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42화 (542/1,000)

542화 죽음룡 오즈(Odd’s) (10)

-띠링!

<세계 최초로 ‘악마성좌 벨제붑’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고인물>

<보상이 지급됩니다!>

<‘파리 대왕’이 쓰러졌습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구더기들이 사멸했습니다>

<파리족이 멸종을 맞이합니다>

<역병이 창궐하기도 전에 스러졌습니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고인물’ 님의 업적에 경의를 표합니다>

<모든 죽은 것들이 ‘고인물’ 님의 업적을 두려워합니다>

<모든 윙윙거리는 것들이 ‘고인물’ 님을 피해 도망칩니다>

<‘구더기 언덕’이 사라졌습니다>

<2차 대격변의 ‘두 전쟁군주’들이 ‘고인물’ 님을 주목합니다>

<싸움 나락의 흰 용군주 ‘무투룡 카프카타렉트’가 ‘고인물’ 님의 업적에 관심을 표합니다>

<활화산의 붉은 용군주 ‘용암룡 모르그마르’가 ‘고인물’ 님의 업적에 관심을 표합니다.>

<밀림의 녹색 용군주 ‘심록용 브라키오’가 ‘고인물’ 님의 업적에 관심을……>

.

.

벨제붑이 죽자 이 세상의 모든 구더기들과 파리들은 멸종해 버렸다.

아마도 벨제붑이 발악을 하며 소환한 파리와 구더기들이 세상 각지에서 죄다 긁어모아 온 군사들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대부분은 소환되자마자 바다에 떨어져 죽었지만.”

벨제붑의 아들들은 대부분 헛된 죽음을 맞이했다.

내가 잡은 것보다는 얼어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은 수가 훨씬 많았으니까.

드레이크와 윤솔도 혀를 내둘렀다.

“벨제붑은 그럼 얼마나 많은 목숨을 가지고 있었다는 거야? 감도 안 잡히는군.”

“자식이 하나라도 남아 있었다면 분명 또 어디선가 부활했겠네요. 끔찍해라.”

하지만 벨제붑은 확실하게 죽었다.

알림음도 분명히 들었으니까.

S+등급 아이템이 세 개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힘든 레이드였다.

“마지막에 솔로몬 대왕의 유품이 없었다면 못 이겼을 거야.”

나는 바람에 날려 사라져 간 솔로몬의 유지를 떠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벨제붑 레이드가 막을 내렸다.

이제는 그 보상을 챙길 시간이었다.

-<이어진>

LV: 92

호칭: 샌드웜 땅꾼(특전: 가뭄) / 씨어데블 격침자(특전: 심해) / 대망자 묘지기(특전: 언데드) / 지옥바퀴 대왕게 잡이(특전: 백전노장) / 아귀메기 태공(특전: 잠복) / 크라켄 킬러(특전: 고생물) / 와두두 여왕 쥬딜로페의 펫(특전: 갹출) / 여덟 다리 대왕 참수자(특전: 불완전변태) / 리자드맨 학살자(특전: 징수) / 식인황제 시해자(특전: 1차 대격변) / 뒤틀린 황천의 생존자(특전: 절약) / 불사(不死)의 좌군단장(특전: 여벌의 심장) / 불사(不死)의 우군단장(특전: 선택) / 검은 용군주 오즈의 위상(특전: 혈족전생) / 시작의 마을 유토러스의 명예 백작(특전: 귀족) / 탐욕의 악마성좌 마몬의 위상(특전: 수전노) / 발록의 뿔을 꺾은 자(특전: 야수) / 그 무서운 데모고르곤(특전: 싸움광) / 살인자들의 탑 5층의 주인(특전: 맵 디자인) / 벨제붑의 아들을 죽인 자(특전: 맹독) /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의 위상(특전: 폭식 창자)

HP: 920/920

레벨이 1 올랐다.

“우와-”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남들이 보기에 레벨 1의 상승은 별 것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실 레벨 90대 구간에서 1의 차이는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다.

스탯의 상승폭이 껑충 뛰는 것은 물론이요 필요 경험치량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진다.

보통 레벨 90에서 91로 상승하는데 하루 12시간씩 플레이해서 1년이 조금 넘게 걸릴 정도이니 벨제붑 레이드로 그걸 한 방에 메꾼 것은 정말로 굉장한 성과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와중에 HP 상승폭 실화냐.”

