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7화 마지막에서 한 발자국 더 (1)
“뭐, 뭐야 이건?”
20대의 유다희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뭐긴 뭐야. 너지.]
30대의 유다희가 두 눈을 부릅떴다.
자각흉몽아귀는 악몽아귀에 비해 훨씬 더 리얼한 현장감을 제공하고 있었다.
20대의 유다희가 30대의 유다희에게 말했다.
“으으, 이런 답 없는 개쓰레기가 나라니. 내 미래가 이렇단 말야?”
그러자 30대의 유다희가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허? 넌 뭔데 열심히 사는 사람한테 쓰레기래?]
“너다 너! 10년 전의 너라고!”
[……? 이거 정신 나간 년 아냐?]
그러자 20대의 유다희는 속사포처럼 쏘아붙였다.
“맘 잡고 손 씻으려고 요즘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데, 결과가 왜 이 모양인 거야!? 대체 왜 사채질을 계속하고 있냐고! 서, 설마 아직도 차규엽, 그 고자 늙은이 밑에 있는 건 아니겠지!? 빨리 아니라고 말해!”
20대의 유다희는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것은 정말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의 회귀 전 과거를 재현하고 있을 뿐이지만……아무래도 그녀에게는 미래의 모습으로 보인 모양.
그러자 30대의 유다희가 코웃음 쳤다.
[뭐? 손을 씻어? 푸하하하!]
한참을 웃던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20대의 유다희를 노려보았다.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학교도 중학교 밖에 못 나오고 배운 것이라곤 남들 등쳐먹는 것밖에 없는 년이 무슨 손을 어떻게 씻어.]
“뭐, 뭣!? 이익!”
20대의 유다희는 얼굴이 새빨개진 채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리고는 뒤에 있는 나를 슬쩍 돌아본다.
“거, 거짓말이야, 저거 다!”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다.
한편, 30대의 유다희.
내 머릿속에 아픈 기억으로 남은 그녀는 퇴폐적인 시선으로 20대의 어설프고 풋풋한 유다희를 흘겨보았다.
[…한창 싱싱할 때네. 너나 허튼짓하지 말고 호구들 등쳐먹는 거나 열심히 해. 시장가치가 제일 높을 때에 뭐 하는 짓이야. 지금 딴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지? 내가 한 가지 충고해 줄까?]
“…….”
[지렁이면 지렁이답게 진흙이나 파먹고 살아. 괜히 자기 주제도 모르고 어설프게 빛 비치는 쪽으로 기어가다가 말라죽지 말고.]
“…….”
[표정이 왜 그래? 틀린 말 했나? 배운 거 없고 기댈 곳 없으면 그냥 그나마 반반한 얼굴이라도 팔아서 살아야 하지 않겠어? 옛날에는 막내 보기 부끄러운 것이라도 있었는데. 이젠 막내도 병들어 죽고 없잖아?]
염세적, 자기파괴적인 말.
거의 자학에 가까운 공격이다.
다만 자학이라고 해도 유다희 본인이기에 데미지는 두 배로 박히고 있었다.
20대의 유다희는 발끈해서 외쳤다.
“막내가 없긴 왜 없어! 지금 병 다 나아서 건실하게 잘살고 있거든? 그리고 나도 얼마 전부터 검정고시 공부랑 방송통신대학으로 열심히 공부…….”
하지만 그녀의 말은 중간에 끊겼다.
30대의 유다희가 입은 옷이 서서히 중학교 교복으로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앞에는 학교에서 쓰는 책상이 생겨났다.
책상에는 구정물과 함께 오물 범벅이 된 체육복과 교과서가 놓였다.
조각칼로 새긴 듯한 글씨로 ‘죽어’, ‘원조교제’, ‘창X' 등등의 욕설도 보인다.
‘얼굴만 믿고 나대지 마라’, ‘확 그어 버린다’, ‘싸 보인다’ 등의 열등감 가득한 비난들이 주변에서 BGM처럼 수군수군 들려오고 있었다.
[학교? 이런 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거야?]
30대의 유다희는 빈정거리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20대의 유다희는 말없이 두 주먹을 꽉 움켜쥘 뿐이다.
