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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47화 (547/1,000)

547화 데스 나이트(Death Knight) (3)

우득- 우드득-

나는 몸을 틀어 전신 관절을 풀었다.

오늘의 레이드는 1:1 승부, 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아보는 자리이다.

상대는 S급 몬스터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의 스펙을 자랑하는 ‘칠귀타(七鬼墮) 데스나이트’의 2세대 개체.

●REC

녹화 또한 잘 되고 있다.

‘잘 찍혀라. 이 레이드 영상은 나중에 엄청 중요한 곳에 쓰일 테니까.’

나는 얼굴과 상태창 등 나를 특정할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모자이크로 블러 처리한 뒤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옥좌 앞에는 장신의 기사 한 명이 오연히 선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덜너덜한 회색 가죽 위에 시커먼 쇠사슬들로 엮인 사슬 갑옷을 걸쳤고 머리에는 용의 이빨로 만들어진 투구를 썼다.

한쪽 손에는 서슬 푸른 긴 장검을 들었고 다른 손에는 민무늬의 둥그런 흑색 방패를 들었다.

등에는 창날에 쐐기들이 박힌 거대한 장창을 메고 있었다.

<데스나이트 ‘킹 아서(King Arthur)’> -등급: S / 특성: 어둠, 언데드, 뽑기, 1:1, 백전노장, 군단전술, 선택, 앙버팀, 연쇄살인, 원탁의 기사

-서식지: ‘칼침의 탑 9층’

-크기: 3m.

-‘바람이 불고, 비에 젖고, 태양이 회전하며, 바다가 에워싸고, 땅이 이어지는 한……’

-아서 왕-

데스나이트 ‘아서 왕’이 내 앞으로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좀 쫄리는데.”

나는 눈앞에 있는 초엘리트 데스나이트에게 약간 주눅 들었다.

이 데스나이트는 회귀 전 온 세계 수많은 공격대의 집중포격을 받고서도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전설의 몬스터이다.

그로부터 수년이나 지난 후, 영국 게임계의 살아 있는 전설 ‘튜더’가 그를 따르는 왕실 공격대를 데리고, 국가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자그마치 99일 동안 문을 두드려 겨우 무릎 꿇린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지금 그런 괴물과 1:1, 그것도 꼼수 없는 정공법 레이드를 펼치려 하는 것이다.

“자, 그럼 시작부터 풀 파워를 내 볼까.”

지금은 남 눈치 볼 것 없다.

나는 시작부터 바로 ‘야수화’ 특성과 ‘싸움광’ 특성을 발동시켰다.

내가 흥분 상태에 빠지면 자연적으로 스피드와 공격력이 올라가는 패시브 타입의 발동기, 하지만 흥분 상태 판정이란 캡슐 속 육체의 심박 수로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숨을 살짝 참아주는 것 정도의 꼼수로도 얼마든지 발동시킬 수 있지.’

내가 숨을 참자 심박 수가 상승했고 자연스럽게 속도와 물리공격력 역시 상승했다.

동시에 피부에서 씨어데블의 끈적한 점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파팟!

나는 데스나이트에게서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났다.

[오-오오오!]

데스나이트는 커다란 대검을 휘둘러 나를 베려 했으나 이내 내가 바닥에 깔아 놓은 점액을 밟고 미끄러지는 바람에 칼의 궤도는 틀어져 버렸다.

콰쾅! 우지지직!

대검에서 뻗어 나온 검붉은 빛이 돌기둥 하나를 때려 부순다.

칼이라기보다는 철퇴에 가까운 위용이었다.

순간.

[오오?]

점액을 밟고 휘청거리던 데스나이트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쿠드드드득-

그것은 내가 바닥에 왼손을 대고 와류 특성을 발동시켰기 때문이다.

“자, 이리 와라.”

나는 돌바닥도 뒤틀어 버리는 데스웜의 힘으로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이내 데스나이트는 내 쪽으로 주춤주춤 끌려오기 시작했다.

[오-오오오오!]

데스나이트는 엄청난 근력을 가진 육전형 몬스터이다.

놈은 등에 메고 있던 창을 들어 바닥에 꽂고는 내 힘을 버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놈과 힘겨루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펄쩍!

나는 왼손을 바닥에서 떼고는 데스나이트의 앞으로 뛰어갔다.

콰쾅!

데스나이트 역시 왼손에 든 방패를 들어 내 쪽으로 내뻗었다.

맞으면 스턴이 걸리는 차지 어택!

그러나 나는 그것을 맞자마자 바로 놈에게 반사 데미지를 내뿜었다.

터-엉!

내가 스턴에 걸린 동안 데스나이트 역시도 스턴에 걸린다.

그리고 상태이상이 풀리는 것은 간발의 차이로 내가 먼저였다.

상태이상에 걸린 것도 내가 먼저이니 당연한 일이다.

…푸푹!

나는 두 개의 깎단을 뻗어 데스나이트의 복부를 헤집어 놓았다.

