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1화 몸을 섞다 (2)
살인자들의 탑 5층.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쇼윈도 너머에는 철창과 잘려나간 머리통들이 진열되어 있는 빨간 방이 존재한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플레이어들이 이 층의 겉보기에 속아 놀러왔다가 참변을 당했을까?
…뿌드득!
철창을 움켜쥐고 있던 이은비가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이 빨간 방을 디자인한 디자이너가 실실 웃고 있었다.
조디악!
그는 새로 잡힌 사냥감들을 살피며 만면에 웃음을 짓고 있다.
그 사냥감이란 바로 나와 유다희였다.
“푸스스스스! 대어가 걸렸군.”
조디악은 나를 들여다보며 웃었다.
나 역시도 조디악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와, 진짜 오랜만이야. 데스나이트 때 이후로 처음인가?”
나름대로 한 방 먹여 주려고 던진 질문이었다.
당시 놈은 썩은물의 난입으로 인해 데스나이트 레이드에 실패했었고 심지어 나에게 목숨까지 잃었었다.
그러나.
“푸스스스. 아니, 나는 그 전에 너를 본 적이 있지.”
조디악은 철창 앞으로 다가와 나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광대처럼 히죽 웃었다.
“그 왜, 네가 수많은 오크랑 리자드맨들을 황금동상으로 만들어 버렸을 때 말이야.”
순간, 나는 표정이 절로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한때 나는 죽음룡 오즈를 사냥하기 전 선동과 날조로 근 3만여 명에 이르는 오크와 리자드맨들을 윌리엄 레그런드의 풍뎅이 바위 아래로 모아 한꺼번에 몰살시켰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내 눈을 바라보고 황금동상으로 변해 버렸던 이들의 수는 1만이 넘는다.
……그런데 그때 조디악이 그곳에 있었다고?
“거기서 뭘 했지?”
내가 묻자 조디악은 대답 없이 그저 싱글싱글 웃을 뿐이다.
얼굴에 뜨거운 흥분의 빛을 띤 채로.
“푸스스스스! 드디어 널 만나게 되었구나. 심지어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 말이야.”
조디악은 철창과 철창 사이의 강화유리를 손으로 통통 두드렸다.
“이 건축자재들은 특별히 공수해 온 파괴불가 아이템들이지. 또한 이 살인자들의 탑 자체가 무척이나 단단하니 파괴할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특별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디악의 입가에 고여 있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푸스스스… 그래, 그렇게 꼿꼿한 표정으로 나오셔야지. 내가 얼마나 너를 기다렸는 줄 아나?”
이윽고, 조디악은 나에게 입었던 피해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쭉 열거하기 시작했다.
“푸스스스스스. 악의 고성에서 한번 죽었었고, 프로리그 습격사건 때 한번 죽었었고, 고르딕사 때 한번 죽었었고, 데스나이트 때 한번 죽었었고……. 아니 대체 너 하나에게 몇 번을 죽었는지 모르겠군?”
그 말을 들은 금은동 자매도 깜짝 놀란 시선으로 나를 돌아본다.
심지어 유다희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한순간이지만 이 빨간 방 안에 기묘한 유대감이 형성되었었다.
‘무슨 나한테 피해 입은 피해자들 정모 같네.’
나는 팔짱을 낀 채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내가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 이유는 별 것 아니다.
내가 지금 이곳을 빠져나갈 수 없는 것과 같이 조디악 역시도 이곳으로 들어올 수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으니 쫄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조디악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조금만 기다려. 너희 둘 다 곧 수술해 줄 테니까.”
조디악은 어울리지 않게 하얀 가운을 입은 채 실실 웃는다.
유다희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으며 빈정거렸다.
“수술? 지가 무슨 의사인 줄 아나 보네.”
“푸스스스스. 나 의사 맞아. 면허도 있었지. 한때는.”
놀랍게도 조디악은 인터넷 창을 열어 예전 의사였을 때의 신분증을 보여 주었다.
이 점은 나도 솔직히 조금 놀랐다.
“……와, 무슨 의사 면허를 콩순이 해부해서 땄나.”
유다희도 믿지 못하겠다는 시선으로 조디악을 바라보았다.
