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24화 (524/1,000)
  • 525화 오염된 피 (7)

    윙윙윙윙윙윙-

    나는 눈 동굴 안에 울려 퍼지고 있는 대량의 날갯짓 소리를 듣고 바로 직감했다.

    “……그래. 이렇게 역겨운 냄새를 풍기는 몬스터가 달리 또 있겠어?”

    과연 ‘오염된 피 사건’의 원흉은 예전 데린쿠유 오염 사태와도 관련이 깊었다.

    <역병파리 ‘체체’> -등급: D / 특성: 벌레, 맹독, 어둠, 하수인

    -서식지: 데린쿠유 외곽, 설원 북동지대, 구더기 언덕

    -크기: 0.01m.

    -사람의 기름과 피로 살을 불린 파리.

    악취도 악취지만 지독한 병균을 옮기는 것으로 악명 높다.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는 녹색 바디에 붉은 눈, 털투성이의 살찐 다리들.

    윙윙윙윙윙윙- 웨에에에엥-

    살이 통통하게 오른 똥파리 떼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터트리면 툭 터져 나오는(?) 내장 때문에 맨손으로는 잡을 엄두도 나지 않은 불쾌한 벌레.

    그리고 그 파리들의 대왕이 굴 속 깊은 곳에서 우리를 향해 비대하게 살찐 몸을 꿈틀거려 다가온다.

    하얗고 반투명한 살덩어리 그 자체.

    쭈글쭈글 주름진 피부와 그 위로 빼곡하게 뚫린 숨구멍, 불쾌할 정도로 팽창한 복부와 그 주변을 덕지덕지 휘감고 있는 튼살 자국들.

    <벨제붑의 아들 ‘구더기 살점토막’> -등급: A+ / 특성: 맹독, 하수인, 어둠, 과식, 하찮음, 앙버팀, 질긴목숨, 오염된 피, 혈족전생

    -서식지: 데린쿠유 식량창고, 설원 북동지대, 구더기 언덕

    -크기: 10m.

    -모든 욕망과 본능이 거세된 채, 오로지 폭식(暴食)에 대한 갈망으로만 움직이는 살덩어리.

    먹고 싸는 것 이외에는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보미네이션(Abomination)’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잘 어울릴 수가 있을까?

    [뿌우우!]

    내 품 속에 있던 쥬딜로페가 오랜만에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동안 추워서 내 망토의 털 속에 파묻혀 잠만 자던 녀석이 웬일일까?

    뭐, 아무튼.

    살점토막 구더기는 나를 보고 시뻘건 외눈을 빛냈다.

    [드디어 만났도다! 네놈, 예전의 원한을 갚고야 말리라!]

    오, 그새 말투가 패치된 건가? 예전의 그 부자연스럽던 대사가 사라졌다.

    “자, 예전에도 한번 잡았던 몹이지? 빨리빨리 가자고. 이번에는 사정 봐줄 필요도 없으니까.”

    나는 바로 깎단 두 개를 든 채 실전에 돌입했다.

    내 뒤를 따라 윤솔과 드레이크, 그리고 용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쥬딜로페가 함께하고 있었다.

    웨에에에에엥-

    우리가 앞으로 나서자 역병파리들이 먼저 덤벼들기 시작했다.

    [호에! 호에엣!]

    우리 중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선 이는 바로 쥬딜로페였다.

    그녀는 앙증맞은 두 손에 두 줄기의 나뭇가지를 들고 허공을 향해 휘젓는다.

    …아마도 나의 전투방식을 따라하려는 것 같은데.

    딱! 딱콩!

    달려드는 파리 두 마리의 이마에 혹을 만들어 놓은 쥬딜로페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하긴, 역병파리는 D급 몬스터이니 그간 경험치가 꽤 쌓인 쥬딜로페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겠지.

    [호잇! 포에엣!]

    쥬딜로페는 그동안 나의 몸놀림을 부단히 보고 학습한 덕택에 어느 정도 내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딱콩! 딱콩! 딱!

    쥬딜로페의 날렵한 움직임에 당한 파리들이 이마의 혹을 부여잡고 발랑 나뒹군다.

    [호우! 호우!]

    쥬딜로페는 자기가 눕힌 몇 마리의 파리들을 바라보며 나를 향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몇 마리인가의 풍뎅이 병사들이 그런 쥬딜로페의 곁을 충실히 호위하고 있었다.

