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53화 (553/1,000)
  • 553화 사냥감으로 전락한 사냥꾼 (1)

    <드레이크: 급한 일이 생겼다 어진.>

    나는 드레이크의 메시지를 받자마자 바로 답장했다.

    “무슨 일인데?”

    그러자 드레이크의 음성 메시지 답장은 즉각적이었다.

    [혼자 사냥 중이었는데 누군가 다짜고짜 PK를 걸어오는군. 단순한 어그로꾼은 아닌 것 같다.]

    “단순한 어그로가 아니라니? 그러면?”

    [전문가 냄새가 난다.]

    드레이크는 나에게 게임 시야 화면을 공유해 주었다.

    이내 드레이크가 보고 있는 풍경이 내게도 공유된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자마자 눈을 찌푸렸다.

    ‘……검은 화살이라.’

    꽁무늬가 뿔 모양으로 생겨 기묘한 회전력을 가지는 특이한 외형의 화살이다.

    촉끝에는 기괴하게 비틀린 미늘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강력한 독을 품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퍽! …퍼억!]

    지금도 드레이크를 노리고 날아들고 있는 이 화살의 디자인은 내게도 상당히 익숙한 것이었다.

    나도 익히 잘 아는 이의 것이다.

    ‘……레드문에서 현상금 사냥꾼을 고용한 건가?’

    지금 드레이크를 노리고 있는 이는 다크 게이머들 가운데서도 암살 실력으로 유명한 존재였다. 아마 레드문의 사주를 받고 빅리그 전에 드레이크를 죽여 사망 패널티를 먹이려는 계획 같았다.

    하지만 나는 미래 지식이 있기에 이 사태에도 어렵지 않게 대비할 수 있었다.

    “드레이크, 잘 들어. 지금부터 너를 노리고 있는 놈의 정체와 실력, 전투 패턴을 알려줄……”

    그러나, 이어지는 드레이크의 말에 나는 벙찐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진. 괜찮다. 안 들어도 된다.]

    “……뭐? 왜?”

    그러자 드레이크는 화면을 자기 얼굴 쪽으로 전환해 씩 웃어 보였다.

    [지금 한창 재밌는 중이거든.]

    ……?

    *       *       *

    몇 시간 전.

    궁수 플레이어 안혁수는 암살행에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한 자루의 거대한 활, 그리고 등에 맨 전통에 꽉 차 있는 화살다발.

    허벅다리의 단도와 허리띠 자루에 든 마름쇠와 화약들.

    그는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매로 도구들을 흩었다.

    분명 누구나 시선을 둘 정도로 반듯하게 잘 생긴 얼굴이었지만 온기라고는 한 점도 없어 보인다.

    그때.

    -띠링!

    안혁수에게 통신이 걸려왔다.

    -(알 수 없음)-

    모르는 번호.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통신을 연결했다.

    그러자 이내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혁수. 레드문 일 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바로 마동섭의 목소리였다.

    그는 일찍이 승부조작 사실이 알려져 게임계에서 완전히 제명, 퇴출당한 존재.

    안혁수는 역겹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연락하지 마라, 승부조작이나 하는 쓰레기야.”

    안혁수는 대격변 이전 한국 공식 랭킹 중 궁수 부문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오던 선수이다.

    하지만 예전 지역 대표팀 결정전의 결승전에서 만난 협회 소속의 우승 내정자에게 노골적인 편파 판정으로 패배한 뒤 한국 협회에 회의를 느껴 러시아로 귀화한 케이스였다.

    마동섭은 안혁수에게 빈정거리듯 말했다.

    [누가 누구 보고 쓰레기래? 너도 결국 돈 때문에 레드문의 퀘스트를 받아들인 것 아냐? 닳고닳은 뉴비 구단 선수들 암살 말야.]

    “내가 너 같은 줄 아나?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안혁수는 침을 한번 퉤 뱉고는 마동섭과의 통신을 일방적으로 끊어 버렸다.

    사실 그는 다크 게이머, 그 중에서도 PK를 전문으로 하는 암살자였다.

    특정 인물을 암살하고 그 대가로 게임머니를 챙겨 현실의 돈으로 환전하면서 살아가는 게이머.

    러시아 프로구단에서 프로 데뷔 러브콜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레이 시티에서 PK계의 절대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CUBEmania’라는 닉네임으로 살인자의 탑 2층을 점거하고 있는 이도 바로 그이다)

    하지만 이번에 안혁수가 이번에 레드문의 암살의뢰를 받아들인 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프로게이머가 있다고?’

