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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48화 (548/1,000)
  • 548화 데스 나이트(Death Knight) (4)

    -띠링!

    [로그아웃 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와 주세요.]

    .

    .

    푸슉-

    캡슐이 문이 열렸다.

    나는 헬멧을 벗고 캡슐 밖으로 나왔다.

    “아오, 또 이러네 진짜. 이 고물 캡슐!”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감각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티셔츠의 등짝 부분.

    “등짝, 등짝을 보자.”

    나는 거울에 대고 내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티셔츠를 벗자 예전과 달리 군살 가득한 등과 옆구리가 눈에 들어온다.

    헬스 트레이너의 부재중 통화를 수십 통씩 씹어 먹은 결과이려나?

    “헬스 트레이너 전화가 칼로리가 높나 보네. 씹으면 씹는 대로 찌니…….”

    나는 혀를 차며 등짝의 상태를 살폈다.

    등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마 등받이 부분의 발열 문제 때문이겠지?

    “이 정도면 1도 화상쯤 되려나?”

    나는 표정을 찡그리고는 찬 물로 샤워를 했다.

    연고까지 바르고 난 뒤, 나는 캡슐의 모델명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LINKED3021’

    레드문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신모델.

    기존 모델에 비해 성능은 큰 차이 없지만(발열 문제로 치면 오히려 퇴보한 듯) 디자인만은 깔끔하고 예쁘다.

    “……내 기억에 의하면 이 신모델 프로젝트를 추진한 게 바로 차규엽 대표이사란 말이지.”

    나는 얼마 전 인수한 캡슐방의 전 사장님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장사가 잘 되어도 문제, 안 되어도 문제라며 울상 짓던 소시민들을 그 누가 위로해 줄 것인가?

    새 프로젝트 발촉에 따른 부담을 고스란히 하청업체나 가맹점주들에게 전가한 채 거품만 가득한 성과를 뽐내는 윗대가리 놈들이 차규엽을 필두로 아직도 한 둘이 아니다.

    이런 놈들이 자칭 대표니, 이사니, 위원이니 하면서 해먹을 것 다 해먹는 한 업계와 시장의 발전은 저해될 수밖에 없다.

    나는 뜨겁게 달아오른 캡슐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차규엽. 네가 야심차게 벌인 사업이 네 목을 옥죌 거다.”

    몇 년 뒤 벌어질 미래, 나는 그것을 앞으로 확 당길 계획이었다.

    ……한편.

    나는 PC를 켜 내 계정의 상태창을 불러왔다.

    <경매장>

    내가 게임에서 구한 아이템들이 온라인 판매점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등록 아이템: 1,642건>

    <693개의 아이템이 ‘높은 가격’에 입찰되었습니다>

    <949개의 아이템이 경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동하는 악귀 힘줄 목걸이’가 최종가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날카로운 송곳니 단검’이 유찰 되었습니다>

    <‘고르고스의 악몽 대낫’이 최종가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

    .

    요 몇 달간 구해 왔던 아이템들 중 내가 쓰기엔 부족하고 버리기엔 아까운 것들, 그러면서도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게임 내 밸런스를 무너트릴 만한 것들을 모두 제외하고 업로드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발군은 당연히 이 아이템이다.

    -<아서 왕의 대검 ‘엑스칼리버’> / 한손무기 / S

    신화 속에 등장하는 영웅의 검.

    수없는 수라장을 겪어냄으로서 자신의 힘을 증명해 낸 자가 아니라면 들어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공격력 +0

    -모든 속성 저항력 +500%

    -특성 ‘연쇄살인’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백전노장’ 사용 가능 (특수)

    -특성 ‘고속재생’ 사용 가능 (특수)

    S등급의 아이템.

    맨 처음 내가 깎단을 얻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의 한손무기이다.

    특이하게도 공격력이 0이지만 이 검이 S등급인 이유는 패시브로 붙어 있는 3가지 특성에 있다.

