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04화 (504/1,000)

505화 7층의 보스 몬스터 (2)

<벨페골> -등급: S+ / 특성: ?

-서식지: ?

-크기: ?

-이 세상의 모든 악마를 지배하는 일곱 성좌 중 하나.

나태와 악몽을 지배하는 위대한 마왕.

“귀찮도다. 내가 살아 있는 것도, 너를 살려 두는 것도.”

-벨페골- <수기기(壽器記) 제 25-2장>

고정 S+등급의 몬스터, 나태의 악마 벨페골!

그레이 시티에 사는 이만 사천 명의 인간을 타락시킨 원흉이 등장했다.

해골만 남은 얼굴에 누더기를 걸친 이 악마는 몸 전체가 시커먼 아우라로 뒤덮여 있어 정확한 생김새와 크기를 짐작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전신에서 풍겨져 나오는 압도적인 불길함만은 여실히 느껴진다.

……솔직히 말하면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S등급 몬스터인 카르마를 수하로 부리는 악마성좌.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지금 벨페골을 상대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더군다나 벨페골은 2차 대격변 이후까지도 공략이 없기로 유명한 최종보스 중 하나였다.

오로지 놈에게 덤벼들었던 레이드의 전멸 소식만이 간간히 전해졌을 뿐.

아마 개별 공략 난이도로만 따지면 윌슨이 경고했던 레비아탄과도 거의 동급이 아닐까?

“젠장, 저놈이 벌써 깨어나면 안 되는데…….”

나는 뒤로 물러나며 중얼거렸다.

원래 나의 계획은 6층의 보스 카르마만 잡고 빠지는 것이었다.

뭐, 겸사겸사 조디악도 죽일 겸 말이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조디악은 벨페골을 깨워 버렸다.

벨페골을 잡으려고 했던 원래 계획을 몇 년이나 앞으로 당겨 가면서까지.

한편.

[30211273062190990265891806259103216976010135826214572116105222266589658477417896395175321152563115201695175……]

벨페골은 7층을 가득 채우고 있던 몸을 이끌고 6층으로 내려온다.

듣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숫자의 나열들을 엄청난 속도로 중얼거리면서.

꾸물… 꾸물… 꾸물…

시커먼 폭포처럼 흘러내린 몸뚱이는 순식간에 6층 전체로 번지고 있었다.

마치 현실로 범람하는 악몽 그 자체를 보는 듯한 모습.

하지만, 조디악은 과연 비범했다.

“푸스스스스! 조금 갑작스럽지만 어쩔 수 없지! 레이드 개시다!”

놈은 1만 3천의 화석병 군단을 이끌고 6층으로 내려온 벨페골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륵!

조디악의 손에서 뿜어져 나간 유극지옥의 검은 불길이 벨페골의 안개와도 같은 몸을 태운다.

방철해, 방철우 형제가 주먹으로 지진을 일으켜 벨페골의 몸을 띄울 때면 김정은의 화염마법이 어김없이 벨페골의 사각지대를 파고들고 있었다.

동시에 1만 3천 마리의 화석병들이 제각기 다른 무기를 들고 벨페골의 전신을 난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30211273062190990265891806259103216976010135826214572116105222266589658477417896395175321152563115201695175……]

벨페골은 비명이나 포효 한번 내지르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뜻 모를 숫자만을 빠르게 중얼거릴 뿐이다.

“이런 빌어먹을! 데미지가 아예 안 박히나?”

조디악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벨페골을 바라본다.

“조금만 있어 봐, 내가 알아볼게.”

김정은은 핵을 쓰고 있는지 벨페골의 몸 근처에 수없이 많은 상태창을 띄워 그 안의 숫자와 그래프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냐. 벨페골은 지금 착실하게 데미지를 입고 있어.”

“뭐? 근데 왜 반응을 전혀 안 보여?”

“그, 그게……데미지가 축적은 되는데. 실질적인 피해는 거의 없달까.”

“푸스스스. 이런 미친년을 봤나, 뭔 개소리야 그게?”

조디악이 짜증을 내자 김정은이 해킹을 하다말고 빽 소리쳤다.

“외상값 같은 거야!”

“……?”

“벨페골의 특성 중 ‘내일모레’라는 특성 때문에 우리가 가한 데미지가 할부처럼 나눠서 천천히 들어가고 있다고! 그래서 가한 데미지는 많이 축적되어 있는데 벨페골에게 실질적으로 들어간 수치가 0에 가깝다 이거야!”

김정은의 설명을 들은 조디악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암만 때려 봤자 벨페골은 그 데미지를 한 번에 입는 게 아니라 어딘가에 모아 뒀다가 천천히 나눠서 받는다는 거냐? 할부로?”

“……그래. 아무래도 어디 데미지 저장소라도 따로 있는 모양이야. 데미지 수치가 전부 가상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외장하드 같은 게 달렸나?”

기가 막힐 노릇이다.

사람들이 물건을 살 때 한 번에 대금을 치르면 부담이 되니 12개월, 24개월 등으로 분할해서 납부하듯, 벨페골 역시도 입은 데미지를 천천히 나눠서 입는 것이다.

그것도 기약을 알 수 없는 시간에 걸쳐 무이자로!

조디악은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 벨페골은 분명 ‘백룡(白龍) 카프카타렉트’와의 싸움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는데……그런데도 아직 이렇게 세다는 건가?”