이내,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나는 너처럼은 안 될 거야.”
[…….]
“절대 너처럼은 안 살 거라구!”
그 말에 30대의 유다희는 가만히 팔짱을 꼈다.
[……내가 너 때 그렇게 생각 안 한 거 같아?]
“그래!”
20대 유다희의 목소리가 분노로 새빨갛게 떨린다.
30대의 유다희는 고개를 저었다.
[하긴 세상 좀 어느 정도 안다고 한창 착각할 나이지.]
“내가 너거든!”
[말은 똑바로 해. 나이는 내가 더 먹었어. 연륜도 쌓여서 현실을 더 잘 아는 건 나지.]
“……아니.”
[할 말 없지?]
“아니야…….”
[막내가 병이 다 나아서 건실하게 살고 있다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동안 세상구경도 잘 못한 애가 어떻게 갑자기 건실하게 살지? 이미 평범하게 크긴 늦은 것 같은데? 거기에 너는 이제 와서 손을 씻는다고? 이거야말로 늦은 게 아니고 뭐니?]
“안 늦었어!”
20대의 유다희가 다시 한번 악 질렀지만, 여유가 생긴 탓인지 30대의 유다희는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하던 말을 단호하게 끝맺을 뿐.
[늦었어.]
“안 늦었어. 마, 맞지 변태!?”
유다희는 구석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에게 동의를 구해 온다.
세상에 얼마나 다급했으면 나에게까지 물어볼까.
“…….”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여 줬을 뿐이다.
30대의 유다희는 그 모습을 보고 깔깔 웃었다.
[그걸 왜 쟤한테 물어? 너 쟤랑 앙숙 아니니? 혹시 바보? 네 사정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맞아.”
[그래. 이제는 좀 알겠니? 그러니까 개수작 말고 늘 하던 대로 남들 눈에서 피눈물이나 빼 놓고 다니라구~ 그게 네 시궁창 같은 인생에는 딱이니까.]
“……맞아. 내 사정은 내가 제일 잘 알지. 너는 나니까.”
멈칫.
30대의 유다희는 한참 끌던 웃음을 뚝 그쳤다.
상대의 표정이 자신의 말에 충격을 받아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날 본 20대의 유다희는 한결 차분해진 눈빛으로 시선을 돌려 상대방을 바라보았다.
“너 후회하고 있지?”
그러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빠직-
30대의 유다희에게서 작은 소리가 나며 그녀의 얼굴에 실금이 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티가 잘 안 나는 작은 균열.
20대의 유다희는 붉어진 눈시울로 다시 한번 말했다.
“사채질을 하고, 돈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남의 눈에 피눈물 내고.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온 자신의 결과에 그럭저럭 만족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마음 깊이 후회하고 있는 거지? 왜 그때 인생을 올바른 쪽으로 틀지 않았나 말이야. 그래서 헛된 노력을 고집할 내가 아니꼬운 거잖아.”
[뭐, 뭐라는 거야! 그럼 짜증 안 나? 과거의 내가 바보짓을 한다는데?]
“거짓말. 너는 나처럼 선택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거야. 나는 너를 잘 알아. 나는 너니까!”
빠지직-
이번엔 제법 큰 소리가 나며 30대 유다희의 얼굴에 큰 균열이 일어났다.
작은 잔금들은 그녀의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렸다.
[이게 어디서……!?]
“아까 네가 차 안에서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어.”
[…….]
“누군가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했었지? 그리고 ‘만약’에 그랬다면, 혹은 그러지 않았다면 뭐가 달라졌을지 궁금해 했었잖아.”
[…….]
“그리고 너 요즘 세희가 얼마나 건강해졌는지, 얼마나 행복해하는지 모르지? 창이도 건실한 곳에 취직했고.”
[……!]
30대 유다희의 모습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흐릿하게 죽어 있는 두 눈은 눈앞에 있는 20대 유다희를 향해 멍하니 고정되어 있다.
20대 유다희는 떨리는 목소리로나마 쐐기를 박았다.
“나는 과거를 버리지 않아. 다만 반성하고 속죄하며 짊어지고 갈 뿐이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만…!”
우지직-
마침내 30대 유다희의 형상이 깨져 나간다.
