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닳고닳은 뉴비-497화 (497/1,000)
  • 498화 마르지 않는 돈 (1)

    [아아앙.]

    쥬딜로페는 앙증맞은 두 손바닥을 테이블 위로 탁 올려놓았다.

    입에 거만하게 문 어린이용 시가가 달콤한 분홍빛 연기를 뿜어낸다.

    핫세는 기가 차다는 듯 내 얼굴을 쳐다보며 조소를 띄운다.

    “호오, 행운의 여신인가. 제법 귀여운 펫을 키우는군?”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 줘야겠지?

    “얘는 내 펫이 아니다. 내가 얘 펫이지.”

    “응? 아니, 그러니까. 요 애기가 네 펫이라는 거 아냐.”

    “아니라니까. 내가 얘 펫이라고.”

    “……?”

    핫세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내게 신경을 껐다.

    “그래서, 지금 요 꼬맹이가 나에게 승부를 걸어온 건가? 종목은?”

    [아앙앙. 브웅.]

    쥬딜로페는 카드를 가리키며 뭐라뭐라 옹알거린다.

    옆에서 유다희가 그 말을 통역해 주었다.

    “블랙잭으로 하겠단다. 선택 이유는 초보자들이 배드 빗을 터트리기에 가장 좋은 종목이고 그만큼 서로의 자금이 순식간에 말라 버리는 게임이니만큼 스릴이 있어서 좋다는군.”

    …대체 어떻게 알아들은 거야.

    이윽고, 쥬딜로페는 카드를 드로우했다.

    딜러인 핫세는 피식 웃으며 카드를 뽑았다.

    블랙잭이 시작되었다.

    주변으로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든다.

    딜러 포지션에 앉아 있는 카지노 주인과 갑자기 나타난 꼬맹이 도전자의 1대1 도박.

    그것은 엄청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멍청한 녀석들.’

    핫세는 피식 웃었다.

    사실 이곳 카지노에서 통용되는 포커 카드는 특수한 아이템이다.

    -<타짜의 포커 카드> / 양손무기 / A+

    전설의 도박마 ‘아귀’가 애용했다고 하던 카드.

    대체로 사용자의 말로는 좋지 않은 편이다.

    -특성 ‘너랑나랑은’ 사용 가능 (특수)

    특성 너랑나랑은.

    이 아이템을 공유하는 이들의 속마음을 서로 공유할 수 있는 히든 피스.

    하지만 카드 주인은 속마음 공유를 차단할 수 있다.

    즉 이 카드에 손을 대는 한 핫세는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속마음을 생생히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좋은 패네.”

    핫세는 씩 웃었다.

    첫 패 두 장은 4와 5, 도합 9다.

    핫세는 지체 없이 선전 포고를 날렸다.

    “더블.”

    첫 패 두 장에서 9를 받은 핫세.

    그녀는 바로 다음 패에서 A를 받았다.

    ‘나이스!’

    A는 1 혹은 11로 쓸 수 있는 패.

    그렇다면 핫세의 패는 10, 또는 20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20을 고르는 것이 이득.

    21을 맞춰야 하는 게임에서 세 장의 카드로 20이면 아주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카드의 수야 적을수록 좋은 것이고 20은 21을 제외한 모든 패를 이길 수 있으니까.

    이윽고.

    쥬딜로페는 자신 앞에 놓인 포커 패를 집어 들었다.

    순간, 핫세의 표정이 살짝 바뀌었다.

    ‘뭐야? 왜 속마음이 안 들리지?’

    그녀의 귓가로는 ‘호에에엥’이라는 말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핫세의 등골에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뭐야? 아이템이 고장 났나?’

    하지만 그럴 리는 없다.

    쥬딜로페는 속마음도 표정도 읽을 수 없게끔 움직였다.

    샥-

    이윽고, 쥬딜로페는 손에 쥔 두 장의 카드를 그대로 덮었다.

    그리고 바로 스톱을 알리는 벨을 울렸다.

    단 두 장의 카드로 스톱을 하는 쥬딜로페.

    핫세의 두 눈이 흔들린다.

    ‘……단 두 장으로?’

    패를 받자마자 바로 스톱해 버리는 경우는 드물다.

    패가 아주 좋지 않은 바에야…….

    핫세는 쥬딜로페의 표정을 살폈지만 아무런 감정도 읽어 낼 수 없었다.

    굳이 읽어 낸 메시지가 있다면……‘포에에엥’ 정도?

    ‘젠장. 하지만 나는 20이다!’