나는 여전히 저질 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아무리 레벨이 올라도 아이템 보정을 받지 않는 한 기본 체력 자체는 레벨의 영향만을 받기 때문이다.

“흐음. 호칭 특전도 생겼네.”

나는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의 위상(특전: 폭식 창자)’이라는 문구를 주목했다.

폭식 창자라, 언뜻 봐서는 잘 모르겠다. 이것은 어떤 효능이 있을까?

뭐가 달라졌나 싶어서 상태창을 열어본 나는 기겁해야 했다.

“어, 엄청 좋은 특전이네 이거.”

내 상태창은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까지 넓어져 있었다.

특히나 인벤토리 파트가.

내 아이템 수납 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된 것이다.

일반적인 유저 수백 명을 합쳐도 내 인벤토리보다는 작겠는데.

“크, 이런 게 고르딕사나 마몬 레이드 전에 나와 줬어야 하는 건데.”

그랬다면 이 어마어마하게 넓어진 인벤토리 창에 황금을 가득 채울 수 있었을 것이다.

…뭐 지금이라도 나온 게 어디긴 하냐만.

다음은 아이템 보상을 확인할 차례였다.

나는 벨제붑이 떨군 아이템을 챙겼다.

놈은 죽으면서 총 3장의 주문서를 떨궈 놓았다.

-<파리 대왕의 역병 봉인> / 주문서 / S+

파리 대왕 벨제붑의 힘이 봉인된 주문서.

이 역하고 독한 기운을 다른 사물에 깃들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1회만 사용 가능합니다(※아이템은 파괴되지 않습니다)

-특성 ‘극독’ 사용 가능 (특수)

“오오오오!”

상당히 좋은 주문서이다.

사용하는 무기에 이 주문서를 바르면 무기의 옵션에 벨제붑의 ‘극독’ 특성을 추가할 수 있다.

나는 당장 깎단에 이 주문서를 발라 보기로 했다.

“어차피 아이템 파괴도 안 된다는데.”

거침없는 강화!

이내 내 손에 들린 깎단과 주문서가 한데 녹아들어 빛난다.

동시에.

-띠링!

<강화가 실패하였습니다>

<주문서가 소멸되었습니다>

Aㅏ…….

망했다.

나의 똥손, 뭘 해도 안 되는 나의 똥손이 아까운 주문서를 날려버리고야 말았다!

“으으으으… 그냥 시장에 내다 팔걸.”

S+급 주문서가 시장에 나왔다면 진짜 그냥 부르는 게 값이었을 텐데.

어지간한 강남 고층빌딩에 들어가 저 주문서 한 장 던져 주면 바로 그 건물을 인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쓰라린 표정으로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어진아. 이거 너 써.”

옆에서 천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윤솔이 생긋 웃으며 자기 몫의 주문서를 나에게 내밀고 있었다.

“소, 솔아. 이거 진짜 비싼 거야.”

“알아~ 그래도 나는 네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걸 보는 게 좋아. 그리고 애초에 네 덕에 성공시킨 레이드인걸?”

나는 윤솔에게 몇 번이나 이 주문서의 가치를 설명했지만 윤솔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계속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드레이크가 윤솔에게 투덜거린다.

“이봐 솔. 그러면 내가 뭐가 되나.”

“아앗!? 죄송해요 드레이크 씨. 딱히 드레이크 씨에게 양보를 강요할 생각은…….”

“하핫, 농담이다. 사실 나도 어진에게 내 몫의 주문서를 양보할 생각이었거든.”

친구들의 우정에 코끝이 찡해진다.

드레이크는 씩 웃으며 내 옆구리를 한번 퍽 쳤다.

“대신 이 강화 성공하면 더 좋은 버스를 태워 달라고.”

“염려 마. 앞으로 잡을 고정 S+급 몬스터 많으니까.”

나는 눈가를 꾹 누르고는 또다시 강화를 했다.

윤솔이 준 주문서가 또다시 내 깎단에 스며든다.

하지만.

-띠링!

<강화가 실패하였습니다>

<주문서가 소멸되었습니다>

H

:

:

.

