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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52화 (552/1,000)
  • 552화 적폐와의 전쟁 (4)

    -베이스칩니다: 진짜 저 아니에요ㅠㅠㅠ저 후원금도 엄청 많이 보냈고요, 이 방에서 활동 경력도 오래 됐어요...믿어주세요ㅠㅠㅠㅠㅠ

    나는 지금 박철환의 다중인격, 다중욕망, 다중아이디, 다중아이피를 한꺼번에 목격하는 중이다.

    ‘…이놈도 참 여전하네.’

    내가 회귀 전부터 알던 놈이다.

    박철환. 일명 ‘베이스칩니다’, 몇 년 뒤면 스트리머로 데뷔해 꽤나 유명해지는 녀석이다.

    패드립에, 약자 멸시, 성별, 지역, 세대 간 혐오, 거기에 여자 스트리머 성희롱, 성추행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결과적으로 인터넷 방송 시장 위축까지 초래하게 되는 놈.

    훗날 엄청 유명해지는 어그로꾼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간대에서는 아직 평범한 시청자에 불과하기에 사람들은 놈의 정체를 잘 모른다.

    윤솔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속삭였다.

    “어진아, 근데 이 사람은 진짜 아닐걸? 나 하꼬일 때부터 꾸준히 구독해 주던 사람인데……?”

    나는 잠시 영상 송출과 마이크를 껐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윤솔에게 진지하게 상황 설명을 해 주었다.

    “솔아. 너는 지금 ‘작업’을 당하는 중이야.”

    “……작업?”

    윤솔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나는 지금 ‘닳고닳은 뉴비’ 구단이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를 앞두고 당하고 있는 개별적, 산발적 공격들에 대해 얼추 개요를 짚어주었다.

    “네가 당하고 있는 작업 과정은 일단 ‘악플작업’이야.”

    “악플작업? 그게 뭐야?”

    “악플러들을 사냥개처럼 양성하고 육성한 뒤에 기업형으로 운용하는 거지. 하나의 부대로 편성해서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만들어.”

    “와아… 악플러들한테도 스폰서가 있는 거야?”

    “그럼 있지. 악플도 돈이 되는 시대야. 그것도 아주 많이 되지.”

    나는 윤솔이 당한 악플작업의 배후에 누가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레드문, 그리고 그곳의 대표이사 차규엽.

    놈은 대포폰과 대포통장을 이용해 수많은 악플러 군단을 산하에 거느리고 있다.

    중국에서 값싸게 사들인 대량의 아이디 역시도 놈의 무기 중 하나다.

    악플부대원들은 몇 개월 전부터 목표로 한 커뮤니티, 혹은 작업 대상이 된 스트리머의 채널에 상주하며 정상인 코스프레를 하면서 작업대상과 그 주변 인물들과 친숙해진다.

    거의 반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가상의 인물 행세를 해 왔기에 갑자기 가입해서 분탕을 친다는 비난이나 댓글알바 의심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놈들은 7명이 한 조로 운용되며 대포폰과 대포통장, 아이디 구매비용에 모텔이나 숙소 합숙비, 식대에 악플 1건당 단가까지 모두 합산하여 보통 한 달에 5천만 원 이상이 든다.

    단기간 빡세게 운영되고 사라지는 ‘특작조’ 같은 경우에는 그 배 이상의 비용이 들 때도 있다.

    남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는 일인데 이 과정마저도 매우 신랄하고 전문적이어서 일반인으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학벌 등 커리어를 보고 선별해서 뽑은 지능형 알바들이고 윗선에서 어떤 논조와 논지로 비난을 할지 다 정해 주는데다가 자신의 댓글에 반박이 달리거나 해도 어차피 기계적으로 하는 작업에 불과하기에 감정적으로 동요하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한 ‘악플러’들인 것이다.

    ‘왜 이렇게 잘 아냐면……나도 회귀 전에 돈이 궁할 때 제안 많이 받았거든.’

    물론 악플 다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되어 거절했지만 권유는 참 많이 왔었다.

    주로 뎀 사의 경쟁 게임사들에서 보내는 헤드 헌팅이었지만 나는 모두 거절했다.

    돈에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악플 작업을 해야 하는 대상이 바로 ‘뎀’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악플을 달아야 한다니, 그것이 돈 때문이든 관심 때문이든 참 사람으로서 못할 짓이다.

    “아무튼 이 녀석은 미리 싹수를 잘라 둬야 해.”

    나는 방송이 시작되기 전에 먼저 자리를 떴다.

