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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30화 (530/1,000)
  • 531화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 (6)

    [그-워어어어어억!]

    대망자가 눈을 떴다.

    거대한 몸을 가진 뼈다귀가 서릿발들을 부수고 일어나 주위에 있던 해골병들을 쓸어버린다.

    <거인족 대망자> -등급: A+ / 특성: 거인, 어둠, 언데드, 하수인, 자연재해

    -서식지: 칼바람 싸움터 우파 진영, 거인국

    -크기: 50m.

    -살아생전에는 위대한 거인족 전사였다.

    산을 들어 올려 바다에 집어던져 섬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대망자는 어마어마하게 큰 발바닥으로 악마 해골병들을 마구 짓밟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놈은 곧바로 악마 해골병들의 라인을 밀기 시작했고 그대로 악마 진영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그러나 악마 진영에서도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띠링!

    <적진이 함락 직전입니다>

    <전사들의 맹렬한 투지가 ‘칼바람 싸움터의 지배자’를 자극합니다>

    <‘대망자(大亡者)’가 눈을 떴습니다!>

    악마족 대망자가 깨어나 거인족 대망자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악마족 대망자> -등급: A+ / 특성: 악마, 어둠, 언데드, 하수인, 자연재해

    -서식지: 칼바람 싸움터 좌파 진영, 거인국

    -크기: 50m.

    -살아생전에는 위대한 마족 전사였다. 단신으로 천족의 5개 군단을 격파한 사건은 아직도 만마전의 벽화에 기록되어 있다.

    수많은 악마 해골병들을 상대하느라 HP가 많이 빠진 거인족 대망자는 악마족 대망자의 뿔과 이빨에 밀려 다시 거인족 진영까지 패퇴했다.

    얼음 광장은 얼음 파편과 뼛조각들로 뒤덮여 난장판이 되었다.

    그리고 그 혼돈의 중심에서 살인자 5인 파티에 내분이 생겼다.

    “뒈져라!”

    잭 메리듀. 그는 핏발 선 눈을 번뜩이며 창을 내리꽂았다.

    그 창은 눈앞에 있던 피기의 뱃가죽을 관통했다.

    뿌지직-

    무언가가 터져나오는 소리.

    피기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 나뒹굴었다.

    “아, 안 돼! 안 돼애애애! 피기를 죽이지 마!”

    쓰러진 피기를 보고 절규하는 이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피기였다.

    피기는 깨진 안경 너머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피기를 향해 달려갔다.

    [……꿀.]

    피기를 향해 흐려진 눈을 들어 보이는 피기.

    그렇다. 잭이 찔러 죽인 피기는 바로 피기의 소환수인 작은 암퇘지였던 것이다.

    위기의 순간 주인을 위해 몸을 내던져 대신 죽은 펫.

    피기는 돼지를 끌어안은 채 울부짖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잭을 향해 절규하듯 외쳤다.

    “오염된 피의 숙주로 이용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애를 죽여!? 네가 사람이냐!?”

    그러자 잭이 광기 어린 웃음을 양 입꼬리에 말아 건 채로 피기를 내려다보았다.

    “고작 펫 따위한테 과몰입 하지 마라.”

    “고작 펫이라니! 나는 소환사야! 펫은 내 친구라고! 어떻게 친구의 친구를 죽일 수 있어! 이건 아니…….”

    그러나 피기는 말을 중간에 끊고 대량의 피를 토해야 했다.

    잭의 창날이 피기의 얼굴을 베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끄어억!?”

    이번에는 진짜로 데미지가 들어온다.

    소환수가 사망한 것에 대한 리바운드 데미지에 겹쳐져 매우 치명적이었다.

    “…너, …너어 잭. 나를 벴어?”

    “그래, 이 돼지 쓰레기야. 누가 네 친구라는 거야? 건방지게.”

    잭은 창을 들어 피기의 얼굴을 한 번 더 베어 버렸다.