    하지만.

    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윙-

    …저렇게 많은 숫자는 좀 무리일 것이다.

    데린쿠유 식량창고와 달리 이곳 설원 북동지대의 눈 동굴은 안쪽 공간이 협소하다.

    파리 떼가 목숨을 도외시한 채 덮쳐오면 피하기 힘들다는 말씀.

    [으아앙-]

    울며 도망치는 쥬딜로페, 역시 아직은 겁이 많다.

    나는 쥬딜로페를 집어 들고 뒤로 물러나 윤솔과 드레이크의 가운데 섰다.

    웨에에엥-

    파리들이 구더기의 명령을 따라 이쪽으로 덮쳐오기 시작했다.

    나는 재빨리 오더를 내렸다.

    “역병파리의 HP는 겨우 3이라 툭 쳐도 죽일 수 있어. 인해전술과 사망 시 독 내장을 흩뿌리는 패턴만 주의하면 되지.”

    달려드는 파리 하나를 깎단으로 후려치며, 나는 말을 계속 이어 갔다.

    “그리고 기본 공격 패턴도 단순해. 플레이어에게 돌격하기는 하나 몸통박치기를 하지는 않고 꼭 플레이어에게 닿기 직전 몇 센티미터의 간격을 두고 멈춰서 독액을 분사하거든. 그러니 놈들이 달려들면 그냥 적당히 뒤로 거리만 벌려 주면서 공격하면 돼.”

    파리 하나가 내게 달려들다가 바로 앞에서 멈칫한다.

    나는 놈이 입에 머금은 독액을 분사하기 전에 뒤로 몸을 날려 피했다.

    “하나 더, 뒤로만 물러나면 동선을 읽히게 되겠지?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사선으로 피해 주는 거야.”

    “오, 어진 그 스텝은.”

    “맞아.”

    나는 드레이크와 눈을 맞췄다.

    역시 오랜 시간 나의 옆을 지켜 온 전우답게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잘 아는 눈치였다.

    “뭐야, 뭔데! 나도 알려 줘!”

    자기만 모르는 듯한 이야기가 나오자 윤솔이 섭섭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외쳤다.

    하지만 피와 땀, 침으로 이어진 남자들의 우정은 그녀가 쉽게 범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드레이크와 나는 동시에 씨익 웃었다.

    “이 스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역시 그 스텝은……!”

    푹- 찍-

    우리는 눈앞의 파리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며 외쳤다.

    “3*3*7 다이아몬드 스텝이다!”

    “꼭짓점 댄스 스텝이로군!”

    ……?

    “…….”

    “……어진, 그거 꼭짓점 댄스 아닌가? 한국의 전통무예 중 하나라 들었는데.”

    “그런 거 없고, 그런 거 아니야…….”

    “흐음.”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하다.

    뭐, 아무튼.

    “파리가……많군…….”

    드레이크는 어색한 분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재빨리 눈을 돌려 화살을 쏘아댔다.

    나 또한 화제를 돌려 눈앞의 파리떼를 향했다.

    “파리 냄새가 좋네. 파리지앵이 된 기분이야…….”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공략에 열중하던 중, 나는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깎단을 들어 그중 눈에 띄는 개체 하나를 지목했다.

    “참, 추가로 말하는 걸 잊었는데 가끔 보라색 개체들이 무리에 섞여있는데 이 보라색 개체들은 몸통박치기를 하면서 자폭하니 우선순위로 잡아 줘야 해. 그것만 주의하고.”

    과연 무리 중간중간에는 보라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파리들이 존재했다.

    나는 바실리스크의 혈액을 입에 머금고 있다가 뿜어내어 보라색 파리들을 우선적으로 격살했다.

    치이이익…

    내가 뿜어낸 독 혈액에 맞은 파리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녹아내렸다.

    그러자.

    웨에에에엥- 부즈즈즈즈…

    파리들은 공격 패턴을 바꾸었다.

    “오호? 과연, 저번보다는 머리를 쓰는군.”

    나는 눈앞으로 모여드는 파리 떼를 보며 씩 웃었다.

    그것들은 마치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인 양 한 군데로 모여들어 군집을 이룬다.

    차라락-

    파리들은 서로를 단단하게 붙잡은 채 길게 늘어졌다.

    그 모습이 마치 시커먼 채찍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이미 예전에 저 공격 패턴을 겪어 본 적이 있었다.