    회귀 전 인방에 미쳐 살던 관계로 어느정도 네임드 악플러, 분탕충들은 이미 머릿속에 어느 정도 리스트를 만들어 둔 상태다.

    윤솔의 채팅방에서도 몇 보인다.

    윤솔에게 접근하는 대상을 알았으니 발본색원이야 쉬운 일이다.

    “자, 그럼 역탐지를 해 볼까?”

    나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나는 차를 몰아 인천의 한 외곽으로 향했다.

    4단지 하문마을.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나 사회초년생, 대학생들이 자취하는 저렴한 원룸촌이 있는 곳.

    나는 그곳의 한 주소를 짚어 짚어 찾아갔다.

    ‘예전에 베칩(베이스칩니다)이 자기가 옛날에 살던 집 가서 추억 방송 한 적 있었는데…… 그게 어디였더라?’

    기억을 더듬고 더듬자 이내 눈에 익은 풍경이 보인다.

    한때 내가 살던 곳 근처라 더욱 익숙하다.

    ‘여기구나!’

    거의 본능에 가까운 감각이 한 집을 특정했다.

    방범창이 살벌하게 쳐져 있는 한 창문, 현관으로 가니 근처에 가득 쌓인 신문 무더기나 상한 우유가 든 주머니가 보인다.

    ‘집에 안 사나?’

    도저히 사람 사는 집의 외형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더러운 몰골이다.

    하지만.

    “안에 틀어박혀 있네요.”

    뒤에서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유창, 녀석은 내 뒤에 바짝 붙어 따라오며 입을 열었다.

    “집에 있는지 어떻게 알아?”

    “문 손잡이 위가 먼지 없이 깨끗하잖아요. 도어락이랑.”

    “……아.”

    내가 입을 벌리며 감탄하자 유창이 피식 웃었다.

    녀석은 주머니에서 명부 하나를 꺼내들었다.

    “박철환이라……우연히도 제가 옛날에 관리하던 사무소 고객 출신이었네요. 대충 이 근처 사는 것 같다고 하셔서 한번 뒤져 봤는데 여기 이름이 딱 있네. 세상 참 좁다니까.”

    유창은 손가락을 뻗어 초인종을 눌렀다. 연거푸 몇 번이다.

    -띵동! -띵동! -띵동! -띵동!

    아무 대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손가락질을 한 결과.

    [……누구세요?]

    반응이 왔다.

    나는 인터폰에 대고 입을 열었다.

    “작업 본부에서 나왔습니다.”

    분명 놈에게는 윗선이 있다. 자금을 대주며 지령을 내리는 윗선 말이다.

    나는 오늘 놈에게서 그 정보를 알아내야 했다.

    하지만 박철환은 쉽지 않았다.

    [미리 얘기하고 온 거 아니면 엄마라도 문 안 열어 줘요.]

    그는 말없이 인터폰을 끊어 버렸다.

    나는 약간 답답해졌다.

    눈앞에 윤솔에게 미친 듯이 악플을 달던 놈이 있는데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니!

    “어휴, 문을 부수거나 할 수도 없고.”

    바로 그때.

    “형님은 너무 폭력적이세요. 준법정신도 조금 부족하십니다.”

    유창이 내게 딴지를 걸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녀석은 나를 향해 한번 씩 웃어 보였다.

    “문은 열라고 있는 건데 부수긴 왜 부숩니까?”

    동시에, 유창은 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찰칵!

    그 열쇠로 박철환의 집 문을 너무나도 쉽게 열었다.

    “어? 뭐야, 그 열쇠?”

    내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묻자 유창은 어깨를 으쓱했다.

    “예전에 사채질 할 때 철환이가 저에게 신세를 좀 졌었는데, 그 뒤부터 언제든 편하게 들어오라고 저한테 마스터 키 줬었거든요. 얘 집에 제 칫솔도 있어요.”

    말을 마친 유창은 성큼성큼 박철환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안에서 까무러치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히이이이이익!? 아저씨 여긴 어떻게!? 저번 달 이자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아저씨라니 인마. 네가 나보다 몇 살이 많은데.”

    유창은 방 안으로 들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던 박철환의 앞에 턱 걸터앉았다.

    나 역시 놈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주거침입죄가 약간 걱정됐지만 박철환 녀석의 범죄행각을 밝혀야 하는 마당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눈앞에 있던 박철환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깔끔한 외모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방 밖의 지저분한 풍경과는 달리 내부는 깨끗했다.

    유창은 박철환에게 어깨동무를 걸며 말했다.

    “네 채권은 다른 사람에게 팔았으니 나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예. 예?”

