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46화 (546/1,000)
  • 546화 데스 나이트(Death Knight) (2)

    -따르르르릉!

    모닝콜. 알람시계가 울린다.

    나는 졸린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만에 꿈 한번 꾸지 않고 푹 잔 것 같다.

    “…어우, 몇 시간을 잔 거야?”

    핸드폰을 확인하자 알림 몇 번이 중첩되어 있다.

    내가 핸드폰 울리는 것도 못 듣고 그냥 쭉 자 버린 모양이다.

    한데?

    -따르르르릉!

    핸드폰이 아직도 울리고 있었다.

    뭔가 싶어 확인하니 모닝콜이 아니고 엄재영 감독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뭐지? 여보세요?”

    내가 전화를 받자.

    [야, 어진아! 빨리! 빨리 지금 인터넷 뉴스!]

    엄재영 감독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뭔가 싶어 링크 주소를 입력하자, 이내 핸드폰에 충격적인 기사가 떴다.

    [기사] 일본 대표팀 리더이자 국민여동생 ‘아키사다 아야카’ 한국 최고의 톱스타 게이머 마동왕과 심야의 데이트!?

    [기사] 일본 대표팀 리더이자 국민 아이돌 ‘아키사다 아야카’ 마동왕에게 호감 표시? “오해 풀린 것이 결정적, 원래 팬이었는데 더욱 더 팬심 깊어져” 과거 발언 재조명.

    [사진] 야심한 시각, 식당으로 함께 들어가는 둘의 다정한 뒷모습

    [사진] 담소를 나누는 둘, 얼굴 상기된 아키사다 아야카, 그윽한 눈빛의 마동왕, 누가 봐도 열애 중!?

    <레고일보/연애전략기획부 김준영 기자>

    .

    .

    “……이게 뭔 소리래?”

    사진을 보니 벨제붑 레이드 전에 아키사다 아야카와 한식당에서 밥 한 끼 먹은 것이 와전되어 기사로 나간 모양이다.

    “아니, 저녁 7시에 밥 먹은 게 왜 심야? 그리고 나는 가면 쓰고 있는데 무슨 그윽한 눈빛이야. 이거 완전 찌라시 아냐.”

    [너 인마! 섭섭하다! 형한테 말도 안 해 주고!]

    “아, 안 사귀어요. 뭐야 이게 진짜. 레이드 정보랑 빅리그 근황 나누러 갔던 거예요.”

    [아키사다 측에서는 뭐래? 뭔 말 없든?]

    “없어요. 지금 일어났어요 저. 이따가 연락해서 어떻게 할 건지 한번 물어볼게요.”

    나는 한참 동안이나 엄재영에게 해명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통화가 50통이 넘게 와 있었다.

    대부분은 유다희가 건 것이었다.

    나는 이 많은 것들을 해명할 생각에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       *       *

    -띠링!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차라리 게임 속이 마음 편하겠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게임에 접속했다.

    오늘은 예정대로 내 모든 힘을 한계까지 쥐어짜는 레이드를 할 시간이다.

    그동안 고인물 모드로는 신박하고 유쾌한, 그리고 다소 변태적인 레이드만 뛰었고 마동왕 모드로는 박력 있는 전투 연출만 연습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발휘할 수 있는 모든 기량과 특성, 아이템들을 총동원 해 볼 생각이었다.

    휘이이잉-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이곳은 내가 예전에 한번 다녀간 전적이 있는 던전.

    <칼침의 탑> -등급: ?

    최초 정복자: 고인물

    데스나이트 ‘사자심왕’과 겨루기 위해 찾아왔었던 S등급의 던전이었다.

    그렇다.

    오늘 잡을 몬스터는 바로 ‘데스 나이트(Death Knight)’인 것이다!

    ‘사실 나 자신을 아는 데에는 도플갱어만 한 것이 없는데 말야.’

    하지만 실수로 ‘썩은물’이라는 괴물을 탄생시켜 버렸던 과오가 있는지라 그런 모험을 또 하기는 싫었다.

    그래서 가장 인간의 형태와 가까운 데스나이트를 샌드백 상대로 고른 것이다.

    S등급이라서 튼튼하고, 또 그래서 꺾는 맛이 있는 최적의 호적수를.

    ●REC

    나는 동영상 녹화를 시작했다.

    스트리밍을 하지는 않는다. 다만 개인적으로 저장해놓을 뿐이다.

    영상을 다각도로 분석해 나의 전투 패턴과 습관, 더 나은 레이드 방법을 연구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팔아먹을 곳도 따로 있고 말이지.’

