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12화 (512/1,000)
  • 513화 최악의 빌런 (3)

    <5층의 관리자가 되셨습니다.>

    <맵의 외형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기본 공간 확장: +3.305785제곱미터 당 -100,000G>

    <특정 공간 높이기: -1,000G>

    <특정 공간 낮추기: -1,000G>

    <나무 추가: -10G>

    <바위 추가: -10G>

    <울타리 추가: -10G>

    .

    .

    나는 눈앞에 있는 상태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 전,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던 압도적인 레벨과 특성치를 보유하고 있었던 앙신 조디악.

    그런 놈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은 지난날 그 누구도 달성할 수 없었던 업적임과 동시에 그 시대를 살았던 게이머로서는 다른 데 비할 바 없는 영예인 것이다.

    나는 유다희를 돌아보며 물었다.

    “……너 포트 나X트 알아?”

    유다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뭐야, 그게 무슨 게임인데?”

    “2017년에 나온 게임인데 순식간에 건축물을 지어 가면서 싸울 수 있는 배틀로얄 느낌의 FPS야.”

    “뭐야, 고전게임이네. 들어본 거는 같다. 해 본 적은 없지만.”

    “그럼 롤러코스터 타X쿤은 알지?”

    “그것도 고전게임 아니야? 나 완전 애기 때 나왔던 걸로 아는데.”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현재 내 소유가 된 살인자들의 탑 5층은 맵 내부를 나의 감성대로 마음껏 꾸밀 수 있는 샌드박스(Sandbox)가 되었다.

    나는 이 세계를 마음껏 리디자인해서 눈앞의 강적을 상대할 생각이다.

    전 시대에서는 당할 자가 없던 최강 최악의 플레이어를!

    “후후후, 사상 최초로 저 시절의 조디악을 잡게 생겼군.”

    나는 손바닥을 쓱쓱 비비며 웃었다.

    유다희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작게 중얼거릴 뿐이다.

    “……이쪽도 사이코 맞네.”

    *       *       *

    이윽고.

    조디악이 눈앞에 생성된 커다란 벽을 뛰어넘어 이쪽으로 건너왔다.

    놈은 뒤돌아 서 있는 나를 보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깎단을 휘둘렀다.

    퍽!

    조디악의 깎단은 내 심장을 관통해 버렸다.

    하지만 나는 괜찮다.

    [……!?]

    조디악이 찌른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모습을 한 입간판이니까.

    <플레이어의 뒷모습 포즈 입간판: -10G>

    조디악은 짜증스럽다는 듯 깎단을 회수했다.

    그리고 저 앞에 있는 진짜 나를 향해 또다시 달려왔다.

    퍽!

    깎단이 내 머리통을 꿰뚫었다.

    그러나 나는 괜찮다.

    <플레이어의 잠자는 포즈 입간판: -100G>

    저것 역시도 내 모습을 흉내 낸 입간판에 불과하니까.

    조디악은 화가 난 모양인지 그 뒤에 있는 나를 향해 또다시 달려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다.

    <플레이어의 생각하는 사람 포즈 입간판: -100G>

    <플레이어의 스쿼트 포즈 입간판: -1,000G>

    <플레이어의 노상방뇨 포즈 입간판: -10,000G>

    <플레이어의 섹시 포즈 입간판: -100,000G>

    .

    .

    조디악은 계속해서 나의 모습을 본뜬 입간판들에게 릴레이 농락을 당하고 있었다.

    한편.

    나와 유다희는 멀리 떨어진 벽 뒤에 숨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

    나는 허공을 피아노 건반처럼 주무르며 작업에 착수할 준비를 했다.

    ●REC

    물론 그 전에 개인방송을 살짝 켜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늘은 유명한 빌런 중 하나인 앙신 조디악을 잡아 보는 방송입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내가 방송을 시작하자 댓글들이 달린다.

    -어? 진짜 조디악이다! 이거 생방인가여?