    핫세는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지금 여기서 패를 더 추가해 1이나 A를 얻을 확률은 거의 없다.

    21이 넘어가면 무조건 죽어야 한다. 그 판돈을 날리는 것이다.

    이윽고 핫세 역시 스톱을 선언했다.

    [패를 뒤집어 주세요!]

    NPC의 말에 핫세는 패를 뒤집었다.

    20!

    주변 구경꾼들이 탄성을 지른다.

    동시에, 쥬딜로페도 패를 뒤집었다.

    19였다.

    “……아아.”

    지켜보던 몇몇 이들이 아쉬움에 찬 소리를 낸다.

    19면 21과 겨우 2밖에 차이나지 않으니 나름 괜찮은 패다.

    상대가 욕심을 부리다가 자멸하는 경우를 노릴 수도 있으니까.

    “호호호! 이걸 어쩌나?”

    핫세는 테이블 위에 놓인 묵직한 돈자루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첫 판에 바로 지셨군. 그러게 왜 무모한 도전을 하나.”

    핫세는 여유롭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식은땀을 훔치고 있었다.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상대라니, 아주 찝찝하고 불길하다.

    상대는 심지어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어린아이, 행운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저런 천연계 상대가 카지노 딜러들에게는 제일 곤욕이다.

    그녀는 서둘러 이 테이블을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때,

    쥬딜로페가 말했다.

    [우에엥, 뽀엥? 호에엥?]

    “이거 서로가 파산할 때까지 하는 게임 아니었나? 돈도 있고 의지도 있는 플레이어가 아직 여기 앉아 있는데 어딜 감히 딜러가 엉덩이를 떼? 따고배짱이냐?”

    유다희가 통역했다.

    동시에,

    쿵-

    하고, 묵직한 돈 자루 하나가 테이블 위로 더 올라온다.

    내가 판돈을 올린 것이다.

    지켜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심지어 핫세마저도.

    테이블 위에 올라온 돈은 전 판돈의 두 배는 될법하다.

    나는 핫세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자, 다음 판 시작하지. 빨리 앉아.”

    당장 잃는 것은 중요치 않다.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베팅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이 돈은 쥬딜로페가 슬롯머신에서 딴 돈을 부풀린 것이니 나로서는 별달리 아까울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여왕의 뜻대로.

    쥬딜로페는 생글생글 웃으며 테이블 앞의 핫세를 바라본다.

    “…….”

    핫세는 무시할 수 없는 불길함을 느꼈다.

    소름이 등골을 지나 턱 바로 아래까지 쫙쫙 올라온다.

    하지만 별 수 없다.

    딜러 체면도 있고 보는 눈도 많다.

    …차라락!

    딜러가 패를 섞기 시작한다.

    핫세는 첫 번째 패 두 장을 받았다.

    K와 1.

    K, Q, J는 모두 10으로 치기 때문에 이 경우엔 합이 11이다.

    ‘괜찮군.’

    핫세는 쥬딜로페의 표정을 흘끗 쳐다본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다.

    ‘호에엥, 포에엥.’

    속마음은 그냥 안 듣는 것이 낫겠다 싶다.

    핫세는 아직 패의 합에 10의 여유가 있으니만큼 한 장을 더 받기로 했다.

    그녀는 딜러가 주는 패 한 장을 재빨리 받아들었다.

    ‘……신이여!’

    핫세는 태연한 얼굴로 신에게 감사를 올렸다.

    Q!

    Q가 나왔다.

    첫 판에 K(10), 1, 그리고 이번의 Q(10)

    패의 합 21로 블랙잭이다! 무조건 이기는 패!

    하지만 핫세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그는 옆자리 웨이터에게 물 한잔을 주문했을 뿐이다.

    [물 나왔습니다.]

    웨이터가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핫세는 물 한 잔을 그 자리에서 원샷해 버렸다.

    그것을 본 유다희가 나에게 소곤소곤 귓속말을 했다.

    “속이 타나 봐. 패가 안 좋은 게 분명해. 돈 더 걸자!”

    나는 유다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승패에 관계없이 돈은 더 걸 생각이었다.

    “추가 배팅하지. 받겠나?”

    나는 원래 걸었던 돈의 절반을 또다시 테이블 위로 올려놓는다.

    핫세는 씩 웃었다.

    “받지. 받고 10% 더.”

    주변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서로가 서로의 패에 자신이 있을 때 나오는 추가 배팅 경쟁!

