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501화 (501/1,000)
  • 502화 몸을 섞다 (3)

    “푸스스스스.”

    조디악.

    그는 동물의 숲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있었다.

    슥슥슥-

    발로 바닥을 비비니 화석 하나가 나왔다.

    “아아, 이 숲은 정말 화석이 잘 나오는군. 정말 힐링이 된다니까.”

    조디악은 구멍 속에 있는 정체불명의 뼛조각 하나를 집어 들었다.

    슥슥슥슥-

    조디악은 계속해서 발로 땅을 비볐다.

    부엽토 밑으로 계속해서 화석화된 뼈들이 나온다.

    원래 동물X 숲이 화석을 캐며 힐링을 할 수 있는 게임이라지만… 이건 많아도 너무 많다.

    숲에서 화석이 나오는 게 아니라 화석에서 숲이 나오는 느낌.

    여름방학 탐구생활 과제 정도로 캐는 화석의 수준을 넘어섰다.

    그때.

    …삐걱!

    조디악이 앉아 있는 나무 그루터기 옆에 있던 통나무집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김정은이 미간을 찌푸린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조디악은 그녀를 향해 비죽 웃어 보였다.

    “좀 알아냈나?”

    “……아니. 실패야.”

    “푸스스스. 무능한 년.”

    김정은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그녀는 품속에서 반투명한 젤리 하나를 꺼내 조디악의 눈앞에 대고 마구 흔든다.

    “무능? 하! 너 이 아이템 조합법 알아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그런 것 알아내라고 네년 대가리가 있는 것 아닌가?”

    “아오! 진짜 말 빡치게 하네. 이 새끼? 애초에 니가 슬라임 젤리 파는 그 소년 NPC를 죽이는 바람에 이렇게 된 거 아냐!”

    그렇다.

    지금 김정은의 손에 들려 있는 반투명한 아이템의 정체는 ‘슬라임 젤리’였다.

    -<츄츄의 슬라임 젤리> / 재료 / D

    그레이 시티의 명물 슬라임 젤리.

    슬라임으로 만든 젤리답게 주변 환경의 영향을 잘 받는다.

    조디악은 딴청을 피우며 볼을 긁적였다.

    “그 젤리 팔던 꼬맹이 녀석. 이름이 츄첸이었나? 이럴 줄 알았으면 죽이지 말 걸 그랬어.”

    “그래! 젤리 레시피를 알아낸 다음에 죽이든가 했어야지, 이 사이코 머저리야!”

    “이게 다 네년 실험 때문에 맛이 간 거 아니겠냐? 나도 원래 촉망받던 의사였다구~”

    “어이구, 진짜 말이나 못 하면…….”

    말을 마친 김정은은 이를 갈며 돌아섰다.

    그리고 손 안에 들린 슬라임 젤리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하, 이 쪼끄만 젤리가 참 은근 조합법이 복잡하단 말이야. 이걸 어떻게 대량으로 생산하지?”

    그때.

    파스락-

    덤불숲이 한번 들썩였다.

    삽과 곡괭이를 든 방철우, 방철해 형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뼈다귀들 다 묻고 왔나?”

    조디악이 낄낄 웃으며 묻자 두 오크 전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다.

    몸 전체가 흙투성이가 된 것으로 보아 아마 구덩이를 팠던 모양.

    조디악은 앉아있던 나무 그루터기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그는 품 안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들었다.

    -<지옥불 코어 반쪽> / 재료 / S

    반으로 쪼개진 빨간 구슬 조각.

    너무나도 뜨거워 악마조차도 열상(熱傷)을 입고 만다는 지옥 동쪽의 불길이 담겨 있다.

    발록과 데모고르곤이 떨군 아이템.

    원래는 두 쪽 다 손에 넣은 것이었지만 마지막 구불넝쿨 숲에서 사망 리타이어를 당하는 바람에 한쪽을 떨궈 버렸다.

    그래서 지금은 코어의 절반밖에 없는 상태.

    “푸스스스. 절반뿐이라서 어쩌나 했는데, 이제 다시 완전해지겠군.”

    조디악은 지하에 있는 ‘빨간 방’을 떠올렸다.

    자기 코어를 훔쳐 갔던 놈년들이 저 안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것을 생각하니 희열로 몸이 떨린다.

    “지옥불 코어는 창고 보관도 안 되고 또 죽으면 무조건 떨구는 아이템이니, 뭐가 어찌 되었건 간에 무조건 챙겨 갈 수 있겠어.”