    “나 사업 접었다고. 손 씻었어.”

    “…예에. 그, 그럼 저랑은 이제 아무 상관도 없으신 건가요?”

    “그으럼~ 오늘은 그냥 친구로서 놀러온 거야.”

    유창의 말에 박철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낯빛은 파랗게 질려 있었고 떨리는 팔다리도 여전했다.

    유창은 그런 박철환 앞에 놓인 사과 하나를 발견했다.

    “근데 손 씻었다고 해서 손아구 힘이 약해지는 건 아니더라.”

    말을 마친 유창은 손을 뻗어 사과 하나를 꽉 움켜쥐었다.

    우지직-

    사과가 두부처럼 박살나며 안에서 즙이 마구 흘러나온다.

    그것을 본 박철환의 까무잡잡한 얼굴이 사과 속살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때쯤 해서 내가 박철환의 앞에 앉았다.

    “네 신상 이미 다 털려서 이미 커뮤니티에 엄청 공유되고 있던데. 알지? 막 네 모교 대학교 커뮤니티나 대나무숲 같은 데도 올라오고 있어.”

    “……예.”

    “부반장 님 팬들 중에는 진짜 능력 있는 해커들도 많아. 더 털리기 전에 자백하는 게 어때?”

    “……예?”

    내 말에 박철환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고개를 든다.

    나는 작게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박철환의 머리를 탁 짚은 채 또박또박 말했다.

    “내놔. 레드문 악플부대 자료.”

    이참에 윗대가리들까지 모조리 털어먹어 주마.

    *       *       *

    악플 캡쳐본, 악플을 단 게시글 링크, 보고 후 돈이 들어온 통장 내역, 통화로 지시받았던 내용들 녹취록, 비용 결제를 받은 각종 서류들, 이메일 내역, 용역계약서 등등…….

    나는 박철환의 얼마 되지 않은 사채빚을 갚아 주는 대가로 놈에게서 수백 기가가 넘는 자료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와 별개로 레드문 특작조 소속의 다른 악플러들의 신상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들이 레드문의 대표이사 차규엽과 연관이 있다는 자필 진술서랑 녹음, 동영상도 땄다.

    나중에 재판할 때 증인으로 나서 줄 수 있으면 특별히 악플에 대한 고소는 면해 준다고 하자 박철환은 감지덕지하며 고개를 수그렸다.

    오늘의 충격이 상당했던지, 아마 녀석이 다시 인방계에 손을 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아마 레드문의 보복이 두려워서라도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겠지.

    유창은 차규엽이 정말 싫은 듯 오늘 얻은 증거들을 보며 낄낄 웃었다.

    “큰형님…아니 차규엽 그놈도 이제 끝이네요. 뒤에서 이런 추악한 짓이나 하고 앉아 있고. 어휴 그 나이 처먹고.”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로는 약해. 레드문의 이사급을 끌어내릴 수 없지.”

    “네? 악플이 이렇게나 심한데요? 작업인 것 모르는 사람이 당했으면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던데.”

    “그래도 법률 상 악플은 경범죄야. 적어도 높으신 분들에게는 그렇지.”

    “……허어.”

    유창은 씁쓸한 표정으로 서류에 적힌 악플들을 읽었다.

    비꼬기, 인신공격, 패드립, 지역비하, 고인모독, 성별 혐오, 세대 갈등 조장, 약자 멸시 등등…… 인간이 토해 낼 수 있는 가장 추악한 것들이 모조리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이 돈과 거래되는 현실의 세태가 적나라하게 담겨있기도 하다.

    “……돈이 뭔지 참, 악플도 부리고.”

    “이 세상의 원칙은 등가교환 아니겠냐. 비슷한 것들끼리 교환되는 거지 뭐.”

    나는 유창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마몬 레이드 때도 느낀 것이지만 참 돈의 얼굴은 양면적이다.

    좋은 일에 기부를 할 때 쓰이는 돈이 있고 악플을 살 때 쓰이는 돈도 있다.

    “뭐,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핸드폰을 들었다.

    악플 부대의 배후를 밝혀낸 것은 좋은 일이지만 사실 내가 준비하고 있는 비장의 무기는 이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차규엽을 끌어내릴 수 있는 가장 큰 무기. 그것은 바로……

    -위이이이잉!

    순간, 나는 핸드폰을 쥔 손에 진동을 느꼈다.

    “……음?”

    핸드폰에 온 것은 전화도 메일도 아닌 게임 메시지 알람이었다.

    <드레이크: 급한 일이 생겼다 어진.>

    이번에는 드레이크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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