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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36화 (536/1,000)

536화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 (11)

[……!]

벨제붑. 이 거대한 파리의 몸이 일순간 빳빳하게 경직되었다.

죽은 벌레가 으레 그렇듯 놈은 여섯 개의 다리를 배 안쪽으로 웅크렸고 그대로 숨을 죽여 고도를 낮춘다.

날개는 계속 웽웽- 움직이고 있었지만 통통하게 살찐 배는 죽은 듯 미동이 없었다.

놈이 극독 웅덩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뚝 끊겼다.

“역시나.”

나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벨제붑이 만들어낸 극독 웅덩이(●)와 내가 만들어 낸 제독 웅덩이(◌)는 서로 엎치락뒤치락 공수를 반복하던 중 서로 멀찍이 떨어져 배치되었다.

위치 상 서로가 서로의 돌을 뒤집을 수 없는 구조.

이번에는 벨제붑이 극독 웅덩이를 만들어 낼 타이밍이었는데 나의 제독 웅덩이들이 오염시킬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자 오델로의 규칙 중 하나인 ‘패스’가 적용된 것이다.

“자, 보라고. 지금은 분명 흑(●) 차례지? 하지만 놈이 뒤집을 수 있는 돌이 없다면 놈의 턴은 자동으로 스킵, 턴은 백(◌)에게 넘어온다.”

그러나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기본적으로 턴 제 게임이 아니다.

…그렇다면 벨제붑은 어떤 방식으로 내게 턴을 넘겨주느냐?

“바로 ‘스턴(Stun)’인 것이야요!”

기절(Stun).

일순간 막대한 충격과 과부하를 주어 상대방을 그로기(Groggy) 상태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벨제붑은 이런 패스 상황이 발생되어 턴을 빼앗길 때마다 약 3초 정도씩 스턴 상태에 빠진다.

드레이크와 윤솔이 눈을 반짝였다.

“바로 이때가 기회로군!”

“어진아! 우리가 엄호할게!”

드레이크가 속사를 준비했다.

윤솔 역시 회복된 마나를 긁어모아 신성불가침 장막을 펼쳤다.

그리고 나는 동료들의 가호를 받아 나는 듯 뛰어 벨제붑에게로 향했다.

온 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린 벨제붑, 겨우 3초 밖에 되지 않는 빈틈이었지만 나에게는 천금과도 같은 딜 타이밍이었다.

푸푹!

두 개의 송곳이 파리 대왕의 몸에 틀어박혔다. 그 불쾌하게 살찐 뱃가죽을 뚫고 말이다.

[오-오오오오!]

벨제붑이 고통에 몸을 떨며 포효한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깎단을 놓치지 않고 더욱 깊게 쑤셨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냉정하게 초시계를 쟀다.

‘벨제붑에게 뛰어가는 데 2초, 깎단 두 개를 쑤셔 박는 데 1초, 뒤로 빠져 안전거리를 확보하는 데 1초.’

1초가 모자라다는 계산을 내리는 순간.

퍼-억!

벨제붑의 가운뎃다리가 나를 후려갈겼다.

파리의 다리는 전투에 적합하지 않아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의외로 꽤 흉악하게 생겼다.

특히나 강철 같은 가시 털이 숭숭 돋아나 있는, 저 거대한 돌기둥 같은 다리라면 더더욱.

도망갈 시간 1초가 부족해 벨제붑의 다리에 피격당하는 순간.

삐이이이-

이명(耳鳴)과 함께 내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이 부족함 또한 나의 철저한 계산의 결과란 말씀!

…콰르르륵!

내 몸에 바짝 곤두선 오즈의 비늘이 칼처럼 서며 반사 데미지를 머금는다.

나는 그것을 마몬의 오른팔에 실어 그대로 내쏘았다.

뻐억-

둔탁한 소음.

마치 방망이로 고깃덩어리를 두드리는 듯한 굉음이 벨제붑의 몸뚱이를 저 뒤로 밀어내 버렸다.

[거으윽!?]

