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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11화 (511/1,000)
  • 512화 최악의 빌런 (2)

    “망했다.”

    나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진짜 조디악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진짜라고 하는 게 맞나?’

    나에게 깎단 메타를 선점당해 흑마법사로 메타를 바꾼 현재의 조디악이 아니라 회귀하기 전 세상에서 봤던 조디악.

    깎단의 원래 주인이자 내가 알고 있던 그대로의 최강, 최악의 빌런.

    놈은 단신으로 한 세계를 거의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괴물로 지금 세상의 조디악과는 차원이 다른 힘을 보유하고 있다.

    내 머릿속의 기억을 토대로 벨페골이 직접 만들어 낸 카피캣이니만큼 15년 동안의 경험과 전투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겠지.

    이 괴물을 대체 무슨 수로 막아야 한다는 말인가!?

    ‘무조건 피해야 한다!’

    눈앞의 조디악은 진짜 리얼 괴물이다.

    아마 6층에 있는 현재의 조디악이 덤벼든다고 해도 순식간에 당하고 말겠지.

    다행스럽게도 벨페골이 만들어 낸 레플리카인만큼 평생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 적당히 도망치는 것이 좋겠다.

    …팟!

    나는 자리를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나름 기동력에는 자신이 있는 몸이다.

    그러나.

    화악!

    조디악은 몇 초 앞서 달리기 시작한 나를 무색케 만들 정도의 속도로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조디악이 잔상이 길게 늘어져 내 앞을 가로막는 순간 떠올렸다.

    내가 회귀 후 기동력을 위시한 메타를 선택했던 것은 전부 다 앙신 조디악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깡-

    내 머리 위로 원조 깎단이 떨어져 내린다.

    나는 두 개의 깎단을 들어 조디악의 깎단을 막아 냈다.

    ‘……억!?’

    경악스러운 근력 스탯이다.

    내 깎단은 두 개임에도 불구하고 조디악의 깎단 하나에 밀리고 있었다.

    나는 양 손목이 부러질 정도로 시큰거리는 것을 느끼며 뒤로 굴러 조디악의 공격을 피했다.

    핏-

    앞 머리카락 몇 가닥이 허공에 흩날린다.

    깎단에 스치기만 해도 HP가 닳아 사라질 테니 조심해야 할 일이다.

    나 같은 경우는 최대 HP도 얼마 없어 더더욱 주의해야 한다.

    …펑!

    조디악이 또다시 발을 굴러 쇄도해 온다.

    무엇으로 방어해야 하나?

    리치왕의 심장? 어둠대왕의 혈액포식자? 바실리스크의 맹독?

    수많은 방법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조디악의 압도적인 피지컬 앞에서는 딱히 이렇다할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

    …스팍!

    조디악의 깎단이 내 옆구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단단한 송곳이 마치 뱀처럼 휘어져 틈을 찔러오는 기괴한 현상!

    저것도 아마 무슨 아이템의 효과겠지.

    그러나.

    미끄덩-

    조디악의 깎단은 내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분명 닿기는 닿았지만 데미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꿀렁!

    내 몸을 뒤덮고 있는 점액 덕분이다.

    “……쳇.”

    나는 숨을 참고 점액을 내보내 그동안 움직인 루트를 모조리 점액범벅으로 만들었다.

    씨어데블을 잡고 얻은 신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꼼장어의 점액처럼 미끈하면서도 끈적한 액체들이 바닥을 뒤덮는다.

    조디악의 발걸음이 약간 주춤했다.

    미끄덩-

    조디악의 움직임이 멎는 그 순간, 나는 놈의 안면을 향해 머금고 있던 피를 뿜었다.

    푸우욱!

    혀를 깨물어 상처를 낸 뒤 뿜어내는 피분수, 바실리스크의 맹독이 함유되어 있는 독 피다.

    HP가 조금 깎였지만 이쯤이야 상관없다.

    멀리 떨어진 곳에 보관되어 있는 여벌의 심장이 내게 계속해서 신선한 혈액을 공급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조디악의 표정이 비로소 조금 찌푸려졌다.

    휘리릭-

    놈의 머리카락들이 뱀처럼 움직여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때에 따라 늘어나고 팽창하기를 반복하는 놈의 머리카락은 회귀 전 세상에서도 악명 높았었지.

    퍼퍼퍼퍽!

    마치 창처럼 바닥에 꽂히는 조디악의 머리카락.

    나는 그것을 피해 점액 바닥을 굴렀다.

    ‘도대체가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군.’

    조디악 역시도 반사 데미지 아이템을 두르고 있기에 한 방 딜을 넣는 것은 어렵다.

    현재 나의 레벨은 91.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조디악을 살폈다.

    회귀 전에는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던 조디악의 수준이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놈의 레벨은 짐작컨대 99 내외일 것이다.

