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45화 (545/1,000)

545화 데스 나이트(Death Knight) (1)

나는 잠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기나긴 벨제붑 레이드를 끝마쳤으니 당분간 몸도 마음도 조금 쉬게 둘 참이다.

……그럼 쉬는 동안 뭘 하냐고?

당연히 게임이지!

겜창이 게임을 일로 하다가 쉴 때라고 게임을 안 하겠냐 이 말이야!

●REC

나는 카메라 스크린을 켜고 실시간 스트리밍을 시작했다.

오늘은 간만에 마동왕 모드로 접속해 개인방송을 하는 날이다.

“네. 오늘은 일상적인 게임 플레이를 보여드리기 위해 방송을 켰습니다.”

내가 스크린에 대고 말하자 순식간에 채팅창이 바글바글 끓었다.

방송을 연 지 3분도 채 되지 않아 3만 명이 넘는 시청자들이 몰려들었다.

-마하마하~

-마하의 속도로 들어왔습니다

-너무 오랜만이에요 마동왕오빠ㅠㅠㅠㅠ

-형...방송좀 자주 해줘...명절 보너스 받아서 지갑 빵빵해...

-“도네 쏘고 시작합니다” -ㅇㅇ님이 음성 도네이션을 보내셨습니다

-I missed you so much MA!

-(대충 보고싶었다는 댓글)

.

.

나는 시청자들의 댓글을 읽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방송을 시작하기에 앞서 전해드릴 소식이 있습니다. 기뻐해 주십시오.”

그러자 채팅창이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아!

-워후! 워후! 예에에!

-끼얏호우!

-와하하하하!!!!!!!!

-꺄르르르륵!! 넘.모.좋.아!

-(흥분)

.

.

“……아니. 제 말은 소식을 다 듣고 기뻐하시라는 말이었습니다.”

-아, 그런 거였습니까?

-진작 말씀하시지ㅇㅇ

-(침착)

.

.

여전히 시청자들은 나에게 매우 호의적이다.

나는 차분한 어조로 스크린에 대고 말을 이었다.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 때 제가 한국 대표로 성화를 들고 가게 되었습니다.”

‘성화(聖火)’란 무엇이냐?

그것은 뎀 유니버스의 본사 메인스트림에 흐르고 있는 전류의 일부를 끌어와 밝힌 LED 등불이다.

이 성화는 각 나라의 뎀 유니버스 지부에 하나씩 비치되어 있으며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가 시작될 시 이 각국 성화들의 전류를 끌어와 대회장 중앙의 거대한 전광판에 옮겨 붙여(USB단자에 연결하면 된다) 거대한 성화 불빛을 비추는 것이다.

성화 봉송을 하는 이는 각 나라의 대표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로 정해지는데 이번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에서는 한국 대표로 내가 성화를 봉송하기로 정해진 것이다.

이것은 게이머로서 평생 동안 술자리에서 자랑할 수 있는 훌륭한 안줏거리이다.

-크! 드디어 마동왕이 완벽하게 한국을 대표하게 되었다!

-여윽시 한국의 MVP! 세계의 MVP!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랬잖어~ 주모! 샷따 내려! 나 오늘 집에 안 들어가!

-진짜 내가 마동왕 하꼬 때부터 봤는데 뎀릭픽 성화봉송 하는 것까지 보는 날이 오네ㅠㅠㅠㅠ

-ㄴ님아 마동왕은 하꼬 시절이 없었는데요;;; 바로 메이저였음

-ㅇㅈ마동왕은 채널 개설하자마자 바로 대기업 됐잖어~

.

.

댓글들이 또 시끄럽다.

아마 오늘을 기점으로 또다시 게임 커뮤니티들이 시끌시끌해지겠지.

검색어 순위도 실시간으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인기 급상승 검색어>

-성화

-마동왕 성화봉송

-뎀림픽 성화

-성화가 뭔가요?

-엄마가 성화 봉송 언제 하냐고 성화에요

.

.

나는 실시간으로 계속 달리는 댓글들과 등락을 반복하는 검색어 순위들을 보며 한동안 더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펼쳐질 빅리그, 많이 기대해 주십쇼.”