    ‘연쇄살인’ 특성은 이 칼에 죽은 생명의 숫자 1당 1의 물리공격력을 영구히 올려 준다.

    ‘백전노장’ 특성은 이 칼에 가해진 모든 충격에 비례한 만큼의 물리방어력을 영구히 올려준다.

    ‘고속재생’ 특성은 이 칼을 쥔 자가 다른 칼에 베여도 피가 흐르지 않을 정도의 미친 재생력을 부여한다.

    즉 이 칼은 사용자와 함께 레벨 업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칼을 전 세계인이 볼 수 있는 현금거래소에 등록해 두었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무명의 겜덕후 3021’ 님에게 98,761개의 메일이 도착하였습니다>

    내 경매장 용 아이디에 온 메일의 수는 거의 10만 개에 육박한다.

    -아이템 어디서 얻으셨나요?????제발...

    -삽니다. 무조건 삽니다. 집, 차, 땅, 영혼 다 팔아서라도 삽니다@@@@@

    -현금박치기 에누리 가능하신가요? 현찰로 50억 준비되어 있습니다,,제발,,,

    -주식거래로 가능한가요?

    -태평양 쪽에 있는 제 섬이랑 바꾸실래요?

    -법인 명의로 매입하고 싶습니다. 10~11자리 자리 수 금액으로 맞춰드릴 수……

    .

    .

    이걸 언제 다 읽어 보나 아연실색해 하고 있는 사이.

    -띠링!

    방금 온 메일 하나가 상태창 제일 위에 떴다.

    나는 뭔가 싶어 메일을 열었다.

    그러자 약간 뜻밖의 내용이 보인다.

    <발신인: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좌시할 수 없는 이름이 떴다.

    ‘…현 공식 세계랭킹 1위라.’

    나는 침음성을 삼키며 메일을 읽어 내렸다.

    메일은 영국 황실의 일원이자 대공 작위를 가지고 있는, 그리고 그 신분이나 혈통보다는 ‘전 세계 뎀 통합 랭킹 1위’라는 타이틀로 더 유명한 ‘튜더’가 직접 보낸 것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귀하가 경매장에 등록한 아이템 ‘엑스칼리버’를 보고 문의 드립니다. 귀하의 멋진 검은 제 눈길을 몇 시간 째 모니터에서 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 놀라운 검을 보는 순간 영혼 그 자체가 떨리는 듯한 설렘으로……>

    수려하지만 담백한 문장들이 이어진다.

    <아서 왕은 영국에서 예수만큼이나 유명하고 또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특히나 그의 칼 ‘엑스칼리버’를 모르는 영국인은 없을 것이라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제 조국인 영국에서 발원된 이 아이템을 영국 황실의 일원인 제가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은 저 개인이나 영국 황실에게 있어서 크나큰 불행이자 슬픔일 것입니다. 천재적인 직감과 놀라울 정도의 창의력으로 이 아이템을 손에 넣은 당신의 플레이에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깊은 존경을 표하는 바이며 부디 이 아이템을 저희 영국 왕실 길드 ‘로열 레이드’에……>

    내 아이템에 대한 예찬과 이런 아이템을 구한 나의 플레이에 보내는 경의,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이 아이템을 갈망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핵심만을 짚는다.

    “그래서 얼마 내겠다는 건데?”

    현 세계 프로리그에 S급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이가 존재하기는 할까?

    ……아니, 단언컨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내 S급 아이템, 그 중에서도 최상급 옵션을 가진 이 성장형 아이템의 가치는 그야말로 내가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튜더의 제안을 살폈다.

    그러나 그의 제안은 영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다른 수많은 메일들이 제시하고 있는 금액에 비하면 초라하다 못해 헛웃음이 날 정도였으니까.

    “뭐? 5억? 겨우 이 금액을 내겠다고? 지금 장난하자는 건가?”

    나는 튜더가 생각보다 많이 쫌팽이라는 생각을 했다.