벨제붑은 주둥이에서 녹색 담즙을 토해 내며 울부짖었다.

나는 앙버팀 특성으로 살아남은 동시에 여벌의 심장으로 HP를 채웠다.

잠시 혈액포식자의 링을 써 볼까 했지만 벨제붑의 오염된 혈액은 빨아들여 봤자 독밖에 안 되니 지금으로서는 쓸모가 없다.

“그보다, 확실히 마몬의 건틀릿이 좋긴 좋네.”

물론 왼손에 있는 데스웜의 건틀릿도 좋긴 하지만 아무래도 마몬의 건틀릿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 망치처럼 생긴 거대한 오른주먹은 죽음룡 오즈의 힘도 무리 없이 버텨내고 있었다.

예전 국내리그에 나갔을 때 A+등급의 건틀릿 두 개가 오즈의 반사데미지를 버티지 못하고 가루가 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든든한 무구가 아닐 수 없다.

뭐, 아무튼.

두 개의 S+급 아이템에 피격당한 벨제붑은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싶었다.

마몬의 망치 건틀릿은 공격 무기 중에서도 단연코 톱클래스의 공격력을 가진 것이고 또 죽음룡 오즈의 비늘갑옷 역시도 방어구라기보다는 공격무기에 가까웠으니까.

[그으윽! 우둔한 자야. 우쭐하지 말지어다!]

벨제붑은 두 장의 날개로 썩은 냄새 섞인 폭풍을 만들어 내며 다시 필드로 도약해 나왔다.

…쿠르르르륵!

또다시 극독 웅덩이가 소환되어 우리를 압박한다.

심지어 전 페이즈에 소환되었던 웅덩이들보다 크기도 약간 커졌다.

그때, 윤솔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진아! 제독제가 몇 병 안 남았어! 참고해!”

불안함이 느껴지는 목소리.

벨제붑과의 오델로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아무리 승부가 팽팽해도 한쪽이 돌이 떨어진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그러나 이 역시도 나의 계산값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결과이다.

“친구들, 사실 3페이즈는 애초에 크게 불안해할 것도 없는 단계였어.”

내 말에 윤솔과 드레이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니, 어진. 벨제붑의 극독은 세계제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맞아. 엄청 무서워 보이는데?”

하지만 나는 손가락을 저었다.

“아무리 무서운 공격이라도 맞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나는 눈을 반짝이며 저 앞에 있는 벨제붑을 바라보았다.

…꾸르르르르륵!

또다시 열심히 흑돌, 극독 웅덩이를 소환하고 있는 파리 대왕.

하지만 놈의 역병 공격 패턴이 오델로의 규칙을 따르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 지형이 드넓은 본토의 필드가 아니라 세상의 끝에 격리된 얼음섬이라는 점이 놈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마침 남은 제독제의 수도 딱 다섯 병.’

나는 얼음섬 중앙에 높게 솟은 다섯 개의 구더기 산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이제 정말 승부를 내야 할 타이밍이다.

“친구들, 3페이즈의 마지막 오더야!”

나는 윤솔과 드레이크를 좌우 양익으로 보냈다.

동시에 중앙 정면을 향해 달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사실 오델로는 수학적으로 그 공략법이 명확하게 풀린 보드게임이야! 8*8 형식의 오델로에서 나올 수 있는 패턴의 경우의 수는 약 10의 54제곱, 즉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개나 되지. 하지만 이 중 말도 안 되는 수를 놓는 경우의 수를 제외하면 유의미한 공격 패턴의 수는 약 10의 28제곱. 즉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개 밖에 안 된다는 거야!”

내 말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는 달리다 말고 서서 잠시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벨제붑의 어그로는 온전히 나를 향해 있기에 잠시 정도의 여유는 괜찮다.

나는 계속해서 외쳤다.

“1993년 7월 조 파인스타인(Joel Feinstein)에 의해 확인된 바에 의하면 경우의 수가 10,000,000개에 불과한 4*4, 3,600,000,000,000개에 불과한 6*6 형식의 오델로에는 두 번째 플레이어(○:플레이어) 측이 무조건 승리할 수밖에 없는 무적의 필승 패턴이 존재한다고 하지.”