이윽고, 나는 마동왕 방송을 종료했다.

“…휴.”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정말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가 코앞이다.

‘……리틀리그가 엄청 오래 전인 것처럼 느껴지네. 하긴, 그 동안 고정 S+등급 몬스터를 둘이나 겪어 봤으니.’

한국은 리틀리그에서 중국과 일본을 꺾고 올라왔고 이제 러시아, 대만, 우즈베키스탄 등의 강호들과 붙게 된다.

그리고 나는 이번 판에서 진정한 아시아 최강의 구단이 누구인지, 최고의 플레이어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증명해 보일 생각이었다.

*       *       *

●REC

나는 마동왕 방송을 종료하는 즉시 새로운 방송을 켰다.

이번에는 고인물 방송을 할 차례였기 때문이다.

“여러분 안녕~”

내가 방송을 켜자 바로 시청자들이 반응을 보인다.

-고환~

-고! 환!

-고환♥

-...ㅡㅡ? 처음 온 시청자인데 상스러운 말 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님아 고환은 ‘고인물 님 환영합니다’ 의 줄임말이에요

-아, 그렇군요. 제가 오해를 했네요ㅎㅎㅎ 고환~~

-오? 고인물 횽아ㅎㅇㅎㅇ 오늘 정규방송하는 날 아니잖아?

-ㅇㅇ매주 월, 수, 금, 일 오전 11시 59분에 방송 시작하잖아 늘ㅎㅎ

-그래도 혹시나 해서 17시간 전부터 맴돌던 보람이 있네~~ 고환♥

-아 아깝다. 0.06초 차이로 첫 댓글 놓침! ㅠㅠㅠ...

-내가 또 덜렁거리고 말았네ㅠㅠ

.

.

나는 시청자들의 열렬한 반응을 즐기며 씩 웃었다.

“우리 덜렁이 여러분들 보고 싶어서 조금 일찍 방송 켰죠. 오늘 제가 끝내주는 콘텐츠 하나 생각해 왔습니다. 여러분 진짜 놀라시면 안 돼요.”

그러자 시청자 댓글창에는 갑자기 정적이 흐른다.

-....

-....

-....

.

.

나는 시청자들의 정적에 약간 의아했지만 이내 개의치 않고 오늘의 방송 주제를 말했다.

“저번에는 혓바닥으로 아카오니 잡기에 도전했었죠? 오늘은 바로 입김만으로 아카오니 잡기에 도전합니다!”

-....

-....

-....

“……아, 여러분. 놀라지 말라는 게 그 정도로 놀라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냥 적당히만 놀라라는 말이었습니다.”

그제야 채팅창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대박! 돌았네 진짜ㅋㅋㅋㅋㅋㅋ도네간다~

-저번에 혀로 아카오니 핥아서 잡는 거 보고 완전 소름끼쳤었는데! 오늘은 입!!김!!이라니!! 너무좋아!!!

-진짜 이 오빠는 뇌 안에 뇌수 말고 러브젤이 든 건지...진짜 변태라니깐!

-이런 변태 플레이 진짜 너무 사랑합니다 횽아♥

.

.

또다시 무수한 공약들이 빗발친다.

내가 정말 입김만으로 아카오니 레이드에 성공하면 얼마를 쏘겠다느니, 제한 시간 안에 성공하면 얼마를 쏘겠다느니, 그냥 얼마를 쏘겠다느니 하는 댓글들이 쭉 이어지고 있었다.

“자, 잘 보세요. 제가 어떻게 잡나.”

나는 흔들귀의 미궁으로 가 이제는 너무 많이 잡아서 약간은 불쌍하게까지 느껴지는 아카오니를 찾아냈다.

(물론 오즈와 쥬딜로페는 펫 호텔에 맡겨 둔 상태다)

“자, 전방을 향해 힘찬 입김 발사 5초 전. 5, 4, 3, 하아~!”

나는 3초만 세고 바로 아카오니에게 다가가 입김을 발사했다.

-ㅋㅋㅋㅋ아니 진짜 골때리네~

-아무리 그래도 C+급 던전보스인데 무슨 입김으로...