    조디악은 두 손을 쓱쓱 비비며 웃었다.

    그때.

    …퍼펑!

    지하실 입구 쪽이 한번 크게 흔들렸다.

    조디악은 만면에 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돌렸다.

    “자, 놈들이 내가 낸 퀴즈를 풀은 모양이야. 모두들 준비하라고.”

    그의 말에 김정은과 방철우, 방철해 형제가 전투태세를 갖췄다.

    Q. 둘이 들어가서 하나만 나오는 것은?

    둘 중 하나만 살아남을 수 있는 빨간 방.

    이것은 조디악이 끈끈한 우정으로 결속된 파티를 부숴 놓기 위해 디자인한 악취미적인 방이다.

    그는 우정, 신뢰, 믿음 등등의 단어들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성격이니까.

    지하실에서 둘 중 누가 살아남았든 간에 4:1의 싸움에서 이길 수는 없다.

    조디악과 김정은, 방철우, 방철해 형제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지하실 입구를 빙 둘러쌌다.

    누가 나오든 간에 확실하게 죽일 각오로.

    그때.

    연기 속에서 그림자 하나가 보인다.

    딱 한 사람만 지하실 위로 튀어 올랐다.

    연기 속으로 그의 얼굴을 살핀 조디악이 씩 웃었다.

    “푸스스스! 역시! 고인물, 네가 올라왔구나! 그 여자는 죽게 내버려 뒀냐!? 비겁한 놈!”

    ……그런데?

    조디악과 동시에 반대편에 있던 김정은은 다른 말을 한다.

    “어라? 여자가 올라왔네? 고인물 그놈 대신 네가 살아나왔어?”

    순간 조디악과 김정은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상대가 지금 무슨 말을 하나 싶어서이다.

    “방금 내가 얼굴을 봤어! 고인물 놈이 올라왔는데!?”

    “어어? 나도 얼굴 봤어! 고인물이 아니라 아까 옆에 있던 여자가 올라왔던데?”

    엇갈리는 진술.

    하지만 지하실을 탈출한 이는 분명 하나다.

    ……이윽고.

    “둘이 들어가서 하나만 나오는 것을 물었나?”

    “물었나?”

    포연 속에서 으스스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것은 기묘한 메아리를 빚어내고 있었다.

    이윽고.

    포연이 걷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정답은 ‘초갈’이다!”

    바로 한 몸이 된 나와 유다희였다.

    *       *       *

    몇 분 전.

    “이 변태새끼!”

    퍽 소리와 함께 유다희의 주먹이 날아왔다.

    나는 냉큼 몸을 굴려 그녀의 주먹을 피했다.

    유다희는 빨갛게 물든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뭐? 몸을 섞어?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저속한 농담이 나오냐, 이 변태야! 로그아웃한 다음에 성희롱으로 고소할 거야!”

    그녀는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재빨리 사정을 설명했다.

    “진정해. 몸을 섞자는 것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뜻이 아니야, 이 변태야.”

    “뭐!? 이 변태가 누구한테…… 그,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게 뭔데!”

    “네가 생각한 게 뭔지는 네가 제일 잘 알겠지. 아무튼 잘 들어보라고. 변태 씨.”

    나는 유다희에게 한 버그에 대해 설명했다.

    “너 ‘초갈’이라고 알아?”

    유다희는 전혀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여전히 매우 의심스럽다는 기색으로.

    나는 보충 설명을 했다.

    “‘초갈’이라는 것은 말야. 히어X즈 오브 더 스톰이라고, 엄청 재밌고 유명하고 유익할 뿐만 아니라 고상하고 아름답기까지 한 어떤 갓겜에 등장하는 몬스터의 이름이야. 머리가 두 개인 오우거인데 한쪽 머리의 이름은 ‘초’, 다른 쪽 머리의 이름은 ‘갈’이지. 이 캐릭터가 왜 유명하냐면…….”

    나는 유다희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두 명이서 한 캐릭터를 조종할 수 있거든.”

    그렇다.

    초갈은 트윈헤드 오우거로 두 플레이어가 한 캐릭터를 컨트롤하는 기묘한 형태의 영웅으로 유명하다.

    둘이서 한 몸이 되는 만큼 각각의 플레이어가 스킬이나 특성을 모두 따로 설정하고 따로 사용할 수 있다.

