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25화 (525/1,000)
  • 526화 오염된 피 (8)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내가 볼을 잡아당기며 묻자 살점토막 구더기는 조금 당황하는 듯하다.

    […파, 파리 대왕이신데예.]

    인터넷 검색 및 딥러닝을 통해 가장 적절한 대답을 찾아낸 살점토막 구더기.

    하지만 나는 구타를 멈추지 않았다.

    짝! 짜악! 짝! 짝!

    나는 마몬의 힘이 실린 오른손으로 구더기의 뺨을 연달아 후려갈겼다.

    “이 시키, 이 시키, 이 시키, 일루와. 좋겠다! 좋겠어! 느그 아부지 파리 대왕이라 좋겠어!”

    연달아 뺨을 맞은 살점토막 구더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크, 크윽! 감히 이 몸에게 이런 수모를!? 이놈! 내 아버지는 벨제붑이다!(My papa is Beelzebub!)]

    나는 그 대사를 듣고 웃고 말았다.

    예전 데린쿠유에서는 저 대사가 잘못 번역되어 ‘내 후라이드 치킨 가게 벨제붑!(My Popeyes Beelzebub!)’으로 되어 있었는데.

    “확실히 번역 패치가 되긴 됐군. 역시 뎀은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게임이야.”

    나는 손목을 한번 풀고는 본격적으로 레이드에 돌입했다.

    데린쿠유에 있을 당시 살점토막 구더기의 공격패턴은 단순했다.

    1. 데미지를 주면 그 데미지의 10%를 10초에 걸쳐 회복함.

    2. 데미지를 입으면 1초간 방어력이 1% 증가함. 중첩 가능.

    3. 파리를 잡아먹을 때마다 HP를 회복함.

    4. 주 공격은 시독을 토해 놓으며 돌진 후 좌우로 구르기.

    ‘하찮음’ 특성과 ‘질긴목숨’ 특성을 이용해 아쉬운 HP를 최대한 연장하고 ‘맹독’ 특성을 응용해 공격하는 것.

    덩치가 있어서 단순 피격 시 물리 데미지는 꽤나 아픈 편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의 살점토막 구더기는 몇 가지의 추가 공격 패턴을 가진다.

    5. 입에서 뿔과 같은 거대한 혀를 내밀어 독성 짙은 침 거품을 뿜어냄.

    6. 곳곳에 깔린 썩은 음식물들을 흩뿌려 광역 악취 데미지(플레이어 피격 시 약 0.5초간 스턴).

    7. 사망 시 보이는 독특한 움직임.

    내가 알기로 살점토막 구더기의 추가 공격패턴은 위의 세 가지이다.

    일곱 번째 공격 패턴에 대해서는 미래 지식을 아무리 뒤져도 특별히 아는 바가 없었기에 일단 이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오오오오! 데린쿠유에서의 빚을 갚아 주마!]

    살점토막 구더기는 나를 향해 악취와 독액을 내뿜으며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놈은 내가 있는 쪽으로 움직이며 주변에 수북하게 쌓인 파리들을 빨아들였다.

    후루루루루룩- 으적- 으적- 으적- 으적-

    죽은 파리든 마비만 되어 있는 파리든 가리지 않고 흡입한 살점토막 구더기의 몸이 한층 더 비대해졌다.

    “으웩. 오늘 저녁은 다 먹었군.”

    내가 혀를 빼물고 고개를 젓는 순간.

    [그오-오오오오!]

    살점토막 구더기가 나를 덮쳐왔다.

    콰-쾅!

    묵직한 충격파가 내 전신을 강타했다.

    하지만 나는 앙버팀 특성으로 살점토막 구더기의 돌진을 버텼고 여벌의 심장 특성으로 HP를 회복했다.

    “그대로 돌려주지.”

    그리고 오즈의 죽음비늘을 빳빳하게 세우고는 방금 입은 데미지를 살점토막 구더기의 물러터진 몸에 그대로 꽂아 넣었다.

    퍼퍼펑!

    살점토막 구더기가 괴성을 지르며 나가떨어진다.

    그 상태에서 윤솔과 드레이크가 가세했다.

    “여전히 기분 나쁜 몬스터네.”

    “몸이 말랑말랑해서 딜은 잘 박히는군.”

    윤솔은 신성보호막으로 살점토막 구더기의 움직임을 봉쇄했고 드레이크는 그런 구더기를 향해 속사를 퍼부었다.

    [그우우우욱!]

    살점토막 구더기는 이전에 없던 패턴인 혓바닥 공격을 시도하려 했다.