말을 하는 순간 발밑에 또다시 벨제붑이 만들어 낸 극독 웅덩이가 소환된다.

나는 이번에도 제독제를 뿌리며 그 위를 뛰어넘었다.

“하지만 8*8 형식의 오델로는 판이 지나치게 확확 바뀌니만큼 수학적으로 완벽한 필승법을 찾아 낸다는 것이 불가능해. 굳이 따지자면 첫 번째 플레이어(●:벨제붑)가 이길 가능성이 약간 더 높다는 추론이 나온달까?”

그러자 저 멀리에서 달리고 있던 드레이크와 윤솔이 의문을 제기했다.

“어진! 벨제붑의 공격 패턴은 8*8형식 오델로의 규칙을 따르고 있다고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필드를 총 64구획으로 나눈다고 했었지 않나!”

“어어? 그러면 벨제붑이 유리하고 우리가 불리한 것 아냐!?”

나는 친구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당연히 벨제붑이 유리한 게임이지!”

벨제붑은 이 역병의 8*8 오델로에서 흑돌을 잡고 있고 따라서 이 승부에서 이길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놈이 소환된 곳이 본토의 드넓은 필드였을 때의 일이다.

“근데 말야. 이 좁아터진 얼음섬에서 8*8 오델로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 일침을 들은 윤솔과 드레이크가 아차 싶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측으로 달려간 윤솔, 좌측으로 달려간 드레이크는 넓게 펼쳐진 극독 웅덩이들을 바라보았다.

필드 중앙에서 멀어져 외곽으로 가자 비로소 전장 전체가 시야에 들어온다.

과연. 원래대로라면 가로 여덟 칸, 세로 여덟 칸으로 나뉘어 있어야 할 필드가 가로 여섯 칸, 세로 여섯 칸으로 밖에는 나뉘지 않았다.

나머지 28개 구획들은 얼음섬의 협소한 필드 밖으로 삐져나가 바다에 생성되었고 그대로 무효 처리된 것이다!

드레이크와 윤솔은 오싹한 전율을 담아 외쳤다.

“허어, 어쩐지 가끔 벨제붑이 이해할 수 없는 악수를 두더니만. 이런 것이었나!”

“아아아! 그렇구나! 극독 웅덩이를 바다에 소환시켜서 헛돌을 놓게 한 거였어! 벨제붑의 8*8 역병 구간을 다 담기에는 얼음섬의 필드가 좁다는 걸 이용해서!”

그렇다.

내가 굳이 이 먼 얼음섬까지 와 벨제붑을 맞이한 것은 단순히 역병이 본토에 창궐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이타적인 이유에서만이 아니다.

나는 씩 웃었다.

“벨제붑(●)의 극독 웅덩이 페이즈는 원래 8*8구획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불리할 수밖에 없지만, 이렇게 지형을 잘만 이용하면 얼마든지 6*6구획으로 변경 가능하지.”

이 말인즉슨 무엇이냐?

“즉, 플레이어(○)가 선빵만 치면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는 필승 패턴이 존재한다 이거야!”

나는 바로 오더를 내렸다.

드레이크가 달려간 가로축 방향을 A, B, C, D, E, F, G, H.

윤솔이 달려간 세로 방향을 1, 2 ,3 ,4 ,5 ,6 ,7 ,8로 잡는다.

이 중 G와 H. 7과 8은 바다와 겹치는 구간이니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우리 턴이 왔어! 벨제붑이 공격 모션을 취했지만 극독 웅덩이가 생기지 않은 걸로 보아 G2 부분에 독을 뿌린 모양이다!”

“어진! 그렇다면 H1을 먹어야 하는가!?”

“아니! 그 부분은 바다잖아! 무의미해! 우리는 E4과 F5을 먹어서 빼앗기지 않는 위치를 점거하고 뒤이어 모서리 3군데를 몽땅 잡아먹는다!”

