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4화 최악의 빌런 (4)
“……무서운 놈.”
나는 엄청난 속도로 미궁을 돌파하는 조디악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유다희는 생각이 조금 다른 모양.
“진짜 무서운 건 이 미궁을 설계한 너인 것 같은데. 혹시 건축 전공이냐 너?”
사실 이 미궁의 설계자는 내가 아니라 천사황제 니고데모였지만 유다희가 그런 것까지 알 리는 없으니.
……뭐, 아무튼.
“자, 언제까지고 이렇게 관찰할 수는 없으니 이제 슬슬 끝을 보자고.”
나는 조디악을 몇 번인가의 함정을 설치해 미궁 중심부로 깊숙하게 끌어들였고 이내 최종단계를 시작했다.
출구.
미궁의 출구는 특이하게도 미궁의 중심부에 놓여 있었다.
……물론 그렇게 말랑말랑한 출구는 아니다.
미궁의 출구는 미궁의 중심으로부터 약 1킬로미터 정도 상공에 존재한다.
이 출구로 가기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타기만 하면 순식간에 출구로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유다희는 이런 설계구조에 의문을 표했다.
“야 변태, 이러면 조디악이 미궁을 너무 빨리 탈출하잖아? 엘리베이터가 코앞인데! 어어어? 벌써 엘리베이터에 탄다! 이러면 바로 빠져나올 거 아냐!”
그녀가 조바심을 내거나 말거나 나는 태연하게 미궁을 관찰 중이다.
이윽고.
거금을 들여 미궁의 지도를 산 조디악은 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
그리고 핏발 선 눈을 들어 엘리베이터의 도착지, 출구에 서 있는 나를 노려보았다.
쓰윽-
조디악은 검지를 들어 나를 가리킨 뒤 자신의 목을 그어 보인다.
조디악의 살.인.예.고!
이윽고.
덜커덩-
조디악이 탄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긴 레일을 타고 수직으로 올라와 내게로 서서히 접근해 온다.
그때쯤 해서.
<5층의 관리자가 되셨습니다.>
<맵의 외형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설치: -1,000,000G>
<설정 변경: -100,000G>
<엘리베이터의 상승 및 낙하 속도를 변경합니다>
.
.
나는 엘리베이터의 상승 속도를 약 900km/h 정도로 설정했다.
그러자.
쉬이이이이이이이익-
엄청난 속도로 상승하는 엘리베이터.
순간 나와 엘리베이터 안의 조디악의 시선이 수평으로 딱 맞았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다.
퍼펑!
엘리베이터는 그대로 레일을 벗어나 위로 끝없이 솟구쳐 올랐다.
레일 위에 안전마개가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미친.”
유다희는 하늘을 향해 끝없이 쏘아져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보며 입을 딱 벌렸다.
이윽고.
콰쾅!
허공으로 끝없이 올라가던 엘리베이터는 거대한 폭죽처럼 화려하게 폭발했다.
마치 불꽃놀이의 피날레를 보는 듯한 광경이었다.
○REC
나는 개인방송을 종료한 뒤 유다희를 돌아보았다.
“어때, 상하이에서 봤던 불꽃놀이보다 더 화려하지?”
그러나.
유다희의 안색이 뭔가 이상하다.
“야, 야, 야! 변태! 저기! 저기이!”
그녀는 하늘을 향해 손가락을 뻗은 채 다급하게 외치고 있었다.
“……?”
내가 고개를 돌리자, 이내 하늘에서 낙하하고 있는 무언가가 보인다.
너덜너덜해진 몸뚱이, 시커멓게 탄 얼굴, 그리고 뽀글뽀글한 아프로 헤어.
앙신 조디악! 놈이 나를 향해 곧장 떨어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콰쾅!
놈은 내가 서 있던 고지대를 완전히 부숴 버리며 착지했다.
아마 몸무게를 확 늘려 주는 만근추 특성을 사용한 것이리라.
“이런, 방심했군.”
나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냥 계속 뒤에 숨어 있으면 될 것을 괜히 특등석에서 관람하겠답시고 앞으로 나와서 이 모양이다.
[…….]
조디악은 살의가 끓어오른다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큰일인데. 저놈과 맞상대 하는 건 힘들고.’
조디악은 괴물 같은 피지컬을 가졌기에 자신의 모든 공격을 명중시키고 남의 모든 공격을 피해 버린다.
사각지대에도 눈이 달리지 않고서야 저런 플레이가 가능할까?
그때.
내 머릿속에 좋은 생각 하나가 났다.
“이봐.”
나는 유다희를 불렀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읏! 야! 귀에 대고 말하지 말라니까!”
빨개진 얼굴로 투덜거리던 유다희는 이내 내 말을 경청한다.
그리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잘 될까?”
“먹힐 거야. 분명히.”
나는 말을 마친 뒤 유다희의 등을 툭 밀었다.
“엇!?”
“그럼 잘 부탁해.”
나는 유다희를 조디악 앞으로 떠밀어 버렸다.
“으아아아! 이 변태 자식아! 이렇게 갑자기 들이대면……!?”
유다희는 확 가까워지는 조디악을 보며 기겁했다.
부웅-
그녀의 도끼가 허공을 횡으로 그어 버렸다.