    바로 드레이크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자신은 한국의 협회가 싫어 해외로 탈출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전도유망한 선수, 그것도 자신과 같은 궁수 플레이어가 있다는 소식에 안혁수는 호기심을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협회를 썩게 만든 장본인인 레드문의 의뢰에도 불구하고 수락했던 것이다.

    “한국으로 온 것을 후회하게 될 거야.”

    안혁수는 자조감을 담아 중얼거렸다.

    그것이 자기 때문이 될지 한국 협회 때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윽고, 안혁수는 오늘의 목표대상인 드레이크를 만나러 그가 자주 출몰한다는 맵으로 향했다.

    원래 레드문의 요구대로라면 제 1순위 처치대상은 마동왕, 2순위가 마태강, 드레이크는 3순위에 불과했지만 그는 굳이 드레이크를 제일 먼저 찾아갔다.

    이윽고, 그는 ‘제 3보급창고’에 도착했다.

    안혁수는 일명 B롱이라고 불리는 긴 통로 부근의 암벽 위에 저격 자세를 취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반짝!

    그를 상징하는 거대한 활 끝에 날카로운 촉이 빛나고 있다.

    이윽고, 안혁수의 예리한 눈에 드레이크의 얼굴이 포착되었다.

    검붉은 후드, 검은 흑발. 눈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은 미남형의 얼굴.

    거기에 망원(望遠) 기능이 담긴 저격수 특유의 외눈안경까지.

    목표로 삼은 대상의 얼굴이 알고 있던 내용과 딱 들어맞는다.

    “사감은 없다. 잘 가라.”

    안혁수는 시위를 힘껏 당겼다가 놓았다.

    강력한 데미지를 품은 화살이 목표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한데?

    -팅!

    드레이크가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리는가 싶더니 화살은 그대로 그를 스쳐 지나가 벽을 때렸다.

    “……?”

    안혁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내 그는 재빨리 화살 한 대를 재장전했고 같은 궤도로 쏘아 보냈다.

    그러나.

    -팅!

    이번에도 드레이크는 목을 양 어깨 사이로 바짝 움츠려 안혁수의 화살을 피해 냈다.

    “……아니, 이게 무슨?”

    안혁수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그는 당황한 와중에도 프로답게 세 번째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있었다.

    이번에는 자그마치 세 대나.

    그러나.

    -팅! -팅! -팅!

    이번에도 상황은 같았다.

    드레이크는 첫 번째 화살과 두 번째 화살을 상체 무빙만으로 피해냈다.

    그리고 세 번째 화살은 자신의 허벅지 안쪽에 매어 둔 단검집으로 막아내 튕겨내 버렸다.

    “미친?”

    안혁수가 입을 딱 벌린다.

    첫 번째는 운이라고 해도 두 번째, 세 번째는 무엇이란 말인가?

    보고 피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렇다면 저것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실로 말도 안 되는 영역의 직감(直感)이라는 것인데…….

    ‘무슨 FPS의 신이라도 된다는 거냐?’

    결국 안혁수는 허리춤에 매단 보온병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안에는 따듯한 물 대신 화약이 가득 들어 있었다.

    “이게 포탄이다, 포탄!”

    안혁수는 보온병을 냅다 집어던졌다.

    그러나, 드레이크는 이미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안혁수의 위치를 잡아낸 뒤였다.

    “웨어하우스 너머 B롱인가. 걸뽀로군.”

    말을 마친 드레이크는 잽싸게 대응사격을 했다.

    쇠뇌에서 쏘아진 화살 한 대가 숨어 있던 안혁수의 어깻죽지에 박혔다.

    “큭!?”

    안혁수는 바로 이어지는 대응사격에 당황해 포션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보온병은 던져졌다!”

    콰쾅! 쿠르르르륵!

    ‘마그마 장구벌레(위험등급:A)’의 분비물을 한 방울 한 방울 모은 폭탄!

    어지간한 랭커라도 원 킬을 낼 수 있을 정도로 흉악한 물건이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포탄이 삽시간에 찢어발겨지며 거대한 불벼락을 내뿜었다.

    ……바로 공중에서 말이다!

    “뭣!? 저게 왜 저기서 터져!?”

    목적지에 제대로 닿기도 전에 터진 포탄을 향해 안혁수는 두 눈을 찢어질 듯 크게 떴다.

    이내 그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두 개의 쇠뇌.

    그리고 두 발의 화살.

    드레이크는 놀라운 연사속도로 안혁수를 향해 사격함과 동시에 날아오는 포탄을 꿰뚫었던 것이다.

