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02화 (502/1,000)
  • 503화 몸을 섞다 (4)

    “둘이 들어가서 하나만 나오는 것을 물었나?”

    “물었나?”

    자욱한 흙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으스스한 목소리.

    나와 유다희는 포연을 걷으며 서서히 등장했다.

    우리의 모습을 본 조디악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딱 벌렸다.

    김정은과 방철해, 방철우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으악! 뭐야 이 괴물은!?”

    조디악이 황당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의 앞으로 2인 1몸이 된 나와 유다희가 착지해 내렸다.

    “어리석은 필멸자들아…….”

    “필멸자들아…….”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하는 것들.”

    “것들.”

    “시공의 폭풍을 지배하러 왔도다!”

    “왔도다…… 근데 우리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해?”

    내가 말하면 유다희가 옆에서 내 말을 메아리처럼 따라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곧 변신이 풀린다고 뻥을 쳤기 때문이다.

    한편, 지금 우리의 모습은 적들을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일단 한 몸에 머리가 두 개. 내 머리가 왼쪽, 유다희의 머리가 오른쪽에 달렸다.

    그리고 목 아래부터 상반신까지는 유다희의 것이나 하반신은 나의 것이다.

    자연스럽게 두 팔은 유다희, 두 다리는 내 것이 되었다.

    유다희가 내 머리에 올라탄 상태로 결합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다.

    나는 물었다.

    “몸 섞은 기분이 어때?”

    “……조까세요 진짜.”

    “은근 재미있지 않아?”

    “미쳤냐? 너라면 이 상황이 재미있겠…….”

    하지만, 그녀가 말을 끝내기 전에 나는 두 다리를 움직였다.

    조디악 일행이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꺄아아악!?”

    유다희는 갑작스럽게 움직이는 몸에 놀라 소리를 질렀다.

    두 다리는 전적으로 내 의사에 의해 움직이기에 그녀로서는 갑자기 몸이 떠밀려 가는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유다희는 은근히 게임 센스가 좋다.

    그녀는 타의에 의해 떠밀려 가는 도중에도 두 손을 놀려 도끼를 휘둘렀다.

    퍼-억!

    사각지대로 접근해 오던 방철우가 순식간에 유다희의 도끼에 맞아 나가떨어졌다.

    HP템을 둘둘 두른 돼지 탱커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엄청난 데미지!

    “……헐?”

    유다희는 깜짝 놀라 자신의 도끼를 내려다보았다.

    원래 깡 공격력이 대단한 양손무기였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나는 유다희를 향해 씩 웃어 주었다.

    “내 공격력을 나눠받은 거지.”

    “……공격력을?”

    우리는 현재 한 몸이다.

    그렇기에 내 특성을 유다희도 일부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럼 또 가 볼까?”

    “…가, 가 볼까?”

    유다희는 이제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내 대사 끝을 따라한다.

    “자, 각오해라 이놈들! 초갈이 간다!”

    “가, 간다!”

    기동력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내가 아닌가?

    내가 작정하고 두 다리를 움직이자 우리들의 몸은 순식간에 쏘아져 나간다.

    “…오, 오오오옷?”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속도로 움직여 본 적이 없는 유다희는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이 짜릿함에 전율하고 있었다.

    당연히 한 몸이니 그녀가 얼마나 흥분해 있는지도 잘 느껴진다.

    한편.

    “으아아아아! 저게 대체 뭐야!?”

    김정은은 나를, 아니 우리를 바라보며 비명을 질렀다.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그녀가 보기에는 여자의 상반신과 남자의 하반신이 한꺼번에 코앞까지 다가오는 게 꽤나 낯설게 느껴졌을지 모른다.

    “받아라!”

    나는 깎단을 발가락 사이에 끼운 채 휘둘렀다.

    ……옛날 어느 나라에 살던 위대한 무사는 단련에 단련을 거듭해 발가락으로도 검을 쥐고 상대를 반으로 갈랐다던가?

    나 역시도 피카레스크 마스크로 인한 공격력 스탯이 꽤나 상당하니 발가락으로도 깎단을 쥘 수 있다.

    뭐, 손만큼 자유롭지는 못하겠지만.

    조디악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뭔 미친놈이야 저게?”

    사이코에게 미친놈 소리를 듣다니,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 썩 좋지 않은 기분을 참지 않기로 했다.

    “받아라!”

    “받아라!”

