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17화 (517/1,000)
  • 518화 반격 준비 (2)

    “……에휴.”

    한 중년 사내가 수심 가득한 얼굴로 한숨을 쉬고 있다.

    <디콘 캡슐방>

    허름한 건물 3층에 위치해 있는 중소 규모 캡슐방.

    이곳의 사장 이형근은 고민이 많은 40대 중년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운영하고 있는 이 디콘 캡슐방은 계속해서 적자를 보고 있기 때문.

    하지만 손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장님, 계산이요~”

    “여기 라면 세 그릇 나왔습니다. 김치 많이 드렸어요.”

    “와 냄새 쩌네. 알바형, 여기도 두 그릇 주세요!”

    “오! 캡슐 신규 모델 나왔네. 해 봐야지.”

    60평짜리 가게에 구비되어 있는 캡슐 62대는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다.

    장사 자체는 너무 잘 돼서 흡연실을 없애고 그 자리에까지 캡슐을 놓을 정도로 말이다.

    (흡연실은 비상구 쪽의 테라스를 개조해 아예 밖으로 빼 버렸다)

    거기에 라면이나 볶음밥, 팝콘이나 음료 등의 식사류 역시도 나름 잘 팔리고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상권도 꽤 좋아서 자리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곳.

    ……그렇다면 대체 왜 적자를 보느냐?

    “에휴, 레드문 개X끼들. 맨날 우리 같은 자영업자 등골 날로 빼먹지 아주.”

    이형근은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비교적 최근에 일어났다.

    레드문에서 새롭게 발표한 신모델 캡슐 ‘LINKED3021’, 기존 캡슐보다 훨씬 가격이 비싼 이 장비들을 다소 무리해 가며 들여놓은 까닭에 재정에 구멍이 났던 것이다.

    “사실 별로 구매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저번 모델들도 쌩쌩하고 빠르게 잘 돌아갔구만. 뭘 자꾸 신모델을 출시하고 난리람.”

    사실 이형근은 새로 출시된 이 ‘LINKED3021’모델 캡슐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몇 번 게임을 플레이해 본 결과 성능이 기존 모델에 비해 별로 뛰어나지도 않은 반면 오히려 발열이나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더욱 불안한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형 캡슐의 디자인이 구형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예쁘다지만 이형근과 같은 헤비 게이머는 캡슐의 외면보다는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했다.

    “휴우, 하지만 레드문 계열사들 쪽에서 은근히 압박을 넣어오니 안 바꿀 수도 없고. 또 그렇게 광고에 언론플레이를 해 대니 고객들도 자꾸만 그 모델을 찾고. 하 참.”

    이형근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레드문에서 새로운 모델 ‘LINKED3021’에 대한 광고와 바이럴마케팅을 지나칠 정도로 해 대는 바람에 이 모델이 아니면 캡슐방을 이용하지 않는 소비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따라서 전국의 모든 중소 캡슐방 사장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 모델을 들여놓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디자인만 예쁜 것치고는 지나치게 비싼 이 빛 좋은 개살구 ‘LINKED3021’을 말이다.

    “기존 캡슐들에 추가금까지 내고 샀는데, 나는 어째 별로란 말이지.”

    이형근은 캡슐에 앉아있는 손님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뚱뚱한 체구의 손님은 열심히 플레이를 하고 있다.

    캡슐 앞에 부착된 모니터에는 그가 어떤 플레이를 하고 있는지 보인다.

    하지만 이형근은 손님의 플레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캡슐의 앉는 곳에 닿아 있는 손님의 등이었다.

    ‘땀으로 축축해졌네.’

    이형근은 미간을 찌푸렸다.

    손님이 입고 있던 티셔츠의 등과 겨드랑이가 땀으로 축축하다.

    뭐, 원래 땀이 많은 체질일수도 있지만 이 손님 외에도 대부분의 손님들이 죄다 그렇다는 것은 캡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금방 과열되는데. 저래도 괜찮은가?’

    이형근은 새로 들어온 캡슐들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기존 캡슐보다 전기도 더 많이 잡아먹으면서도 발열 문제가 걱정되는 이 예쁜 애물단지들을 말이다.

    “에휴, 차라리 그냥 캡슐방 팔아 버리고 맘 편히 게임이나 하고 싶네.”

    바로 그때.

    “오오오오오!”

    캡슐방 한 구석에서 탄성 소리가 들려왔다.

    “……?”

    이형근은 뭔 소란인가 싶어 고개를 빼고 캡슐방 구석을 살폈다.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저, 저건!?”

    캡슐방 제일 구석에서 게임 플레이를 하고 있는 한 손님의 자리.

    잠깐 담배 피러 나갔는지 지금은 게임만 켜져 있고 텅 비어 있다.

    그리고 그 주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우글우글 몰려 있었다.

    “아까 보니 완전 꾀죄죄한 옷차림이던데 그런 화려한 플레이를… 대체 누구지!”

    “헉!? 저, 저건 ‘초승달 수문장’의 시체!? A등급의 완전 어려운 몬스터잖아!”

    “갑자기 초고난이도 몬스터에게 도전하길래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캡슐방 쿠폰 받으러 온 뉴비인 줄 알았는데! 우오오옷! 뭐냐고 아까의 그 현란한 컨트롤은!?”

    “시, 심지어 아이템 창 봐봐! 엄청난 고등급 장비들로만 차 있어! 뭐지? 대체 누구인 것이지!? 우리 지역에서 제일 잘하는 동숙이도 이 정도는 아니던데!?”