“너는 계속 후회 속에서 포기만 하고 살았잖아!”
빠지직-
“이제부터는 진짜 제대로 살 거야. 절대 너처럼은 안 될 거야, 절대, 절대, 절대!”
동시에.
챙그랑-
균열이 가는 속도도 더 빨라졌다.
유다희의 외침에 유다희는 조각났다.
거울처럼. 마침내.
그렇게 한 조각 한 조각 부서져 내린다.
수많은 거울 파편 사이로 눈을 부릅뜬 30대 유다희의 얼굴이 번졌다.
[……그래 어디 맘대로 해 봐. 되나.]
비웃음인지 쓴웃음인지 모를 미소.
그게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풀썩-
30대의 유다희는 결국 작은 조각, 아니 가루로 변해 내려앉았다.
초록색, 다홍색 잿가루가 맵게 피어오른다.
“…….”
20대의 유다희, 아니 이제는 그냥 유다희.
그녀는 두 손으로 붉어진 눈매를 쓱쓱 문지르며 한참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 * *
한편.
오른쪽 머리의 유다희가 오른편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어휴.”
왼쪽 머리의 나 역시도 왼편을 보고 있었다.
나 역시도 나를 마주하고 있는 중이다.
회귀 이전의 나.
게임 캡슐 하나가 들어가면 꽉 차는 반지하 원룸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던 시절의 나.
게임을 향한 애착과 갈망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버린 루저. 외톨이. 겁쟁이.
나는 그런 나를 아픈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이쯤에서 회귀했던가?’
나는 회귀하기 직전의 상황을 떠올려 보았다.
‘거의 막장 인생이었지. 이보다 더 끝은 없을 정도로.’
절로 한숨이 나온다.
회귀 전 내 삶은 그야말로 종착역, 말로(末路) 그 자체.
거기서 더 이상 앞으로 갈 수도 없는 막장이었다.
바로 그때.
[……아냐, 끝이 아냐.]
35살, 회귀 전의 이어진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어어?”
나는 두 눈을 크게 떴다.
현실의 흐름과는 조금 달랐지만, 대략적인 틀은 비슷했다.
과거는 얼추 내 기억대로 흘러간다.
35살의 나는 게임 캡슐 안으로 들어가더니 게임을 시작했다.
뭘 하려고 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강화’
그렇다. 35살의 나는 회귀하기 직전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윽고, 35살의 이어진은 강화소에 가서 아이템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10강화. 10강만 되면 노 난다.]
나는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10강은 특수한 주문서가 있어야 갈 수 있는 단계이니 사실상 한계는 9강.
하지만 7강 정도만 되어도 사실 빚을 모두 갚고 새출발 하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35살의 나를 불렀다.
“어이, 이어진이.”
내가 묻자 35살의 내가 움찔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너 뭐 딴 생각 하는 거 아니지?”
무언가에 홀린 듯 강화소로 가는 꼬락서니를 보자 괜히 나까지 불안해진단 말이다.
그러자 35살의 나는 어울리지도 않게 침착한 목소리로 톡 쏘아 붙었다.
[거 푼돈 조금씩 벌어서 언제 원금 다 갚습니까? 남자 인생 한방 아닙니까?]
나는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다급해졌다.
자각흉몽아귀의 영향 때문일까? 내 인생이 실시간으로 조져지고 있는 느낌.
“자, 잠깐만. 너 극단적인 선택 하지 말고. 좀 침착해.”
하지만 35살의 나는 내 말을 씹고 강화소 문을 박찼다.
그리고 그 당시 나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던 A+등급의 아이템을 시술대 위에 올려놓았다.
‘집행하는 검’
지금은 그냥저냥 좋은 아이템 수준이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애병이었지.
[후……7강. 7강만 떠도 원금은 건진다.]
35살의 나는 크게 심호흡한 뒤 강화석을 들어 칼에 발랐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1’이 생성되었습니다!
나는 순간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강화 트라우마가 생겨서인지 더 이상은 눈 뜨고 못 보겠다.
하지만.
[가자!]
35살의 나는 연달아 강화석을 발라 댔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2’이 생성되었습니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3’이 생성되었습니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4’이 생성되었습니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5’이 생성되었습니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6’이 생성되었습니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7’이 생성되었습니다!