    쩍-

    기분 나쁜 파육음과 함께 피기가 쓰러졌다.

    그의 얼굴에 난 십자 모양의 흉터에서 붉은 피가 펑펑 솟구치고 있었다.

    데굴데굴데굴……

    피기가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 꼭 쥐고 있던 소라껍데기, 그것이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

    “…….”

    “…….”

    그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살인자들은 전부 다 할 말을 잊은 채 멍하니 섰다.

    랠프, 사이먼, 심지어 잭의 친구인 로저마저 황망한 표정.

    그 시선의 사이에서 온몸이 붉게 물든 잭이 비틀비틀 일어났다.

    “뭐? 뭐 X발, 뭐?”

    잭은 창에 묻은 피를 핥으며 씩 웃었다.

    그러자 랠프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아무리 막 나간다지만 ‘팀킬’이라니. 해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는 거다 잭.”

    하지만 대답은 잭이 아니라 그 옆의 로저에게서 들려왔다.

    “지랄 마, 랠프. 피기가 죽을 때 너도 가만히 있었잖아. 왜 이제 와서 대장인 척…….”

    그러나 로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랠프가 손에 들고 있던 화염구를 그의 발 앞으로 내던졌기 때문이다.

    콰콰쾅!

    시뻘건 화염폭풍이 로저를 덮쳤다.

    “으아아악!?”

    로저는 불을 끄기 위해 얼음바닥에 데굴데굴 굴렀다.

    그것을 본 잭이 히죽 웃었다.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시는군, 랠프.”

    “…….”

    “왜? 대장이라고 우쭈쭈 안 해 줘서 삐졌냐? 로저는 왜 죽였지? 피기가 없어지니까 이제 네가 그 위치가 될까 봐 선빵 친 건가?”

    잭의 빈정거림에 랠프는 입을 다물었다.

    다만.

    퍼펑!

    한 번 더 화염 마법을 써서 로저를 확실하게 지졌을 뿐이다.

    잭이 히죽 웃었다.

    “네놈은 처음부터 맘에 안 들었어.”

    동시에 잭과 랠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쾅! 퍼퍼펑! 으지직!

    잭이 창을 휘두르고 랠프는 화염을 뿜어내 이에 맞선다.

    창은 불길을 찢어발겼고 불은 창을 뜨겁게 달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점점 더 불길은 거세게 창을 밀어냈다.

    “크윽!?”

    잭이 달아오른 창을 식히기 위해 물러나자마자.

    퍼펑!

    불길의 벽을 뚫고 랠프가 튀어나와 뻘겋게 달아오른 손으로 잭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네가 대장이 못 되는 이유가 있지.”

    “……!?”

    “바로 약하다는 것.”

    랠프는 잭의 얼굴을 움켜쥔 채로 팔을 확 밀었고 잭을 얼음바닥에 처박았다.

    얼굴은 랠프의 손아귀에 잡혀 뜨겁고 뒤통수는 얼음바닥에 부딪쳐 차갑다.

    잭은 발버둥쳤지만 전신을 불로 두르고 있는 랠프에게 잡혀 있는 이상 꼼짝도 하지 못한 채 화염 데미지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잭 메리듀. 이건 피기의 복수라고 해 두지.”

    랠프가 막 잭의 안면에 대규모 화염 마법을 캐스팅하려는 순간.

    퍼억!

    랠프의 옆구리를 후려치는 것이 있었다.

    “끄윽!?”

    랠프는 경악하여 시선을 옆으로 틀었다.

    …쿠르르륵!

    전신이 불에 뒤덮인 로저가 원독 어린 표정으로 랠프를 노려보고 있었다.

    놈은 죽기 직전 마지막 HP를 짜내 랠프의 옆구리에 주먹을 날렸던 것이다.

    거대한 바위도 일격에 쪼개버리는 로저의 주먹이 랠프의 몸통을 뒤흔들어 놓았다.

