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51화 (551/1,000)
  • 551화 적폐와의 전쟁 (3)

    박철환(32,무직).

    그는 쓰레기 가득 쌓인 원룸에서 모니터를 향해 시뻘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밝게 웃는 윤솔의 모습이 보인다.

    “솔아, 솔아 내 이름 한 번만 불러 줘. 손 한번만 잡아 줘.”

    그는 화면 속 빛나는 모습을 향해 손을 뻗어 보았다.

    게임계에 가상현실이 있다면 인방계에는 증강현실이 있다.

    그는 유령처럼, 신기루처럼 부유하는 홀로그램 영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윤솔의 손을 그저 통과할 뿐이었다.

    윤솔은 눈앞에 있는 박철환을 무시한 채 계속 밝게 웃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수많은 채팅창 메시지들이 그런 그녀의 주위를 재잘재잘 맴돈다.

    “이름도 안 불러 주고 손도 안 잡아 주네. 예전에 하꼬방일 때는 안 그랬는데. 변했네 우리 솔이.”

    박철환은 윤솔의 얼굴을 노려보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내가 너 처음 방송 데뷔할 때부터 챙겨 봐 줬잖아. ……내가 너한테 얼마를 후원했는데. ……근데 내 닉네임 한번 안 불러 줘? ……나는 너 잘되라고 딴 스트리머 채널이나 커뮤니티에 홍보글도 싸고 클립도 따고 다 했는데! 어!?”

    그는 모니터를 켜 수많은 클립과 홍보글들을 쭉 늘어놓았다.

    윤솔의 예쁜 모습들이 찍힌 1분 내외의 작은 영상, 움짤들이 그득그득하다.

    사랑스러운 미소, 애교, 머쓱한 표정, 초롱초롱한 눈빛 등등…….

    하지만.

    그 반대편 모니터에 있는 영상이나 움짤들은 윤솔의 정반대 모습을 담고 있었다.

    재채기를 하거나 웃을 때 잇몸이 드러났거나 순간적으로 턱 살이 접히게 나왔거나 깜짝 놀랐을 때 지었던 이상한 표정 등, 윤솔의 미모를 깎아내리기 위한 악의적인 순간 캡쳐들이 가득하다.

    박철환은 윤솔의 굴욕 사진, 무보정 사진, 순간적으로 못생기게 나온 사진들을 채팅창에 마구 올렸다.

    동시에, 대기하고 있던 그의 핸드폰, 컴퓨터들이 각각의 기기에 로그인된 계정으로 댓글들을 일제히 쏟아내기 시작했다.

    -영호빌런: 진짜 못생겼다ㅋㅋㅋ저얼굴로 어케 뷰티 스트리머? 일단 뷰티에서 에런데?

    -장동군123: 와꾸 실화? 이목구비가 양심이 없네~ ㅋㅋㅋ

    -콘디근형: JMT, 존못탱이란 뜻이죠~ 일단 생긴거에서부터 거르고 갑니다~

    .

    .

    VPN프로그램을 돌려 아이피를 바꾼 뒤 연달아 동시에 출격시키는 악플들.

    단순히 윤솔의 채팅창뿐만 아니라 각종 스트리밍 커뮤니티 게시판들에도 잔뜩 도배해 놓았다.

    이윽고 어지러워진 게시판, 채팅창을 보자 박철환은 흐뭇해졌다.

    화면 속 윤솔이 당황하여 쩔쩔매는 것을 보자 그는 묘한 정복감을 느낀다.

    마치 자신이 윤솔을 노예로 부리는 주인이 된 듯한 기분.

    “너 하나 정도는 내가 얼마든지 좌지우지할 수 있지. 그러니 내 말 잘 들어 솔아. 그러면 내가 상으로 이런 것도 줄 수 있으니까.”

    박철환은 윤솔을 향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허공에 대고 몇 번 클릭을 했다.

    -띵동!

