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05화 (505/1,000)

506화 7층의 보스 몬스터 (3)

악몽아귀.

이 거대한 생물은 시공간을 비트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녀석의 뱃속에 있는 동안에는 아카식 레코드의 관리자조차도 시공간의 힘을 잃어버리게 될 정도.

특성 ‘자체매력’

영원을 찰나로, 찰나를 영원으로 만드는 능력.

자신의 뱃속에 들어온 모든 것들에게 진득한 정신계 마법을 펼쳐 도망가지 못하게 한 뒤 소화해 버리는 특성이다.

이 괴물의 뱃속에 들어가게 되면 가수면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가장 어두웠던 기억과 마주하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비행로에 사는 악몽아귀와 달리 벨페골의 중간 보스로 있는 자각흉몽아귀는 더욱더 강하고 흉악한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벨페골의 공략 난이도를 미친 듯이 올려놓은 요인이다.

……한편.

“으어어억!?”

“꺄악! 아오 뭐야!?”

나와 유다희는 한 몸이라서 그런가 한 악몽 안에 같이 떨어졌다.

오른쪽 머리와 상반신 역할을 맡은 유다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으나 두 손만으로는 몸을 일으킬 수 없었다.

왼쪽 머리와 하반신 역할을 맡은 나 역시도 발만 바동거릴 뿐이다.

“자, 자, 이러지 말고 한 번에 일어나자.”

“오, 오케이. 하나, 둘, 셋!”

유다희는 두 팔로 땅을 짚었고 나는 다리를 구부려 몸을 일으켰다.

참, 몸을 섞으니 이런 애로사항이 꽃피네.

나는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주변은 온통 낯선……아니 이제는 낯익은 환경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녹색 칠판.

책상, 의자, 교탁, 시계, 태극기, 창문, 커튼, 복도, 사물함, 청소도구함 등등.

청송량 중학교 2학년 3반의 풍경, 내가 예전에 악몽아귀의 뱃속에서 봤던 것과 똑같은 맵이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하, 뭐야? 중학교 교실이잖아?”

지금은 옆에 유다희가 같이 있다는 것?

아무래도 꿈속에 현실감을 주는 인물이 같이 있으니 정신이 멍해지는 것이 좀 덜하다.

나는 저번과 달리 이곳이 꿈, 악몽이 그대로 재현된 맵이라는 것을 곧바로 자각할 수 있었다.

한편 유다희는 나를 보며 깔깔 웃었다.

“아 뭐야? 트라우마가 맵처럼 나온다더니 중학교 교실이 왜 나와? 너 중학교 때 뭐 삥이라도 뜯기고 그랬냐?”

바로 그때.

…딱!

뒤통수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내 또래로 보이는 중학생 몇 명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인다.

모든 것이 저번과 동일했다.

일진 두어 명이 나를 보고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그 주변에 비굴하게 서 있는 방관자들.

그러자 유다희가 웃던 것을 멈추고 정색을 했다.

“……어? 뭐야? 진짜였냐?”

“…….”

“미, 미안. 나는 진짜인 줄 모르고.”

갑분싸.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뭐, 아무튼. 이 모든 게 악몽이라는 걸 안 이상 주눅들 필요는 없다.

나는 저번 악몽아귀에게 호되게 당한 뒤 나름 면역이 생겼단 말이다.

[오늘 오후까지 아이템 준비해 놔라. 나랑 3학년 선배님들 것까지 싹. 못 구하면 알지? 문상으로 대신 받는다. 현금도 괜찮ㄱ……]

[너어, 우리 데이트 비용도 다 얘한테서 조달하면서! 나빴다 진ㅉ……]

나는 이쪽을 내려다보며 실실 웃는 일진 커플 두 명의 머리통에다가 깎단을 거꾸로 쥐고 내리찍었다.

…빡! …빠악!

뚝배기가 깨지는 소리가 두 번.

[어?]

[엑!]

그것을 시작으로 교실 안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던 모든 놈들의 뚝배기가 연달아 도미노처럼 깨졌다.

“이제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것들이 귀찮게 자꾸 나오고 난리야.”

나는 혀를 차며 깎단을 회수했다.

사실 때리기보단 찌르고 싶었는데 발가락 사이로는 깎단의 손잡이 부분을 잡을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뾰족한 부분을 쥐고 몽둥이처럼 휘둘러야 했다.

뭐 아무튼.

내가 내 몫의 악몽을 클리어하자 이내 맵이 바뀌기 시작했다.