    잭은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았다.

    푸욱!

    불에 달궈진 창이 랠프의 갑옷 하복부를 뚫고 들어가 랠프의 뒷목으로 빠져나왔다.

    “꺼흑!?”

    랠프는 두 손을 바둥거렸지만 이미 잭의 창에 단단히 꿰인 상태였다.

    “흐흐흐흐흐. 방심했구나. 재수 없는 놈.”

    잭은 곧장 허벅다리 안쪽의 단도를 빼내 그대로 랠프의 목을 그어 버렸다.

    얼마 되지 않는 마법사의 HP는 그 일격으로 확실하게 동이 났다.

    “후욱- 후우욱-”

    잭은 숨을 몰아쉬었다.

    팀킬을 함으로서 카르마 수치가 임계점을 돌파했다.

    흘러내린 피 때문인지 HP가 바닥을 기기 때문인지 시야가 온통 빨개져서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그때.

    “헉!?”

    잭은 어느 순간 자기 옆까지 바싹 다가와 있는 해골병을 발견했다.

    “이 자식! 미니언 주제에 감히 나를 처형하려고!?”

    잭은 황급히 창을 휘둘러 옆에 있던 해골병의 머리통을 부숴 버렸다.

    순간.

    “끄아아아악!?”

    낯익은 목소리의 비명이 들려왔다.

    잭은 그제야 붉어진 눈을 들어 눈앞에 있던 것을 제대로 쳐다보았다.

    머리가 부서진 채 쓰러져 뜨거운 피를 뿜어내는 해골병.

    아직 파르르 떨리는 이 시체의 정체는 바로 사이먼이었다!

    “……빌어먹을, 사이먼이었나? 개자식, 왜 햇갈리게 거기 있고 지랄이람.”

    잭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피기와 돼지가 죽고 로저도 죽었다.

    제일 성가시던 랠프도 죽었고 방금 사이먼도 가 버렸다.

    “헤헤. 에헤헤헤헤. 나 혼자 남은 건가?”

    잭은 고개를 들었다.

    온통 붉게 물든 세상.

    -띠링!

    <대망자의 잔류사념이 사라져 갑니다>

    잭의 눈앞으로 대망자의 거대한 몸이 무너져 내린다.

    -띠링!

    <잭 메리듀 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요란한 알림음이 게임의 끝을 알리고 있었다.

    광기와 절망.

    뼈다귀와 피, 살점, 내장들이 도처에 가득하다.

    윙윙윙윙윙윙윙윙-

    이명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우하하하하하!”

    잭은 동료들의 피와 뼛가루들을 얼굴에 처덕처덕 바른 채 웃어젖혔다.

    이윽고 거인족 대망자가 죽고 난 뒤 아이템이 떨어졌다.

    오로지 잭 메리듀, 그의 차지였다.

    -<거인족 대망자의 8번척추 마쿠아휘틀> / 양손무기 / A+

    거인의 척추는 부러지지 않는다.

    같은 거인의 공격이나 세월, 이 두 가지를 제외하면.

    -물리 공격력 +6,000

    -특성 ‘거인국으로 가는 길’ 사용 가능

    울퉁불퉁한 척추뼈들로 만들어진 거대한 곤봉. 언뜻 보기에는 마치 열쇠처럼 생기기도 했다.

    “큭큭큭큭. 자식들, 이런 레어템을 못 보고 가서 아쉬워 어쩌냐.”

    잭은 취한 듯 아이템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광기 어린 우쭐거림으로 주변에 널브러진 옛 동료들을 쭉 둘러보았다.

    바로 그때.

    “……응?”

    잭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핏발 선 두 눈을 크게 떠 죽은 동료들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돼지. 피기. 로저. 랠프. 사이먼.

    돼지. 로저. 랠프. 사이먼.

    피기의 시체가 없다.

    잭이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려는 순간.

    퍼-억!

