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9화 적폐와의 전쟁 (1)
차규엽.
그는 레드문의 신제품인 ‘LINKED3021’ 캡슐이 목표 판매량의 250%를 초과 달성했다는 보고를 받고 한껏 기분이 좋아져 있는 상태였다.
“그것 보라고. 내 말대로만 하면 안 되는 게 없다니까. 다 밑에 것들 쥐어짜고 후려갈기면 어떻게든 되게 되어 있어. 거, 소비자들 반응은 어때?”
그 말을 들은 비서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가격이 아주 조금 살짝 부담되긴 하지만 디자인도 깔끔하고 성능도 우수한 편이라 큰 반발은 없습니다. 다만 발열 부분에서 조금 클레임이 걸려 오고 있는 듯한데…….”
“발열? 그런 거야 기술팀을 조지면 될 일이지. 내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
“죄, 죄송합니다.”
“생산 단가랑 행사 이벤트, 판촉 같은 것에만 신경 쓰라고. 어차피 개돼지들은 신제품 나왔다 하면 일단 환장하고들 달려드니까. 우리같이 소비자 충성도 높은 기업이 또 있나?”
“그야 없죠.”
“것 봐. 가상현실 게임 만세다! 하하, 시장이 얼마나 갈지도 모르는데 뽑아먹을 수 있을 만큼 뽑아먹어야지.”
한참 흐뭇해하던 차규엽은 이내 책상 위의 서류들을 슥 밀쳤다.
그리고 비서를 향해 눈을 빛냈다.
“그리고. 알아보라던 것 좀 알아봤나?”
차규엽의 말에 비서의 표정이 난감해졌다.
“마동왕의 신상 말입니까? 그게…….”
“그게?”
“그게 저…… 알려진 게 하나도 없어서.”
“뭐야?”
차규엽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비서는 더욱 더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보안이 너무 철저해서 도저히 뭔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말도 안 돼. 그 정도 실력이 있는 놈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어디 작전세력이 작정하고 키운 게 아니고서야 그게 말이 돼?”
“아무래도 전적이나 뒷배가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완전한 개인입니다.”
“그럼 나름대로 정보가 있을 것 아냐? 이름이라거나 나이라거나. 법인 명이나 개인사업자 명 같은 것도 몰라? 아니면 협회에 낸 서류라거나.”
“전부 불명입니다. 그리고 닳고닳은 뉴비 구단은 대격변 이후 생겨난 신생구단인지라 협회랑은 아예 연이 없어서…….”
“흥신소에도 의뢰해 봤어?”
“예. 그런데도 모두 실패했습니다. 놈도 비슷한 부류의 흥신소들을 고용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신상을 철저하게 블라인드 처리해둔 것은 물론이고 역탐지용 함정들까지 뿌려 놓은 바람에 오히려 저희 쪽의 신상이 털릴 뻔했습니다.”
비서의 말을 들은 차규엽이 황당하는 표정으로 입을 벌린다.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했다.
“아니, 그놈 대체 뭐 하는 놈이야? 보통 사람이 그렇게까지 자기 신상에 신경을 쓰나?”
“예에. 사실 몇 년 전부터 대기업급 스트리머들의 신상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가 많이 되었던 만큼 요즘 이런 쪽으로 신상 보호에 신상털이범 역탐지를 하는 흥신소들이 워낙에 많이 생겨서…….”
결론은 마동왕에 대해 알아낸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뭐. 상관없어.”
하지만 차규엽은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는 눈을 빛내며 비서를 돌아보았다.
“이봐, 내가 옛날 얘기 하나 해 줄까?”
차규엽의 말에 비서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내, 차규엽의 입에서 옅은 웃음이 흘렀다.
“나는 말이야. 정말 어렵게 시작했지.”
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였다.
차규엽이 뒷골목 양아치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오른 것은 몇몇 핵심 인물들만 아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그는 무수한 범죄에 연루되었으며 그때마다 운 좋게, 때로는 특유의 교활한 두뇌로 잘 빠져 나왔다.
레드문!
국내 1위 캡슐제조사이자 갓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개발한 초국적기업인 뎀의 산하 협력기업.
뎀의 실질적인 한국 자회사.
공식적인 매출액은 1조 원에 이르며 직원 수만 해도 3천 명, 비정규직 직원들이나 자회사, 협력업체들까지 추산하면 그 배도 넘는 규모를 가진 우량기업.
그 자본력을 통해 정치, 경제, 군 등 다양한 곳에 시커먼 로비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양가적인 조직.
그 결과가 이것이다.
차규엽은 차갑게 식은 커피를 한 잔 쭉 들이켰다.