    ‘어둠 대왕이 저런 기술을 썼지 아마?’

    예전 악의 고성 레이드 당시, 나는 성의 최종 보스인 어둠 대왕이 저 기술을 쓰는 것을 봤었다.

    그때 어둠 대왕은 수없이 많은 박쥐들을 이용해 채찍을 만들어 주변을 초토화시켰었다.

    이번 경우도 그때와 비슷했다.

    부웅-

    파리로 만들어진 검록색 채찍이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여전히 위협적이로구만.”

    나는 채찍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짜-악!

    파리 채찍은 그대로 단단한 돌 바닥을 때린다.

    퍼억-

    바닥에 내팽개쳐진 파리들의 몸이 터져나갔다.

    역한 살점과 내장들이 사방팔방으로 비산했다.

    이 역시 주변에 지독한 독 데미지를 뿌린다.

    웨에에에에엥-

    새로 달려든 파리들이 또다시 긴 채찍을 만들었다.

    채찍 가닥은 어느새 세 개, 네 개로 불어났다.

    짜악- 짜악- 퍼펑!

    채찍들이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휘둘러졌다.

    그것들은 휘둘러지는 도중 허공에서 방향을 꺾는다.

    때로는 살아 있는 뱀처럼 나를 휘감으려 들기도 했다.

    짜악-

    또다시 파리 채찍이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간다.

    퍼퍽-

    파리들이 몸이 천장 종유석에 부딪쳐 터졌다.

    돌 부스러기와 파리들의 살점, 내장, 핏물들이 뒤섞여 튄다.

    피격 판정 범위가 진동하는 악취의 범위만큼이나 넓었기에 모두 피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나 혼자서는 안 되겠다. 바톤 터치!”

    내가 뒤를 돌아본 곳에는 윤솔이 있었다.

    그녀는 그동안 아껴두었던 마나를 아낌없이 뿜어냈다.

    “잘 하면 내가 일망타진 할 수 있겠어.”

    윤솔이 하프를 켰다.

    -<대천사의 랩소디> / 양손무기 / A+

    멸족(滅族)의 마지막 순간까지 고결함을 잃지 않았던 한 대천사의 유품.

    -공격력 +12

    -귀속 (특수)

    -융합 (특수)

    -특성 ‘힐’ 사용 가능 (특수)

    -특성 ‘신성불가침’ 사용 가능 (특수)

    데린쿠유 역병 사태를 해결하고 업그레이드 된 그녀의 무기가 데린쿠유 역병 사태에 이어 전 대륙 역병 사태를 일으키려 하는 존재를 막아섰다.

    츠츠츠츠츠…

    신성보호막에 닿은 파리들은 질색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100%의 확률로 들어가는 1차 상태이상 ‘마비’

    100%의 확률로 들어가는 2차 상태이상 ‘공포’

    50%의 확률로 들어가는 3차 상태이상 ‘환각’

    25%의 확률로 들어가는 4차 상태이상 ‘실명’

    12%의 확률로 들어가는 5차 상태이상 ‘과부하’

    6%의 확률로 들어가는 6차 상태이상 ‘영구저하’

    2%의 확률로 들어가는 7차 상태이상 ‘즉사’

    우수수수수수…

    어마어마한 수의 파리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놈들은 바닥에 뒤집어져 마비된 몸을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보호막을 피해 물러난 파리들의 상태도 썩 좋지 않았다.

    놈들은 피하거나 도망칠 수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우왕좌왕하느라 저희들끼리 부딪쳐 금세 죽어버렸다.

    …우직! …뿌지직!

    드레이크는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실명, 기절, 혼란 등 각종 상태이상에 걸린 파리들을 짓밟고 동굴 안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이 동굴의 보스 살점토막 구더기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에 있는 구더기를 바라보았다.

    그때 죽이지 않고 풀어 줬던 이 구역질나는 괴물이 모든 것의 원흉이 되었다.

    “예전에는 네 아비가 무서워서 봐줬지만… 이제는 아니란다.”

    나는 죽음룡 오즈의 비늘을 빳빳하게 세우고 마몬의 오른 주먹을 들어 올려 구더기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제 아버지 빽 믿고 건방지게 굴던 아들놈을 혼내 줄 차례다.

    나는 마몬의 힘이 담긴 오른손 건틀릿을 들어 구더기의 머리 가죽을 확 잡아당겼다.

    그리고 다그쳐 물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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