츠츠츠츠츠……

이번에는 유다희의 기억이었다.

“꺄아아악! 뭐야!? 뭐야!? 보지 마!”

유다희는 두 손으로 내 눈을 가리려 했지만 이미 맵은 완성되었다.

쏴아아아아아……

비가 내리는 강변.

폴리스 라인이 그어져 있는 둑에는 우비를 입은 경찰들이 모여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들여다보고 있는 가운데 비닐에 덮인 실루엣 하나가 보였다.

두 손이 뒤로 묶인 채 물에 젖어 있는 남자.

그리고 그 남자를 보고 있는 어린 꼬마아이 둘이 있었다.

누나로 보이는 여자아이는 머리 하나는 작은 남동생의 두 눈을 자기의 조막만 한 손으로 가렸다.

“……아.”

유다희는 내 눈을 가리다 말고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비가 내리던 강가, 아버지를 발견했던 그날의 밤.

그때 들었던 수군거림. 그때 받았던 눈빛. 그때 보았던 경찰과 구경꾼,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그때 손에 꼭 쥐고 있었던 동생의 미약한 온기.

더없이 차갑고 가혹했던 세상.

가장 잊고 싶었던 그때의 기억이 또렷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윽고 꼬마아이 둘의 앞에 검은 세단 하나가 와 섰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콧수염을 길게 기른 검은 그림자였다.

차규엽.

그는 흰 이빨을 빛내며 씩 웃었다.

[앞으로 나를 아버지라고 생각하렴.]

그러자 유다희의 멍한 동공이 흔들렸다.

“아, 안 돼. 따라가면 안 돼.”

유다희는 중얼거렸지만 강둑을 넘지는 못했다.

눈앞에서 아이들이 검은 세단 안으로 들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막지 못했다.

……그녀의 두 다리를 내가 조종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렇게 되었겠지.

파팟!

나는 그 자리에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다리가 자의가 아니게 움직이자 유다희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엇!? 너?”

유다희가 나를 바라본다.

나는 시큰둥하게 한마디 했다.

“이대로 나쁜 기억에 끌려 다닐 거야?”

“…….”

내가 묻자 이내 유다희의 눈빛이 바뀌었다.

“맞아. 그래. 이건 그냥 단순히 내 기억을 재생시켜 놓은 거랬지?”

그녀는 이를 뿌득 갈았다.

그리고 두 손에 도끼를 더욱 단단히 말아 쥐었다.

[후후후. 자, 어디 이리로 와 봐라. 녀석, 꼬맹이가 벌써부터 색기를 이리 흘리고 다녀서야. 나이가 조금 더 차서 발육도 좀 더 되고 하면 아주 남자 혼 빼 놓는 요물이……]

차규엽은 말을 끝까지 이을 수 없었다.

“야 이 변태 고자 새끼야!”

유다희가 도끼를 휘둘러 차규엽의 몸과 그 뒤의 자동차까지 통째로 반 토막 냈기 때문이다.

“이놈 만난 뒤로 내 인생이 제대로 꼬였다고! 어우!”

유다희는 분이 안 풀리는지 도끼로 차규엽과 그의 자동차를 아주 잘근잘근 박살내 버렸다.

그리고는 비 내리는 강둑을 한번 슬픈 눈으로 돌아보았다.

“편히 가쇼. 원망은 안 할라니까.”

흰 천에 덮인 채 옮겨지는 아버지를 본 유다희의 표정이 더없이 쓰다.

쏴아아아아……

비는 계속 내린다.

나와 유다희는 한 몸으로 섞인 채 강둑에 멍하니 섰다.

모든 이들이 사라진 강둑, 흔들리는 수면을 보며 유다희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비가 왔었지.”

“언제?”

“그때. 중국에서.”

아, 둘 다 돈 한 푼 없이 호텔로 돌아가던 그때를 말하나 보다.

“…….”

내가 말이 없자 유다희는 나를 슬쩍 돌아보았다.

한 몸인지라 고개를 살짝만 옆으로 돌리면 되는 일이었다.

“넌 어떻게 아까 그렇게 당당했냐?”

“악몽 말야? 나는 면역이 있거든.”

내가 전에 악몽아귀와 싸워본 적이 있다고 말하자 유다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덕분에 나도 덕 봤네.”

조금 의외의 말이었다. 이건 감사 인사로 봐야겠지?

유다희는 약간 빨개진 얼굴로 툴툴거리듯 말했다.