한편, 조디악은 낄낄 웃으며 옆 방에 갇혀 있는 금은동 자매를 돌아본다.
“아, 너희들 아직도 거기 있었니?”
그는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금은동 자매가 있는 철창으로 다가가 양 손을 흔들었다.
“퀴즈를 맞히면 내보내 준다고 했었잖아. 내 말 못 들었어?”
조디악의 미소를 본 이은비가 철창에 침을 뱉는다.
나는 고개를 들어 금은동 자매의 감옥 한 구석에 붙어 있는 퀴즈 문제를 보았다.
Q. 셋이 들어가서 하나만 나오는 것은?
우리가 받았던 것과 비슷한 퀴즈이다.
단 우리의 경우에는 둘이 들어가서 하나만 나오는 것을 묻는 문제였고 금은동 자매의 경우에는 셋이다.
조디악은 싱긋 웃었다.
“내가 친절하게 답도 알려 줬는데 아직도 퀴즈를 못 맞히다니. 너희들 머리가 너무 나쁜 것 아냐?”
그러자 금은동 자매들은 조디악을 향해 욕을 하기 시작했다.
조디악은 그저 으쓱할 뿐이다.
“분명 답은 ‘너희들’이라고 말해줬는데도 나오지 못했다니. 정말 어지간히도 멍청하군.”
말을 마친 그는 벽에 달려 있는 레버를 당겼다.
“내가 답을 내리는 것을 도와주지.”
그러자.
…키이잉!
모종의 기계장치가 작동한다.
쿠드드드득!
천장이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천장에는 꼭 한 명이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틈이 있었는데 그 공간을 제외하면 모두가 파괴불가인 벽으로 이루어졌다.
조디악은 금은동 자매를 향해 내려오는 천장을 보며 낄낄 웃어댔다.
“푸스스스스! 셋이 들어가 하나만 나오는 것은? 바로 너희들! 그렇다면 그 하나가 될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너희들이 직접 답을 내릴 문제지! 나는 민주주의자거든.”
천장은 실시간으로 내려오고 있다.
금은동 자매들은 이곳에 갇힌 지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누구를 살릴지 정하지 못한 상태였는가 보다.
하지만 당장 천장이 내려오고 있음에야 별 도리가 없었다.
결국 이금비와 이동비가 뒤로 물러났다.
셋 중 가장 전투력이 높은 이은비가 천장의 빈틈으로 들어가기로 한 모양.
“푸스스스스, 아! 드디어 퀴즈를 풀 생각이 들었나 보네.”
조디악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철창 앞에 섰다.
이윽고.
…쿵! 우지직!
천장이 바닥과 완전히 닿았다.
동시에 철창이 개방되었다.
파캉!
철창이 열리자마자 뛰쳐나온 이는 이은비 혼자였다.
“이, 이 XX놈이 언니랑 동비를……!”
그녀는 철창에서 나오자마자 마법서를 펼쳤고 온몸에 화염과 번개를 두른 채 달려 나갔다.
그러나.
쿠르르르륵!
조디악이 뿜어낸 시커먼 화염 역시도 이은비의 붉은 화염에 밀리지 않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조디악의 뒤에는 부담스러운 조력자들이 버티고 있다.
“호호호, 굳이 하나씩을 철창 밖으로 꺼내는 이유가 뭐람? 고약한 취미야.”
김정은. 그리고 방철해, 방철우 형제.
고위 마법사 하나와 오크 전사 들이 조디악을 도와 이은비를 압박했다.
결국 이은비는 두 명의 오크 전사에 의해 제압당했고 김정은이 소환한 칼날에 의해 목이 잘리고 말았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국내 랭킹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할 정도의 실력자라고 한들 쪽수에는 당해 낼 재간이 없는 것이다.
“푸스스스스. 또 하나 늘었네. 우정을 배신한 자의 머리통이.”
조디악은 이은비의 머리를 집어 들고 벽 위의 선반에 예쁘게 장식해 놓았다.
언니와 동생의 희생으로 살아남았던 이은비는 죽어서도 두 눈을 감지 못하고 분한 표정으로 죽었다.
선반 위에 있는 머리통들은 대부분 다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으으, 진짜 사이코 같다.”