    <‘베이스칩니다’님이 영상 도네이션을 보냈습니다-1,000원>

    <다들 정말 너무하세요 우리 윤솔님에게 왜들 이러시나요? 유유유 점점점>

    그러자 화면 속 윤솔의 표정이 조금 나아졌다.

    “늘 고마워요 베이스칩니다 님.”

    그러자 박철환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때쯤 해서.

    위이이잉-

    그의 핸드폰 중 하나가 울린다.

    박철환이 전화를 받자 그 너머에서 쉰 듯한 목소리 하나가 울려 퍼졌다.

    [어, 뭐하냐?]

    “지금요? 윤솔 작업 중이에요.”

    [잘했네. 그거 끝나고 드레이크 방 가서 해. 마태강도.]

    “네.”

    [악플 하나 당 단가 계산이니까 열심히 하고. 활동기록 다 남겨서 결재 올려.]

    “네.”

    박철환은 단순히 비뚤어진 팬심으로만 윤솔의 방에 분탕을 치는 것이 아니었다.

    알 수 없는 의문의 단체에서 사주를 받고 센 시급을 받아 가면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윤솔을 까라는 거지?’

    그는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일단 움직였다.

    원래 하꼬방 시절부터 윤솔의 팬이었기도 했지만 그녀의 방송이 핫해지면서 점점 소외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그러던 마당에 윤솔의 오래된 열혈팬 출신들에게 거액의 악플 알바 제의가 들어왔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대기업 급 스트리머가 된 윤솔의 관심을 다시 받고 싶었기도 했다.

    ‘한때는 방송실이랑 장비도 없어서 아픈 엄마 옆에서 방송하던 년이 좀 뜨니까 건방져 가지고……. 주제를 알게 해 줄게 솔아, 너는 나랑 있는 게 어울리는 급이라고!’

    박철환은 수많은 컴퓨터와 핸드폰을 이용해서 또다시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재민이아빠: 애들 정서 상 안 좋다. 걍 방종해라~~

    -웅이mom: 개쓰레기 방송이네 보면 볼수록 정말^^

    -베이스칩니다: ↳우리 솔님에게 자꾸 악플달지 마세요 님아ㅠㅠㅠ

    -레고밟았니: ↳눈물의 쉴드 오졌고요^^ 진짜 얘 윤솔 부계정 아님? ㅎㅎ

    -하늘고래: 노잼노잼노잼노잼노잼노잼노잼노잼노잼노잼노잼노잼

    .

    .

    그 와중에 꼭 하나씩 자기의 본래 아이디로 쉴드 글도 올리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자기 아이디를 윤솔의 부계정으로 몰아가면서 희열을 느끼기까지 하고 있다.

    ‘아! 이것이 일심동체인 걸까, 솔아?’

    마치 윤솔과 자기 자신이 동일인이 된 듯한 감각에 박철환은 황홀한 감각을 느끼며 잠시 몸을 떨었다.

    그 희열은 갑자기 방송에 고인물이 나타나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딱 거기까지만.

    […재밌니 철환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박철환의 몸에 있던 수많은 털들이 죄다 빳빳하게 곤두섰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머릿속이 하얗게 물드는 느낌.

    ‘뭐지? 뭐지? 우연인가? 그냥 저놈이 아는 사람하고 이름이 겹친 건가?’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화면 속, 윤솔의 옆으로 바짝 다가온 고인물은 마치 이쪽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듯 시선을 박철환에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이윽고 고인물의 입이 열렸다.

    [영호빌런, 장동군123, 콘디근형, 우르곰, WKDQKF777, 어둠의시청자, 레고밟았니, 재민이아빠, 웅이mom, 하늘고래…… 이것들 다 네 아이디잖아 철환아.]

    그는 박철환이 가지고 있는 대포폰이나 공기계, IP우회 프로그램들로 만든 분탕용 댓글들을 정확히 짚어 내고 있었다.

