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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10화 (510/1,000)
  • 511화 최악의 빌런 (1)

    벨페골은 직접 싸우기 귀찮다는 듯 옆으로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입에서 꺼낸 긴 거울로 전면을 비춘다.

    쩌적- 쩌저적- 쩌적- 와장창!

    균열이 간 거울은 곧 요란한 소리를 내며 깨져 버렸다.

    이윽고 거울 속에서 무언가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거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바로 ‘데스나이트’였다.

    검은 중장갑으로 몸을 휘감고 사자 갈기를 흩날리는 수인.

    <데스나이트 ‘사자심왕(獅子心王)’> -등급: S / 특성: 어둠, 언데드, 하수인, 맹수, 1:1, 백전노장, 싸움광, 패륜아, 선택, 앙버팀

    -서식지: ‘칼침의 탑 9층’

    -크기: 3m.

    -‘포기하는 것도 용기야. 도망쳐, 잭!’

    -겁쟁이 새끼사자-

    네임드 데스나이트 ‘사자심왕’이 그곳에 있었다.

    “HUK!?”

    멍하니 거울을 보고 있던 방철해가 기겁했다.

    …쿵! …쿠쿵! 쾅!

    가로막던 해골병들이 짓밟히는 것만으로도 가루가 되어 부서진다.

    데스나이트는 거울에서 나오자마자 방철해만을 노리고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조디악은 그 모습을 보며 어안이 벙벙한 기색.

    “뭐, 뭐야? 데스나이트가 왜 여기서 나와?”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워어어어억!]

    다음 타자로 튀어나온 이는 바로 거대한 덩치를 가진 야수형 몬스터.

    <발록 ‘가이악사’> -등급: S / 특성: 어둠, 야수, 하수인, 싸움광, 1:1, 유폭, 광폭, 자폭, 불의 씨앗

    -서식지: 만마전(萬魔殿).

    -크기: 9m.

    -오로지 싸우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고대의 악마로 한때에는 정령왕이었던 적도 있는 듯하다.

    크고 작은 10만 여 번의 전장에서 모두 살아 돌아온 바 있으며 자신보다 강한 존재의 말이 아니면 전혀 듣지 않는다.

    S급 몬스터 ‘발록’이다.

    네임드 발록 ‘가이악사’, 이 거대한 괴물은 벨페골의 거울 안에서 튀어나오자마자 곧장 방철우를 향해 불의 채찍을 후려갈겼다.

    …콰콰콰쾅!

    데스나이트와 발록, 둘 다 무시무시한 S급 몬스터이다.

    하나는 죽음룡 오즈의 오른팔이었고 다른 하나는 탐욕성좌 마몬의 왼팔인 만큼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두 보스몬스터.

    “어, 어째서 저 둘이 여기에 있는 거지?”

    너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조디악마저 어버버거릴 지경이다.

    한참 동안 해킹 창을 들여다보고 있던 김정은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무래도, 저 벨페골의 거울이 또 우리들의 무의식을 두드린 모양이야.”

    “푸스스스스. 뭐? 그게 뭔 개소리야?”

    “우리들이 지금껏 보고 겪어온 몬스터들 중 가장 강한 몬스터가 소환되도록 해 놓았어.”

    김정은의 말을 들은 조디악은 입을 딱 벌렸다.

    “미친, 그럼 어쩌라는 거냐? 잡지 말라는 거야?”

    “……잡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 17개의 서브스트림이니 그럴지도.”

    김정은은 필사적으로 해킹 창의 값들을 분석했다.

    그리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아마도 벨페골이 소환한 괴물들은 진짜가 아니니만큼 분명 제약이 있을 거야. 가령 소환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거나, 개체값이 오리지날에 비해 떨어진다거나…….”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고대화석 해골병들을 쓸어버리고 있는 데스나이트와 발록을 보면 딱히 오리지날에 비해 개체값이 떨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조디악은 이를 뿌득 갈았다.