    또한 연구가 끝난 뒤에는 이 영상을 비싸게 팔아치울 생각이었다.

    내가 노리고 있는 특정한 상대에게 말이다.

    -띠링!

    <‘칼침의 탑’에 입장하셨습니다>

    <최초 방문자: 고인물>

    나는 영상 녹화를 시작하자마자 오추멜로프의 무한코스튬 반지를 이용해서 썩은물 모드로 변신했다.

    그리고 거침없이 칼침의 탑 안으로 다이브했다.

    탑 안은 황량했다.

    원래대로라면 언데드형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야 하지만 탑의 주인인 ‘사자심왕’이 없는 이상 그 부하들 역시도 부재 중이다.

    그러나 나는 이 텅 빈 던전을 한 번 더 재활용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세상에는 첫 클리어만큼이나 중요한 두 번째 클리어도 존재하는 법이지.”

    분명 예전에도 말했던 기억이 있지만, 일반적인 던전은 한번 클리어 하고 나면 다시 클리어 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특이점이 발생하는 던전이 있다.

    이 칼침의 탑이 바로 그렇다.

    한번 클리어한 뒤 추가로 다시 클리어하면 설정이나 시스템 등이 전과는 미묘하게 달라지는 던전.

    ‘……와두두 둥지도 그랬고 말이야.’

    과거 나는 와두두 둥지라는 던전의 최초 클리어 특전을 조디악에게 빼앗긴 바 있다.

    하지만 이내 두 번째 클리어 특전으로 귀여운 여왕님 쥬딜로페와 같이 다닐 수 있게 되었으니 내 쪽이 훨씬 남는 장사일 것이리라.

    뚜벅- 뚜벅- 뚜벅-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칼침의 탑을 올랐다.

    텅 빈 나선계단에 내 발소리가 음산히 울려 퍼진다.

    이윽고.

    나는 3층의 텅 빈 옥좌를 마주하게 되었다.

    말라붙은 핏자국이 흥건한 옥좌는 검붉게 물든 상태로 검은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이 자리에 데스나이트 ‘사자심왕(獅子心王)’이 앉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녀석은 이미 나에게 잡혔다.

    ‘심지어 그 보스인 오즈마저 내 펫 신세지.’

    나는 새삼 오묘한 기분을 느끼며 옥좌 앞에 섰다.

    “……데스나이트라.”

    머릿속에 오늘 상대할 보스 몬스터에 대한 정보들이 떠오른다.

    회귀 전 세상에서 고인물 유저들의 가장 많은 사랑과 동경을 받았던 몬스터.

    1:1 싸움을 즐기는 이들의 영원한 고정픽.

    그것은 데스나이트, 이 ‘죽음의 기사’가 가진 이름의 어감과 외형에서 느껴지는 멋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데스나이트는 유난히 다른 몬스터들에 비해 설정이 세세하고 집단지성이 만들어 낸 정보의 양도 많았다.

    <데스나이트> -등급: A+ ~ S

    1. 살아생전 고강한 경지를 밟았던 기사가 생전의 힘 이상을 손에 거머쥔 채 되살아났다.

    자신의 혼백과 육신을 담보로 잡히고 대출받은 막대한 어둠의 마나는 전신의 근육과 혈맥이 다 터져나갈 때까지 결코 바닥나지 않는다.

    2. 악의 근원에게 대출받은 검은 마나의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데스나이트는 이를 갚기 위해 계속해서 살육을 저질러 그 피로서 대가를 지불해 나간다.

    그러나 이자는 결국 원금을 넘어설 정도로 불어나게 되고 이를 갚을 길이 없는 데스나이트는 결국 영원히 악의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3. 피와 힘에 취하게 된 데스나이트는 으레 검은 마나를 물 끌어 쓰듯 사용하게 되어 버린다.

    결국 자신이 바친 혼과 육신의 값어치로도 대출받은 어둠의 마나를 갚을 수 없게 되면 그 영혼은 강제로 마계로 끌려가게 되고 육신은 소멸한다.

    그리하여 빚의 나락에 빠진 데스나이트의 끓어오르는 증오는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때까지 치솟고 그의 단말마는 듣는 이들의 고막을 뚫고 청신경을 가닥가닥 끊어 놓을 것이다.

    4. 보통 기본적인 인간의 육체만을 가지고 부활하되 몸 안에는 내장 등 기타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관들이 없기에 몸이 더욱 가볍고 날렵해졌다.

    내장이 없어서 몸무게는 보통 살아생전의 것보다 30%가량 줄어들지만 텅 빈 몸뚱이 안에 무얼 내장하고 있느냐에 따라 또 천차만별의 급이 메겨진다.