    캐릭터의 이동은 ‘초’가 맡고 ‘갈’은 스킬 연사 등이 가능하며 2인 파티 이상이 아니라면 이 캐릭터를 선택할 수 없다.

    블X자드 게임사의 상상력과 개발 역량, 자유로움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도 비슷한 느낌을 주는 버그가 하나 있었어. ‘니아’ 사건을 기억해?”

    그렇다.

    예전 아이돌 E스포츠 대회에서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걸그룹 니아 멤버들 네 명이 한 몸이 되어 싸웠던 버그가 바로 그것.

    그 경우에는 뮤X 겹치기 버그에서 오마쥬 된, 조금 다른 경우였지만 말이다.

    유다희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알아. 깻잎무침 망토였던가? 그걸 입고 서로 몸을 비비면 한 몸이 되는 버그 말이지? 하지만 그 버그라면 곧바로 패치 되어서 삭제되었을 텐데?”

    나는 그녀의 말에 씩 웃어주었다.

    “그거 알아?”

    “……?”

    “원래 버그는 하나를 잡으면 두 개가 생긴다는 것.”

    게임 개발자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사실이다.

    미래를 살아 본 나는 ‘몸 비비기 버그’를 수정하면서 새롭게 생겨난 버그 하나를 알고 있었다.

    일명 ‘초갈 버그’, 혹은 ‘똥나무 버그’라는 이명으로도 유명해지는 기묘한 버그!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아이엠X게임즈에서 제작하고 넥X에서 배급한 ‘트리 오브 세X비어’라는 게임이 있었다.

    ‘보스 탑승 버그’라고도 불리는 버그로 보스 몬스터와 유저가 겹치게 될 경우 유저가 보스 몬스터의 머리 위로 올라가게 되는 버그이다.

    당시 보스 몬스터의 머리 위로 올라가면 공격을 받지 않게 되어 유저는 아주 손쉽게 보스를 격퇴할 수 있었다.

    이에 개발자는 이 버그를 수정하겠답시고 유저가 보스의 머리 위로 올라가면 보스의 에너지가 꽉 차게 수정해 버리는 이상한 패치를 감행했고 점프나 스킬을 쓰던 도중 본의 아니게 보스와 움직임이 겹쳐 보스의 머리 위로 올라가게 된 유저들은 몬스터의 체력이 갑자기 회복되어 버리니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버그의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 잔꾀로 대처했던 이 패치는 그 뒤로도 게임사에 비웃음거리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에는 이 버그가 이스터 에그처럼 희미하게 남아있다.

    예전의 몸 겹치기 버그와도 코딩 방식이 비슷하기에 파생 관계로 짐작되지만…….

    ‘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나는 재빨리 바닥에 드러누웠다. 천장이 너무 내려와서 서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리로 들어오도록 해.”

    나는 데스나이트의 망토를 들어 보이며 유다희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유다희는 빨개진 얼굴로 파르르 몸을 떤다.

    “미쳤냐!? 내가 거길 왜 들어가!”

    “그럼 눌려 죽을래?”

    “…….”

    유다희는 갈팡질팡 망설인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천장은 점점 내려오고 있었다.

    결국 유다희는 엉금엉금 기어서 내 망토 속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밀폐된 공간에 서로 몸을 착 붙인 채 그렇게 누워야만 했다.

    심지어 망토 속의 나는 정말로 알몸인지라 그림이 더욱 미묘하다.

    “이, 이런 망할. 남자랑 이래 본 적 한 번도 없는데…….”

    빨개진 얼굴로 부들부들 떠는 유다희, 하지만 바닥과 천장 사이가 너무 가까워져서 이젠 밀어낼 수도 없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제 비벼야 해.”

    “……뭐?”

    유다희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는 듯하다.

    무슨 비빔면도 아니고 뭘 비비겠다는 걸까?

    하지만 ‘똥나무 버그’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별 수 없다.

    나는 좁은 틈 사이를 낑낑 움직여 유다희의 몸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두 다리 사이에 머리를 끼워 넣고 목마 태우듯 했다.

    동시에 예전 니아의 겹치기 버그 때처럼 머리를 쓱쓱 움직였다.

    “꺄아아아악! 이 미친 변태새끼이이이!”

    유다희의 절규가 울려 퍼지는 밀실.

    동시에.

    파아아아앗!

    두 개의 환한 빛이 우리 사이를 감싸기 시작했다.

    초갈 버그가 발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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