 흘려 말했던 ‘토르티야를 튀긴 칩에 치즈, 야채, 살사를 올려 먹는 음식’을 말하는 거냐? 핫하! 난 머리가 나빠서 잘 기억하지 못하겠군. 유감이다, 인간.]

    “잘 아네 뭘. 빨리 만들어 와.”

    [알지도 못하고, 안다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으음~ 바삭한걸. 근데 살사를 조금 많이 넣었다.”

    [옙! 뺄게여, 주인님!]

    오즈가 방심한 사이 펫 시스템이 그의 뇌에 깊이 침투한 모양이다.

    녀석은 화덕에 구운 나쵸에서 살사 소스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팝콘을 튀기는 동시에 핫도그까지 준비한다.

    [……이 수모는 반드시 갚는다.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굴욕을…. 그래, 때가 되면 네녀석들의 묘를 모조리 파내어 주지. 그리곤 유골을 언데드로 만들어 온갖 허드렛일을 시킬 것이다. 좋아, 그리고 지상의 모든 기록을 불태워 이 수치스러운 역사를 말살할 것이야. 아아, 좋아. 거기에 네녀석들의 후손까지 언데드 노예로 부려 먹어 주지. 킥킥킥, 아주 좋아. 좋은 계획이다. 앞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이 계획을 구체화시키……]

    틱-

    그런 오즈의 뒤통수에 설탕과 카라멜이 담긴 통 하나가 날아들었다.

    [뿌앵.]

    그것을 던진 이는 바로 쥬딜로페였다.

    나는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오즈를 향해 쥬딜로페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팝콘은 달달한 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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