이내 검록색의 역한 기운이 데스나이트의 전신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깎단의 도트 데미지에 벨제붑의 독 데미지가 중첩된 것이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나는 데스나이트의 몸에 도트뎀을 건 즉시 뒤로 물러났다.

콰콰쾅!

데스나이트는 손에 들고 있던 대검을 바닥에 꽂는다.

그러자 묵직한 충격파가 땅 속에 가득 차 지면 위로 툭툭 범람해 올랐다.

와지지지직!

요란한 굉음과 함께 돌바닥이 찢어지고 그 안에서 강철로 된 칼의 벽이 융기해 내 등 뒤를 가로막았다.

적의 탈출로를 봉쇄하는 아서 왕의 ‘군단전술’ 특성 패턴 중 하나이다.

그러나.

…꾸드드득!

나는 온몸에 씨어데블의 미끌미끌한 점액을 두른 채 크라켄의 틈 특성을 이용해 칼날의 미세한 틈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간다.

[오-오오오오오!]

데스나이트는 대검을 휘두르며 나를 바짝 추격해 왔다.

나는 놈이 칼의 장벽을 뛰어넘는 즉시 거리를 좁혔다.

“바라던 바지.”

고인물 모드였다면 도망다니기에 바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마동왕의 상징이 된 마몬의 건틀릿을 들어 데스나이트의 안면을 후려갈겨 버렸다.

콰-콰쾅!

무시무시한 충격파가 데스나이트의 머리통을 양 어깨에서 잡아 뽑는다.

거기에 나는 대망자 특성으로 인해 언데드에게 가하는 데미지가 두 배로 적용된다.

그리고 피카레스크 마스크의 공격력 버프 역시도 톡톡히 한 몫 하고 있었다.

총 5만이 넘는 데미지가 한순간 데스나이트의 아래턱에 가해졌다.

…빠각!

데스나이트의 아래턱이 윗턱을 뭉개며 일그러진다.

동시에 놈의 목도 기형적으로 꺾여 버렸다.

일반적인 몬스터였다면 이 한 방으로 승부가 결정 났겠지만.

…꾸구국!

데스나이트는 과연 위험등급 S급, 그중에서도 정점에 위치한 존재답게 내 공격을 맨몸뚱이로 버텨냈다.

[우우우우…]

놈은 심지어 내 주먹에 맞은 충격을 기회로 삼아 뒤로 거리를 벌리려 했다.

주 무기인 창과 장검이 둘 다 중거리형 냉병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과 나의 거리는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데스나이트에게 주먹을 꽂아 넣는 즉시 킬 체인 특성을 발동해 놈의 목에 철조망 올가미를 걸어 놨기 때문이다.

촤악- 차라라락!

나는 몸에서 뿜어져 나간 철조망을 되감아 데스나이트를 내게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다시 2연타!

…콰쾅!

나는 계속해서 데스나이트에게 주먹을 날렸다.

아서 왕은 전 세대 보스였던 리차드2세와는 달리 반사 데미지 특성이 없는 개체였기에 상대가 수월했다.

[그-오오오오!]

이내 데스나이트는 망가진 턱을 잡아 뽑아 버리고는 목구멍 아래에서 시커먼 불길을 내뿜기 시작했다.

지독한 온도의 불 마법이 나에게 끼얹어졌다.

“엇차.”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기동력으로 바닥을 굴러 화염 샤워를 피했다.

하지만 데스나이트의 공격은 끈질기고 또 파괴적이었다.

…쿠르르륵!

피했다고 생각한 순간 불기둥은 허공에서 궤도를 틀어 나를 추격해 왔다.

그 모습은 흡사 한 마리의 뱀 같았다.

회귀 전, 놈에게 전멸당했던 수많은 공격대가 악몽처럼 회상하던 한 마리의 거대한 칠흑뱀.

하지만 나는 전혀 주눅 들지 않는다.

“검은 뱀이라, 마침 나한테도 그런 게 한 마리 있지.”

나는 재빨리 하반신 중앙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동영상 속에 검은 모자이크로 처리되는 하나의 작은 덩어리.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것은 모자이크 박스가 아니라 마름모꼴의 비늘이다!

[이런 빌어먹을! 감히 나를 이딴 데서 불러내다니!]

그것은 바로 죽음룡 오즈였다!

“프렌드 쉴드!”

나는 작은 사이즈의 검은 도마뱀 오즈를 꺼내 쥐고 앞으로 냅다 내던져 데스나이트의 화염 마법을 막아냈다.

[아아아아앗뜨거! 야! 인마!]

오즈는 날개를 펼쳐 데스나이트의 화염방사를 나름 훌륭하게 막아냈다.

과연 불카노스와 용 비늘의 방어력은 대단하다 싶었다.

[감히 나를 고기방패로 사용해!? 언젠가 이 죄를 물을 것이다 이 하찮은 인간……!?]

나는 오즈의 대사가 끝나기 전에 재빨리 녀석을 아공간 너머로 돌려보냈다.