    고인물은 아이디들을 줄줄줄 읊으며 영구 강퇴를 먹인다.

    …핏! …핏!…핏! …핏! …핏! …핏! …핏! …핏! …핏!

    켜져 있던 박철환의 핸드폰이나 컴퓨터 화면들이 하나하나 검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때.

    [……아 참. 깜빡할 뻔했네.]

    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베이스칩니다’ 이것도 너지? 영구 강퇴할게.]

    박철환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알았지?어떻게알았지?어떻게알았지?어떻게알았지?어떻게알았지?어떻게알았지?어떻게알았지?어떻게알았지?어떻게알았지?어떻게알았지?어떻게알았지?어떻게알았지?어떻게알았지?’

    들켰다는 충격, 그리고 이제 더는 윤솔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이 공포가 되어 몰려온다.

    그때.

    [에이, 고인물 님. 아니에요. 이분은 제 오래된 열혈 시청자 분이세요.]

    윤솔이 자신을 편들어 주는 것이 보인다.

    박철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는 재빨리 타자를 쳤다.

    -베이스칩니다: 맞아요ㅠㅠㅠ저는 윤솔님 팬이에요. 아까부터 악플도 하나도 안 썼구...활동도 나름 오래 했는데...ㅠㅠㅠㅠ너무하세요

    박철환은 들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악플은 경범죄이기에 경찰에서 잘 수사해 주지 않는다.

    해외에라도 거주하고 있을 경우에는 범죄인 인도요청을 하기 귀찮기 때문에 송환까지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 있다고 해도 토르 브라우저, VPN 등을 이용해서 몇 겹으로 IP보안을 쳐 두면 잡는 것은 정말 힘들어진다.

    랜덤 형식의 휘발성 IP들이 범람하고 있는 시대이므로 더더욱 그렇다.

    ‘절대 안 걸려! 이 아이디만은 악플 쓴 적 한 번도 없다고!’

    아무리 그래도 박철환은 나름 윤솔이 하꼬 시절 때부터 지켜봐왔던 열혈 시청자 중 하나이다.

    그동안 윤솔과 오랜 시간동안 정을 쌓고 교감을 주고받아 온 이 ‘베이스칩니다’라는 아이디만은 지켜내고 싶었다.

    -베이스칩니다: 진짜 저 아니에요ㅠㅠㅠ저 후원금도 엄청 많이 보냈고요, 이 방에서 활동 경력도 오래 됐어요...믿어주세요ㅠㅠㅠㅠㅠ

    박철환은 다소 비굴하게까지 보일 정도로 해명하고 있었다.

    윤솔의 동정표라도 얻어 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철환아, 형은 다 보여. 니 구라.]

    고인물은 그저 귀찮다는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다.

    [형이 사실 해킹 능력자야. 너가 쓴 댓글들은 다 뒤에 일련번호 같은 게 똑같이 붙어 있거든 지금? 아이디가 한두 개가 아니네. 지금 캡쳐해서 채팅방에 올려 줄까 아주?]

    그 말에 박철환은 다시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느껴야만 했다.

    ‘다, 다 보인다고?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박철환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아직 강제퇴장 당하지 않은 다른 아이디들을 이용해서 여론을 조작하려 했다.

    서브 아이디로는 고인물의 말이 말도 안 된다고 반박하는 동시에 메인 아이디로는 계속해서 동정표를 얻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너무 당황했기 때문일까?

    급하게 움직이던 박철환의 손이 그만 삐끗하고 말았다.