    “이 사람 대체 뭐하는 사람이기에 이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아무런 티도 안 내고 있었던 거냐고! 너무 겸손하잖아!”

    손님들이 이렇게 수군거리자 사장인 이형근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뭐야 저 일본인 같은 반응들은. 뭔가 좀 기분 나쁜데?’

    하지만 이내 그 역시도 잠시 고민을 잊고 그 자리로 다가간다.

    모든 이들이 캡슐 앞에서 서서 와글와글 수군수군 떠들고 있을 때.

    “…거기, 내 자리.”

    몰려든 인파를 가르는 한 마디가 있었다.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서 있는 한 남자.

    고인물.

    바로 나다.

    *       *       *

    ‘신기하게 나를 못 알아보네.’

    나는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캡슐로 돌아가 앉았다.

    옷을 입고 머리를 덥수룩하게 길렀더니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이 나를 못 알아본다.

    아, 살인자들의 탑 레이드를 하느라 좀 오래 안 씻어서 그런가?

    그때.

    “저, 저기요.”

    한 까까머리 남고생이 나를 바라보며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손에는 핸드폰으로 사진 어플을 켜 놓은 상태였다.

    “사진. 곤란.”

    나는 쿨하게 한 마디 해 주고는 캡슐에 앉았다.

    나와 아이컨택을 한 남고생은 손으로 심장을 부여잡은 채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나는 게임을 하기 전, 잠시 유튜뷰를 켠 뒤 요즘 떠오르는 게임 스트리머들의 플레이를 보며 짧게 한 마디 했다.

    “……겨우 이 정도인가.”

    내 중얼거림을 들은 주변 손님들은 모두 오싹한 전율에 몸을 떨었다.

    저렇게 게임을 잘 하는 전문 스트리머들에게 ‘겨우’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 것인가!

    바로 그때.

    “저, 저기요.”

    내 옆에 그림자 하나가 늘어진다.

    고개를 돌리니 캡슐방 알바생이 손에 음료를 든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알바생은 나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서비스에요.”

    그가 내민 음료 밑에는 작은 포스트잇 하나가 붙어 있었다.

    [형님 쩔 좀 해주세요. 010 99XX-XXXX]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왜 나한테는 남자들만 꼬이는 거지?’

    밀려오는 슬픔에 잠시 눈물 한 방울을 흘리고 있을 때.

    “형님.”

    입구 쪽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창. 녀석이 나를 향해 은밀히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유창을 따라 비상구에 있는 흡연실로 향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무도 없는 상태인지라 밀담을 나누기에는 편했다.

    유창은 나오자마자 바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사장님이랑 얘기 나눠 봤습니다. 가게 매각하시겠다네요.”

    그렇다.

    내가 오늘 이 캡슐방에 온 이유는 이곳을 매입하기 위함이다.

    여기뿐만이 아니라 이 골목에 있는 8개의 중소형 캡슐방 모두를 말이다.

    유창은 계속해서 브리핑했다.

    “4천 정도면 적절 가격인 것 같습니다. 다만 가게 보증금이 현재 2천 정도 박혀 있어서 총 6천은 들 것 같네요.”

    “다른 가게들은?”

    “다 비슷합니다. 월 임대료도 150선으로 거의 비슷하고 전기세도 한 70~80선, 전용선 비용이 한 100, 뎀 사의 게임비가 한 150에서 200, 근데 결제 시점은 각각 다 달라서 월 2번씩 될 때도 있고요. 다들 최근에 신규모델 캡슐을 들여놓느라 무리하는 바람에 재정상태가 안 좋더라구요. 이건 모든 중소형 캡슐방 공통점인 것 같습니다. 여기는 비교적 장사가 잘 되어서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것 같지만……자금 회전이 삐끗해서 장사가 조금이라도 안 되는 곳은 바로 망해 가네요.”

    나는 유창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이 골목뿐만이 아니라 전국 각지 수많은 곳의 캡슐방들을 대거 매입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나 장사가 잘 안되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상인들을 대상으로.

    때문에 내가 현재 운영하고 있는 캡슐방들의 수익이 흑자라고 해도 그 수익으로 바로 다른 캡슐방들을 매입하기 때문에 흑자가 유지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유창의 보고서 내용이 애매하다고 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고인물’이라는 브랜드로 야심차게 규모를 늘리고 있는 거대 캡슐방 사업.

    계속해서 분점을 늘리고 재투자를 하느라 남는 것은 별로 없는 실정이다.

    유창은 내가 왜 이렇게 캡슐방 사업에 열을 올리는지 궁금해 했다.

    “형님. 그런데 이렇게 다소 무리하시면서 캡슐방들을 우르르 매입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엄청난 캡슐 붐(boom)이 일어날 테니까.”

    간단하다.

    바로 ‘2차 대격변’!

    나는 그때를 위한 성지를 미리 구축해 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레드문의 차규엽을 견제하기 위한 것도 있고.”

    “……?”

    알쏭달쏭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유창.

    내가 조금 더 친절한 부연설명을 하려는 순간.

    그때.

    위이잉-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마동왕 전용 핸드폰이 짧게 한번 울린 것으로 보아 문자 메시지.

    누군가 해서 핸드폰을 켜 보니 낯익은 번호 하나가 찍혀 있는 것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마동왕 님. 이번에 일이 있어 한국에 잠시 방문했습니다. 혹시 예전의 식사 약속을 아직 기억해 주시고 있는지 궁금해서 이렇게 여쭙니다. (ღ❛ڡ❛ღ)>

    일본 최강의 플레이어 ‘아키사다 아야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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