-띠링!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8’이 생성되었습니다!
이 메시지를 듣는 순간.
나는 전신의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오싹한 전율이 내 전신을 휘감는다.
“야, 뭐야? 뭐야? 된 거야?”
오른쪽에 있는 유다희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으음, 회귀하기 전에 몇 강화까지 성공했었더라?’
기분 나쁜 기억이라서 애써 잊고 있었던 강화 PTSD가 다시 도지는 것 같았다.
지금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라서 그런가 절로 심장이 쫄깃해진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입을 열었다.
“어이. 이어진이, 그동안 고생 많았어. 축하해. 이제 그만 하자고.”
혹시나 해서 말려 보았지만 어차피 나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회귀하겠지.
내 기억대로. 35살의 나는 최후의 도박수를 던진다.
[가즈아아아아아!!!!]
아 진짜 혐오. 왜 저렇게 살았을까?
키융-
강화가 이루어지는 소리.
눈이 멀 듯 찬란한 빛.
-쨍그랑! 강화에 실패하셨습니다. ‘집행하는 검 +8’이 파괴되었습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다.
아이템은 깨졌고 35살의 나는 멍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나 역시도 허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회귀 전의 나.
‘……세상에 이렇게 한심할 수가!’
한심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 정도일 줄이야.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제 3자의 시각에서 보니 정말 뼈아프다.
자각흉몽아귀가 왜 공략 난이도 최상급인지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한데?
놀랍게도, 35살의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나는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이 시점에서 15년 전으로 회귀하게 된다.
그리고 회귀 전의 삶에서 저질렀던 수많은 실수들을 만회하고 인생 역전을 이루게 되겠지.
하지만.
과거의 시간은 지금 내 눈앞에서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아니, 흘러간다기보다는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어쩔 수 없지. 강화는 조졌고 내 인생도 조졌지만……그래도 끝은 아냐.]
35살의 나는 이를 악물고 강화소를 나왔다.
비록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눈에는 아직 열망 비스무리한 것이 엿보였다.
35살의 나는 강화소를 나오자마자 바닥에 엎어지더니 땅에 머리를 대고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데우스 엑스 마키나야. 나 방금 순간적으로 너를 플레이 했으면 안 됐다고 생각했어.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나의 인생 그 자체인 너를.]
나는 입을 반쯤 벌리고 나를 쳐다보았다.
뭘까? 저 오그라들 정도로 겜덕스러운 대사는.
그보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저랬던 기억이 없다.
나는 분명 아이템을 터트리고 절망에 빠져 이 게임에 빠져 간 나날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을 텐데?
회귀도 그 시점에 이루어졌고 말이다.
그러나 과거의 나, 회귀 전의 나, 아니 내가 겪어 본 적 없는 시간대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에 대한 애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내가 혼란에 빠져 있는 순간.
츠츠츠츠츠츠……
또 한번, 페이즈가 바뀌었다.
자각흉몽아귀가 세 번째 패턴을 준비하는 것이다!
“야! 변태!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유다희가 내 쪽을 돌아보며 다급히 물었다.
나 역시도 이런 사태는 완전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별다른 답을 줄 수 없었다.
나와 유다희가 혼란에 빠져 있는 순간.
세상의 풍경이 다시 한번 바뀌기 시작했다.
…팔락! …팔락! 파라라라락!
눈 앞으로 달력의 페이지가 수없이 넘어간다.
스크린 상단의 날짜가 미친 듯 빨리 감아지고 있었다.
쿠구구구구……
뒤틀리는 대지.
자욱한 포연.
붉게 물든 밤하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는 황무지.
이 시점으로부터 15년 뒤, 그러니까 이 게임이 나온 지 정확히 30년이 되는 날.
빠르게 넘어가던 달력이 멈췄다.
멸망해 버린 세상.
한 사람의 무게도 지탱하지 못하는 무너져 가는 대지 위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늙은 게이머가 보인다.
뺨을 할퀴는 거친 바람이 장발을 마구 헝클어도 그는 꼼짝도 않은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최후의 플레이어.
바로 50살이 된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