    15년간 레벨 99라, 91과는 경험치량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내가 게임을 시작한 지 5년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따라잡기지만 생사를 가르는 실전에서야 성장속도라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

    나는 냉정하게 나의 수준과 한계를 조디악의 것과 비교해 보았다.

    ‘내가 쓸 수 있는 공격 수단은 깎단 외에 오즈의 비늘을 이용한 데미지 반사, 그리고 어둠 대왕의 혈액포식, 바실리스크의 맹독 정도인가. 그렇다면 회피는 씨어데블의 점액, 크라켄의 틈 특성 정도겠군. 방어 수단으로는 히드라 소환이 있지만 상대방이 마법사가 아니니 의미가 없고. 지속기는 지옥바퀴 게의 백전노장 껍데기를 쓰면 되겠고. 그리고 회생기는 데스나이트의 갈기 망토와 리치왕의 심장, 여덟 다리 대왕의 불완전변태 특성 정도려나…….’

    진짜배기 조디악과 싸우기에는 불리한 것을 넘어 허접해 보이기까지 한다.

    방어를 도외시한 이런 종류의 메타는 양민학살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지만 한번 임자를 만났을 경우 답도 없이 털리기 마련.

    강력한 한 방 공격력을 가진 마동왕 메타나 긁고 할퀴고 휘감아 조이는 썩은물 메타를 혼용한다면 더욱 전투가 쉬워지겠지만… 유다희가 옆에 있으니 그러기도 애매한 노릇이다.

    반면 조디악은 어떤가?

    내가 아는 것만 해도 놈의 사기적인 특성은 한둘이 아니다.

    능지처참, 백전노장, 고속재생, 패륜아, 하극상, 변온, 팔랑귀, 약자멸시, 초회복, 도장 깨기, 오체분시, 관통, 비틀거림, 뱀의 심장, 건조한 가죽, 내열, 노 가드, 암흑기류, 둔감, 용암무장, 만독불침, 부유, 불면증, 육식동물, 결벽증, 피뢰침, 떠넘김, 갹출, 가속, 독가시, 절반의 체중, 마이페이스, 극독, 싸움광, 뺑소니, 벌레먹음, 기상이변…….

    도트 데미지를 거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속도를 대폭 높이고 상대방의 속도를 대폭 줄이며 모든 지형과 기후를 자신에게 이롭게 만들고 데미지를 반사하며 자신의 상처를 엄청난 속도로 재생하는 동시에 거의 모든 상태이상에 면역인.

    이 중에는 나조차도 획득 방법을 알지 못하는 각종 초레어 특성들이 가득하다.

    아예 정체와 효과조차 불분명한 특성들도 몇몇 끼어 있었다.

    ‘……암담한데.’

    나는 이를 악물었다.

    놈과 나의 메타는 도트 데미지와 속도를 위시한 히트 앤 런 방식으로 거의 동일, 승부는 아마 고도의 피지컬을 요구하는 장기전이 될 공산이 크다.

    먼저 집중력이 떨어진 놈이 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내 쪽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지.’

    조디악은 피지컬뿐만이 아니라 정신력 또한 괴물 같은 놈이다.

    애초에 저런 사이코의 정신세계를 일반인이 어찌 상대하겠는가?

    “어쩔 수 없지.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나는 일찌감치 최후의 무기를 꺼내들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불완전변태 특성, 모든 스탯을 10배로 뻥튀기시키는 것이다.

    몸에 부담도 크고 사후처리도 까다롭지만 일단 한번 질러 보는 수밖에.

    “자, 와라!”

    나는 목숨을 내줄 각오로 조디악을 향해 외쳤다.

    데미지 계산을 까딱 잘못하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앙버팀 특성과 여벌의 심장 특성, 그리고 능지처참 특성의 연계를 잘 파악한 뒤 찰나의 타이밍을 짚어내야 역습과 회복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겠지.

    ‘지난 20여 년간의 숙련도를 믿어 보는 수밖에!’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조디악을 향해 내달렸다.

    조디악 역시 내 쪽으로 달려온다.

    만면에 비웃음을 머금은 채로.

    …팟!

    나의 깎단 두 개와 조디악의 깎단이 서로 맞붙는다.

    그러나.

    빙글-

    조디악은 그 자리에서 몸을 뱀처럼 비틀어 나를 휘감아 왔다.

    ‘젠장! 저게 대체 뭐야!?’

    나는 내 깎단을 무시하고 빈틈을 찔러 오는 조디악의 공격에 경악해야 했다.

    저 말도 안 되는 피지컬에 특성치라니.

    이대로 가면 스탯이 뻥튀기 되어도 1:1로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바로 그때!

    콰쾅!

    이변이 일어났다.