    놈의 입에서 끈적한 혓바닥이 튀어나오더니 독성이 가득한 침 방울이 이쪽을 향해 하늘하늘 날아든다.

    하지만.

    [뿌우-]

    쥬딜로페를 호위하는 용맹한 풍뎅이 전사들이 창과 같은 앞다리를 휘저어 독 거품들을 전부 걷어내 버렸다.

    “자, 이제 끝내자.”

    나는 두 개의 깎단을 쥔 채 거침없이 살점토막 구더기의 옆구리를 노렸다.

    퍽! 퍼억! 퍽!

    쌍 깎단에 의한 능지처참 데미지가 들어간다.

    [구우욱! 구욱!]

    살점토막 구더기가 반격해 올 때마다 반사데미지를 먹이고 건틀릿으로 폭딜까지 몇 번 더 꽂아놓은 결과.

    …쿵!

    놈은 결국 동굴 바닥에 몸을 뉘이고 말았다.

    그것을 본 윤솔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버지 빽만 아니면 별 것 아닌 녀석이었네. 나는 이런 애들 싫더라.”

    “하지만 세상에는 의외로 많지. 마치 제 아비의 서브 인생인 것처럼 살아가는 녀석들 말이야.”

    드레이크가 윤솔의 말에 대꾸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즉사 특성이 붙어 있는 단검으로 최후의 일격을 먹일 셈이다.

    바로 그때.

    …꿈틀!

    살점토막 구더기가 한번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놈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온다! 아버지가 온다! 아버지!]

    동시에 구더기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놈의 일곱 번째 공격패턴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꾸드득- 꾸드드득- 꾸드득-

    그렇다. 이놈은 지금 번데기 화(化)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군. 벨제붑을 소환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있었군.”

    나는 침음성을 삼켰다.

    그리고 변화한 구더기의 육체를 내려다보았다.

    <벨제붑의 아들 ‘번데기 살점토막’> -등급: S / 특성: 맹독, 하수인, 어둠, 혈족전생

    -서식지: 설원 북동지대, 구더기 언덕

    -크기: 10m.

    -모든 욕망과 본능이 거세된 채, 오로지 폭식(暴食)에 대한 갈망으로만 움직이는 살덩어리.

    먹고 싸는 것 이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구더기는 번데기로 변했다.

    많은 특성들이 사라지고 그 외형도 상태창도 간소화되었다.

    “…….”

    나는 잠시 그 앞에 서서 번데기를 내려다보았다.

    윤솔과 드레이크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한다.

    “어진아, 안 잡고 뭐해?”

    “지금이 쉽게 처치할 기회인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생각에는 말야. 이 번데기를 그냥 가만히 놔두면 벨제붑으로 변태할 것 같단 말이지.”

    설정 상의 진화 트리로 따지자면 구더기(A+)→번데기(S)→파리(S+) 의 순서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여기서 번데기는 한 공간과 다른 공간을 잇는 ‘매개종(媒介種) 몬스터’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즉 이 번데기가 우화하는 순간 지옥 깊은 곳으로의 포탈이 열리고 그 안에서 벨제붑이 튀어나오는 형식이겠지.

    그러니 이대로 가만히 놔두기만 하면 나는 벨제붑과 조우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벨제붑(Beelzebub).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

    부패와 역병의 관장자.

    이 세상 모든 썩은 것들의 주인.

    윙윙거리는 것들의 왕.

    벌레의 정점(頂點).

    내가 오늘 여기에 온 이유는 확실히 이 벨제붑을 잡기 위함이라지만… 지금 이런 좁은 공간에서 싸우는 것은 위험부담이 크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면 역병이 온 대륙에 창궐하게 될 수도 있었다.

    ‘만약 레이드 도중 벨제붑이 폭주해서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리기라도 하면…….’

    놈이 흘린 피가 일반 유저들이 돌아다니는 구역에 아주 조금이라도 흩뿌려진다면 무시무시한 대참사가 일어날 것이다.

    과거 전 대륙 인구의 1/3 이상을 죽였던 오염된 피 사건보다도 더욱 큰 재앙이 창궐하겠지.

    따라서 벨제붑을 소환할 장소는 일반 유저들이 돌아다니는 곳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격리구역’이어야 한다.

    역병이 퍼지더라도 자체적으로 잠잠해질 수 있는 먼 오지(奧地)가 아니면 벨제붑 레이드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굳이 번데기에서 우화시키는 것 말고도 벨제붑을 소환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더 있으니까.’

