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03화 (503/1,000)
  • 504화 7층의 보스 몬스터 (1)

    <카르마(業報)> -등급: S / 특성: 어둠, 언데드, 하수인, 싸움 나락, 빅 브라더, 이름 훔침, 반전, 백전노장

    -서식지: 살인자들의 탑 6층

    -크기: 4m.

    -지금은 멸망하고 없는 고대 왕국 ‘로디지아’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라 안팎으로 꽤나 저명했던 마법사 하나가 한순간에 실종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 누구도 행방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가 실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간에는 ‘이름을 훔쳐 가는 악마’가 나타났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로디지아의 마지막 여왕이 숨을 거둔 뒤에도 오랜 시간 동안 대륙을 떠돌며 많은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괴담이 되었다.

    카르마. 6층의 보스 몬스터.

    그레이 시티를 범죄도시로 만든 장본인.

    나는 미묘한 표정으로 한 층 위의 보스몬스터인 카르마를 바라보았다.

    카르마는 우리가 있는 5층으로 내려오고 싶은 듯 이쪽으로 휘적휘적 다가오고 있었다.

    마법사형 몬스터답게 이동 속도가 워낙에 느려 그다지 진척은 없었지만.

    “오랜만이네.”

    나는 카르마를 보고 추억에 젖었다.

    전에 카르마를 본 적이 있느냐고?

    아니다, 다른 랭커들이 공략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본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렇다면 왜 추억에 잠기냐고?

    그것은 내가 옛날에 카르마와 관련된 몬스터 하나를 처치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름 없는 여왕> -등급: B / 특성: 어둠, 언데드, 이심전심, 반전, 백전노장

    -서식지: 잊혀진 유적지

    -크기: 3m.

    -아주 먼 옛날 존재했던 고대국가 ‘로디지아’의 마지막 여왕.

    그녀가 다스리던 국가는 전 대륙을 호령할 정도로 크게 번창했었지만 어느 날 단 하루 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망국(亡國), 그녀의 한은 앞으로도 천 년은 더 푸르리라.

    ‘이름 없는 여왕’

    한때 잡느라 고전했던 몬스터이다.

    당시 나는 샌드웜을 이용해 잊혀진 유적지에 지하로 통하는 구멍을 뚫은 뒤 진입했었다.

    ……그리고 유다희에게 이 여왕의 혼을 빙의시켜 최후의 사냥까지 성공시켰었지.

    그래서일까?

    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유다희의 머리가 나를 찌릿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첫 만남과도 연관이 있는 몬스터네.”

    “…닥쳐라 진짜.”

    나는 유다희의 힐난에도 꿋꿋하게 설명을 계속했다.

    “카르마는 한때 이름 없는 여왕의 신하였던 몬스터이지. 물론 악마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녀를 배신하고 단단했던 성문을 열어젖혀 나라의 멸망을 초래했지만 말이야.”

    고대 왕국 로디지아는 용도 악마도 감히 함락시킬 수 없었던 철옹성의 요새였다.

    하지만 당시 궁정마법사였던 카르마는 악마의 꼬드김에 넘어가 몰래 성문을 열었고 그날로 나라는 멸망했다.

    심지어 카르마는 무덤에 안장된 여왕의 이름마저 훔쳐 달아났고 지금 여기서 살인자들의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불쌍한 여왕은 죽어서도 이름이 없게 되었지. 다 저 카르마라는 놈의 짓이야.”

    “모시던 왕을 배신하고 나라를 멸망시킨 것도 모자라 그녀의 이름까지 훔쳐 간 건가? 캬, 역겨운 놈일세.”

    유다희는 한때 이름 없는 여왕의 몸에 빙의했던 적이 있어서 그런가 더욱 분노했다.

    천공섬 레이드 당시 윤솔이 천사소녀 네티의 몸에 빙의해서 그녀의 히스토리에 공감했던 것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때.

    [그-그기기기긱……]

    카르마가 턱뼈를 주억거리며 우리를 바라본다.

    설마 유다희에게서 나는 여왕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인공지능이 워낙 높은 몬스터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콰쾅! 빠지지지직!

    카르마는 마도서와 지팡이를 휘둘러 마법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맹한 번개들이 땅을 타고 5층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바닥을 뱀처럼 뒤덮는 벼락줄기들!

    “헉!? 미친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범위공격이…!?”

    유다희는 온 바닥을 뒤덮어 오는 장판 데미지에 벌써부터 기죽은 듯했다.

    그러나.

    “너는 학습능력이 부족하구나.”

    나는 옆에 있는 유다희에게 핀잔을 주었다.

    유다희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할 새도 없이, 나는 카르마의 공격을 분쇄하기 시작했다.

    ↗↘⤾↗→↑⤿↗↘↑→↗↕⤿⤤↳↗⤹……

    마치 펌프, DDR, 리듬게임, 오디션 게임 등을 플레이하듯.

    나는 미친 듯이 발을 놀린다.

    두다다다다-

    끝으로.