이거 진짜 열 받는데?

벨제붑을 잡고 나온 세 주문서 중 두 개가 소멸했다.

남은 것은 드레이크가 준 주문서 한 장.

나는 심혈을 기울였다.

강화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온갖 미신들을 죄다 행해야 하나?

“우선 주문서를 왼쪽, 아이템을 오른쪽에 놓은 뒤 그 주변을 세 번 돌면서 나는 빡빡이다라고 세 번 외친 뒤에 남쪽을 보고 절을 하면서 한쪽 눈을 감고 집게손가락으로 주문서를…….”

바로 그때.

[호엣!]

내 호들갑에 눈살을 찌푸린 쥬딜로페가 내 손에 들린 주문서를 탁 채 갔다.

그러더니 거침없이 바닥에 놓인 깎단을 향해 내팽개쳤다.

“으아아악!? 이 녀석아! 이게 무슨 짓……!?”

내가 경악을 하며 쥬딜로페의 뒷목을 잡아들었을 때.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놀라운 알림음이 들려온다.

나는 쥬딜로페의 몸을 잡아 올린 상태로 그대로 두 팔을 뻗어 몇 번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해 주었다.

“둥게둥게~ 우리 금손이~ 이번에도 잘했어요~ 장했어요~”

[호에엥-]

쥬딜로페가 나의 태세전환에 방실방실 웃고 있는 동안 드레이크와 윤솔은 휘둥그레진 표정으로 나의 깎단을 감상했다.

-<‘파리 대왕의 역병이 봉인된’ 깎아내는 단말마> / 양손무기 / S(S+) / 강화: +10

고문기술자들 중에서도 가장 음침하고 흉악한 이들이 쓰는 무기.

고결한 천사장 조차도 이 칼 앞에서는 신을 모욕할 수밖에 없으리라.

※아이템 속에서 폭식의 악마성좌 벨제붑의 숨길 수 없는 지독한 악의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공격력 +990 (+990)

-파괴불가 (특수)

-특성 ‘능지처참(陵遲處斬)’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능지처참(陵遲處斬)’ 사용 가능 (특수)

-특성 ‘극독(劇毒)’ 사용 가능 (특수)

-특성 ‘극독(劇毒)’ 사용 가능 (특수)

쌍수단도 깎단은 몸 전체에서 검록색의 불길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이 음흉하고 스산한 송곳을 보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추, 추가 데미지! 추가 데미지가 붙었다!”

원래 기존의 내 깎단은 S급 아이템이었고 능력은 적의 최대 체력의 0.01%를 매초마다 깎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한계돌파 연속 10강화에 성공하면서 양손무기로 변화했고 능력은 두 배가 되어 적의 최대 체력의 0.02%를 매초마다 깎아내게끔 되었었다.

그리고 지금.

깎단은 벨제붑의 극독 특성이 깃들어 더욱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초당 최대 체력의 0.04%의 도트 데미지.

원래보다 4배나 강력해진 것이다!

즉, 내 깎단에 찔린 적은 2,500초. 41분 40초 뒤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엄청나구만.”

나는 극독의 기운이 깃든 깎단을 양손에 든 채 섰다.

이제 정말 뭐든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샘솟는다.

그때쯤 해서.

-띠링!

<히든 퀘스트 ‘어둠 대왕의 회한(悔恨)’을 완료하셨습니다>

<파리 대왕 처치- 1/1>

<보상이 지급됩니다!>

아주 오래된 퀘스트 역시 클리어했다.

나는 한때 내 호적수였던 솔로몬 대왕의 얼굴을 떠올리며 잠시 숙연해졌다.

이윽고, 내 손아귀 안으로 아이템 하나가 툭 굴러들어왔다.

-<악마의 돌> / 재료 / S

너무나도 아름답게 생긴 보석.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저도 모르게 홀려버린다.

-어둠 속성 저항력 -50%

-?

표면이 매끈매끈한 돌. 검은 광택이 흐르는 겉면에는 내 얼굴이 비쳐 보인다.

“아아, 이 아이템을 여기서 얻는 거였구나.”

나는 탄성을 질렀다.

예전에 세계리그에서 한 월드클래스의 유저가 쓰는 것을 본 적 있었다.

