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닳고닳은 뉴비-507화 (507/1,000)
  • 508화 마지막에서 한 발자국 더 (2)

    츠츠츠츠츠츠……

    또 한번, 페이즈가 바뀌었다.

    자각흉몽아귀가 세 번째 패턴을 준비하는 것이다!

    “야! 변태!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너 뭐 아는 거 있어?”

    유다희가 내 쪽을 돌아보며 다급히 물었다.

    나 역시도 이런 사태는 완전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별다른 답을 줄 수 없었다.

    그때.

    터엉-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와 유다희의 몸이 분리되었다.

    “아앗!? 변태! 어디 가!”

    유다희가 깜짝 놀라 내게 손을 뻗는다.

    나는 다급히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미 나의 몸은 미증유의 압력에 휘말려 이상한 곳으로 날아간다.

    ‘……뭐지?’

    나는 눈앞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에 입을 딱 벌려야만 했다.

    세상은 온통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태양이 사라진 하늘, 온통 누런 유황구름만이 가득한 밤하늘에는 불길한 적빛의 별똥별 하나가 떨어진다.

    불타는 대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

    그리고 하늘에 보이는 것은 한 줄기의 커다란 별똥별 궤적.

    나는 하늘에 길게 그어져 있는 붉은 궤적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별이 떨어지는 곳. 하늘과 땅이 맞붙는 지점.

    그곳에는 눈을 의심할 정도로 거대한 의문의 괴물체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

    <멸망의 어머니 ‘오무아무아’> -등급: ? / 특성: ?

    -서식지: ?

    -크기: ?

    -?

    ‘저게 뭐지?’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눈앞의 거대한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멸망한 세상에 홀로 우뚝 솟은 존재.

    검붉은 빛에 휘감겨 있는 타원형의 길쭉한 그 모습은 마치 현세의 것이 아닌 양 기괴한 모습이다.

    이름부터 외형, 설명까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인 존재였다.

    ‘저런 몬스터가 있었다고? 아니, 대체 뭐야 여기는?’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내 눈에 새로운 모습들이 들어왔다.

    수없이 죽어 널브러진 시체들.

    인간, 오크, 리자드맨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죽어 쓰러져 있다.

    그중에는 얼굴만 봐도 누구인지 알 만한 유명한 랭커들도 다수 포진해 있었다.

    그리고 그 시체들의 산 앞에 우뚝 서 있는 한 남자.

    온통 불타고 붕괴해 내리는 대지 위에서 최후까지 서 있는 그의 얼굴은 나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잖아?’

    그것은 나였다.

    회귀하기 전의 나보다 15살은 더 많아 보이는 얼굴.

    거의 50대로 보이는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고개를 꼿꼿하게 들고 눈앞에 있는 거대한 몬스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타오르는 하늘, 길게 그어진 붉은 궤적,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 몬스터, 그리고 최후의 플레이어.

    동시에.

    쿠-구구구구……

    몬스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하늘의 붉은 궤적이 점점 더 짙어진다.

    별똥별이 그어놓고 간 긴 자국은 길고도 선명하게 하늘을 갈라놓고 있었다.

    그때.

    -띠링!

    귓가에 요란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

    .

    나는 이 알림음을 듣고 혼란에 빠졌다.

    ‘지난 30년간? 그럼 이 시점은 게임 발매 후 30년이 지난 시점인가? 오늘이 게임 서버종료 최후의 날이라고?’

    이게 당최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내가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 50살의 나는 힘겹게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불타는 눈을 들어 불타는 세상 저 너머, 최후의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이 세상은 절대 네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동시에.

    서버 종료를 알리는 빛이 온 세상을 집어삼킨다.

    무너져 가는 세상.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그 모든 것을 두 눈에 똑똑히 아로새기고 있었다.

    그때.

    [30211273062190990265891806259103216976010135826214572116105222266589658477417896395175321152563115201695175……]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이 기분 나쁜 음성은 분명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벨페골!

    놈의 중얼거림이 환상의 종말과 함께 내 귓가에 울려퍼지고 있는 것이다.

    …파아아앗!

    세계가 멸망하며 빛을 내뿜는다.

    나는 그 찬란한 폭풍에 휘말려 어디론가 끝없이 날려 보내졌다.

    ‘이제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문득 걱정이 들었다.

    악몽 속으로 함께 떨어진 유다희와도 헤어지고 혼자 정체모를 환각 속에 남아 버렸다.

    왜 내 기억에도 없는, 아니 기억이 있을 리가 없는 미래의 모습까지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저게 미래가 맞긴 한가?

    ‘내가 아는 미래로부터 15년 뒤의 미래라니.’

    나는 세상이 무너지고 난 뒤의 여파에 휩쓸려 정처 없이 빛 속을 부유한다.

    내가 지금까지 뭘 본 것인지에 대한 의문만이 가득한 채로.

    바로 그때.

    [아앗!? 친구! 친구! 오랜만이야!]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아까 전 들었던 벨페골의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맑은 분위기이다.

    똑부러지는 발음, 듣기 좋은 어조, 누구에게나 호감을 줄 수 있는 청아한 음색.

    남성의 것인지 여성의 것인지 구분이 모호한 미성.

    <백팔번뇌 불똥정령> -등급: A+ / 특성: ?

    -서식지: ?

    -크기: ?