-고인물이라면 모른다...ㄷㄷㄷ

-네가 그렇게 입김이 세!? 어!?

-정치인급 입김ㄷㄷㄷ

.

.

시청자들의 반응은 반신반의하는 느낌이다.

그러나.

[오니-이이이익!?]

아카오니는 내 입김이 피부에 닿는 순간 고통스럽다는 듯 소리를 질러 댔다.

-미쳤나ㅋㅋㅋ엄살킹 보소

-진짜 입김 가지고 무슨...ㅋㅋㅋㅋㅋ

-근데 보스 몬스터가 어케 엄살을 피우지?

-아냐...보니까 저 입김...진짜 데미지 실려있는 것 같은데?

.

.

시청자들 역시도 이제야 슬슬 믿는 눈치다.

나는 정말로 후- 부는 것만으로 중대륙 최강의 보스 몬스터를 잡고 있었다!

심지어 기본 공격도 아니고 ‘입김’만으로!

‘후후후, 벨제붑의 극독이 미약하게나마 실려 있는 숨결이니 데미지가 박힐 수밖에.’

나는 계속해서 아카오니의 주위를 뱅글뱅글 돌며 녀석에게 하, 히, 후, 헤, 호 하고 입김을 불어댔다.

그 결과.

…쿵!

아카오니는 결국 독에 절어 쓰러지고 말았다.

-미친...할 말이 없다 이제...

-당신은 상담이 필요합니다;

-영원히 고통받는 아카오니ㅠㅠ..

-그치만 오니쨩ㅠㅠㅠ이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순식간에 잡혀버리는걸!

-삼가고인의명복을액션빔

-와;;;그래도 아카오니 정도면 엔간한 중수 유저들도 다이다이는 부담스러워하는데...진짜 오리지널 미치광이 적폐 고인물 클라스 수듄;;;;;

-세균맨은 명함도 못 내밀겠네ㄷㄷㄷ

-양치 좀 해요 오빠...

.

.

“크크크, 보십쇼. 제가 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입김만으로 잡을 수 있다고요!

-잘 보라고도 했어요!

-성조로 따지자면 4성으로 말했어요. 마아~? 하는 억양으로! 음으로 따지자면 시미라레솔도파↗?

-초도 졸렬하게 셌어요! 5까지 세는 척 하고는 3까지만…!

“아뇨, 아뇨, 아뇨. 진짜로 아까 뭐라고 했는지 보라는 게 아니라. 그냥 아까 했던 말을 다시 상기시켜드리려고 한 멘트입니다. 그만 대답하셔도 돼요.”

나는 레이드를 마친 뒤 아카오니가 떨군 아이템을 회수하고는 그것을 오늘 즉석 퀴즈대회의 상품으로 쓰기로 했다.

“네. 오늘은 아카오니가 ‘붉은 귀신의 뜨거운 몽둥이’라는 양손무기를 드랍했네요. 운 좋게도 C+등급 무기고요. 화염 데미지 추가 옵션이 붙어 있습니다. 초보 분들이 착용하기에는 좋은 아이템이네요. 한번 착용하면 중렙 구간까지 무난하게 계속 쓰실 수 있을 듯합니다.”

나는 시청자들이 연타하는 댓글들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이 아이템은 오늘 가장 제 마음에 드는 답을 주신 분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럼 질문 들어갑니다!”

이내 허공의 스크린에 질문이 뜬다.

Q. 뎀이 다른 PC, 모바일, 기타 기기, 증강, 가상현실 게임과 차별화된 점은?

딱히 답이 없는 주관식이다.

그러자 이내 많은 시청자들이 자신만의 즐거움을 쏟아놓는다.

-요즘 RPG게임들답지 않게 초창기엔 모두가 공평하게 초보이고 강해질 수 있는 지름길 따윈 딱히 없다는 게 맘에 들어요!