“어, 틀렸어. 우리가 입히는 데미지가 너무 천천히 들어가. 놈의 자연 회복량 이하로 찔끔찔끔 먹히고 있어. 우리가 지금까지 준 피해가 0으로 찍힌다고!”

김정은이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절망했다.

자그마치 1만 3천이나 되는 고대화석 해골병 군단을 이끌고도 이 모양이다.

꾸르륵… 꾸르르르륵…

용맹히 돌진하던 해골병들은 전부 벨페골의 악몽 같은 몸체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검은 안개에 휘말린 것들 중 다시 돌아 나오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고정 S+급 몬스터……정말로 넘을 수 없는 벽이란 말인가.”

조디악은 흔들리는 동공으로 눈앞의 최종보스 벨페골을 바라보았다.

[610522226658965847741……]

벨페골은 여전히 텅 빈 암흑 같은 눈으로 알 수 없는 숫자들만을 빠르게 중얼거릴 뿐이다.

그때.

“푸스스스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조디악은 핏발 선 눈으로 고개를 들어 눈앞의 ‘악몽’을 마주보았다.

궁지에 몰린 순간, 놈이 인벤토리에서 꺼내든 아이템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츄츄의 슬라임 젤리> / 재료 / D

그레이 시티의 명물 슬라임 젤리.

슬라임으로 만든 젤리답게 주변 환경의 영향을 잘 받는다.

그레이 시티의 명물.

반투명한 외형의 맛없는 젤리.

동시에 조디악은 또 하나의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지옥불 코어 반쪽> / 재료 / S

반으로 쪼개진 빨간 구슬 조각.

너무나도 뜨거워 악마조차도 열상(熱傷)을 입고 만다는 지옥 동쪽의 불길이 담겨 있다.

발록과 데모고르곤에서 얻은 아이템.

조디악은 한 손에는 슬라임 젤리를, 다른 한 손에는 지옥불 코어를 든 채 미친 듯이 웃어댔다.

“푸스스스! 그래 덤벼! 덤벼 봐라! 나도 준비 많이 했다고! 한번 붙어 보자 이거야!”

그러자 그 옆에 있던 김정은 역시 자기 뺨을 찰싹찰싹 때린다.

“그, 그래! 벨페골은 물리방어력, 마법방어력이 사기지만 그만큼 공격력이 낮아! 최대 체력도 그리 안 높고! 다른 고정 S+급 몬스터와는 달리 시간만 왕창 때려 박으면 이길 수도 있어!”

꽤나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니 나름대로 이것저것 벨페골에 대한 단서들을 모아 왔던 모양이다.

한편.

5층 끝에서 6층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 있던 유다희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오 씨! 저것들 이러다가 S+급 몬스터 잡는 거 아냐!? 진짜 완전 큰일 나겠는데!?”

……하지만.

‘안 돼.’

오로지 나만은 알고 있었다.

벨페골은 조디악의 판단과 달리 단순히 시간만 때려 박는다고 잡을 수 있는 수준의 악마가 아니다.

‘아마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겠지.’

벨페골이 괜히 2차대격변 이후로도 쭉 잡히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아니, 잡히기는커녕 놈에게 변변찮게 한 칼 먹인 사람조차도 없었다.

그 이유는.

스물스물스물스물……

바로 저것 때문이다.

나는 벨페골이 몸을 움츠리고 입을 오물거리는 것을 보았다.

놈은 지금 무언가를 ‘뱉어내려고’하고 있었다.

“……튀어야 해. 지금 당장.”

나는 유다희에게 말했다.

하지만 이미 말이 나온 시점부터 나는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어? 야, 이대로 내빼자고? 그러다 저놈들이 저기서 S+급 몬스터 사냥하면 어떡해?”

“어차피 못 잡아, 쟤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인 거야.”

만약 지금으로부터 3년쯤 뒤였으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절대 무리지.

나는 재빨리 뒤돌아 뛰었다.

조디악이 벌여 놓은 미친 짓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다.

카르마는 죽였으니 그레이 시티도 정화될 것이고 조디악은 알아서 파멸할 테니 내 계획은 여기까지였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도망만 갈 수 있다면.

그러나.

“망할!”

나는 걸음을 멈췄다.

5층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는 검은 안개, 이미 해방된 벨페골은 살인자의 탑 전체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뒷목을 타고 쭈뼛한 감각이 지나간다.

“뭐, 뭐야아?”

유다희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 역시 고개를 뒤로 돌렸다.

뒤에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명이 튀어나올 만큼 무서운 광경.

쩍 벌어진 벨페골의 입속에서 기어 나온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거대한 얼굴, 커다란 입, 날카로운 이빨, 전신에서 꿈틀거리는 지느러미.

보고 있노라면 절로 PTSD가 도지는 외형.

<자각흉몽아귀(自覺凶夢餓鬼)> -등급: S / 특성: 어둠, 하수인, 물, 비행, 과식, 자체매력

-서식지: 살인자의 탑 1~7층

-크기: ?

-‘나태한 이여. 꿈속에서 깨지 말고, 삶 속에서 깨어 있으라.’

-벨페골-

천공섬의 비행로에서 만났던 악몽아귀의 상위종.

그보다 훨씬 더 크고 육중한 몬스터.

카르마와 더불어 벨페골을 호위하고 있는 이 최악의 중간보스가 결국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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