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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44화 (544/1,000)
  • 544화 죽음룡 오즈(Odd’s) (12)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오즈! 죽음룡 오즈!

    놈이 히드라의 몸에서 탈피해 이 세상에 다시 한번 그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순간, 하늘은 암흑기류에 잠기고 주변의 바다가 끓기 시작했다.

    윤솔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꺄악! 너무 귀엽다!”

    그렇다.

    되살아난 오즈는 우리를 한참 올려다보고 있었다.

    녀석의 덩치는 내 두 주먹을 합친 것보다 조금 작은 정도, 굳이 비교하자면 쥬딜로페보다도 조그맣다.

    […어?]

    오즈는 그제야 자신의 덩치를 눈치 채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보글보글보글……

    주변의 바다가 귀엽게 끓고 있었다.

    그마저도 금방 푸쉭- 하고 식어 버렸지만.

    “어구, 이리 오렴. 오구오구, 이 귀여운 까망 도마뱀이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윤솔은 두 팔을 뻗어 오즈를 안아들었다. 보아하니 지금 이게 예전의 그 오즈인지도 모르는 모양.

    한편 오즈는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입가에 침 한 방울이 흐르는 걸 보니 자신의 덩치에 새삼 꽤 쇼크를 받은 듯한 모양새.

    <죽음룡 오즈>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용을 다스리는 일곱 군주 중 하나.

    무저갱과 무덤가를 지배하는 위대한 검은 용.

    “죽음이 너를 영원하게 하리라.”

    -오즈- <신약, 흑왕기(黑王記) 하권,, 흑왕 4절>

    오즈의 등급은 S급으로 너프된 상태였다.

    이렇게 작은 몸으로도 무려 S급이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한편, 나는 왜 오즈가 히드라에게서 나타났을지 한참 동안을 고민해 보았다.

    그 결과, 나는 한 가지 짚이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예전 죽음길 나락 레이드 당시 나는 히드라에게 수십 마리의 바실리스크를 먹이로 준 적이 있었다.

    히드라는 그 이후 항상 뚱뚱하게 배가 불러 있는 상태였고 최근까지도 그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 녀석의 몸 안에 바실리스크가 소화되다 만 상태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바실리스크는 A+등급 몬스터 중에서도 개체값 최상위권에 속하는 몬스터. 그 질긴 생명력은 몸의 대부분이 녹아내려도 유지된다고는 들었는데…….’

    특히나 바실리스크는 뒤주나 좁은 던전 속에 갇혀 있던 경험도 있는 만큼 좁고 괴로운 공간에서 버티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바실리스크가 가지고 있는 ‘혈족전생’ 특성이다.

    혈족전생은 가까이에 있는 혈족, 하위종의 몸을 빼앗아 자신의 목숨을 이어가는 생존기.

    바실리스크가 이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오즈 역시도 이 특성을 가지고 있었을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니 당시 오즈가 나에게 잡혔을 당시, 녀석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바실리스크의 몸으로 전생했고 그 바실리스크는 내 펫이었던 히드라의 몸속에 반쯤 흡수되고 있었던 상태.

    ‘그래서 오즈를 잡았을 때 사냥 완료를 알리는 알림음이 떴었던 건가.’

    오즈는 되살아나는 즉시 내 펫의 일부가 되었기에 아카식 레코드에는 죽은 것으로 표시되었던 것이다.

    마치 예전에 포X몬스터에서 X켓몬을 포획해도 적을 쓰러트린 것으로 간주되어 배틀에서 이기는 것처럼.

    반면 예전에 뎀 유니버스의 본사에 방문했을 때는 오즈의 서브스트림에 아직 전원이 들어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국 혈족전생 특성과 펫 시스템이 겹쳐서 절묘한 빈틈을 만들어낸 셈이군.’

    나는 어이가 없어 픽 웃고 말았다.

    한편.

    오즈는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 듯 윤솔의 품 안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 이 자식들! 감히 날 이 모양으로 만들었겠다!? 모두 죽여 버리리라! 내가 원래의 힘과 덩치를 되찾기만 한다면 네놈들은……!]

    나는 오즈의 말을 듣고 약간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그냥 물어 보았다.

    “네가 원래의 덩치로 돌아갈 방법이 있어?”

    [하하! 멍청한 필멸자 같으니라고! 그야 당연하다!]

    “그 방법이 뭔데?”