    유다희는 양손의 도끼를 휘두르고 나는 양발의 깎단을 휘두른다.

    그러면서도 물 흐르듯 움직이는 몸놀림!

    ……어째 우리 합이 좀 잘 맞는 것 같은데?

    “것 봐, 재미있지?”

    “재, 재미있긴 누가!?”

    내가 묻자 유다희는 빨개진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한다.

    그러면서도.

    슉- 슉- 파캉!

    정확한 타이밍에 도끼를 휘두르며 슬며시 미소 짓는 것을 보니 이 상황을 꽤 즐기고 있는 모양.

    나는 슬쩍 추가 질문을 했다.

    “그나저나, 너 내 방송 챙겨 보나 보다? 내 스텝의 딜 넣는 타이밍을 꽤나 잘 포착하는데?”

    “미, 미친! 누가 니 방송을 본다고 그래!? 내가 그런 걸 왜 봐! 안 봤어!”

    유다희는 빽 소리치며 또다시 시선을 피한다.

    바로 그때.

    “자, 장난질은 집어치우자고.”

    조디악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그는 스산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따위 몸뚱아리로 나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냐?”

    조디악은 비웃듯 말했다.

    하기야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이 초갈 모드는 두 명이 한 몸이 된 것이니만큼 행동반경에 제약이 생긴다.

    두 명이 서로 거리를 벌리며 넓은 범위를 마크할 수 없기에 적들에게 포위당할 경우 집중포격에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초와 갈의 호흡이 서로 맞지 않을 경우 그것만큼 끔찍한 참사가 또 없다.

    스텝을 밟는 발과 공격을 하는 손이 꼬일 경우 제풀에 넘어져 자폭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거기에 두 몸이 하나로 합쳐지면서 덩치도 커지니 적들의 공격에 노출될 확률도 더욱 커진다.

    공격을 피하려면 움직여야 하는데 다리가 꼬일 경우 무빙도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응 이겨~”

    나는 조디악이 뿜어내는 검은 불길을 피해 순식간에 그의 등 뒤를 잡았다.

    “어헉!? 어, 언제!?”

    조디악은 기겁을 하며 뒤로 돌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내가 발을 놀려 조디악의 등을 잡는 순간, 유다희는 귀신같은 타이밍에 도끼를 휘둘러 놈의 한쪽 팔을 잘라냈다.

    “크학!?”

    조디악은 피를 뿌리며 뒤로 물러났다.

    황급히 포션을 들이킨 그는 텅텅 빈 유리병을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팽개쳤다.

    “뭐, 뭐야? 이 호흡은? 어떻게 이렇게 손발이 잘 맞지!?”

    놈은 진심으로 놀란 듯싶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우리는 눈앞을 가로막는 방철해와 방철우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하하하! 내가 얘 방송을 얼마나 돌려봤는데 스탭 타이밍을 모를까! 핫하, 받아라! 얍얍! 욥욥!”

    유다희는 내 하반신을 마치 자기 것처럼 쓰고 있었다.

    나 역시 유다희의 상반신을 마치 내 것처럼 다뤘다.

    내가 발을 움직여 무빙을 하면 유다희가 귀신같이 샷을 날린다.

    분명 우리는 ‘단신’으로 조디악 파티를 압도하고 있었다.

    “것 봐. 내 방송 챙겨 본 거 맞네.”

    “뭐? 야! 아니라고 했잖아 아까!”

    “방금 너가 말한 건 뭐야 그럼?”

    “뭐? 내, 내가 방금 뭐라고 했지?”

    흠, 무의식적으로 한 말이라 그런가 기억을 못 하는 모양.

    나는 나중에 녹화 동영상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날렸다.

    한편.

    “이, 이건 말도 안 돼! 이런 플레이가 가능할 수는 없다고!”

    조디악은 혼란에 빠진 모양이다.

    하긴, 놀라는 것도 이해는 간다.

    평소에 파티원들을 고기방패로만 보던 녀석이니 신뢰니 협력이니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그때.

    “야! 너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거야!?”

    김정은이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조디악은 입술을 꾹 깨문 채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답답함을 참지 못한 김정은이 또 한마디 했다.

    “진짜 이대로 죽을 거냐고!”

    “…….”

    “그래, 뭐 죽는 건 상관없는데! 저놈들이 여기 클리어해서 이 맵 소유권 뺏기면 우리 계획도 끝이야! 지금까지 준비한 것들 싹 다 망해!”