-상태창이 단순하고 거래가 자유로워서 좋습니다ㅎㅎ

-시작부터 과도한 아이템 지급이 없어서 괜춘함. ex)지금 사전예약하면 타락파워전사날개 100%지급! 응? 사전예약 안했다고? 응 그럼 꺼져~ 이런 게 없어서ㅡㅡㅋ

-과도한 현질유도가 없어서 좋아요ㅋㅋㅋ일반 유저는 이속 10%증가 갈색 말 타고 현질유저는 이속 100% 증가 페가수스 타고 그러면 싫어잉~

-사행성 가챠 뽑기가 상대적으로 적어서 좋은 듯? 다른 똥망겜들은 진입장벽 엄청나고 과금유도도 심하니까...차라리 뎀처럼 월 계정비 내고 플레이하는게 나음ㅋㅋ

-고수 유저들이랑 초보 유저들이랑 아이템 스탯 차이가 적어서 좋아요! 노력만 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 들음ㅇㅇ

-직업 간 특성이 뚜렷하고 밸런스가 맞아서 좋음. 원딜이 막 탱커보다 방어력이 쎄져서 걍 혼자 탱 딜 다해먹거나 그런 현상이 많잖음 다른 게임들은ㅋㅋㅋ

-게임이 유저들을 즐겁게 해주는 게 아니라 지갑 터는 게 목적이 된 세상...오로지 상상력 그 자체만을 추구하는 뎀만이 희망이다...!

.

.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댓글들을 하나하나 전부 소리 내어 읽었다.

수많은 뎀 애호가들의 뎀 사랑.

나는 그들의 다양한 관점과 의견, 매력을 느끼는 포인트들을 쭉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시간만큼은 회귀를 한 것인지 하지 않은 것인지, 그런 복잡한 것들은 다 잊고 온전히 게임 애호가들끼리의 대화에 푹 젖어 즐겁게 토론하고 토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댓글들을 읽으며 주거니 받거니 담소를 나누던 나는 방송 말미에 베스트 댓글을 선정했다.

그것은 거의 맨 마지막에 달린 한 댓글이었다.

“네. 아이디 ‘희야날좀바라봐’ 님. ‘게임이 유저들을 즐겁게 해 주는 게 아니라 지갑 터는 게 목적이 된 세상, 오로지 상상력 그 자체만을 추구하는 뎀만이 희망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네요. 제 생각도 이와 같습니다. 오늘의 상품은 ‘희야날좀바라봐’ 님에게 드리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어딘가 낯익은 아이디였지만 일단은 잠자코 있기로 한다.

이윽고. 나는 방송을 종료했다.

“휴, 마동왕도 고인물도 끝이네.”

이제는 인간 이어진으로서 쉴 차례다.

나는 캡슐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등 쪽이 어딘가 화끈거린다.

새로 나온 신모델 캡슐 ‘LINKED3021’ 버전은 이렇게 장시간 플레이를 하면 꼭 등 부분이 뜨겁다.

나는 차가운 물을 틀고 샤워를 하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거 정말 내가 어디까지 강해진 건지 신경 쓰이네. 이쯤 되면 나도 내 힘이 궁금한데?’

엄밀히 말하자면 마동왕도 고인물도 모두 진정한 내 모습은 아니다.

각각의 방송 때는 전력의 절반밖에는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벨제붑을 잡고 난 뒤 나는 내가 어디까지 강해져 있는지 나 자신을 한번 시험해 볼 필요성을 느꼈다.

아시아 챔피언스 빅리그에 출전하기 전에 자기의 능력과 한계를 가늠해 보는 것은 너무나도 필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고인물이랑 마동왕 말고 다른 게 필요해.’

내 진정한 힘을 드러내기 위한 메타는 따로 있다.

고인물과 마동왕을 잇는 제 3의 메타.

‘썩은물’!

남 눈치 보지 않고 내 힘의 100%, 내 인성의 100%를 다할 수 있는 메타.

고인물의 기동력과 마동왕의 힘, 거기에 ‘킬 체인’ 등 윤리와 도덕, 미의식을 무시할 수 있는 과감한 변태 특성들까지.

“그래. 나도 나 자신의 스펙을 한번 테스트해 볼 때가 됐다.”

대회 전 나의 최대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해 봐야겠다.

그리고 나는 강해진 나의 힘을 시험해 보기에 딱 좋은 몬스터 하나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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