‘…이 자식 분량은 편집해야지.’

생각해 보니 펫은 나를 특정할 수 있는 요소가 될지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나중에 아예 모자이크로 덮고 녀석의 음성은 삐- 처리해야겠다.

쾅! 콰쾅! 우지지직!

나와 데스나이트는 계속해서 맞붙었다.

내가 주먹을 날리면 데스나이트는 칼과 창, 방패를 이용해 맞선다.

…우르릉! …퍼펑!

돌기둥들이 주저앉고 바닥이 푹푹 꺼진다. 지형이 통째로 뒤틀리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팽팽하던 이 승부도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 쪽으로 기울어간다.

데스나이트는 1초가 흐를 때마다 체력이 확연하게 깎이고 있었고 거기에 독과 반사 데미지로 인한 누적 피로 또한 부담이었다.

퍼펑! 우지직!

내가 데스나이트의 칼을 1의 HP로 버텨낸 뒤 반사 데미지를 뿜어내자.

…쿵!

결국 데스나이트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츠츠츠츠츠…

검은 사슬갑옷 틈새로 가루로 변한 데스나이트의 육체가 모래줄기처럼 무수히 뿜어져 나온다.

나는 눈앞에서 검은 잿가루로 변해 스러져 가는 왕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휴우… 확실히 발록과 데모고르곤 때와는 차이가 있군.”

예전 아시아 챔피언스 리틀리그 때 나는 발록과 데모고르곤이라는 S급 최상위 티어 몬스터들을 연달아 죽였던 적이 있었다.

그 둘 역시 데스나이트와 비교하여 떨어지지 않는 정예 몬스터였지만 당시 내가 놈들을 비교적 쉽게 죽일 수 있었던 것은 마몬과 그 하수인형 몬스터 사이의 상하관계, 그리고 다른 유저들의 힘을 빌렸던 결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실험으로 인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동료나 펫, 그리고 미래 지식의 힘을 빌리지 않은 나의 한계는 딱 S등급 최상위권 정도이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선방한 결과였다.

-<이어진>

LV: 92

호칭: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 씨어데블 격침자(특전: 심해) / 대망자 묘지기(특전: 언데드) / 아귀메기 태공(특전: 잠복) / 크라켄 킬러(특전: 고생물) /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의 펫(특전: 갹출) /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 리자드맨 학살자(특전: 징수) / 식인황제 시해자(특전: 1차 대격변) / 뒤틀린 황천의 생존자(특전: 절약) / 불사(不死)의 좌군단장(특전: 여벌의 심장) / 불사(不死)의 우군단장(특전: 선택) / 검은 용군주 오즈의 위상(특전: 혈족전생) / 시작의 마을 유토러스의 명예 백작(특전: 귀족) /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의 위상(특전: 수전노) / 발록의 뿔을 꺾은 자(특전: 야수) / 그 무서운 데모고르곤(특전: 싸움광) / 살인자들의 탑 5층의 주인(특전: 맵 디자인) / 벨제붑의 아들을 죽인 자(특전: 맹독) /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의 위상(특전: 폭식 창자) / 데스나이트 ‘킹 아서(King Arthur)’의 후예(특전: 백전노장)

HP: 920/920

레벨은 오르지 않았고 호칭 특전 하나가 추가되었다.

‘지옥바퀴 대왕게 잡이(특전: 백전노장)’가 데스나이트 ‘킹 아서(King Arthur)’의 후예(특전: 백전노장)으로 교체된 것이다.

같은 특성이라도 지옥바퀴 대왕게보다는 데스나이트가 훨씬 더 강한 몬스터이니만큼 특성의 효과도 우월했다.

나는 상태창 점검을 마친 뒤 주위를 한번 슥 둘러보았다.

성은 리디자인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또 폐허로 변해 있었다.

아서 왕과의 싸움이 격렬하긴 격렬했는가 보다.

“……그러고 보니 원래 인간 지네가 2층의 중간 보스로 있었었지? 그놈은 어디로 갔으려나.”

나는 예전에 놓쳤던 S급 몬스터 한 마리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놈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고 딱히 신경 쓸 만큼 중요한 몬스터도 아니었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내, 나는 오즈를 다시 소환했다.

오즈는 몸 군데군데가 까맣게 탄 채로 징징 울고 있었다.

[하찮은 인간! 인간 주제에!]

하지만 녀석의 몸은 정직하다.

“오즈. 가서 드랍 된 아이템 주워와.”

[크큭! 인간! 드디어 미쳤느냐? 지금 감히 누구를 상대로 그따위 명령을 내리는 것이지?]

“그래. 잘 했어.”

[어억!? 모, 몸이 저절로 움직여!? 이, 이건 무효야! 으아아아-]

나는 발버둥치는 오즈의 턱과 배를 쓰다듬으며 녀석이 물고 온 아이템을 확인했다.

이윽고, 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뜰 수밖에 없었다.

“어, 이건……?”

생각지도 않은 대박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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