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3화 죽음룡 오즈(Odd’s) (11)
…꿈틀!
작은 이변 하나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히드라의 시체가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빛 한 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이템이 드랍된 것이다.
“…….”
나는 입을 다문 채 허리를 숙여 히드라가 떨어트린 아이템을 바라보았다.
-<산산조각난 링> / 반지 / S
아무런 가치가 없는 반지.
오랜 친구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이를 제외한다면.
브로큰 아이템(Broken item).
나는 내 손바닥 위의 반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아이템은 파괴되는 순간 소멸하거나 깨진 파편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이 반지는 금이 갔지만 여전히 반지의 형태로 내 손에 남았다.
모순적이게도 등급까지 상승한 상태로.
나는 이 현상이 뜻하는 의미를 알고 있었다.
‘……펫과의 호감도.’
그렇다.
펫이 사망하면서 브로큰 아이템을 떨구는 경우는 단 한 가지 경우밖에 없다.
펫과의 호감도, 그것이 MAX를 찍었을 때나 떨어지는 것이 바로 브로큰 아이템.
즉 이 아이템은 히드라가 남긴 유품, 녀석과 나 사이의 무언가를 증명하고 상징하는 ‘증표’인 셈이다.
‘언젠가 전신마비 상태로 12년간 게임을 하던 테이머 유저의 브로큰 아이템이 화제가 된 적 있었지. 수많은 거부들이 엄청난 돈을 주고 사려고 했지만 그는 끝끝내 팔기를 거부했었고.’
나와 히드라의 유대 또한 그에 못지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더 숙연하고 또 착잡한 느낌.
아까 보상을 확인하며 놀라고 감탄했던 것은 사실 이 순간을 외면하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받아들여야겠지.”
모든 만남에는 이별이 있는 법이니까.
나는 눈을 감고 녀석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맨 처음 ‘은밀한 꼭두각시 회동’ 던전에서 던전 보스 메두사(A)의 하수인인 녀석을 처음 만났었다.
‘뭐, 나중에 공략 영상을 유튜뷰에 올린다면 반응은 좋겠네.’
메두사를 사냥한 뒤 놈이 떨군 반지에서 ‘요르문간드’인 상태로 녀석은 내게 왔었다.
‘나중에 마법사에게 쫓길 때 써먹으면 될지도.’
그 후 악의 고성에서 타락한 솔로몬 대왕(A+)의 하수인이었던 서큐버스들을 잡아먹고 난 뒤 ‘쌍뿔칠흑’으로 진화했었지.
‘10마리의 서큐버스는 사라지고 대신 이 뱀 녀석이 나에게 호감을 보인다라…….’
마지막으로 천공섬 레이드. 이 때 식인황제 보카사(S)의 불길로부터 나를 지켜 주다가 ‘히드라 유생체’로 최종 진화했었고.
‘어휴 이 자식. 이제야 반지랑 동급 레벨까지 올라갔네.’
……그리고 지금. 폭식의 악마성좌, 파리 대왕 벨제붑(S+)을 상대하던 끝에 녀석은 나를 구하고 장렬히 전사했던 것이다.
“절대 잊지 않을게. 그동안 고마웠다.”
나는 히드라가 남긴 반지를 약지손가락에 그대로 끼웠다.
앞으로 어떤 좋은 반지 아이템을 얻든 간에 이것만은 빼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바로 그때.
…위이잉!
인벤토리 한 칸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상태창을 켜니 인벤토리 한 구석에서 내 반지를 향해 반응하는 아이템 하나가 보인다.
-<‘찢어진’ 무한의 힘이 담긴 봉인서> / 주문서 / S
알 수 없는 힘이 깃들어 있는 기묘한 종잇조각.
찢어졌기 때문에 본래 기능의 절반 정도만 발휘할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퀘스트 일지에 기록된 히스토리를 찾아보았다.