    나는 가부간의 결정을 내렸다.

    “아니다. 이런 곳에 벨제붑을 소환했다가는 자칫 큰일 날 수도 있겠다. 이놈은 그냥 여기서 잡자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윤솔과 드레이크가 번데기를 공격했다.

    퍼퍼펑!

    굳이 나까지 나설 것도 없이, 번데기는 순식간에 터져 버렸다.

    -띠링!

    <세계 최초로 ‘벨제붑의 아들 ‘번데기 살점토막’ 레이드에 성공하셨습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최초 정복자의 이름이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이름을 남기시겠습니까? YES: 고인물, 드레이크, 윤솔>

    <‘벨제붑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악마 진영 ‘역병 군단’의 사기가 감소합니다.>

    <먼 곳에 있는 파리 대왕이 ‘고인물’, ‘드레이크’, ‘윤솔’ 님에게 관심을 표합니다.>

    어찌되었건 이 번데기도 나름 S급 몬스터였기에 우리는 각각 특전을 받았다.

    -<이어진>

    LV: 91

    호칭: 벨제붑의 아들을 죽인 자(특전: 맹독)

    나에게 있던 ‘바실리스크 사냥꾼’ 호칭이 사라지고 대신 ‘벨제붑의 아들을 죽인 자’라는 S급 호칭이 생겼다.

    그로 인한 특전은 ‘맹독’으로 바실리스크 때와 동일, 하지만 독의 위력은 소폭 상승했다.

    드레이크와 윤솔은 각각 레벨이 1씩 올랐으며 나와 같은 특성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번데기를 잡고 얻은 아이템 보상이었다.

    푸화아아아악-

    번데기는 죽고 나서 엄청난 양의 음식물들을 동굴 전역에 흩뿌려 놓았다.

    물 간 생선, 썩기 직전의 고기, 무른 과일, 말라 비틀어진 채소, 눅눅해진 과자, 딱딱해진 빵, 녹은 아이스크림, 김 빠진 탄산수, 쉬어버린 술, 인증서 없는 무허가 포션과 해독제 등등…….

    별로 먹고 싶지 않은 각종 음식들이 동굴 바닥에 수북하게 쌓였다.

    “아이템 보상은 뭐, 없는 것으로 쳐도 되겠네. 그냥 포션이나 해독제 류의 아이템만 챙기자고.”

    우리는 널브러진 식료품 중 병에 잠겨있는 물약들 위주로 수거했다.

    -<수수께끼 역병 제독제> / 재료 / A+

    독을 억제하는 정체불명의 약물.

    -독 저항력 +?

    -<수수께끼 역병 해독제> / 재료 / A+

    독을 중화하는 정체불명의 약물.

    -독 저항력 +?

    ‘흐음, 의외로 물약은 꽤 쓸 만한 걸 주는데?’

    나는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물약 병들을 주워 모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앞으로 펼쳐질 벨제붑 레이드에 꽤나 도움이 될지도?

    *       *       *

    몇 분 뒤.

    우리가 아이템들 사이에서 그나마 유용한 것들을 골라내고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응?”

    눈 좋은 드레이크가 지평선 너머로 무언가를 발견했다.

    정확히 이쪽 눈 동굴을 향해 헐레벌떡 뛰어오는 다섯 명의 플레이어.

    그리고 나 역시도 드레이크가 본 것을 봤다.

    “오염된 피로 재미 좀 보던 것들인가 본데?”

    바로 눈치 깠다.

    게임 플레이 시간이 거의 10만 시간 쯤 되면 딱 봐도 안다.

    저게 정상적인 유저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살인자 5인큐(5人queue).

    유다희 시장에게 받았던 현상금 수배서와 대조해 보니 인공지능이 알아서 척척 같은 얼굴 사진을 매치해 준다.

    “……흐음. 살인자 랠프, 피기, 잭, 로저, 사이먼이라. 딱 그레이 시티의 탈주범들이네.”

    역시나, 모든 것은 나의 예상대로 딱 맞아 떨어진다.

    현상금 수배서에 적혀 있는 카르마 수치를 보아하니 저것들은 플레이어가 아니라 몬스터라고 봐도 무방한 존재들이었다.

    윤솔이 나를 돌아보았다.

    “여기서 PVP 하는 거야?”

    “…으음, 아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지평선 너머 가까워지고 있는 살인자 다섯 명을 향해 시선을 빛냈다.

    “저것들을 써먹을 데가 있지.”

    마침 안전한 벨제붑 레이드를 위한 제물이 필요하던 참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