    지면이 크게 흔들리더니 갑자기 밑으로 쑥 꺼져 버린 것이다.

    정확하게 내 발 앞, 조디악이 딛고 있던 부분의 땅이 깊숙하게 꺼지며 커다란 구덩이가 생겨났다.

    [……!?]

    조디악은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몸을 틀어 내 옆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나.

    …쾅! …콰쾅! …콰콰쾅!

    조디악이 딛는 땅바닥마다 밑으로 푹푹 꺼지기 시작했다.

    결국 조디악은 일곱 번째로 생긴 구덩이 속으로 곤두박질 쳐 버렸다.

    “……?”

    내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뭘 그리 어렵게 싸우고 있어?”

    유다희가 태연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너 어떻게 한 거냐?”

    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묻자 유다희는 고개를 돌려 한쪽을 향해 까닥 고갯짓을 한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이내 낯익은 상태창 하나가 보였다.

    <5층의 관리자가 되셨습니다.>

    <맵의 외형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기본 공간 확장: +3.305785제곱미터 당 -100,000G>

    <특정 공간 높이기: -1,000G>

    <특정 공간 낮추기: -1,000G>

    <나무 추가: -10G>

    <바위 추가: -10G>

    <울타리 추가: -10G>

    .

    .

    반투명하게 부유하는 상태창.

    그렇다.

    나는 5층을 클리어했기에 이 층의 관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권리는 클리어를 함께 한 유다희에게도 있는 것이다!

    “에이 씨, 지형 변경에 벌써 얼마를 쓴 거야?”

    유다희는 조디악을 떨어트리느라 만들어 낸 구덩이를 보며 울상을 지었다.

    하긴 저렇게 큰 구덩이를 일곱 개나 만들었으니 돈께나 썼겠구만.

    “그러고 보니 제일 중요한 걸 잊고 있었네. 멍청했다.”

    적과 싸울 때 지형을 숙지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층에 한해서라면 지형을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입장이니만큼 전투는 내게 있어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가장 중요한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툭툭-

    유다희가 내 어깨를 가볍게 몇 번 쳤다.

    “빚 졌지?”

    내가 막 고개를 끄덕이려는 순간.

    …퍼펑!

    유다희에게 빚을 진 또 다른 녀석이 구덩이 속에서 튀어 올랐다.

    조디악, 놈은 수십 미터도 넘는 구덩이 속에서 자력으로 탈출했다.

    “꺄악! 저게 뭐야!? 저 사이코가 어떻게 튀어나왔지!?”

    유다희는 채집통에서 튀어나온 벌레를 본 소녀처럼 비명을 질렀다.

    나는 침음성을 삼켰다.

    “……아마 서전트 점프로 빠져나왔겠지. 과연 놀라운 피지컬이다.”

    “지금 감탄할 때냐!?”

    유다희는 기껏 잡아 놓은 조디악이 탈출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고 다급하게 외쳤다.

    “야 변태! 빨리 튀자구! 울타리랑 벽을 만들어 가면서 빠지면 놈도 쉽게는 못 쫓아올…….”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왜 도망가야 하지?”

    “……?”

    유다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돌아본다.

    나는 입을 열었다.

    “이건 기회야.”

    회귀 전 온 세상을 뒤집어 놓았던 최강 최악의 빌런 조디악.

    회귀한 이후 조디악을 아무리 잡아 족쳐도 마음 한 구석이 어딘가 찝찝했던 것은 그 시절 전성기를 누리던 조디악을 상대한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기회다.

    ‘그 시절 조디악’을 아는 유일한 게이머로서 놈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크나큰 명예인 것이다.

    회귀 전의 시대에서는 놈과 맞설 만한 게이머가 한 명도 없었으니까.

    ‘……과거와 마주할 수 있다는 게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네.’

    벨페골이 만들어 냈던 자각흉몽아귀 뱃속에서 느꼈던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한편.

    유다희는 답답한 표정이다.

    “어떻게 싸울 건데! 아까 싸우는 거 보니까 네가 조금 밀리는 것 같더만! 내가 도와준다고 해도 한계가……”

    그러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눈앞에 있는 반투명한 창을 보며 쿡쿡 웃을 뿐이다.

    <5층의 관리자가 되셨습니다.>

    <맵의 외형을 바꾸실 수 있습니다.>

    <기본 공간 확장: +3.305785제곱미터 당 -100,000G>

    <특정 공간 높이기: -1,000G>

    <특정 공간 낮추기: -1,000G>

    <나무 추가: -10G>

    <바위 추가: -10G>

    <울타리 추가: -10G>

    .

    .

    다행스럽게도 나는 당장 보유하고 있는 골드가 아주 많다.

    밑에 있던 카지노에서 왕창 딴 덕분이다.

    나는 유다희를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너 ‘포트 나X트’라는 게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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