<히든 퀘스트: ‘살인자들의 탑’>
<히든 퀘스트 발생 조건: 히든 퀘스트 ‘그레이 시티의 마약 공장 토벌’을 완료한 자>
<히든 퀘스트 완료 조건: 오래 묵은 리치 ‘카르마(業報)’ 처치 (1/1)>
<히든 퀘스트 진행 상태: 완료>
<※보상: 960만 골드, 경험치, ‘‘찢어진’ 무한의 힘이 담긴 봉인서’>
예전 그레이 시티의 ‘살인자들의 탑’ 공략 당시 오래 묵은 리치 ‘카르마’를 잡고 얻은 아이템.
지금은 지하감옥에 투옥된 시혼 전 시장이 마지막 히든 퀘스트를 줄 당시 포상으로 내걸었던 보상 아이템이기도 하다.
이 주문서의 존재는 미래 지식으로 인해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지만 정확한 용도는 모르고 있었다.
회귀 전 세상에서도 끝끝내 효능이 밝혀진 적 없는 미지의 아이템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왜?’
나는 이 용도불명의 주문서가 반짝반짝 빛을 내뿜는 것을 보고 약간 당황했다.
혹시 이 주문서가 히드라의 브로큰 아이템과 뭔가 관계가 있는 건가 싶었다.
바로 그때.
…꿈틀!
히드라가 다시 한번 움직였다.
아까 아이템을 떨굴 때와는 달리 훨씬 더 격한 움직임이었다.
“뭐, 뭐야!?”
드레이크와 윤솔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나 역시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츠츠츠츠츠츠…
히드라가 전신에서 검은 빛을 내뿜는다.
녀석은 이내 흑빛의 아우라에 휘감기더니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아앗!? 히드라가 죽은 게 아니었어!”
“뭐, 뭐지? 정말로 다시 살아나는 건가?”
윤솔과 드레이크가 놀라서 소리를 지른다.
나는 이런 현상을 몇 번 목격한 적이 있었기에 상황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오잉!? ‘히드라 유생체’의 상태가……?
진화(進化).
이것은 분명 몬스터가 진화할 때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으음, 이것은 버스에 타며 정류장에 남겨진 친구와 작별 인사를 했는데 막상 타려니 교통 카드가 없어서 다시 내려와 정류장에 친구와 다시 같이 있게 된 것 같은 뻘쭘한 상황 아닌가.”
“그보다 고등학교 졸업식 때 친구랑 껴안고 펑펑 울었는데 다음날 그 친구랑 다시 길에서 만난 기분이에요!”
진득한 이별 후에 찾아온 성급한 재회는 모두를 당황케 만들었다.
“아, 암튼 이건 좋은 일이군, 어진!”
“축하해, 이…제는 안 헤어…져도 되겠다! 와. 너. 무. 좋. 아.”
둘 다 어색한 웃음으로 기뻐하던 찰나,
스윽-
나는 깎단을 들고 그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 히드라 앞에 섰다.
“친구들, 지금 이건 별로 좋은 상황이 아니야.”
“……!”
내 표정을 본 드레이크와 윤솔은 바짝 긴장했다.
히드라가 살아난 사실은 기쁘지만 마냥 기뻐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히드라는 유생체일 때는 지능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라 상관이 없지만 성체로 커 갈수록 점점 더 지능이 퇴화해 결국 살인기계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나는 회귀 전에 봤던 동영상 하나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것은 성체가 된 히드라와 조우한 세계 최강의 공격대 ‘로열 레이드(Royal Raid)’가 유튜뷰에 올린 영상이었다.
당시 ‘용자의 무덤’을 공략 중이던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와 그가 이끄는 영국의 로열 레이드는 용자의 무덤 꼭대기로 향하는 길목에서 S급 몬스터 중 최강, 최악이라 불리는 한 몬스터와 마주했다.
그것이 바로 ‘히드라 성체(成體)’였던 것이다.
‘히드라 유생체’→‘히드라 아성체’→‘히드라 성체’의 진화 트리를 타고 완성된 생물, 육상 최강의 전투병기.
당시 통합 세계랭킹 1위였던 인간 족 플레이어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와 그런 전설적인 인물이 직접 이끄는 최강의 60인 공격대.
자타공인, 뎀 역사의 한 자락을 새로 쓴 입지전적인 용사, 영웅들.