공격력도 스피드도 상당한 도끼질, 하지만 조디악에게 명중시키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유다희는 이 시대 수준에서는 상당히 강력한 랭커였지만 근 10여 년을 앞서 있는 진짜배기 조디악에게 닿기란 요원한 일이다.
…깡!
조디악은 고무처럼 유연한 몸으로 유다희의 빈틈을 잘도 비집고 들어왔다.
사람과 사람의 전투거리라는 것이 있는 법인데 그것을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줄이고 늘리는 조디악의 신출귀몰한 몸놀림에 유다희는 당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 모양.
땅! 따앙! 땅! 콰긱! 끼기기긱-
조디악의 깎단이 유다희의 도끼날 옆면을 계속해서 긁어 놓고 있다.
금속음과 함께 불똥이 무수하게 튀고 있었다.
“큭! 끄윽! 아오, 내 도끼! 내구도가 광속으로 줄어들잖아!”
유다희는 파르르 떨리는 손목에 힘을 주며 외쳤다.
유다희가 쓰는 도끼는 대심해에 서식하는 몬스터 청자고둥의 껍데기를 제련해 만든 것으로 내구도 하나는 무식하게 단단한 도끼지만…… 아무래도 파괴불가 아이템인 깎단을 이겨 낼 수는 없는 모양이다.
유다희는 조디악의 미친 듯한 연속기를 가까스로 막아 낸 뒤 뒤로 펄쩍 뛰어 물러났다.
그 순간.
…확!
조디악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유다희의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송곳 같은 깎단의 끝이 유다희의 손목 완갑과 도끼날의 사이 빈 틈을 향해 정확하게 꽂혀들고 있었다.
“아아아악!”
조디악의 깎단이 유다희의 흰 목 살점에 살짝 닿는 순간.
바로 그때.
뚝!
조디악의 손이 멈췄다.
유다희의 목에 살짝 닿았던 깎단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놈의 잘려나간 손목과 함께 말이다.
“사각지대를 주의해야지?”
유다희가 들고 있는 커다란 도끼 위에는 도끼날 뒷면에 납작 붙어 있는 내가 있다.
나는 유다희가 휘두르는 도끼에 붙어서 조디악의 사각지대를 노렸던 것이다.
유다희는 목을 문지르며 불만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거 옛날에 썩은물 잡을 때 마동왕 님이랑도 했던 공략법인데……. 너랑 하게 되니 기분 나쁘다.”
“…….”
“듣고 있어!? 기분 나쁘다구!”
아, 뭐 어쩌라는 걸까?
나는 유다희의 외침을 무시한 채 곧바로 정면을 향해 달려들었다.
깎단과 오른쪽 손목을 잃은 조디악은 황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이미 승기는 이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놈이 물러나는 곳의 땅을 푹 꺼지게 만들었고 조디악이 균형을 잃은 틈을 타 잘려나간 손목이 있는 곳으로 깎단을 휘둘렀다.
퍼퍽! 퍽! 퍼퍼펑!
조디악의 전신이 속절없이 터져나간다.
거기에 유다희의 묵직한 한 방 딜 역시도 유효타를 만들어 냈다.
…쩌적! …쩌저적!
지난 시대의 전설이 서서히 부서져 가고 있었다.
나는 이 사상 최강의 빌런에게 종말을 고했다.
쨍그랑!
두 개의 깎단이 조디악을 완전히 파쇄해 버렸다.
놈은 수백, 수천 개의 거울 조각으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것을 본 유다희는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휴우, 진짜 말도 안 되는 게 튀어나왔네. 크라켄보다도 훨씬 난이도가 높은 것 같던데. 대체 네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먹은 거냐?”
“듣고 감당할 자신은 있고?”
“……취소, 취소.”
유다희는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괜시리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것이 기분이 꽤나 좋은 모양이다.
운동회에서 100미터 이어달리기를 힘껏 하고 난 직후 동료에게 보내는 듯한 눈빛이랄까?
그러나 나는 그녀의 눈빛을 맞받을 수 없었다. 바쁘기 때문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나는 주저앉아 있는 유다희를 뒤로하고 지체 없이 움직여 6층의 문으로 향했다.
벨페골의 거울은 그것을 들여다본 이의 무의식을 뒤져 가장 강력한 적을 소환해 낸다.
솔직히 조금은 궁금했다.
내가 가장 강한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던 이가 마음속에 어떤 것을 최강으로 꼽고 있는지.
‘어차피 조디악은 죽여야 할 적이니 이번 기회에 놈의 약점에 대해 알아 둬야겠다.’
조디악이 보고 듣고 겪어 본 존재 중 가장 강한 존재.
놈은 대체 어떤 것을 두려워할까?
……아니, 두려워하는 것이 있기는 할까?
‘지금쯤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을지도 모르지.’
세상 자기 잘난 맛에 사는 나르시시스트이니 그럴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고인물이나 마동왕과 싸우고 있을지도.
“야! 쫌 같이 가!”
유다희가 어느새 내 뒤를 쫓아온다.
나는 그 상태로 달려 살인자들의 탑 6층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
콰콰콰쾅!
해골병 군단을 거의 다 잃은 조디악이 처참하게 밀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으, 으아… 으아아아……”
공포에 질려 일그러진 놈의 얼굴.
나는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조디악 앞에 여유로운 모습으로 서 있는 존재.
“……!”
나는 그것을 전에 마주한 적이 있다.
분명 아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