“아까는 솔직히 고마웠다. 너 아니었으면 충격 받아서 한동안 더 얼 탔을 거야. 어쩌면 아무것도 못 했을지도.”

“……공치사는 됐어.”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까 중학교 때의 기억도 그렇고, 막상 처음 겪었을 때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무섭고 얼떨떨했는지 다시 겪어 보니 참 별 것 아니다.

깎단 두 방에 뚝배기가 깨지던 일진들을 떠올리니 지난 세월이 새삼스러웠다.

과거의 나쁜 일을 다시 겪는다는 것은 괴롭고 끔찍한 것이지만,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 성숙해진 뒤에는 오히려 한번 다시 겪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때의 나약했던 나와 달리 지금은 제대로 강하게 대처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자기의 나쁜 기억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타파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니 아주 나쁘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군.’

나는 마음속으로 악몽아귀라는 몬스터를 살짝 재평가해 주었다.

……물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불쑥 만나는 것은 절대 사양이지만 말이다.

그때.

쿠르르릉!

강둑이 갑자기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엇? 뭐지!?”

나와 유다희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악몽 속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아하, 클리어 한 건가?”

하지만 유다희의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츠츠츠츠츠츠……

악몽 세계가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군. 이 녀석은 악몽아귀의 상위종이었지 참.’

우리를 집어삼킨 녀석은 자각흉몽아귀로 일반적인 악몽아귀보다 훨씬 더 강한 녀석이다.

무려 고정 S+등급 몬스터인 벨페골의 중간 보스이니 놈이 보여주는 악몽세계는 분명 더 깊고 어두울 것이리라.

이윽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가 완전히 모습을 바꾸었다.

“……!?”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천공섬에서 만난 악몽아귀는 과거의 가장 아픈 기억을 보여 주었었다.

한데 벨페골의 수하로 등장한 자각흉몽아귀는 놀랍게도 미래의 모습까지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미래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딱 하나, 회귀 전 미래의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인지 나의 과거 회상인지 알 수 없는 장면들이 눈앞을 스친다.

나의 자취방, 서른다섯의 내가 캡슐 앞에 머리를 떨구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서 사채 이자를 받아 나온 유창이 집 밖으로 나와 차에 탄다.

그 차의 조수석에는 유다희가 있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나이 든 30대의 유다희가.

“이, 이게 뭐야? 내가 왜 저기 나와?”

유다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20대의 유다희가 30대의 유다희를 바라본다.

20대의 나 역시도 30대의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30대의 유다희는 30대의 내 뒤통수를 치고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그래서일까? 20대의 나는 20대의 유다희 뒤통수를 참 많이도 쳤다.

……물론 시간축이 서로 다르기는 했지만.

한편.

[미안해. 오빠처럼 착하고 순진한 사람 없는 것 아는데. 그래서 더 어쩔 수가 없네. 나도 고민 많이 했어.]

[대신에 나도 오빠 말고 평생 다른 남자 안 만날게. 미안. 정말 미안해.]

[……그리고 혹시라도 나중에 나 절대 용서하지 마. 나는 진짜 쓰레기니까.]

30대의 유다희는 가래침과 껌, 꽁초들이 엉겨 붙은 재떨이에 담배를 눌러 껐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창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멍청한 년, 그러니까 왜 공사 대상한테 정을 주냐?]

[…….]

[아니, 작업 친 대상 중에 판검사도 있었고 의사도 있었고 재벌 2세, 3세들도 있었는데 왜 하필 저딴 너절한 놈에게…… 하, 나도 이해 못하겠다.]

유창의 말에 유다희는 회색빛으로 죽은 눈을 들어 내가 살고 있는 단칸방을 바라본다.

문득, 그녀는 담배연기 섞인 물음을 던졌다.

[세희가 살아 있었더라면 뭐가 좀 달라졌을까?]

[……아, 죽은 년 얘기를 뭐 하러 꺼내?]

[너랑 나도, 어진 오빠도. 다른 관계로 살 수 있었을까? 만약에… 만약에 우리가 그때 차규엽의 차에 타지 않았더라면…….]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30대 유다희, 그녀의 몸에 작은 실금이 간다.

천천히, 천천히 무너져 내리는 그녀의 몸.

그때.

“야!”

뒤에서 들려오는 쨍쨍한 소리가 유다희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어딘가 설익은 풋내가 감도는, 하지만 그래서 싱그럽게 느껴지는 음성.

유다희.

20대의 유다희가 30대의 유다희의 앞에 난입해 든 것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