    [유도신문인가? 크큭! 하등한 인간답게 속셈도 뻔히 들여다보이는군!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말해주겠노라! 내가 원래의 덩치를 되찾는 방법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바로 ‘나이’를 먹는 것이지!]

    “나이를 얼마나 먹어야 원래대로 돌아오는데?”

    [으음. 한 7천 년쯤?]

    오즈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교활하게 미소 지었다.

    [크크크큭! 7천 년만 기다려라. 그렇게 되면 너희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와 드레이크, 윤솔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게임 시간으로 7천 년이면 현실 시간으로도 백 년은 훨씬 넘을 테니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지금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오즈에게 지금 녀석이 처한 처지를 알려 주었다.

    “그보다, 너 지금 내 펫인 것은 아니?”

    [……뭣!?]

    오즈는 불신의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는 상태창을 켜서 펫 정보창을 보여 주었다.

    (펫 기능이 적용 되어서 그런지 오즈는 내 정보창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당연히 히드라에서 진화한 오즈의 정보가 입력되어 있다.

    녀석은 당당하게 내 펫 1호로서 등록되어 있는 것이다. 시스템적으로 너무 확연하게.

    [으, 으윽!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럴 리 없다! 나는 위대한 용족! 너 같은 벌레 따위에게…!]

    오즈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흔들더니 나를 향해 불을 뿜어내려 했다.

    하지만.

    녀석은 불을 뿜어내려던 자세 그대로 몸이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뭐, 뭐지 이 친근한 감각은? 왜 녀석에게 공격을 할 수 없는 것이지? 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배덕감은 대체!?]

    “어허! 쓰읍-”

    [끼잉, 잘못했어여, 주인니…미이…이…이이익이라고 생각할 줄 아느냐! 이 하잘것없는 인간아! 나는 이따위 속박엔 당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오즈는 히드라와 쌓았던 유대감과 호감도의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당연하다. 시스템 설정 상 히드라와 오즈는 동일한 개체로 인식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슬며시 손을 뻗어 오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오즈가 갑자기 헤실헤실 웃으며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헤헤, 헉!? 아니 이게 무슨 짓이냐 인간!?]

    오즈는 황급히 웃음기를 거두고는 날카로운 이빨을 내밀어 으르렁거렸다.

    나는 그런 오즈에게 명령을 내렸다.

    “저기 가서 떨어진 화살들 수거해 와.”

    [미쳤느냐 인간? 나는 나보다 열등한 자의 명령 따위는 듣지 않는다.]

    “좋아. 잘했어. 벌써 이만큼이나 모아왔네?”

    […어억!? …어어억!?]

    오즈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잽싸게 움직여 주변의 화살들을 한 아름 모아온 것이다.

    주변에 떨어진 아이템을 수거하는 데 나름대로 재능이 있는 모양.

    ‘흐음, 앞으로 대규모 사냥 시 민첩 아이템 모아오는 게 쉬워지겠군.’

    고등급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가혹한 지형에서 레이드를 뛰는 경우 아이템 수거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럴 때 오즈의 존재는 아마 큰 힘이 되겠지.

    [이, 이럴 수는 없어! 나는 여기서 나갈 거야! 도망칠 거라고!]

    오즈는 잽싸게 몸을 틀어 나에게서 멀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번쩍- 하고 빛을 뿜는 아이템이 하나 있었다.

    -<‘찢어진’ 무한의 힘이 담긴 봉인서> / 주문서 / S

    알 수 없는 힘이 깃들어 있는 기묘한 종잇조각.

    찢어졌기 때문에 본래 기능의 절반 정도만 발휘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주문서는 갑자기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한 줄기 빛으로 변해 오즈의 몸을 포승줄처럼 옭아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오즈를 내게 끌고 온다.

    질질질질-

    오즈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바닥에 패인 흙길만 굽이칠 뿐이었다.

    [네, 네놈! 어디서 이런 줄이! 불카노스냐! 야광 불카노스인 것이냐!]

    빛의 포승줄이 향하는 방향은 바로 내 약지손가락.

    -<산산조각난 링> / 반지 / S

    아무런 가치가 없는 반지.

    오랜 친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이를 제외한다면.

    히드라가 남긴 브로큰 아이템이 있는 곳이었다.

    츠츠츠츠츠…

    이윽고, 오즈의 몸이 내 손가락에 귀속, 봉인된다.

    나는 그제야 이 반지와 봉인서의 찰떡 케미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아, 몬스터 테이밍 용 아이템이었구나.’