    5.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에 앞 뒤 가리지 않는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강력한 방어력을 지닌 보호갑을 착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위종 언데드인 좀비나 스켈레톤 따위와 비교하여 별다른 지적 능력의 차이는 보이지 않으며 오로지 생전(生前)의 능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는지가 완성도의 관건이다.

    6. 데스나이트는 텅 빈 몸 안에 어둠의 마나를 가득 싣고 전장을 누비며 증오와 원망으로 가득 찬 자신의 애병(愛兵)을 휘두른다. 그들이 살아생전 품었던 정의, 신념, 사랑, 우정 등 모든 감정은 맹목적인 증오와 미움으로 변질된 지 오래이다.

    7. 그러나 간혹 데스나이트가 이지(理知)를 가지고 있는 경우도 존재한다고 한다.

    이럴 경우 그의 영혼은 마계(魔界)에 한 발을, 인간계에 한 발을 안정적으로 걸치고 있는 것이라 보면 되는데 마계의 마물들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 싸우면서도 인간계에 남겨진 영혼을 동시에 컨트롤 할 수 있는 초인만이 가능한 경지이니만큼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

    8. 이런 종류의 데스나이트가 대륙에 출몰한 예는 지금껏 단 일곱 차례뿐이라고 한다.

    나는 맨 마지막 설정에 주목했다.

    일곱 구의 데스나이트.

    일명 ‘칠귀타(七鬼墮)’, 현 세계관에서 가장 강력한 일곱 구의 데스나이트를 일컫는 말이다.

    그 일곱 중 하나이자 칼침의 탑의 1세대 보스 역할을 맡고 있던 존재가 바로 내가 잡았던 데스나이트 ‘사자심왕’이었다.

    ‘그리고 내가 오늘 잡을 상대는 칼침의 탑의 2세대 보스!’

    칼침의 탑에 군림하는 데스나이트는 총 일곱 세대에 걸쳐 각각 한 번씩만 태어난다.

    같은 데스나이트가 두 번 뜨지 않는다는 말이다.

    1세대 보스인 사자심왕이 잡혔으니 이제 곧 리젠될 보스는 2세대 보스로 전혀 새로운 뉴페이스 데스나이트가 뜰 것이다.

    ‘어디 보자, 리스트가 어떻게 되더라?’

    나는 눈을 감고 일곱 데스나이트들의 계보를 떠올려 보았다.

    1세대 보스-‘사자심왕(獅子心王) 리차드 2세’

    2세대 보스-‘킹 아서(King Arthur)’

    3세대 보스-‘광군주(狂君主) 콤모두스(Commodus)’

    4세대 보스-‘금사맹장(金史猛將) 사묘아리’

    5세대 보스-‘인중여포(人中呂布) 여포’

    6세대 보스-‘만인적(萬人敵) 척준경’

    7세대 보스-‘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항우’

    전부 다 역사에 존재했던 용장, 맹장들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몬스터들이다.

    이 외에도 수많은 네임드 데스나이트들이 존재하지만 일단 이 칼침의 탑에 서식하는 종류는 이렇게 일곱뿐.

    “자, 그럼 2세대 보스를 끄집어내 볼까?”

    예전에도 말했듯, 이 칼침의 탑에는 히든 피스가 하나 숨겨져 있다.

    바로 전(前) 세대의 보스를 쓰러트린 이의 피로 특정 모양의 술식을 그리면 다음 세대의 보스를 바로 끄집어낼 수 있는, 거의 버그에 가까운 특전이 말이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깨물고 배어나온 피로 바닥에 술식을 그렸다.

    옥좌를 중심으로 커다란 술식을 그리자 이내 칼침의 탑 전체가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드드드드드드!

    칼침의 탑의 외형은 원래 과거 십자군 전쟁을 이끌었던 영웅 ‘사자심왕(獅子心王) 리차드 1세’가 유폐되었던 ‘뒤른슈타인 성’을 모티프로 디자인 되어 있었다.

    그랬던 성의 외벽 모양이 새로운 성주(城主)의 취향에 맞게 리디자인 되고 있는 것이다.

    (보스몬스터가 바뀜에 따라 던전의 외형이 달라지는 것 또한 히든 피스 중 하나이다)

    이윽고.

    [오-오오오오……]

    피가 말라붙은 옥좌 위에 검은 아우라가 스멀스멀 깃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내 검은 중장갑을 두른 해골 기사의 외형을 빚어낸다.

    데스나이트 2세대 보스 ‘아서 왕(King Arthur)’!

    유럽에서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유명한 인물이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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