나는 마지막 남은 제독제들을 몽땅 쏟아 부었다.

벨제붑은 웽웽- 소리를 내며 계속해서 저항했지만 이미 승기는 이쪽으로 완벽하게 기울었다.

“E4! F5! 에잇 포리 파이브! 그대는 하늘 나라로! 오직 선만이 존재하는 평온한 세계로!”

나는 마지막 제독제가 담긴 병을 꺼내 바닥에 깨트렸다.

…쨍그랑!

그 부분은 정확히 벨제붑의 정면에 있는 극독 웅덩이었다.

터억-

나는 꾸덕하게 굳어 버린 흰 웅덩이를 딛고 뛰어올라 바로 벨제붑의 미간 정중앙에 건틀릿을 꽂아 버렸다.

콰콰콰콰쾅!

또다시 요란한 반동과 함께 벨제붑의 입에서 내장조각 섞인 핏물이 튀어나온다.

[궤에에에엑!]

벨제붑은 또다시 뒤로 쭉 밀려났다.

한때 마주 쳐다보는 것조차 버겁던 파리 대왕에게 주먹을 날릴 수 있게 되다니, 이렇게 감개무량한 순간이 또 있으랴!

쉬이이이익-

벨제붑은 뒤로 나가떨어진 채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극도의 분노가 이 파리 대왕의 두 눈을 시뻫겋게 멀게 만들고 있었다.

츄르르릅-

벨제붑은 주둥이를 벌름거려 그동안 깔아놨던 극독 웅덩이들을 빨아들였다.

-띠링!

<파리 대왕이 격노합니다>

<구더기 언덕의 독이 옅어지고 있습니다>

<음흉한 저의(底意)가 수면 위로 부상합니다>

놈이 독을 회수하는 것을 보니 길고 길었던 3페이즈가 드디어 끝난 모양이다.

그러나!

“남은 해독제를 온몸에 발라! 이번 독 폭풍은 세다!”

나는 재빨리 동료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벨제붑의 발악기가 터져 나왔다.

3페이즈 종료를 알림과 동시에 터져나오는 이 역병 폭풍은 가드가 불가능한 가불기이기에 남은 해독제를 온몸에 발라야 했다.

그러나.

“어, 어진! 큰일났다!”

“해독제가 두 병뿐이야!”

드레이크와 윤솔이 경악했다.

제독제에 비해 해독제는 그 수량이 적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걱정 마. 이 또한 계산대로지.”

나는 드레이크와 윤솔에게 해독제를 권했다.

…그럼 나는 맨몸으로 이 역병 폭풍을 견뎌내느냐?

“당연히 그건 아니고.”

제아무리 나라고 해도 벨제붑의 독을 맨몸뚱이로 이겨내는 것은 무리이다.

역병에 한번 제대로 걸리면 능지처참 특성과 같은 도트 데미지가 죽을 때까지 들어오게 되니까.

드레이크와 윤솔은 걱정되는 마음에 차마 해독제를 자신에게 쓰지 못하고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얼굴에도 안도의 빛이 어리게 되었다.

내가 손을 들어 약지의 반지를 쓰다듬어 보였던 것이다.

“늘 무리한 부탁만 해서 미안하다. 이번 한번만 더 도와다오.”

내가 쓰다듬은 아이템은 이것이다.

<똬리를 튼 사념(巳念)’> / 반지 / A

동시에.

…파팟!

반지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나의 충실한 소환수가 등장했다.

<히드라 ‘유생체(幼生體)’> -등급: A / 특성: 무한성장, 백전노장, 과식, 맹독, 고속재생, 마법 면역

-서식지: 거인국, 똬리를 튼 사념(巳念)

-길이: 32m.

-‘아홉 개의 머리’를 가졌다는 신화 속의 뱀.

성장폭이 무한대에 가깝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사실이 별로 없다.

독의 천적(天敵).

펫에 의해 시작된 ‘오염된 피 사건’을 종결지을 펫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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