    말로는 아서 왕과 엑스칼리버가 영국의 인물과 물건이니 자기들이 꼭 가져가야겠다고 하지만 제시한 금액을 보면 그런 절실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아니 다른 사람들은 100억 넘게 지르는 마당에 꼴랑 5억이라니. 영국 황실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나……으응?”

    순간, 나는 튜더를 욕하다 말고 두 눈을 크게 떴다.

    튜더가 보낸 제안서 말미에는 내가 미처 읽지 못한 문구 몇 개가 붙어 있었다.

    “…아! 오오! 이래서 영국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튜더의 제안서를 끝까지 읽었다.

    그렇다.

    튜더가 제안하고 있는 것은 5억을 주고 내 엑스칼리버를 ‘매입’하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바로 ‘임대’ 계약서이다!

    나는 제안 내용을 차근차근 흩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그러니까 월 5억씩 내고 내 칼을 12~36개월간 리스하겠다는 거지?”

    최소 단위가 12개월, 1년이니 총 60억이다.

    그 돈을 받고 아이템을 이 기간 동안만 임대해 달라는 것이다.

    꽤나 솔깃한 제안이었기에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쨔식. 섣불리 욕해서 미안. 꽤 경우 있는 놈이었구나 너?”

    모든 메일들이 다 아이템 매매를 원하고 있는 마당에 임대차 계약서는 또 신박하다.

    어차피 이 엑스칼리버의 경우는 성장형 아이템이니 누군가에게 빌려 주었다가 돌려받으면 그만큼 아이템의 옵션도 진화해 있기에 나에게도 손해날 것 없는 제안이었다.

    으레 평범한 아이템은 시간에 따라 게임 내 파워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자연스럽게 감가상각이 이루어지지만 이 엑스칼리버의 경우에는 성장형인 만큼 오히려 스탯이 추가로 붙어 값어치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튜더 정도 되는 최정상급 플레이어가 사용해 주면 아이템의 가치는 더욱 빠르게 올라가겠지?”

    거기에 길드 차원에서 매입하는 것이니 튜더만 쓰는 것도 아닐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엑스칼리버를 돌아가면서 쓰고 또 쓸 테니 24시간 365일 풀로 돌아가게 되겠지.

    그렇게 되면 차라리 나와 함께 있는 것보다는 영국 길드에 임대되는 것이 이 엑스칼리버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다.

    “좋아. 나쁘지 않은 거래다.”

    나는 바로 튜더에게 답장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임대차계약증서>

    임대인 ‘고인물(무명의 겜덕후 3021)’을 ‘갑’이라 칭하고 임차인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로열 레이드)’를 ‘을’이라 칭한다. 상기 당사자간의 ‘갑’의 소유인 하기 아이템을 ‘을’에게 임대……본 계약에 의한 임대료는 한화기준 월 금 500,000,000원으로 하며 ‘을’은 본 계약체결과 동시에 ‘갑’에게 선급하고 이후 매월 말일까지 익월분을 ‘갑’에게 지참 선급한다. 선급치 아니할 때에는 이 계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으며……

    “오케이.”

    나는 전송 버튼을 누른 뒤 경매장 창을 껐다.

    생각보다 튜더는 도의를 아는 친구였다.

    “아구구구… 삭신이야. 너무 오래 쉬었나? 이거 진짜 운동 좀 해야겠는데.”

    나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뗀 뒤 기지개를 켰다.

    간만에 못다 한 운동이나 할 겸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찰나.

    “……음?”

    나는 경매장 창이 꺼진 뒤에 떠 있는 신규 메시지 하나를 발견했다.

    그것은 다른 서버에 접속되어 있는 마동왕 명의로 온 메일이었다.

    <마왕님! 지금 바로 좀 뵐 수 있을까요?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서……>

    유다희가 보낸 메일이었다.

    평소답지 않게 상당히 다급한 어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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