“내가 한창 조직 생활을 할 때 모시던 큰형님이 계셨지. 뭐 결국 내 손으로 보내드렸지만. 그 분에게 배운 게 하나 있어.”
“……어떤 겁니까?”
비서가 묻자 야경을 담은 통유리창에 비친 차규엽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목표물이 단단하면 그 주위를 흔들면 된다는 것 말야.”
비서는 차규엽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으음, 하지만 마동왕의 신변을 모르기 때문에 가족관계도 알 수가 없습니다만.”
그러자 차규엽이 비서의 발목을 구둣발로 확 걷어찼다.
비서가 신음을 참으며 물러나자 그는 한심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세상에 ‘가족 같은’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닳고닳은 뉴비’는 가족 같은 구단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다.
차규엽은 마동왕의 주변 사람, 즉 같은 구단 선수들을 목표물로 삼고 있는 것이다!
* * *
한편.
나는 지금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상대는 일본 랭커인 아키사다 아야카였다.
“안녕하세요, 아키사다 씨.”
[네 마동왕 씨. 오랜만이에요.]
“오? 한국어가 많이 느셨네요.”
[고마워요. 하루 두 시간씩 꼬박꼬박 공부하고 있어요.]
나는 바로 본론을 꺼내기로 했다.
게이머들이야 뭐 원래 레이드 뛰느라 바쁜 사람들이니 서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서 좋을 것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번에 한국에 기사 나온 것 보셨어요?”
내가 묻자 아키사다가 당황한 것이 수화기 너머로도 느껴진다.
[엣? 어어, 무슨 기사요?]
“음? 아 모르셨나? 엄청 빅이슈였는데. 저랑 아키사다 씨랑 열애설 난 거요.”
그러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윽고, 아키사다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이미 알고 있긴 했어요. 하,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다지 크게 보도되지 않아서…….]
“네? 아닌 것 같던데. 일본에서도 보도 엄청 크게 됐잖아요?”
[크,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요?]
“일본 메이저 스포츠 신문 1면에도 대서특필 되어 있던데요?”
[…….]
내 말에 아키사다는 말을 잃었다.
뭔가 우물쭈물거리는 기색인데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열애설 난 거 어떻게 하실 거예요?”
내가 묻자 아키사다는 뭔가 당황하는 눈치, 이내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으음, 음, 어어. 이런 문제는 제가 큰 관심이 없고. 또 뭐, 일일이 반박하기도 그렇고 해서…….]
“…해서?”
[…그냥 무대응 할 생각이었습니다.]
……대응을 안 해 버린다고? 열애설이 났는데?
다소 이해가 안 되는 반응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아키사다가 쭈뼛거리는 태도로 물어왔다.
[마동왕 씨는…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야 기자회견 열어서 아니라고 해야죠.”
내가 뭔 소리냐는 듯 말하자 순간 아키사다가 움찔한다.
[그, 그러시겠죠?]
“그렇죠. 아키사다 씨도 얼른 해명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뒤에서 이런 의혹 떠돌게 내버려두면 선수 생활에 지장 갈 수도 있어요. 가뜩이나 저번에 아키사다 씨가 하신 인터뷰 내용 때문에 소문 부풀리기 좋아하는 기자들에게는 좋은 떡밥처럼 보일 겁니다. 사실 저야 뭐 상관없긴 한데… 그냥 아키사다 씨를 위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러자 아키사다의 목소리가 다시 살짝 밝아졌다.
[그렇군요. 마동왕 님은 상관없으시다 이거군요.]
“네? 뭐가요?”
[저와의 열애설이요.]
……어쩐지 포인트가 이상한 곳에 맞춰져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아키사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마동왕 씨가 불쾌해 하시지는 않을까 고민이었어요. 아니라고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동왕 씨의 선수 생활에 폐가 되지 않게 저 역시 열심히 해명해 볼게요!]
어찌 되었건 전화는 잘 끝났다.
나와 아키사다는 언제 한번 또 식사를 하기로 하고는 용건을 마무리했다.
그때.
“누구였어요?”
앞에서 들어오는 질문.
큰 눈에 호기심 어린 빛을 반짝이는 여자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바로 유다희다.
“그냥, 게임 친구.”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다희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마왕님 누구랑 썸 타는 거 아녜요?”
“어? 그럴 리가. 아니야.”
내가 손사래를 치자 유다희는 생긋 웃었다.
“에이, 팬클럽 회장 앞이라고 그렇게 숨기지 않으셔도 돼요~”
“……진짜 아닌데.”
“후후후, 저나 마교 회원들은 마왕님의 게임 플레이를 좋아하는 거라서 연애 관계에 참견할 생각은 없답니다. 마왕님이 행복하다면 오케이~”
유다희가 쿨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이 조금 의외였던지라 나는 역으로 물었다.