    -꽤나 큼지막한 불덩어리. 모습과 크기는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항상 격무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인다.

    [쨔잔! 지젼귀여운 나였습니다!]

    불똥정령.

    천공섬에 가기 직전 들렸던 어비스 터미널에 있던 존재.

    실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아카식 레코드의 관리자이기도 한 이 녀석은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반갑다는 듯 소리쳤다.

    [오랜만이야 친구! 오랜만이야!]

    “어어, 반가워. 어비스 터미널에서 보고 처음이지?”

    [꺄하하하! 그건 다른 녀석이야!]

    “아 그래? 그럼 우리는 초면 아닌가?”

    [우리는 모두가 하나! 하나가 모두! 모두를 위한 하나! 하나를 위한 모두!]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를 아는 걸 보니 나도 아는 척 해도 될 모양이다.

    […호에엥!]

    지금껏 내 품속에 꼭꼭 숨어 있던 쥬딜로페도 반응을 보일 정도로 불똥정령의 존재는 친숙했다.

    [호에엥!]

    [뽀에엥! 너 그때 그 알 친구구나? 예쁘게 컸네!]

    쥬딜로페와 불똥정령은 서로 손을 잡고 즐겁게 춤을 추었다.

    나는 이 작은 친구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이 분위기를 좀 깨야 했다.

    “저기, 이봐. 너는 자각흉몽아귀와 무슨 관련이라도 있어? 왜 이런 곳에 있지?”

    이곳을 나가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불똥정령은 주먹으로 다른 한 손 손바닥을 탁 쳤다.

    [아아, 나는 이 물고기랑은 아무런 관계도 없어. 그저 ‘중재자 올빼미 님’께서 너를 도와주라고 명령하셔서 서둘러 온 것뿐야.]

    ……중재자 올빼미라?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불똥정령은 고개를 돌려 저 너머를 향해 손짓했다.

    [어이! 여기야 여기!]

    그러자 불똥정령의 시선이 닿은 곳에서 반짝거리는 파란 빛 한 점이 반짝인다.

    이윽고, 귀엽게 생긴 또 하나의 불덩어리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는 게 보였다.

    <백팔번뇌 얼음똥정령> -등급: A+ / 특성: ?

    -서식지: ?

    -크기: ?

    -꽤나 큼지막한 얼음덩어리. 모습과 크기는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항상 격무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인다.

    [……으음. ‘공간’관리자 녀석, 이런 곳까지 와 버리다니.]

    이번에 나타난 녀석은 불똥정령이 색만 파란색으로 바꿔 칠한 것 같이 생긴 얼음덩어리였다.

    얼음정령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점잖게 꾸벅 목례를 해 보인다.

    불똥정령과는 성격이 많이 다른 것 같았다.

    [반갑다. 나는 아카식 레코드 ‘시간’ 부서의 관리자이다. 여기 이 빨간 녀석은 ‘공간’ 부서이고. 우리는 이 세상의 시간축과 공간축을 유지 보수하는 일을 하지.]

    [데헷! 데헷! 중재자 올빼미 님의 명령대로 너를 여기서 꺼내 주러 왔어!]

    내가 그 ‘올빼미’이라는 존재에 대해 질문할 시간도 없었다.

    불똥정령과 얼음똥정령은 나를 사이에 두고 손을 잡았다.

    그러자.

    …파앗!

    붉은 빛과 흰 빛이 뒤섞이며 도처에 따스한 훈풍이 불어온다.

    이윽고 내 한쪽 어깻죽지에 불로 된 붉은 날개가, 반대쪽 어깻죽지에 얼음으로 된 흰 날개가 돋아났다.

    나는 그대로 정령들의 힘을 빌어 이 세상을 떴다.

    “근데 아까 그 서버 알림음들은 뭐야? 서버가 종료된다던데?”

    [모른다.]

    [몰라, 저거 우리가 말한 거 아냐.]

    날개로 변한 두 마리의 정령들은 둘 다 아무것도 모르는 기색이다.

    세상에 아카식 레코드의 관리자들도 모르는 게 있다니, 과연 악몽아귀류 몬스터의 뱃속은 아카식 레코드의 힘도 닿지 않는다는 건가?

    나는 이 모든 일련의 사건들에 경외감을 느꼈다.

    ‘그래, 침착하자. 지금 중요한 것은 지금이야.’

    나는 살인자들의 탑에 들어왔고 이곳의 히든 보스이자 최종 보스인 벨페골을 만났다.

    현재 벨페골을 잡을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은 형편이니 일단 목숨만 건져서 도망치는 것이 최우선.

    다행스럽게도 이곳에서 불똥정령을 만나서 도움을 받게 되었으니 생존 확률은 크게 올라갔다.

    ‘이 녀석들을 보낸 올빼미라는 작자가 조금 찜찜하지만…….’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단 살아남는 것이 지상과제이니만큼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지.

    ‘나가면 조디악부터 조져 놔야겠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자각흉몽아귀의 뱃속을 탈출할 차례였다.

    [……3021127306219099026589180625910321697601013582621457211……]

    [……6105222266589658477417896395175321152563115201695175……]

    떠나는 내 뒤로 벨페골이 중얼거리는 알 수 없는 숫자 배열, 그리고 30년간 운영된 서버의 종료를 알리는 최후의 메시지만이 울려 퍼지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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