    -실시간 PK방송ㅋㅋㅋ

    -앙신이라면 정의로운 PK 인정합니다

    -어? 여기 살인자들의 탑이당! 대박, 5층 먹으셨나요?

    -앙신 메타가 평소랑은 조큼 다른거같은데? 메타 바꿨남ㄷㄷㄷ

    .

    .

    시청자들의 수가 실시간으로 훅훅 늘어나는 것이 보인다.

    나는 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조디악이 유인된 것을 확인했다.

    조디악은 내 모습을 한 입간판들을 따라가다가 내가 만들어 놓은 구역 안으로 진입했다.

    그곳은 바로 거대한 메이즈의 입구였다.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디악이네 집>

    나는 메이지의 입구를 보며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저는 평화적이고 얌전한 성격이기 때문에 폭력은 싫어요. 그래서 평화적으로 상대해 볼 생각입니다.”

    말을 마친 나는 살인자들의 탑 5층을 이루고 있는 미로의 전체 모습을 담은 미니맵을 시청자들에게 잠시간 공개했다.

    그것을 본 시청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미친 저게 말이 되냐?

    -보기만 해도 어지러워요...

    -저걸 어떻게 나옴??

    -와 진짜 타이쿤 고인물이닼ㅋㅋㅋㅋ

    -사람 뇌 표면도 저렇게는 안 복잡하겠다;;;

    -저런 걸 만드시는 고인물 님 솜씨 보면 정말...감탄뿐...갓갓...

    .

    .

    상상을 초월하게 복잡한 규모의 메이즈.

    물론 내가 이것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한 아이템 덕분이다.

    -<니고데모 황제의 미궁 설계도> / 주문서 / A+

    대격변으로부터 천사족을 보호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이의 걸작.

    일반적인 사람이 이 미궁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30,004,200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천공섬 공략 당시 만났던 니고데모 산헤드린 황제.

    그가 배드엔딩이 되기 직전에 떨궜던 주문서를 여기서 써먹게 되었다.

    …쩌적! …쩌저저저적! …쿠구구궁! …와지지지직!

    나는 니고데모 황제의 설계대로대로 미궁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시청자 여러분. 혹시 ‘탄탈로스의 사과’라는 개념을 아시나요?”

    이제부터 미궁 안에 가둔 조디악에게 특별한 환경을 조성해 줄 생각이다.

    “탄탈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인데 신들의 벌을 받아 이상한 공간에 갇히지요. 물을 마시려 고개를 숙이면 물의 수위가 낮아져 말라붙고 위에 매달린 과일을 따기 위해 손을 뻗으면 과일들이 위로 올라가 영원히 배고프고 목마르게 되는 겁니다.”

    나는 멘트를 치며 미궁 중앙의 조디악을 살폈다.

    미궁에 갇혀 한참을 돌아다니던 조디악은 목이 말랐는지 바닥의 물을 마시려 고개를 숙인다.

    나는 그때쯤 해서 지형을 살짝 수정했다.

    <5층의 관리자가 되셨습니다.>

    <맵의 외형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특정 공간 낮추기: -1,000G>

    샥-

    조디악이 마시려던 물이 갑자기 수위가 확 낮아진다.

    [……?]

    조디악은 다시 물을 뜨려 손을 뻗었지만 물은 계속해서 밑으로 빠져나간다.

    마치 실시간으로 깊어지는 구덩이처럼.

    심지어 자기가 손을 뻗어 뜨려고 한 부분만 절묘하게 밑으로 꺼지니 물을 마실 수가 없다.

    조디악은 한참 동안을 허우적거리다가 허공에 있는 사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5층의 관리자가 되셨습니다.>

    <맵의 외형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특정 공간 높이기: -1,000G>

    샥-

    사과가 얄밉게도 조디악의 손을 피한다.