“그러는 너는 연애 안 해?”
내가 묻자 유다희의 얼굴이 급격히 달아올랐다.
“저, 저요? 저는 왜…….”
“그냥. 연애 얘기 나와서 물어봤어.”
그러자 유다희는 괜히 식탁 위의 식기들을 만지작거리거나 물을 따르거나 하며 허둥거린다.
“하하, 하. 저야 뭐. 늘…….”
“늘 뭐?”
“……아니 그냥. 요즘 신경 쓰이는 놈은 하나 있는데… 에이, 아님다!”
유다희는 괜시리 빨개진 볼을 물수건으로 누르며 손사래를 쳤다.
이윽고. 주문했던 식사가 나온다.
나는 오늘 유다희와 밥을 먹으러 예전 아키사다와 함께 왔던 한식당으로 왔다.
긴히 할 말이 있다는 그녀의 긴급 메시지를 받고 말이다.
유다희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만간 차규엽이 움직인다고 하네요.”
그녀는 레드문 안에 믿을 만한 사람을 정보원으로 쓰고 있다.
나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그저 조용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아마,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 전에 뭔가 수작을 부릴 생각이겠군.”
“맞아요. 지금 마왕님 신상을 캐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것 같은데…… 다행스럽게도 신원정보가 뭐 하나 알려진 것이 없어서 다행이에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 주변 사람들을 노리겠군? 특히나 구단 선수들을 말이야.”
“…헉!? 그걸 어떻게!? 정확해요.”
유다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런 유다희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인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현재 가장 자격 논란이 심한 선수는 윤솔이지. 우선적인 저격 대상일 거야. 아마 따로 운영하는 댓글부대를 투입할 공산이 크지.”
“어어어!? 맞아요!”
“그 다음으로는 다른 선수들을 게임 속에서 차례로 공략하여 사망 패널티를 먹인 뒤 게임 대회 일정을 어지럽힐 테고.”
“……우와. 마왕님도 레드문 안에 따로 정보원이 있나요?”
유다희는 팔에 돋은 소름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미래를 살다 온 나로서는 뻔한 일이다.
‘협회…아니 레드문 놈들이 이런 식으로 망가트린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지.’
어느 스포츠 협회나 재능있는 꿈나무들의 희망과 꿈을 착취하고 빨아먹으며 기생하는 놈들이 꼭 있다.
인맥과 청탁, 혈연, 지연, 학연으로 제 욕심을 채우며 불공정한 경합과 학대, 성과 조작으로 진정한 인재들을 생매장시키고 세금을 허투루 낭비하게 만드는 벌레들.
“자꾸 스멀스멀 기어 나오니까 짜증나네. 이참에 아주 박멸해 버려야겠다.”
차규엽은 게임계에 뿌리내리고 있는 오랜 적폐이다.
놈은 게임에는 쥐뿔만큼도 관심이 없으며 이 바닥의 질서유지와 발전에는 더더욱 무관심하다.
오로지 돈, 돈만 바짝 빨아먹고 언제든 업계를 뜰 생각을 하고 있는 기생충.
나는 이놈을 뿌리 채로 뽑아 버릴 계획이었다.
한편, 내 말을 들은 유다희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긴 전쟁이 되겠군요.”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아니, 금방 끝날걸?”
“……?”
내 말을 들은 유다희는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덧붙였다.
“이 시장 자체가 생긴 지 얼마 안 됐잖아. 나쁜 놈들은 뿌리내릴 시간도 없었을 만큼 빠르게 컸지.”
“……그렇다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뿌리내린 악은 뽑기가 쉽지 않겠지만, 지금의 차규엽 정도야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보이지 않는 뿌리와 줄기 성장에 공을 들인 나무는 태풍을 버티지만 눈에 보이는 잎사귀와 과일의 성장에만 공을 들인 나무는 태풍에 뽑혀나가기 마련이다.
나는 고개를 흘끗 돌려 식당 건너편 건물을 바라보았다.
<점포임대>
그곳에는 경영악화로 망한 캡슐방과 그 앞에 붙어 있는 현수막이 보인다.
<신모델 캡슐 출시! 전 좌석 ‘LINKED3021’! 사장님이 미쳤어요!>
캡슐방이 왜 폐업했는지를 알려주는 내용의 현수막이 반쯤 찢어진 채 태풍에 너덜거리고 있었다.
“……더 크기 전에 잘라 버려야겠다.”
내가 조용히 한마디 하는 순간.
…뚝!
현수막의 끈이 끊어졌다.
펄럭펄럭-
그것은 이내 태풍에 휩쓸려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아주 멀리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