    그래서 아까 서로를 알아보고 윙윙 공명했던 게 아닐까 싶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부당해! 있을 수 없어! 불공정 계약이다! 난 허락한 적 없다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상태창은 솔직하군.”

    오즈는 발버둥쳤지만 내 허락 없이는 반지를 중심으로 일정 거리 이상을 떨어질 수 없다.

    바로 그때.

    [호애앵-]

    내 품속에서 아장아장 기어 나오는 것이 있었다.

    쥬딜로페.

    그녀는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오즈의 옆에 섰다.

    오즈는 고개를 돌려 그런 쥬딜로페를 흘끗 바라보았다.

    [……? 뭐야 이 벌레 년은?]

    바로 그 순간.

    [호앵! 떼액!]

    쥬딜로페는 나뭇가지를 들어 오즈의 머리통을 한 대 딱 때렸다.

    [아야! 뭐야 이 벌레 따위가 감히!?]

    오즈는 발끈해서 쥬딜로페를 향해 손톱을 세웠다.

    그러나.

    터엉-

    오즈는 쥬딜로페를 공격할 수 없었다.

    시스템 상의 투명한 방어막이 오즈와 쥬딜로페의 사이를 가로막은 것이다.

    …딱! …따콩! …딱콩!

    […으악! …악! …뭐야!?]

    쥬딜로페는 오즈를 때릴 수 있었지만 오즈는 그런 쥬딜로페에게 전혀 반격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쥬딜로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콧김을 내뿜는다.

    [뿌-]

    옆에 있던 윤솔이 그런 쥬딜로페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서열정리를 하자는 것 같은데?

    [아, 그러니까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오즈가 발끈하여 버럭한다.

    나는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너는 내 펫이고 나는 얘의 펫이야.”

    [?]

    “그러니 너는 얘 펫의 펫인 셈이지.”

    [??]

    “그러니 쥬딜로페는 네 주인님의 주인님이 되는 거라고.”

    [???]

    오즈가 멍한 표정으로 침 한 줄기를 흘린다.

    …딱콩!

    그런 오즈의 뒤통수를 쥬딜로페가 또 한 번 나뭇가지로 때렸다.

    […으윽!]

    목을 거북이처럼 움츠리는 오즈를 향해 윤솔과 드레이크가 동시에 감탄을 뱉었다.

    “와, 진짜 귀여워! 어떡해! 근데 이 까망이는 우리를 아나? 아까부터 아는 눈치인데?”

    “하청의 하청이란 말인가! 코리안 식 펫 시스템이 여기서!”

    그 둘을 향해 오즈의 추상같은 호통이 날아갔다.

    [시끄럽다, 이 건방진 필멸자들아! 이제부터 한 마디라도 더 늘어놓는다면 이 몸이 네놈들의 목숨을 직접 황혼의 세계로 인도…]

    …딱콩!

    [뽀엥!]

    “너나 조용히 하라는데?”

    윤솔이 친절히 통역해 주자 마침내 오즈의 화는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이놈들이! 이건 수치다! 내 역사에 대한 수치! 이런 꼴을 보느니 차라리 죽겠다!]

    빼꼼-

    오즈는 자신의 앙증맞은 혀를 내밀어 날카로운 이빨로 깨물었다.

    […….]

    ……정확히는 깨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빨이 혀에 도착하기 직전 오즈의 턱은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펫은 자살을 할 수 없다.

    […어, 어허해 해 이히히히?]

    “이히히히와 관련이 있는 대사인가?”

    “아뇨, 드레이크 씨. ‘어떻게 된 일이지?’ 라고 하고 있어요.”

    윤솔은 여전히 자연스럽게 통역하고 있었다.

    [뽀오오오오에에엥.]

    […아우 어하흐 허야 이 어에 아이이!]

    “이건 무슨 말이지?”

    “‘자꾸 뭐라는 거냐, 이 벌레 자식이!’ 라고 하네요.”

    하지만 드레이크는 더욱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건 이제 나도 알겠다. 내 말은…쥬딜로페가 뭐라고 했는지다. 오랜만에 제법 긴 대사를 친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러자.

    딱콩-!

    작은 여왕님의 나뭇가지 어택과 동시에 윤솔의 어깨가 으쓱했다.

    “‘말을 듣지 않는 건방진 노예에게는 체벌이 필요하겠지♥’라네요…….”

    이내, 죽음룡의 비참한 절규가 텅 빈 바다에 메아리친다.

    [으아아아아! 뭐야 이게! 싫어어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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