    순식간에 카지노 내의 공기가 후끈해진다.

    여기저기서 구경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받고 10% 더.”

    “그거 받고 10% 더.”

    핫세는 이제 어쩔 거냐는 듯 웃었다.

    어줍잖은 추가배팅 신경전 따위는 싹을 잘라 버리겠다는 태도.

    애초에 상대가 막대한 추가배팅으로 따라온 시점에서 이미 이겼다.

    이쪽은 블랙잭이다.

    테이블 위에 쌓인 돈자루가 이미 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고 있었다.

    그때,

    쥬딜로페가 말했다.

    [우우웅, 뿌.]

    “받고 100% 더.”

    유다희의 통역에 핫세가 얼어붙었다.

    ‘……뭐야!?’

    속이 쎄하게 얼어붙는다.

    핫세의 패는 K(10) Q(10) 1 도합 21.

    블랙잭이긴 하지만 블랙잭 중에서 가장 최고의 등급은 아니다.

    가장 최고의 블랙잭은 A(11 or 1)와 10, 두 장의 카드로만 만들어지는 21.

    ‘……설마?’

    핫세는 태연한 얼굴 뒤로 이를 악물었다.

    이미 테이블 위에 쌓인 돈은 어마어마하다.

    카지노에서 돌아다니는 돈의 절반 가까이는 될 것이다.

    이 정도면 이미 그녀의 가용 가능한 용돈 수준을 넘어섰다.

    ‘이런 망할! 빌어먹을 놈을 만났네.’

    핫세는 이 카지노를 차린 이후로 처음으로 후회했다.

    예전 경매장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저 알몸 변태 놈의 도전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여기서 죽게 되면 카지노의 50%만 잃고 끝날 것이다.

    ……하지만 이긴다면?

    “그거 받고 추가배팅은 이제 그만할래.”

    핫세가 도전을 받아들였다!

    테이블 위에 올라온 돈은 원래 금액의 2배가 넘는다!

    [패 오픈해 주세요.]

    딜러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뿌득!

    핫세는 이를 갈며 카드를 뒤집었다.

    K, Q, 1

    블랙잭!

    “우와아아아아아!”

    주변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핫세는 다소 충혈된 눈으로 쥬딜로페를 바라보았다.

    그때.

    쥬딜로페가 패를 뒤집었다.

    단 두 장의 패.

    그것을 본 핫세와 구경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패는 J(10)와 7.

    도합 17이었다.

    핫세는 맥이 탁 풀리는 것을 느꼈다.

    고작 17로 이 금액을 배팅했다고?

    다리가 아직도 후들거린다.

    눈앞이 노랗게 타들어갔던 그 감정이 아직도 안와 속에 뻑뻑하게 들어차 있다.

    근데 눈앞의 이 꼬맹이는 고작 17로?

    자신이 신경전에 걸려들었음을 안 핫세는 허탈하게 웃었다.

    아마 상대방은 자신이 쫄려서 제풀에 죽게끔 유도하려고 했던 것 같다.

    배짱 한번 두둑한, 실로 목숨을 건 허장성세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신경전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었다.

    이쪽은 블랙잭이었으니까.

    “끝났군.”

    “짧지만 피 말리는 승부였어.”

    “우와, 보는 내가 다 식은땀이 나네.”

    구경꾼들이 중얼거렸다.

    핫세가 쥬딜로페를 바라보며 말했다.

    “개평은 줄 테니 조심히 나가렴, 꼬맹이들아. 애초에 여기에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야.”

    핫세는 몸을 일으켰다.

    오늘, 아니 당분간은 도박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엄청난 돈을 땄다는 기쁨보다는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구경꾼들이 환호하며 핫세의 이름을 연호한다.

    핫세가 힘겹게 웃어 보인다.

    “오늘 이곳에 모인 친구분들께 제가 한 잔 씩 사겠……”

    기쁜 맘으로 술을 쏘려는 핫세.

    헌데?

    섬뜩-

    기분 나쁜 예감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핫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테이블엔 아직도 쥬딜로페가 앉아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방실방실 웃는 쥬딜로페.

    그리고 이 어린 여왕의 옆에는 그녀의 최후의 가신인 내가 서 있었다.

    방금 전 판돈의 4배나 되는 거대한 돈자루를 손에 쥔 채로.

    “뭐 해? 빨리 앉아.”

    나는 핫세를 향해 싱글싱글 웃어 주었다.

    그녀는 지금이라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아, 이거 잘못 걸렸구나!’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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