    화르르륵-

    B롱 가운데 흩뿌려지는 불꽃세례.

    안혁수는 화염 너머 가려진 시야에 있을 드레이크의 위치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어느 쪽이냐.”

    하지만

    푸확-

    드레이크가 나타난 곳은 오른쪽도 왼쪽도, 아래쪽도 위쪽도 아니었다.

    바로 불길의 정가운데!

    드레이크는 화염저항을 올려 주는 ‘억센홍련매생이(B급 아이템)’를 담배처럼 물고 안혁수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작열하는 불꽃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쇠뇌를 치켜든 그의 입에선 나지막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반샷.”

    핑-

    드레이크의 화살이 불길한 소리를 내며 안혁수를 향했지만 아쉽게도 그의 화살은 안혁수의 정수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화염으로 인한 미약한 상승기류인가. 헤드샷을 노렸는데 아쉽게 되었군.”

    드레이크는 어깨와 다리에 붙은 불길도 무시한 채 안혁수를 바로 뒤쫓았다.

    스나이퍼 업계에서는 사냥꾼이 사냥감으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안혁수는 빠르게 거리를 좁혀오는 드레이크를 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궁수인 놈이 왜 인파이트 싸움을 하려 드는 거지?”

    이럴 경우는 단 두 가지뿐이다.

    미친놈이거나 고인물이거나.

    안혁수는 상대에 페이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뒤로 돌아 달리는 자세로 강궁을 폭사한다.

    쇄애애애액! 퍼펑!

    드레이크는 뺨을 핥고 지나가는 강력한 저격에 잠시 멈춰 섰다.

    적의 전진을 저지한 안혁수는 내심 고소를 머금었다.

    ‘쫄았나?’

    그럴 만도 하다. 백 무빙을 하며 전방의 적을 저격하는 행위는 정말로 쉽지 않으니까.

    심지어 그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심하게 흔들리는 시야로도 에임이 뺨을 스쳐 갈 정도로 정교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웅얼웅얼…….”

    드레이크는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며 더욱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거지?’

    안혁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짜증이나 놀람, 욕설 따위의 대사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드레이크와의 거리가 좁혀 올수록 웅얼거림 소리가 점점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흐음. 꽤나 정교한 무빙샷이군. 가까이에서 보면서 연구해 봐야지.”

    “하지만 약간 아쉬운 점이 있어. B롱 저격 포인트 기준, 34분경 웨어하우스 아래의 적을 사격할 때는 사격 이후 굳이 활의 크리크를 조절하지 말고 화살이나 탄환의 오브젝트 피격 당시 일어나는 흙먼지 위치를 보고 조준점을 임의 가늠한 뒤 표적 기준 우측 상단을 겨냥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일반적으로 좌하탄이 나게 마련인 저격 포인트니만큼 반복 숙달이 중요하달까.”

    “사격을 하는 도중 크리크를 자꾸 조절해 버릇하면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적과의 거리와 고도 차이도 미세하게 벌어져서 정확한 영점을 잡기가 힘들 텐데.”

    “아냐아냐, 파지법부터 잘못 되었어. 그리고 대기 자세에서 하박에 쇠뇌를 고정시켜야 하는데 자세가 참…… 저건 다시 배워야 하겠군. 잘못 들인 버릇은 고치기도 힘든데 말이야. 아, 내가 이참에 지도해 주는 것도 좋을지도.”

    “딸깍딸깍 하는 소리를 보니 활시위를 손질한 지 오래되었나 보네. 궁수 무기는 파츠별로 별도 내구도가 있어서 항상 손질해 줘야 하는데. 이따 죽이기 전에 살짝 알려 줘 볼까?”

    .

    .

    드레이크의 혼잣말을 듣는 순간.

    오싹-

    안혁수의 등골에 서리가 내렸다.

    …철컥!

    마침내 거리를 어느 정도 좁힌 드레이크가 쇠뇌를 들었다.

    화살은 물론이요 서로의 말도 제대로 닿을 만한 거리다.

    이내 안혁수의 모습을 확인한 드레이크의 표정이 왠지 밝아진다.

    “요즘 궁수 플레이어 보기 힘든데. 이거 반갑군 그래.”

    궁수 플레이어가 보기 힘들다고?

    대격변 이후 밸런스 패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랭킹 상위권에 궁수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안혁수가 막 무어라 말하려는 순간.

    드레이크가 덧붙였다.

    “좀 잘 나간다 싶은 궁수들은 내가 다 죽여서 말이야. 하하하.”

    산뜻한 미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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