    …탁!

    나는 가볍게 발을 구르며 바닥에 착지했다.

    CLEAR!

    번개의 웨이브가 무사히 지나갔다.

    “…….”

    유다희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나를 바라보고 있다.

    이윽고 그녀는 더듬더듬 말했다.

    “너, 너 그거 예전에 이름 없는 여왕이랑 싸울 때의 스텝?”

    “빙고.”

    나는 씩 웃으며 다시 전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르마의 공격패턴은 예전에 겨뤄 봤던 이름 없는 여왕의 공격패턴과 100% 동일하다.

    그 위력 면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속도와 패턴이 완전히 동일하기에 이름 없는 여왕의 공격을 피했던 경험이 있는 플레이어라면 카르마의 공격 역시도 피할 수 있다.

    결국 이름 없는 여왕은 죽으면서 나에게 선물을 주고 간 셈.

    S급 몬스터 카르마를 잡을 수 있는 값진 공략법을 말이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한 번 즐겨 볼까?”

    나는 예전 이름 없는 여왕 레이드 당시와 똑같은 상황을 만들었다.

    BGM-<베토벤 바이러스♪>

    베토벤 비창소나타 3악장을 현대식으로 리메이크한 음악으로 빠르고 경쾌한 전자 바이올린 음색이 인상적이다.

    ↗↘⤾↗→↕⤿⤤↳↗⤹↑⤿↗↘⤾↗→↕⤿⤤↳↗⤹↑↑→⤾↗→↕⤿⤤↳↗⤹↑↕⤿⤤↳↗⤹↗↕⤿⤤↳↗⤹⤾↗→↕⤿⤤↳↗⤹↑⤾↗→↕⤿⤤↳↗⤹↑↗→↕⤿⤤↳↗⤹↑……

    나는 또다시 깽깽이 발을 들고 벼락 줄기의 오른쪽을 총총 뛰었다.

    이윽고 뇌전들이 벽을 타오를 때는 왼발로 벼락 줄기의 왼쪽을 총총, 그리고 뇌전들이 본격적으로 팡 터지듯 밀려들어올 때는 그물코 같은 뇌전 줄기의 사이사이를 발끝으로 탭댄스 추듯 디뎠다.

    수많은 격자들의 중앙을 톡톡 지르밟으며, 나는 음악에 맞춰 콧노래를 부른다.

    ‘야, 이거 진짜 옛날 생각 나는데?’

    이윽고.

    탁-

    내가 두 발을 멈췄을 때는 카르마의 마법이 모두 헛되이 지나간 이후였다.

    […….]

    카르마는 멍하니 선 채 나를 바라볼 뿐이다.

    ‘이 새끼 뭐지?’라는 표정으로.

    바로 그때.

    “푸스스스스스! 잔챙이는 저리 꺼져라!”

    조디악. 6층의 도전권을 가지고 있는 그가 전장에 난입해 들었다.

    놈은 시커먼 불길을 뿜어내 카르마를 불태웠다.

    쿠르르륵!

    카르마는 나를 향해 번개를 뿜어낸 직후 스턴 상태에 빠져 있었기에 조디악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 틈을 타 조디악은 품속에서 하멜른의 피리를 꺼내 불기 시작했다.

    “뭐야? 뭘 하려는 거지?”

    유다희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쿠쿵!

    살인자의 탑 5층이 격동하기 시작했다.

    “……음?”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

    내가 조디악이 디자인한 ‘동물의 숲’을 클리어했으니 이제 5층의 맵 디자인 권리는 나에게 들어왔다.

    그리고 그 권리가 완전히 이양되기 전, 조디악은 그동안 감춰 두었던 패를 꺼내든 것이다!

    우지지지지직-!

    동물의 숲이 통째로 뒤틀린다.

    지축이 찢어지며 흙 밑에서 수없이 많은 뼈다귀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화석?”

    유다희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중얼거렸다.

    화석(fossil, 化石).

    퇴적물과 함께 퇴적되어 암석화 된 생물의 육체.

    땅거죽을 비집고 나오는 뼈다귀들은 모두 암석화작용을 받아 엄청나게 단단해진 상태였다.

    <고대화석 해골병> -등급: B / 특성: 어둠, 암석, 언데드, 하수인, 백전노장

    -서식지: 죽음길 나락, 만마전 외성, 썩고 불타는 땅

    -크기: 2m.

    -땅 속에서 오래 묵어 화석으로 변한 해골 병사.

    지력에 의해 숙성되어 더욱 더 단단해졌지만 석유로 변해 흐물흐물해진 일부 신체부위에서는 지옥의 불길이 타오른다.

    엄청나게 많은 화석 병사.

    그 수는 언뜻 보기에도 1만 명을 가뿐히 넘어 보인다!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니.”