    “…….”

    “아, ‘화석병(化石兵)’이라도 좀 꺼내든가!”

    그러자 비로소 조디악이 반응을 보였다.

    “……젠장. 어쩔 수 없지. 계획을 조금 앞당긴다!”

    이를 악물은 조디악은 결국 아껴 뒀던 비장의 수에 손을 댈 모양이다.

    유다희는 도끼로 방철해의 대검을 막아내며 고개를 갸웃했다.

    “어? 저 자식이 뭘 꾸미는 거지?”

    그녀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조디악의 은밀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나 역시도 고개를 들었다.

    ‘……설마? 이 타이밍에?’

    원래대로라면 조디악이 살인자의 탑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는 때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 뒤이다.

    하지만 나로 인해 미래가 바뀌었다.

    조디악은 다소 성급하게 일을 추진하고 있었다.

    “푸스스스! 좋다! 그레이 시티의 쓰레기들은 내주마! 네 맘대로 하라고!”

    놈은 나에게서 멀리 떨어졌고 결국 제 스스로 살인자들의 탑 6층의 문을 열어 버렸다.

    동시에.

    -띠링!

    <살인자들의 탑 5층 ‘동물의 숲’을 클리어하셨습니다>

    <맵의 소유권을 이양 받거나 상위 층에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됩니다.>

    내 눈앞에 선택지가 떴다.

    유다희가 물었다.

    “야, 위로 갈 거지?”

    순간 나는 갈등했다.

    지금까지는 주저 없이 상위 층으로의 도전을 선택했다.

    하지만 지금 고인물로서의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6층으로 가지 말고 5층의 소유권을 선택하라고.

    ‘뭐지? 조디악 이놈, 이 층에 뭘 숨겨 놓은 것이지?’

    나는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이성적으로라면 바로 다음 스테이지인 6층으로 건너가 그곳의 보스인 카르마를 잡고 이 탑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 와중에 조디악을 죽일 수 있으면 더욱 좋고.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의 본능은 6층의 보스 카르마도, 눈앞의 숙적 조디악도 포기하고 이 5층을 먹어 버리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나는 판단을 내렸다.

    ‘본능을 믿자.’

    나는 그레이 시티에 관련된 퀘스트를 포기했다.

    6층의 보스 카르마는 다음에 잡아도 된다.

    일단 5층의 권리를 얻게 된 이상 더 이상 위로 갈 수 없게 되지만, 그것은 뭐 나중에 드레이크나 윤솔, 마태강, 유세희에게 대신 부탁하면 되는 일.

    나는 상위 층으로의 도전을 포기한 채 5층의 주인이 되길 선택했다.

    그러자.

    …쿠드드드드득!

    살인자의 탑 5층이 통째로 꿈틀거린다.

    동물의 숲이 붕괴해 내리는 동시에 이 맵을 디자인 할 권리가 나에게 귀속되고 있었다.

    그때.

    “안돼애애애애애! 차라리 날 죽여라, 이 악마야아아!”

    조디악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다급해 보이는 태도였다.

    “하하하, 뭔지는 모르겠지만 망해라!”

    내가 조디악에게 중지 발가락을 세워 보이고 있는 순간.

    “어어!? 야!”

    유다희가 손으로 내 뺨을 때리며 다른 한 쪽의 손을 뻗어 뒤편을 가리켰다.

    내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으으… 이 망할 놈년들! 대체 내 계획을 어디까지 방해할 셈인 거야!”

    눈에 핏발이 선 김정은이 그곳에 서 있었다.

    이내, 조디악 역시 몸을 날려 그런 김정은의 옆으로 착지했다.

    5층 주인의 권리를 포기한 시점에서 그들은 6층에 도전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윽고.

    …번쩍!

    조디악과 김정은은 잔뜩 독 오른 표정으로 6층의 문을 열어 버렸다.

    붕괴하는 맵, 새롭게 5층의 주인이 된 나에게 6층의 전경이 확 펼쳐졌다.

    [오-오오오오오!]

    6층의 문이 열린 곳에는 섬뜩하게 생긴 한 구의 해골이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카르마.

    ‘업보(業報)’, 혹은 ‘응보(應報)’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위험등급 ‘S’ 랭크의 고위 리치(lich:시체)가 썩어가는 몸을 이쪽으로 빼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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