    “젠장. 하고 많은 데스나이트랑 발록들 중에 왜 하필 ‘사자심왕’과 ‘가이악사’가 튀어나와서는…….”

    “바로 그 ‘하필’ 때문이지. 아마 철우나 철해가 생각하기에 가장 강한 몬스터였나 봐. 우리도 빨리 대비……”

    하지만 김정은은 말을 끝맺을 수 없었다.

    그녀 역시 벨페골의 거울을 봤기 때문이다.

    츠츠츠츠…

    이윽고, 김정은의 눈앞에 김정은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는 적이 구현되기 시작했다.

    거울을 넘어 이쪽 세계로 넘어온 적.

    그것은 어린아이의 형상을 하고 있는 기묘한 몬스터였다.

    그리고 그것의 얼굴은 분명…….

    “꺄아아악! 내 저게 나올 줄 알았어!”

    김정은은 패닉에 빠진 채 잽싸게 뒤로 빠졌다.

    “진짜 빌어먹을 일이잖아!”

    조디악 역시 이를 악물고 주변의 해골병들을 컨트롤한다.

    거울 속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극도로 경계하는 기색이었다.

    *       *       *

    한편.

    “으아. ……으아아아아.”

    유다희는 6층에서 5층을 들여다보고 있는 거대한 눈알 앞에서 전율하고 있었다.

    “망할.”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벨페골의 거울은 단순히 보지 않는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건만.

    쿠쿵! 쿠구구구구……

    지금 6층에서 5층으로 넘어오려 하고 있는 저 거대한 몬스터.

    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몸집, 거대한 촉수에 이빨과 입처럼 붙어있는 빨판들.

    노르스름한 태양처럼 빛나는 눈알이 친숙하다.

    <크라켄> -등급: S / 특성: 고생물, 심해, 지진, 풍랑, 틈, 나포

    -서식지: 블루홀 ‘밑바닥’

    -크기: ?

    -빛도 어둠도 없던 시절에 살던 태고의 생물.

    “으아, 아으으……이걸 또 만나다니.”

    유다희는 크라켄을 올려다보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아무래도 예전 나와 함께 심해 레이드를 뛰었던 경험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모양.

    하지만 나는 비교적 안심했다.

    턱!

    나는 떨고 있는 유다희의 어깨를 잡았다.

    “정신 차려.”

    “……!”

    그러자 비로소 유다희가 나를 돌아본다.

    몸의 떨림이 많이 가라앉은 기색.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한번 잡았던 몬스터야.”

    “……으응. 그, 그렇지.”

    “그리고 봐, 촉수 끝에 뭐가 달렸나.”

    나는 유다희의 뺨을 손으로 슥 밀어 크라켄의 촉수 끝을 바라보게끔 했다.

    “……!”

    유다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의 상상력과 기억력이 좋아서 그런가?

    크라켄의 여덟 촉수 끝에는 각각 큼지막한 함선들이 장갑처럼 매달려 있었다.

    예전에 우리가 몰았던 ‘아틀란둠의 침몰함대’다.

    나는 유다희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크라켄은 물 밖에서는 스탯이 크게 떨어져. 블루홀 안, 아니 심해는커녕 물도 아닌 곳에서 싸운다면 더 쉽지. 크기에 현혹되지 마라.”

    그때, 유다희가 더듬더듬 말했다.

    “……귀, 귀 좀.”

    “?”

    나는 그제야 시선을 내렸다.

    내 입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유다희의 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떠, 떨어져서 말해도 되잖아! 나 귀 약한데.”

    유다희는 내 가슴을 괜시리 주먹으로 한번 퍽 쳤다.

    의도하지 않은 것 같은 그 일격에 내 HP가 순간 반 이하로 떨어졌다.

    만약 죽었다면 이것 역시 위기탈출 넘버원 급의 사소한 죽음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유다희가 지금껏 내게 기를 쓰고 입혀 왔던 피해들 중 이번 게 가장 큰 피해였다.)