    -베이스칩니다: 고인물 이쉨ㅋㅋㅋ아주 구라가 입에 붙었네ㅂㅅㅅㄲ 지가 뭔 수로 IP인지 일련번호인지를 해킹해ㅋㅋㅋㅋ윤솔도 이 말 믿으면 ㅂㅅ인증이다 진짜 칵! 퉤! 근데 이년 ㄹㅇ개멍청해서 믿을거같긴 함ㅋㅋㅋㅋㅋ 쓰레기놈년들끼리 아주 대놓고 붙어먹네 기냥ㅋㅋㅋㅋ

    -레고밟았니: ㅠㅠㅠ저 진짜 아니에요 윤솔님. 믿어주세요...제가 님 홍보글 쓰고 클립 따고 도네한 게 얼만데...저 같은 순수 열혈한테 이러시면 안 되죠...

    실수로 각 아이디로 올려야 할 댓글 내용을 바꿔서 올려 버린 것이다.

    그러자 채팅창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고인물은 그저 귀찮다는 표정, 윤솔의 낯빛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박철환은 아직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베이스칩니다: ㅠㅠㅠㅠ윤솔 님 왜 그러세요? 믿어달라니깐요ㅠㅠㅠ저 아이디도 이거 하나 뿐이에요ㅠㅠㅠ진짜 아시잖아요ㅠㅠㅠ

    -레고밟았니: 와;;; 베이스칩니다 저분 나도 존X 오래 전부터 본 열혈인데, 저분 강퇴하면 윤솔 인성 개X쓰레기인거 셀프인정? 어 인정. 빨아먹을 대로 빨아먹고 이용해먹을 대로 이용해먹고 이렇게 내치죠? 인성 역겹죠?

    이때쯤 되자 고인물은 바로 행동에 들어갔다.

    결국 박철환의 마지막 화면까지 연달아 꺼졌다.

    ‘베이스칩니다’라는 아이디마저 영구제명을 당한 것이다.

    “으, 으윽!?”

    박철환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재빨리 다른 화면을 켰다.

    커뮤니티에 검색을 하자 윤솔의 방송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던 다른 시청자들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 보인다.

    -와;;;; 방금 박철환 사태 봄???

    -윤솔이라는 스트리머 채널에서 있었던 일임ㅋㅋㅋㅋ 박제됨 이미

    -고인물 진짜 사이다다ㅎㅎㅎ

    -박철환이 누구임?

    -대기업 스트리머 방에서 부계돌리다 강퇴당함ㅋㅋㅋㅋ

    -하나는 선플 하나는 악플 해서 스트리머 농락하다가 딱걸림 ㅂㅅ;;

    -엌ㅋㅋ고인물 해킹 능력자인거 구라였대ㅋㅋㅋ그냥 찍어본 거라고

    .

    .

    이 일련의 사태에 엄청난 수의 시청자들이 윤솔의 방에 몰려들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박철환을 욕하는 댓글들이 엄청나게 많아진다.

    문제는 분노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하는 욕이 아니라 경멸과 역겨움을 담고 있는 조소나 조롱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부들부들부들……

    박철환은 두 주먹을 피가 날 정도로 쥐고 몸을 떨기 시작했다.

    욕먹는 것은 관심을 받는 것이라서 나쁘지 않지만 우습게 여겨지고 조롱받는 것만은 참을 수 없다.

    더군다나 그토록 좋아했던, 하지만 가질 수 없던, 그래서 더욱 부숴 버리고 싶었던 윤솔과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절망이 그를 더욱 더 화나게 했다.

    이내, 박철환은 두 눈을 부릅떴다.

    “고인물, 윤솔. 너희들은 사람 잘못 건드렸어. 나 진짜 무서운 사람이야, 지금부터 그걸 보여 줄게. 막말로 내가 잠수 좀 탔다가 다시 계정 만들어서 활동하면 어쩔 건데? 내가 어디 사는지 알아? 모르잖아. 하지만 나는 너희들을 알지. 네놈년들은 다 뒤졌다 진짜.”

    그는 복수심에 불타는 표정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대포폰과 공기계들을 집었다.

    한층 더 가열찬 악플과 여론조작을 벌이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띵동!

    아무도 찾아올 이 없는 이 반지하 원룸의 초인종이 울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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