    잭의 머리통 한 켠이 움푹 들어갔다.

    “개새끼!”

    두 눈이 온통 빨갛게 불타고 있는 피기가 시뻘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잭의 뒤에 서 있었다.

    두 손에는 단단한 얼음덩어리를 든 채로.

    “개새끼개새끼개새끼개새끼개새끼!”

    피기는 잭의 뒤통수를 계속해서 얼음덩이로 후려쳤다.

    퍽! 퍼억! 으직! 으직! 철퍽! 철푸덕! 찌걱! 찌그럭!

    계속되는 타격, 잭은 바닥에 널브러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머리통이 완전히 곤죽이 되어 바닥에 퍼져 버렸으니 당연한 일이다.

    피기는 그제서야 뜨거운 숨을 헉헉 토해 놓으며 뒤로 비틀비틀 물러섰다.

    그리고 깨진 안경알 너머로 충혈된 눈을 들었다.

    “나를! 나를 무시해!? 감히 나를 무시해 이 새끼들아!? 내가! 나! 내가! 내가 리더야 이 새끼들아! 니들이 뭐가 그리 잘났는데!? 꼴랑 레벨 좀 높으면 다냐!? 어!? 나도 대장 할 수 있거든!?”

    피기는 헐떡이는 숨으로 피에 물든 소라껍데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 터진 입술로 미친 듯이 불어대기 시작했다.

    소라껍데기에서 핏물이 쿨럭쿨럭 토해져 나온다.

    그리고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던 본심도.

    뚜우우우우- 뚜우- 뚜우우우- 뚜-

    동시에 묵직한 뱃고동 소리가 해골 가득한 공동을 울리기 시작했다.

    “모두 내 말을 들어, X발! 내가! 내가 대장이야아아아아!”

    피기는 무엇엔가 홀린 듯 소라고둥을 불어댔다.

    동시에.

    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

    이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더욱 심해지기 시작했다.

    피기의 얼굴을 역십자 모양으로 가른 상처에서 피분수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피기의 얼마 되지 않는 최대 HP보다도 훨씬 더 많은 양이었다.

    “위, 윙윙. 윙윙. 시, 시끄러워. 윙윙!”

    피기는 소라를 불면서도 계속 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후볐다.

    귀에서도 핏물이 줄줄 새어나왔지만 피기는 개의치 않아하며 더욱 더 많은 손가락을 자신의 귓구멍으로 집어넣는다.

    윙윙윙윙-

    그 순간, 피기는 깨달았다.

    이 윙윙거림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려오고 있음을.

    “…아.”

    피기가 고개를 번쩍 드는 순간.

    쿠르릉…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저주받은 유빙 마트료시카가 무너집니다!>

    부서지는 천장, 흩날리는 뼛가루.

    도처에 범람하는 피와 살점, 광기!

    피기는 자신의 눈앞에 있던 흐릿한 실루엣들마저 모두 붉은 빛에 삼켜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눈앞은 완벽한 핏빛으로 뒤덮였다.

    귀에는 윙윙거리는 이명.

    코에는 썩는 듯한 악취.

    ……! ……! ……!

    단말마와도 같은 피기의 비명이 목을 찢고 나오는 순간.

    -띠링!

    알림음이 한번 울렸다.

    <악마 진영이 승리하였습니다>

    <동료들이 모두 사망하였습니다>

    <최후의 생존자 ‘피기’>

    <히든 퀘스트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을 최종 완료하셨습니다>

    <※사람을 한 명 이상 죽여 본 자만이 수행할 수 있습니다>

    <※같은 파티원을 한 명 이상 죽여 본 자만이 완료할 수 있습니다>

    <※이 퀘스트는 거부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오로지 피기에게만 들리는 무시무시한 알림음이 ‘저주받은 유빙’ 전체를 잠식해 온다.

    <제물이 준비되었습니다>

    <파리 대왕이 강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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