    엄청난 점프력으로도 닿을 수 없는 사과, 그것은 조디악이 얼마나 높이 뛰든 간에 아슬아슬한 차이로 손끝을 스쳐갈 정도로 피하고 있었다.

    부들부들부들……

    조디악은 분노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때.

    쏴아아아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비까지 내린다.

    바로 그 순간, 미궁의 모퉁이를 돈 조디악의 눈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이 보인다.

    <판매소>

    -우산 +5,000,000

    -햄버거or핫도그or음식 랜덤박스 +5,000,000

    -미궁 지도 +10,000,000

    부들부들부들……

    조디악은 분노에 몸을 떨기 시작했다.

    하지만 꼬우면 안 사면 될 일.

    나는 흥미로운 시선으로 놈을 지켜보았다.

    이내.

    …짤그랑!

    내 인벤토리로 돈 들어오는 소리가 수줍게 울려 퍼진다.

    시청자들의 댓글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엌ㅋㅋㅋ저새낔ㅋㅋㅋ샀어 그걸?

    -호구왔능가ㅋㅋㅋㅋ

    -와 폭리 오졌다ㅋㅋㅋㅋ얼마 번 거임

    -하긴...근데 미궁 악랄한 거 보니 지도를 안 사고는 못 베기겠다...

    -미친ㅋㅋㅋㅋ그와중에 우산도 샀넼ㅋㅋㅋㅋ

    -고인물님..그와중에 장사를..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아 불쌍해 랜덤박스에서 강냉이죽 나왔어 ㅋㅋㅋㅋㅋ

    .

    .

    심지어.

    [……집에 가고 싶어.]

    [……미궁 ‘디악이네 집’은 너무 지루해.]

    [……미궁 ‘디악이네 집’에서 나가고 싶어.]

    [……집에 갈래.]

    조디악은 롤러코스터 타X쿤의 유명한 명대사를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아마도 NPC나 몬스터가 미궁에 갇혔을 경우에 발견할 수 있는, 오마쥬 느낌의 이스터에그인 것 같다.

    “조디악아~ 오른쪽으로 가자~”

    나는 미궁 내부의 길을 조금 조정했다.

    바사삭-

    조디악이 서 있던 왼쪽 벽이 먼지처럼 바스라졌다.

    놈은 놀란 눈으로 그 구멍을 바라보니 몸을 사냥개처럼 바닥에 바싹 붙이고 잰 보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내 의도대로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집에 가고 싶어.]

    [……미궁 ‘디악이네 집’은 너무 지루해.]

    [……집에 갈래.]

    놈의 생각은 계속해서 머리 위에 말풍선처럼 떠오른다.

    나는 계속 티 나는 함정들을 파 놓고 조디악을 유인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조디악은 함정을 피해 내가 원하는 장소로 이동해 온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 지점에 도착했군. 이로써 첫 번째 관문 통과다.”

    이미 내 머릿속에 대략적인 미궁의 설계는 완성되어 있다.

    이번 기회에 조디악을 면밀히 분석할 참이었다.

    <마이크 -1,500>

    “아아, 들리나?”

    내 목소리가 전 미궁을 울린다.

    조디악은 미어캣처럼 고개를 빼들고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그러나 나는 위치를 알려 줄 생각이 없다.

    .

    .

    나는 이미 모든 방위에 스피커를 설치해 뒀다.

    서라운드로 울려 퍼지는 내 목소리에 조디악은 혼란에 빠진 듯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돈다.

    [……집에 가고 싶어.]

    [……미궁 ‘디악이네 집’은 너무 개빡쳐.]

    [……집에 갈래.]

    조디악이 띄우는 메시지도 조금은 과격해졌다.

    나는 조디악의 혼잣말을 들으며 낄낄 웃다가 일순간 급정색을 했다.

    “……자꾸 어디를 가고 싶다는 거야, 네 집은 여기인데.”

    문득, 옆에 있던 유다희가 몸을 한번 오싹 떠는 것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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