    고대화석 해골병은 일반 해골병의 상위종으로 잡몹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꽤나 높은 개체값과 특성치를 가진 엘리트 몬스터였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얼마 전, 빨간 방에 갇혔을 때 조디악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푸스스스. 아니, 나는 그 전에 너를 본 적이 있지. 그 왜, 네가 수많은 오크랑 리자드맨들을 황금동상으로 만들어 버렸을 때 말이야.’

    그때 놈은 내가 죽였던 1만 3천명의 플레이어들을 모조리 ‘무덤사역’ 특성으로 되살려 자신의 부하로 만든 것이다!

    조디악의 해골병은 살아생전의 무력과 1랭크밖에는 차이나지 않는다.

    게다가 그것을 살인자의 탑 5층의 흙속에 파묻어 놓아 지력을 깃들게 했으니 그 힘은 거의 생전의 수준을 회복했을 것이다.

    ‘살인자들의 탑은 안쪽의 공간이 무한하니 많은 수의 군사들을 숨겨 놓기에 딱이었겠군. 빌어먹을!’

    나는 조디악의 흉계를 알고는 경악과 동시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우우우, 내보내줘.]

    […무서워 …무서워.]

    [로그아웃 하고 싶어.]

    [가만 안 둘 거야. 감히 내 언니랑 동생을…….]

    화석이 된 해골병들은 조디악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플레이어 시절에 했던 대사들을 내뱉고 있었다.

    언데드 주제에 꽤나 인공지능이 높게 설정되어 있는 듯했다.

    “푸스스스. 내가 빨간 방에서 죽인 놈들의 원한이 배어 있어서 그런가, 전투본능이 꽤나 투철하지.”

    조디악은 해골병들을 부리며 나를 향해 윙크를 날렸다.

    이윽고.

    살인자들의 탑 5층의 권리가 온전히 나에게로 넘어왔다.

    하지만 조디악은 그 전에 1만 3천 해골병들을 모조리 6층으로 올려놓은 상태였다.

    “이제 5층에는 미련 없다! 나는 이대로 직진할 테니까!”

    조디악은 히죽 웃으며 내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6층의 중앙을 그대로 돌파해 달려간다.

    [그윽! 그으으윽!]

    6층의 보스 몬스터인 카르마는 순식간에 들러리로 전락했다.

    무려 S급 몬스터였지만 조디악과 김정은, 방씨 형제의 합공, 거기에 자그마치 1만 3천에 달하는 화석병들의 행군을 혼자서 막아낼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나와 유다희에게 초반부터 너무 많은 마력을 소진한 것도 약점이었다.

    …우지직!

    조디악은 카르마가 해골병 군단의 파도에 휩쓸리는 것을 보고 낄낄 웃었다.

    “그레이 시티의 범죄자들이 곡소리 내겠군. 좋은 시절 다 갔어.”

    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6층을 돌파해 끝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살인자들의 탑 정상, ‘제 7층’으로 가는 문이 있었다.

    나는 그런 조디악을 향해 외쳤다.

    “7층 문은 시장의 허가가 있어야 열 수 있다! 열쇠 없으면 못 들어갈걸!”

    그레이 시티 시장인 시혼의 인가가 없으면 7층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즉 시혼 시장에게 정식으로 살인자의 탑을 탐사할 권리를 부여받은 나만이 7층의 문을 열 수 있다는 말씀!

    그러나.

    “푸스스스. 시혼 시장의 열쇠? 이걸 말하는 거냐?”

    조디악은 7층의 입구 앞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보였다.

    -<피 묻은 열쇠> / 재료 / ?

    관여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은 열쇠.

    문 저편에서 무언가 불길한 것을 끌어낼 것 같다.

    저것은 내가 처음에 살인자들의 탑으로 들어올 때 썼던 1회용 아이템.

    그레이 시티를 떠날 때 시혼 시장에게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과 똑같은 것을 조디악 역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시혼 시장 역시 내통자였던가!?’

    하기야,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

    그레이 시티의 말단 공무원들이 저토록 썩어 있는 이유가 비단 살인자들의 탑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리라.

    15년간의 미래 지식을 총동원해도 그 한계는 딱 6층의 보스 카르마까지.

    그 이상의 공략은 모르고 있었던지라 시혼 시장의 뒷배경을 놓쳤다.

    그것이 패인이었다.

    끼기기긱-

    결국, 조디악은 7층의 문을 열어 버렸다.

    내가 알던 미래 지식으로도, 그리고 놈이 세운 계획으로부터도 아직 2~3년은 이른 개봉이었다.

    이윽고.

    -띠링!

    <살인자들의 탑 6층 ‘익명(匿名)’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맵의 소유권을 이양 받거나 상위 층에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살인자들의 탑 7층 ‘꼭대기’가 개방되었습니다>

    <‘불길한 것’이 밖으로 고개를 내밉니다>

    열려 버린 7층의 문 안쪽으로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 역시도 얼핏얼핏 소문으로 듣기만 했던 ‘무시무시한 결과’가 눈앞에 재현되기 시작했다.

    [30211273062190990265891806259103216976010135826214572116105222266589658477417896395175321152563115201695175……]

    …실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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