그들은 그날 히드라 한 마리에게 전멸 당했었다.
해당 영상이 올라온 이후, 세계 최강의 플레이어로서 한 게임 쇼 인터뷰에 참석한 튜더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S클래스 몬스터 중에 두 번째로 강한 몬스터를 꼽으라면 후보들은 넘쳐납니다. 용옥의 고문기술자, 크라켄, 여덟 다리 대왕, 식인황제, 리치 왕, 발록, 데모고르곤, 일곱의 네임드 데스나이트……. 하지만 제일 강한 몬스터를 꼽으라면 단언컨대 히드라 하나뿐일 것입니다.’
당시 나는 튜더 VS 히드라의 전투 영상과 그의 인터뷰 후기를 들으며 전율을 느꼈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그때 느꼈던 전율을 한 번 더, 이번에는 직접 손수 느껴야 할지도 모른다.
되살아난 히드라를 내 손으로 사냥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심지어 지금 우리는 벨제붑 레이드를 막 끝마치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이기에 더더욱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서로간의 호감도와 유대감이 남아 있을 때 이별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인데.’
사실 이번 레이드만 끝나면 녀석을 어디 살기 좋고 인적 드문 곳에 풀어 줄 요량이었다.
결국 늦어 버렸지만 말이다.
“…….”
나는 모든 것을 각오하고 감수하겠다는 태도로 히드라의 앞에 섰다.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먹었다.
꽈악-
깎단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벨제붑을 죽이고 나서 극독 특성도 붙었지만 상대가 히드라인 만큼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 우리만의 장례식을 치러 주마.”
나는 손가락에 느껴지는 반지의 차가움을 느끼며 전투 준비를 마쳤다.
……한데?
히드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걷히는 순간, 우리는 일제히 입을 딱 벌려야만 했다.
번쩍!
히드라는 일반적인 진화 테크트리를 거부하고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원래 진화했어야 할 ‘히드라 아성체(兒成體)’와는 전혀 다른 모습.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익숙한 모습.
그렇다.
히드라는 날개가 생기고 전신이 검은 비늘로 덮였다.
그리고 태양과도 같은 두 눈을 빛내는 무시무시한 형상이 되었다.
그 위풍당당한 모습은 나도 드레이크도 윤솔도 익히 하는 모습이었다.
‘고정 S+등급 몬스터’, ‘검은 용 군주’, ‘낮으신 분’, ‘칠흑의 대왕’, ‘모든 시체들의 소유자’, ‘가장 오래된 일곱 위상’, ‘분쟁지대의 절대자’, ‘흑막(黑幕)’, ‘교활한 협상가’, ‘무저갱의 독재자’, ‘일곱 용군주 중 세 번째로 나이가 많은 노룡(老龍)’, 산 것은 믿지 않고 죽은 것만 믿는 자, 모든 죽음을 먹어치워 관리하는 자, 시체들의 대왕, 나락의 종점(終點)!
-축하합니다! ‘히드라 유생체’는(은) ‘죽음룡 오즈’(으)로 진화했다!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오즈! 죽음룡 오즈!
제아무리 히드라 성체 따위가 무시무시하다고 한들 어찌 감히 이 몬스터에 비하랴?
놈이 히드라의 몸에서 탈피해 이 세상에 다시 한번 그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순간, 하늘은 암흑기류에 잠기고 주변의 바다가 끓기 시작했다.
[큭큭큭큭… 드디어 내가 부활했도다. 두려워하라 필멸자들이여!]
죽음룡 오즈는 깨어나자마자 태양처럼 붉은 두 눈을 들어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 증오와 복수심 가득한 눈초리 앞에 놓인 나와 윤솔, 드레이크는 아연실색했다.
대체 왜 히드라가 뜬금없이 죽음룡 오즈로 진화한단 말인가!?
특히나 우리 중에 윤솔의 동요가 제일 극심했다.
“꺄아아악! 세, 세상에!”
그녀는 흔들리는 동공, 떨리는 목소리, 격앙된 감정으로 한 마디를 겨우 외칠 수 있었다.
“…너무 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