영국의 국가대표이자 통합 세계랭킹 1위의 인간 족 플레이어 ‘에드워드 튜더 프랜시스’, 그가 마지막 결승전에서 이 아이템을 써서 일약 화제가 되었었지.

“좋네. 그렇다면 나도 언젠가 이걸 세계리그에서 써먹어야겠군.”

나는 눈을 반짝 빛냈다.

쇼맨십을 보이기에 이만한 아이템이 또 없다.

나는 언젠가 세계 정점에 서서 보일 화려한 연출을 꿈꾸며 이 악마의 돌을 품속에 잘 갈무리 해 넣었다.

이제 얼추 아이템 보상 시간이 끝났다.

내가 전장을 둘러보고 있을 때.

“으음? 어진. 여기 이런 게 떨어져 있군.”

꼼꼼한 드레이크가 전장을 한 바퀴 빙 돌더니 무언가를 주워 왔다.

-<나약한 자의 나팔고둥> / 재료 / C

힘껏 불면 트럼펫 소리가 나는 커다란 소라껍데기.

보기보다 물러서 힘껏 누르면 부서질 것 같다.

-방어력 -50

-특성 ‘나약한 갑각’ 사용 가능

짙은 크림색에 엷은 핑크색이 감돌고 있는 아주 예쁜 소라껍데기.

입구에 뚫려 있는 구멍부터 껍데기 끝까지는 약 8인치, 끝으로 갈수록 나선형으로 빙빙 꼬아져 있었고 일부 볼록무늬가 우아하게 양각되어 있다.

나는 이것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 이게 왜 여기에 있지?”

이것은 내가 꽤 오래 전부터 갖고 싶어 했던 아이템이다.

어디서 드랍되는지 몰라 경매장만 줄창 뒤지고 있었는데 설마 여기서 이런 걸 줍게 되다니!

윤솔이 소라껍데기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소라라면 예전에 그레이 시티의 살인자 다섯 명이 돌려가면서 불던 아이템이야. 칼바람 나락에서 싸울 때 얼핏 봤던 것 같아. 아마 그들이 죽으면서 떨군 것 같은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뜻밖의 횡재를 한 것이다.

“이거도 등급이 낮아서 그렇지 꽤 귀한 히든 피스인데 말이야.”

내가 갖고 싶어 하는 눈빛을 보내자 드레이크는 장난스럽게 소라를 위로 들어 올렸다.

“주면 뭐 줄 건가, 어진?”

“……사랑?”

“그런 건 됐고. 나는 물질적인 것 좋아한다.”

“아, 물질적인 거 좋아하는 사람이 S+급 주문서를 그냥 넘겨주나~”

“후후후.”

나는 드레이크와 아옹다옹 한 끝에 소라를 받았다.

휘이잉-

차가운 바람이 불어 텅 빈 얼음섬 마트료시카를 휩쓴다.

곧 섬이 180도 뒤집힐 시간이었기에 우리는 이곳을 뜰 채비를 했다.

저 멀리 치 카이가 모는 악마의 만찬 호가 정박해 있는 것이 보인다.

금방이라도 침몰할 것 같은 몰골의 저 유령선은 이 난리통에도 용케 파괴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

나는 쉽게 이 섬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기나긴 여정도 마침내 끝났고, 보스 몬스터도 잡았고, 호칭 보상도 확인했고, 아이템 보상도 챙겼다. (심지어 분량마저 한참 오버했다!)

그러나.

나는 이 섬에서 발길을 떼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왜냐하면 지금껏 함께 용맹하게 싸워왔던 동료 하나를 이 섬에 묻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히드라.

녀석의 몸이 차가운 대지에 가로누여 있다.

“…….”

“…….”

“…….”

우리 셋은 눈앞에 있는 히드라에게 잠시 묵념했다.

특히나 히드라에게 몇 번이나 목숨을 구함 받은 적이 있던 드레이크의 심경은 나만큼이나 착잡할 것이다.

윤솔도 눈물을 훔쳤다.

“에이, 참. 게임 속 인공지능에게 과몰입하지 말자고 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네.”

눈시울이 붉어진 윤솔, 하지만 나와 드레이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진심을 담아 히드라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을 때.

…꿈틀!

작은 이변이 하나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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