    “자, 불평은 나중에. 일단 움직이자고.”

    나는 두 개의 깎단을 들고 크라켄을 향해 달렸다.

    …쾅! 콰콰쾅!

    크라켄은 촉수를 뻗어 나를 잡으려 했지만 어림없는 소리.

    그동안 레벨업으로 인해 훨씬 빨라진 내 몸놀림에 씨어데블의 점액, 크라켄의 틈 특성까지 있는데 물 밖의 크라켄에게 잡힐 이유가 없는 것이다.

    나는 크라켄의 촉수를 순식간에 역으로 타올라 촉수 끝에 매달려 있는 함선으로 향했다.

    “역시.”

    함선 안에는 폭약과 쇠돌기들이 가득 선적되어 있다.

    나는 바로 화약고에 불을 당겨버렸다.

    콰콰콰콰콰콰쾅!

    건너편에서 유다희가 지른 불 역시 폭발을 일으켰다.

    [오-오오오오오!]

    크라켄은 맹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나와 유다희에 의해 여덟 개의 촉수를 모두 잃어야만 했다.

    그 뒤로는 깎단의 능지처참 특성과 맹독 특성에 의해 도트 데미지에 절어 갈 뿐이다.

    이윽고.

    쿵-

    크라켄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그 거대한 몸을 대지 위에 축 늘어트려 버렸다.

    놈이 몸을 5층으로 채 절반도 옮겨 놓기 전이었다.

    *       *       *

    “……세상에.”

    유다희는 자기가 일궈낸 성과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토록 거대하고 강해 보이던 크라켄을 이렇게 빨리 함락시키다니.

    하지만 자신의 괄목할 만한 성장보다도 먼저 느껴지는 것은 옆에 있는 존재의 힘이다.

    ‘고인물’, 그는 대체 어디까지 성장한 것일까?

    그의 플레이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사이가 극도로 안 좋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하지만 게임 실력 하나만은 인정할 만 해. ……어쩌면 마동왕 님 이상일지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경외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만약 악연으로 얽히지 않았더라면 열렬한 팬이 되었으려나…….

    ‘핫!? 내가 자꾸 무슨 생각을.’

    유다희는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버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중얼거렸다.

    “크라켄을 잡았으니 이제 끝난 건가?”

    하지만.

    “……아직, 하나 남았다.”

    어진은 짤막하게 말했다.

    그렇다.

    벨페골의 거울은 플레이어 하나 당 그가 겪었던 적 중 가장 강한 적을 구현해 낸다.

    유다희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는 천하의 고인물조차 부담을 느낄 만한 적이 등장할 차례인 것이다.

    이윽고.

    저벅- 저벅- 저벅-

    크라켄의 시체 뒤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작은 소리였지만 모두의 귀에 또렷하게 잡히고 있었다.

    이윽고.

    크라켄의 시체 위로 작은 그림자 하나가 삐죽 드러난다.

    그것을 확인한 유다희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 조디악?”

    유다희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조디악이 왜 여기로 내려왔단 말인가?

    분명 놈은 6층 최전선에서 벨페골 레이드를 뛰고 있을 텐데?

    하지만.

    눈썰미 좋은 유다희는 이내 눈앞에 있는 조디악이 그녀가 아는 조디악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 챘다.

    그도 그럴 것이, 조디악은 손에 늘 들고 다니던 마도서가 아니라 투박하고 날카로운 송곳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놈의 무기가 바뀌었다.

    -<깎아내는 단말마> / 한손무기 / S

    고문기술자들 중에서도 가장 음침하고 흉악한 이들이 쓰는 무기.

    고결한 천사장조차도 이 칼 앞에서는 신을 모욕할 수밖에 없으리라.

    -공격력 +900

    -파괴불가 (특수)

    -특성 능지처참(陵遲處斬) 사용 가능 (특수)

    ‘진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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