유다희는 몸을 한번 파르르 떨었다.
파괴불가의 천장에 압사당하기 싫으면 여기까지 함께해 온 파티원들을 버려야 한다.
끈끈한 사이의 파티원들을 갈라놓는 시련, 이보다 더 악취미적인 함정이 어디 있을까?
그때.
조디악과 유다희의 시선이 마주쳤다.
…움찔!
천하의 유다희마저 몸을 사릴 정도로 조디악은 위험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히죽 웃으며 내 앞의 창살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시선은 유다희를 향해 고정시킨 채로.
“푸스스스스. 네년에게도 꽤나 신세를 졌었지.”
악의 고성에서부터 최근에는 구불넝쿨 숲에 이르기까지.
조디악 역시도 유다희에게 꽤나 많은 괴롭힘을 받았었다.
“너희 둘 역시도 퀴즈를 풀어야 할 거야.”
말을 마친 조디악은 손가락을 튕겼다.
쿠드드드득!
우리가 갇힌 밀실의 천장 역시도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딱 한 사람만 살아나갈 수 있는 틈이 위에 보인다.
“이따 보자고.”
조디악은 싱긋 웃고는 몸을 돌려 방을 빠져나갔다.
끼긱-
놈은 빨간 방을 나서며 내친 김에 방 전체의 천장을 통째로 주저앉게 만들었다.
일말의 가능성도 주지 않을 셈이다.
“……흐음.”
나는 가만히 선 채 천장의 틈을 바라보았다.
저 틈은 딱 한 사람의 부피에만 맞게 설정되어 있기에 크라켄의 틈 특성으로도 끼어들기 힘들 것이다.
애초에 크라켄의 틈 특성은 좁은 곳을 빠져나가는 능력이지 좁은 곳에 맞게끔 몸이 작아지는 특성은 아니니까.
“…….”
“…….”
나와 유다희의 시선이 슬쩍 마주쳤다.
어색한 침묵.
이내 유다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야, 이것 참. 미안하게 됐어.”
나 역시도 입을 열었다.
“그러게. 거 참. 유감이네.”
그러자 또다시 침묵.
이내 유다희가 나를 향해 눈을 가늘게 떴다.
“잠깐만. 야, 뭐가 유감인데?”
“그러는 너는 뭐가 미안하게 됐다는 거냐.”
“……하 참, 짜식. 누나가 나가서 저 허여멀건한 놈 바로 쳐죽여 줄게. 쟤 저번에도 나한테 죽었어.”
“너 혼자서 그게 가능하겠냐?”
“그럼 너 혼자서는 되고?”
나는 유다희의 지적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나라도 조디악과 김정은, 방철해, 방철우 형제를 상대로 4:1의 싸움을 하는 것은 무리다.
잘 하면 될지도 모르지만 여기는 애초에 적들의 아지트,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니 섣불리 불리한 싸움을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
“아 씨, 옛날 생각나네.”
유다희는 입술을 깨물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예전에도 그녀는 나를 구하기 위해 악마의 기름틀에 몸을 던진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마동왕이었지만.’
당연한 말이지만, 유다희의 태도는 그때와는 천지차이다.
“야, 진짜 어떻게 할 거야?”
유다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 둘 중 한 명만 살아나갈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바로 틈 속으로 먼저 들어가 버렸을 유다희이지만, 지금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내 의견을 구하고 있었다.
“…….”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아까 조디악이 말했던 퀴즈를 떠올렸다.
Q. 둘이 들어가서 하나만 나오는 것은?
이 퀴즈의 해답을 잘 생각해 보자.
“…….”
약간의 침묵 뒤.
나는 제안 하나를 했다.
“사실 우리 둘 다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 있긴 있지.”
내 말에 유다희는 반색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벌써 천장은 꽤 많이 내려온 상태.
우리는 서 있을 수 없어 바닥에 엉거주춤 엎드려야 했다.
“빠, 빨리! 시간이 없어! 뭔데! 둘 다 빠져나갈 방법이!”
유다희는 허리를 굽힌 상태로 다급하게 물었다.
나는 태연한 어조로 대답했다.
“몸을 섞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